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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96화 (19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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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괴수의 차크라

네 살이 된 시현은 가방에 유치원 수첩을 넣고 유치원에 갈 준비를 마쳤다. 그거 하나를 들고 갈 거면 그냥 손에 들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애들도 전부 다 가방을 가지고 다니니까 시현이도 가방을 가져가야 한다는 게 시현의 생각이었다. 다른 애들한테도 말을 해서 이런 건 그냥 손에 들고 다니자고 말해보라고 하자 시현은, 그런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시현아. 유치원에서 삼촌 보게 되면 좋아?”

용하가 물었다.

“응. 죠아.”

“왜 죠아?”

“현챙님이 함촌 죠아하니까.”

“아, 그래애? 선생님이 삼촌을 좋아해?”

“응. 현챙님이 함촌보면 웃잖아.”

“그럼 삼촌이 선생님 보러 자주 갈까?”

“응.”

시현은 삼촌의 말에 대답은 건성으로 하면서 클랜 A 로고가 딱 박힌 운동화를 찾아서 제 발에 꿰기 시작했다.

시현이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이어서, 신발에서 냄새가 나건 말건 항상 그 신발만 신고 다녔다.

“있다가 삼촌이 시현이 데리러 갈게.”

“응. 데리러 와앙.”

시현이를 유치원 통학 차량에 태우면서 용하가 시현에게 인사를 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시현의 선생님이 용하를 보며 수줍게 인사를 했다. 오늘은 시현의 선생님이 통학 지도를 맡은 모양이었다.

“시현이가 유치원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상담을 좀 했으면 하는데요. 오늘 시간 좀 되십니까? 시간이 되시면 제가 유치원으로 가겠습니다.”

용하가 말했다.

“네. 오늘은 태권도 수업이 있어서 11시부터 두 시간 동안은 태권도 선생님이 가르쳐요. 그러니까 오전 시간에도 시간이 잠깐 비긴 해요.”

“아. 그렇군요. 맞춰서 가겠습니다.”

“함촌. 안녀어어엉~”

시현이는 안에서 삼촌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댔다. 용하는 집으로 쌩하니 들어가서 드레스 룸 문을 열어젖혔다.

“신용하님.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지우의 목소리가 천정과 벽 사이의 몰딩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초소형 스피커 주제에 음질 하나는 소름 끼치게 좋아서 지우의 목소리가 들리면 꼭 지우가 옆에 있는 것 같아서 깜짝 깜짝 놀라게 됐다.

“어. 데이트하게 될 것 같다.”

옷을 고르면서 용하가 말했다.

“그래? 여자 생겼어?”

“여자는 원래부터 생겨나 있었고.”

“잘 될 것 같아?”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네가 알 리가 없지.”

“그럼? 혹시 시현이는 아는 사람이냐?”

“시현이는 아주 잘 알지. 시현이가 모르면 안 되는 거지.”

“너! 또 시현이네 선생님이랑 떡치려고?”

“하! 자식. 떡 치다니. 고상한 말 놔두고.”

“어쨌거나 그러려는 거잖아. 제발 시현이 주위 사람은 놔두고 그냥 평범한 사람 중에 고르면 안 돼?”

“안 되는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전부 시현이 주위 사람들인데?”

용하는 아예 콧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옷을 골랐다.

“아니. 왜 새싹반 선생님을 따 먹어? 열매반 선생님을 따먹어. 차라리.”

“이 자식 좀 봐. 전국에 계신 열매반 선생님들 들으시면 화낼 소리를 하네? 내가 친해지려는 선생님은 시현이네 선생님인 거야. 그리고 이 새끼야. 제발 따먹는다는 말 좀 하지마.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순전히 그것만 바라면서 접근하는 변태같잖아. 너! 그리고 갔다오면 나한테 또 전부 다 말해 달라고 할 거잖아.”

“나는, 이 자식아. 네가 걱정되니까 그렇지. 걱정되니까. 우리 용하가 젊은 나이에 성생활은 건강하게 잘 영위하고 있나. 그런 것들이 걱정되니까.”

지우도 지지 않고 말했다.

“웃기셔. 나 이제 샤워하고 나와서 옷 안 입고 돌아다닐 거니까 카메라 확인하지 마.”

“안해, 인마. 안해! 너. 시현이한테 들키지 말고 잘 해라. 시현이가 알면 순식간에 어른돼서 안 돼.”

“안해. 안해. 하오! 저 새끼는 지 친구를 바보로 알아요.”

용하는 쌩하니 욕실로 들어가고 문을 꼭꼭 걸어잠갔다. 세 시간 후에 용하는 새싹반 선생님과 같이 차 안에 있었다. 아이들이 태권도 수업을 받고 나면 배고플 것 같아서 간식을 준비해 주고 싶은데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걸 같이 골라주면 좋겠다고 말을 해서 선생님을 꼬셔내는 데까지는 어렵지않게 성공을 했다.

그러나 시현의 선생님은 굉장히 고지식한 면이 있었고, 시현이에 대해서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한 후로는 거의 한 시간 동안을 혼자서만 떠들어댔다.

“시현이는요. 바른 언어 습관을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시현이가 말하는 걸 보면 문제점이 느껴져요.”

용하는 제 조카가 잘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데 그런 소리가 나오자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우리 시현이가 왜요?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리고. 집에서 말 잘 하는 애가 유치원에 가서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된 것도 아닐 텐데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유치원에서 색깔 이름을 배우고 있거든요. 그런데 시현이는 가르쳐주는대로 잘 안 해요. 검은 색은 계속 머리카락 색이라고 말하고 파란 색은 물 색이라고 하고 노란 색은 바나나 색이래요.”

“창의적이네요.”

“창의적인 게 아니죠. 창의적이면 검은 색을 매번 머리카락 색이라고 하는 대신에 어떤 때는 캄캄한 밤 색이라고 하거나 어떤 때는 잉크 색이라고 하거나 그래야 되겠죠. 이름은 정해진 약속이잖아요. 그런 걸 배우는 건 중요해요.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게 귀엽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안 되는 거예요. 집에서도 교육을 시켜주시면 좋겠어요.”

용하는 표정을 잘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드디어 새싹반 선생님도 용하가 자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확히 두 시간 후에 용하가 집으로 들어가서 문을 요란하게 닫자마자 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됐어? 기분이 안 좋은 것 같다?”

“너는 내 스토킹만 하냐? 내가 들어올 때까지 계속 빈 집만 들여다 보고 있었던 거야? 할 일도 대개 없나보다. 너도.”

용하가 소리를 빽 질렀다. 누가 보면 자기가 정신병잔줄 알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지우는 카메라로 용하를 보고 있겠지만 용하에게는 지우가 보이지도 않고 그저 목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놀고 있네. 레이드 세 판 끝내고 이제 트레일러에 와서 밥 먹는 중이다. 너 들어와서 돌아다니면 알람이 울리게 설정을 해 놨어. 마침 트레일러에 들어와 있는데 소리가 나서 본 거다. 이 자식. 오자마자 짜증내는 거 보니까 잘 안 됐나보네. 왜? 너무 빨리 끝내서 여자가 화났어? 아으. 시현이네 선생님을 두고 이런 말 하려니까 막 미안하네.”

“그 선생 아주 웃기더라니까? 시현이가. 야, 인마. 시현이는 천재거든. 예술가고. 근데 그 선생이 그걸 모르더라니까? 시현이가 검정색이니, 파란색이니 하는 말 대신에 머리카락 색, 물 색이라고 한다고 시현이가 무슨 사회 규범을 무시하는 무정부 주의자라도 된 것처럼 말을 하잖아.”

“그 선생이 그렇게 말해?”

지우도 그 말을 듣는 순간 발끈해서 물었다.

“뭐.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지우가 너무 화를 내는 바람에 오히려 용하가 한 발을 물러섰다.

“이상한 사람이네!”

지우가 말했다.

“그렇다니까!”

“그래서 안 했어?”

“가슴 아프게 해 주려고 나를 못 잊게 만들어놨지.”

“헐.”

“너무 멋있는 복수 방법 같지 않냐? 눈을 보니까 그냥 나한테 뿅 갔더라고. 나를 원하는 게 확실해 보여서 그냥 포장만 풀어준 거지. 나를 먹으라고.”

“변태 새끼.”

“귀 쫑긋 세우고 꼬치꼬치 다 묻고 있는 새끼는 어떤 새낀데?”

용하가 물었다.

“나는 그냥 호기심 많은 새끼.”

“그래. 호기심 많은 새끼야. 레이드나 하러 가라.”

“옛썰. 계속 수고 좀 해 줘.”

“응. 다치지 말고. 다들 몸 조심하시라고 전해드리고.”

“오케이.”

그래놓고 지우는 한참을 웃어댔다. 지우가 킬킬거리는 것을 보면서 태인이 다가왔다.

“왜? 뭐라는데? 시현이는 잘 지낸대?”

“네. 별 건 아니고요. 용하의 사생활이니까 그냥 입 닫고 있을게요.”

“그래. 그런데 지금 바로 출동할 수 있겠어?”

“네. 그런데 왜요?”

“써전님이랑 강현이랑 세진씨가 같이 나갔는데. 공략에 실패했나봐.”

“써전님이요?”

“응. 채준형 마스터한테 특별히 부탁받은 개첸데. 전에도 공략했던 개체라서 마음을 놨던 모양인데 맵이 다르더래.”

“그래서 지금 어디 계시는데요?”

지우가 경직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사람이 공략에 실패했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서규태가 그랬다는 건 굉장히 의외의 일이었다.

“우선 나와서 대기하고 있어. 우리가 바로 합류할 수 없을 것 같으면 돌아오겠다고 하셨어. 그래서 바로 답을 해 드려야 되는 상황이야. 지금 트레일러에는 우리밖에 없어. 갈 거면 바로 같이 가야 되고.”

“그럼 바로 가죠.”

두 사람은 트레일러 앞에 세워져 있던 부가티를 타고 세 사람이 기다린다는 늪으로 향했다.

“안지우.”

태인이 심각한 목소리로 지우를 불렀다.

“네?”

“써전님은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말이야.”

“무슨 일……. 있어요?”

“지우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태인이 그렇게 쉽게 꺼내지 못할 말이 뭔가 해서 지우는 점점 더 긴장이 되었다.

“지우 네 차크라가 폭주했을 때 써전님이 다치셨잖아.”

“네…….”

“그게 회복이 안 되고 있는 것 같아. 내 생각이긴 한데. 전에 레이드를 하다가 느꼈거든. 써전님이 갑자기 숨을 확 들이쉬고 동작을 멈추시는 거야. 차크라를 회복시키려고 그러는 건가 했는데 그게 반복되더라고. 그때마다 써전님 표정이 마구 일그러지고. 고통스럽게.”

“……! 왜 진작 말씀을 안 하셨어요?”

“써전님이 원하지 않으셨으니까. 써전님한테는 클랜 A가 전부라고 하셨어. 치안1부장이라는 자리도 써전님한테는 그다지 의미있는 게 아니라고 하셨고. 써전님은 두려우신 거야. 제대로 싸울 수 없어서 밀려나게 될까봐. 우리한테 필요없는 존재가 될까봐.”

“그건 말도 안 되잖아요, 형!”

지우가 소리쳤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 말도 안 되지. 지연이가 써전님 상태를 체크했는데 전이랑 다르셔.”

“어떻…게요?”

“차크라 소모가 빨라. 회복되지 않은 상처가 통증을 크게 느끼니까 기본적으로 거기에 차크라를 돌리느라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 괴수의 공격에 방어를 하는 것도 한 템포가 느려지는 느낌이고. 내 생각에는 몸이 기억을 지우지 못하는 것 같아. 차크라에 공격당한 그때의 공포를.”

“……. 저한테 공격당했던 때를 말하는 거군요.”

“탱커님은 그렇지 않잖아. 네 차크라에 다치기는 탱커님이 더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그게 이상하긴 해.”

“저한테는. 정이한테만 통하는 차크라가 있는 것 같아요. 정이랑 친밀한, 그런 걸 하면서 만져주면 정이는 자기 차크라가 회복되는 걸 느낀다고 하거든요.”

“그래? 우리한테는 안 통하려나? 친밀하게까진 안 해 줘도 되는데.”

“안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강현이한테 해 봤는데. 그건 정이한테만 되는 것 같았어요.”

“그것도 그렇고. 탱커님은 기본적으로 방어력도 높고 재생능력도 갖고 계시니까 회복이 빨랐던 것 같긴 해. 써전님에 대해서는 뭔가 대책이 필요할 것 같아.”

“A급 헌터가 되셔야 되겠군요.”

“써전님은 절대로 안 하신다고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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