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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괴수의 차크라
“더이상은 무리예요. 세진이를 먼저 구해야돼요.”
강현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세진에게도 들렸다.
“안 돼요. 웹 스파이더가 움직이려고 하고 있어요. 느껴져요. 조금 더 기다려요.”
세진이 말했다. 그 소리에 웹 스파이더가 멈칫했다.
지우도 끝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우의 몸이 움직였을 때 세진이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저한테도 기회를 주세요. 저도 끝까지 몰아붙여보고 싶어요. 정말로 안 될 것 같으면 그때는 말할게요.”
세진이 말했다. 웹 스파이더는 이제 아예 뒷걸음질을 쳐 돌아갔다. 지우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거미줄은 점점 촘촘하게 세진의 몸을 조여갔고 세진의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형…….”
강현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너는 세진이를 계속 보고 있어.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세진이만 보고 있어. 세진이가 한계에 이르기 전에 네가 알려줘야 돼.”
지우의 말에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그리고 드디어 웹 스파이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렸던만큼 움직임이 빨랐다. 웹 스파이더도 겁을 먹고 있었다. 웹 스파이더는 그리로 가도 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랬기에 먹이만 낚아채서 잽싸게 돌아갈 생각이었다.
기회는 단 한 순간이었다.
“괴수의 머리가슴을 칠 거예요. 강현이는 바로 세진이를 구해. 써전님과 형은 바로 딜을 가해주세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지우는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엑스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엑스 블레이드의 칼날 색깔 자체를 바꿔버린 푸른 차크라에 거미줄이 너덜거렸다. 웹 스파이더는 자기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견고했던 거미줄이 느슨하게 끊어지며 흩어져 버리고 있었다.
갑자기 세상이 데굴데굴 굴렀다. 무슨 일인지 깨달았을 때 웹 스파이더의 머리가슴은 맵의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서규태와 태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딜을 가했다. 지우 역시 거기에 합류했다.
강현은 세진을 옥죄고 있던 거미줄을 잘라냈고 세진은 켁켁거리면서 눈물을 떨구었다.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는 생각에 겁이 났지만 제 손을 쥐어주는 강현을 한 번 바라보고는 강현의 손에 잡힌 채 웹 스파이더의 몸을 향해 달려갔다.
1급 괴수에 까다로운 맵이니만큼 낭비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 세진은 어느새 어린 여자에서 헌터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지금은 주저 앉아서 울거나 겁에 질려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들이 딜을 가하던 도중, 웹 스파이더의 거미줄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세진이었다.
“거미줄요. 다시 생겨나고 있어요.”
강현이 거기에 재빠르게 대응을 하며 네메시스를 휘둘러댔다. 그러나 거미줄은 끊어졌던 곳에서 다시 이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발이 자꾸 거미줄에 들러붙는다는 것 뿐이지 처음에는 머리 위의 공간에는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웹 스파이더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상층의 공간에도 거미줄을 새로 만들었다.
어느새 헌터들은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 두 층의 거미줄 사이에 갇힌 것이다. 허리를 굽힌 채 이동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바닥에 무릎을 꿇거나 손을 짚으면서 점점 웹 스파이더의 의도대로 그 안으로 웅크려들게 될 것 같았다.
세진의 손이 먼저 거미줄에 붙들렸다. 머리가슴을 잃었던 거미에게 머리가슴이 다시 생겨난 것도 그때였다.
강현은 세진을 거미줄에서 구출해주려고 서두르다가 오히려 자신이 거미줄에 걸려들어버렸다.
세진은 무기를 휘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가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거미줄의 강도는 처음에 느꼈던 것보다 어느새 세 배 이상은 더 강해져 있었다.
“거미줄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요!”
세진이 소리를 질렀다. 서규태가 강현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고, 태인은 웹 스파이더의 등에 타고 계속해서 딜을 퍼부었다. 거미줄에 시간을 쏟는 것보다는 괴수의 본체를 공격해서 레이드를 끝내는 것이 이 게임을 끝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끝내기에는 괴수의 체력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고, 헌터들 스스로 함정에서 빠져나오기에는 웹 스파이더의 거미줄이 만만치 않게 강했다.
그것은 흡사 바닥이 없는 심연과도 같았다. 디디고 서서 솟구쳐 오를 수 있는 바닥이 없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서규태를 향해 다가오는 거미의 이빨을 먼저 본 사람은 강현이었다.
“피하세요, 써전님!”
강현의 소리를 듣고 서규태를 본 지우가 곧바로 웹 스파이더를 향해 엑스 블레이드를 날렸다. 엑스 블레이드가 허공을 날아갔다. 엑스 블레이드가 붕붕 거리며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소리에 웹 스파이더는 고개를 돌렸고 그 사이에 태인이 뛰어내리며 서규태를 구했다.
태인의 손도끼는 위험천만하게 움직이면서 거미줄을 걷어냈다. 강현은 손도끼가 더 무서운 건지 거미줄이 더 무서운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헌터들은 웹 스파이더가 후방으로 빠진 동안 자기들을 괴롭히고 있던 거미줄을 끊어내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싸움이 끝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돼요. 거미줄을 끊어내는 걸로는 괴수의 체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아요. 괴수를 직접 공격해야 돼요.”
지우가 말했다. 모두들 지우의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이 녀석의 거미줄이 왜 이렇게 질기고 강한지 그들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시간만 채우다가 결국에 퇴각하게 생겼어요.”
서규태가 말했다. 웹 스파이더는 유유자적하게 휴식을 누리면서 헌터들이 거미줄을 끊어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쉬고 있다가, 헌터들이 거미줄을 끊어내고 나면 한 번 또 재빨리 몸을 움직여서 거미줄을 치려는 수작인 것 같았다.
헌터들은 자기들이 웹 스파이더의 계략에 휘말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무의미할 싸움만 계속될 거라면 그냥 차크라나 아끼고 지금 퇴각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거미줄을 걷어내고, 머리 위로 쳐진 거미줄을 전부 다 끊어내고 나자 웹 스파이더가 몸을 일으켰다.
지우는 세진이 한 눈을 팔고 있는 것을 보고 세진의 팔을 붙잡았다.
“정신 차려!”
하지만 세진은 이유없이 넋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빠. 거미줄은 어딘가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세진이 말했다. 그거야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하고 세진을 바라보았지만 그건 그냥 당연하다고 말하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가 시작점이 될 거예요.”
세진이 한 곳을 가리켰다.
“거미줄을 칠 고정점요. 그걸 뺏으면 웹 스파이더를 진정시킬 수도 있을 거예요.”
세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들고 세진이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우리는 거미줄 위에 있어서 거미줄만 신경쓰고 있지만 우리가 원래 잘 했던 걸 하면 될 거예요. 거미줄을 떼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이 저길 직접 공격해서 부수면 돼요. 거미줄이 붙어있는 곳을 직접 공격하는 거요.”
세진이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미줄의 끝이 가느다란 나뭇가지 사이에 붙어 있었다.
“하, 짜증나네. 그 생각을 못한 거란 말이야?”
태인이 말했다. 듣고보니 그거야말로 당연한 얘기였던 것이다.
헌터들은 각자, 거미줄이 붙어있던 거미줄의 고정점을 향해 날아올라갔다. 웹 스파이더는 새 거미줄을 치려고 나오다가 자기가 고정점으로 삼으려고 목표해두었던 것이 바닥으로 투두둑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
거미줄을 걸칠 곳이 없으면 거미줄을 칠 수가 없었다. 거미줄을 걸기 시작했던 곳들이 무너져내리면서 그곳을 지지기반으로 했던 거미줄이 유령처럼 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웹 스파이더는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을 하고 또다른 고정점을 찾아 맹렬히 달렸다. 그러나 웹 스파이더의 행보는 헌터들에게 미리 읽혔고, 헌터들은 웹 스파이더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서 웹 스파이더가 간절히 바라는 그곳을 부쉈다.
상공에 드리워져 있던 것들이 차곡차곡 쏟아지고 무너져 내렸다.
웹 스파이더에게는 이제 맵을 도망치는 일밖에 남지 않은 듯보였다. 강현과 태인이 효과적으로 맵의 지저분한 구조물들을 부수고 돌아다니는 동안 서규태와 지우가 웹 스파이더를 향해 다가갔다.
웹 스파이더는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했다. 거미줄을 엮어 이을 곳들을 계속해서 찾는 것 같았지만 황폐화된 맵에 이제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항복하시지.”
서규태가 웹 스파이더의 앞에서 검을 드리웠다. 공중에서 태인과 강현이 그의 곁으로 뛰어내려 착지했다.
“시작할까요, 써전님?”
강현이 물었다.
“해보죠.”
써전이 기분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남은 것은 이제 다굴밖에 없었다.
“웹 스파이더가 죽은 후에도 웹 스파이더의 몸에서 거미줄을 만들어 낼 수 있나요?”
부지런히 딜을 가하다가 강현이 물었다. 태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웹 스파이더가 배로 뽑아내는 액체가 공기에 닿으면서 굳어서 거미줄이 되는 거니까 죽은 후에는 아마 안 될 걸? 웹 스파이더가 죽은 후에도 배에서 그 액체가 계속 나올까? 내 생각에는 아닐 것 같은데?”
태인이 말했다.
“그럼 적당히 숨은 붙여놓고 거미줄을 뽑아내죠? 이거, 넷건에 쓰면 진짜 좋을 것 같거든요. 다른 괴수들한테도 통할 거예요. 괴수들의 움직임을 둔화시킬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강현이 말하자 서규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굉장히 잔인하게 들리네요.”
하지만 이미 일어서서 웹 스파이더를 향해 다가갔다. 서규태는 웹 스파이더가 거미줄을 짜내던 부위에서 거미줄이 되는 액체를 검 끝에 묻혀내더니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균일한 굵기를 유지하며 공기 중으로 빼냈다.
거미줄은 한없이 만들어졌다.
웹 스파이더는 정신을 차릴만하면 지우에게 치명상을 입고 또 다시 그런 일을 당하면서 달아나지도 못하고 제 몸속의 액체를 뺏겼다.
서규태는 거대한 맵을 이리저리 돌면서 거미줄을 계속해서 빼냈다.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지는가 싶더니 굵기 조절에 실패해서 마침내 웹 스파이더의 배에서 나오던 액체가 똑, 끊어져버렸다.
서규태가 하는 일을 재미있겠다는 듯이 보고 있던 강현이 곧바로 뒤를 이어 서규태가 했던 일을 그대로 반복했다. 웹 스파이더의 배에서 나온 액체를 네메시스에 조금 묻혀 걸고 공기가 그것을 굳혀 거미줄로 만드는데 필요한 시간만큼만 기다리면서 거미줄을 뽑아낸 것이다.
다른 헌터들은 계속해서 웹 스파이더에게 딜을 가했지만 이제부터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다.
웹 스파이더가 만들어낼 수 있을만큼 거미줄을 최대한 얻어내고 웹 스파이더에게 최후의 한 방을 먹이고 맵을 떠나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세진은 아예 맵에 남아있던, 자기들이 찢어놓은 그물을 수거하면서 돌아다녔다. 그것도 조금만 가공을 하면 얼마든지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드가 끝났을 때 그들은 거미줄을 온몸에 뒤집어쓰고 나왔고 레이드가 끝난 후에도 늪 아래를 오가면서 수확물들을 꺼내느라 한참을 더 시간을 들였다.
이제야 전부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강현은 오랜만에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을 느끼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늘은 진짜. 간만에 아주 힘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