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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87화 (18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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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A급 헌터도 없는 나라들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자기 나라에서 1급 늪이 오픈되고 괴수가 출몰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러시아는 가장 적극적으로 클랜 A를 옹호하고 나섰다. 미국 정보가 마땅히 져야 할 계약상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고 클랜 A를 도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미국의 A급 헌터들이 자국의 헌터들을 납치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실익 없는 다툼이 이어지는 동안 미국은 황폐화되었고 사람들은 지쳐갔다. 헌터의 30퍼센트가 넘는 수가 그 기간동안 레이드를 하는 도중에 숨졌다. 그들은 목숨을 던져서 레이드를 했고, 끊이지 않을 것처럼 출몰하던 괴수들도 이제 더 이상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소강상태에 들어간 것 뿐이지 멸종이 된 것도 아니었고 아직도 어느 1급 늪은 여전히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되면 그 늪도 오픈이 될 터였다.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나와서 희생자를 추모했고 미국 정부는 그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를 충동질 해 클랜 A를 향한 원망의 날을 세우게 만들려고 했다. 미국은 반드시 정의를 실현시킬 거라면서 부통령은 지우의 인도를 한국 정부에 촉구했다. 한국 정부의 입장 발표가 곧 있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과연 한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었다.

***

그것은 특종이었다.

클랜 A를 단숨에 날려버릴 수도 있을만한 위력을 가진 기사였다.

로드 벤슨은 죽었지만 죽으면서 커다란 엿을 남겼다. 이익헌이 침입하는 그 순간에 했던 마지막 통화로 진실의 부스러기를 세상에 남긴 것이다. 이익헌은 기껏 숨겨왔던 자신의 공적이 밝혀지는 것을 봐야했다.

A급 헌터들의 살해범 이익헌. 대통령 살해범 안지우.

그 정도라면 클랜 A는 범죄 집단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두 타이틀을 나란히 올려놓고, 로드 벤슨과 막판까지 협상을 벌였던 방송사 관계자들은 미칠 듯한 고뇌에 휩싸였다. 다른 매체에서 어떻게 나와줄지 알지 못한 채 깃발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그들은 결국 특종을 가장 먼저 터뜨리는 기회를 포기하고 여론의 온도를 먼저 파악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과 선이 닿은 다른 신문사가 그 기사를 가장 먼저 터뜨리게 된 것이다. 특종은 특종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찻잔 속에 태풍을 일으키고 잠잠해졌다. 후속 기사가 마구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 일에 관심을 가질 여력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죽은 대통령은 버리고 클랜 A와의 관계를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미국에 A급 헌터들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대안이 없었다. 대통령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국민들이 보인 반응은 대단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의 사망 소식이 시간 단위로 전해져 온 탓이었다.

브래들리 허버트는 죽었지만 그가 계획하고 일으켜 놓았던 일은 수습이 되지 않았다.

그가 클랜 A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늪의 오픈을 앞당겨 놓은 결과 셀 수 없이 많은 늪에서 괴수가 출몰했다. 괴수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습격을 했고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늪을 뛰어나온 괴수들이 많아지자 괴수들끼리 싸우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면 그 일대의 사람들은 수십년을 일구어왔건 어쨌건 모든 것을 버려두고 차에 올라 그곳에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죽지 않고 도망치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수십 미터나 하는 괴물들의 발에 밟혀 죽는 사람들이 허다했고 정신공격에 당해 몸을 움직이지 못하던 아파트 단지의 몇 만 세대가 다른 괴수의 공격을 받고 한꺼번에 죽는 일도 생겨났다. 일어난 일은 수습되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또 다른 사건들이 발생했다. 외국의 헌터들이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왔지만, 미국이 약속한 돈을 지불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헌터 협회장은 부통령에게 단 몇 가지의 조언만을 해 주었다. 대통령이 죽은 것은 브래들리 허버트의 제안을 듣고 대통령이 탐욕을 부린 결과였다는 거였다. 대통령이 사사로이 캐츠 아이 스톤을 챙길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는 말도 해 주었다. 클랜 A를 도발해서 죽음에 이른 것은 그의 잘못이지만 클랜 A는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미국에는 공포와 무질서가 이어질 거라고 했다.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죽은 마당에, 사람들은 이 사태를 책임질 사람을 찾으라고 할 테니, 친구가 될 수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게 쉬울 거라고 그는 말했다. 지금은 내부의 단합을 위해서 공공의 적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고 공공의 적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은 바로 클랜 A라는 거였다.

그들은 미국의 캐츠 아이 스톤을 강탈해갔을 뿐 아니라 계약을 멋대로 파기했고 무엇보다 미국의 대통령과 A급 헌터들을 죽인 범죄자 무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1급 괴수들이 멋대로 출몰하는 이때에 미국을 돕도록 되어 있었지만 캐츠 아이 스톤을 무단으로 가져간 이후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본보기를 보여야 합니다. 대통령이 입수한 정보가 그들을 압박할 좋은 방안이 될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바로 부통령이 그들의 폭력적인 증오의 대상이 될 거라고 말하며 협회장은 쉼없이 부통령을 충동질했다.

***

자국의 대통령을 살해한 안지우를 인도하라는 미국의 지속적인 요구에 드디어 한국 정부가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나섰다. 사람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직접 입장 발표를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부대신 한국의 헌터 협회와 치안대가 나섰다.

화면에 먼저 나타난 사람은 헌터 협회장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일어난 일에 유감을 표시하며 괴수의 출몰로 고통을 당한 미국인들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오픈일이 되지도 않은 늪이 열리고 그곳에서 괴수들이 출몰하게 된 것이 미국인 과학자 브래들리 허버트의 탐욕스런 연구와 실험이 부른 참사라고 규정하고 미국 정부가 계속해서 클랜 A의 책임으로 떠넘기려고 한다면 한국의 헌터 협회와 치안대도 더 이상은 상황을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브래들리 허버트는 늪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끔찍한 방법을 그 악마적인 머리로 알아냈습니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잔혹한 범죄가 일어날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라서 그 얘기를 차마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브래들리 허버트는 그 일을 저질렀고 미국 정부는 그의 행동을 용인했습니다. 러시아의 헌터들까지도 그 잔혹한 실험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협회장의 말에 모였던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그것을 입증할 수 있냐는 말부터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냐는 말까지 튀어나왔다. 협회장은 눈조차 깜빡하지 않고 증언과 증거물을 전부 확보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인류의 평화를 해칠 수 있는 엄청난 일을 도모했습니다. 자국의 헌터를 강하게 육성시키기 위해서 러시아의 헌터들을 납치하고 감금하고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문을 가했습니다. 부통령도 그 사실에 대해서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지, 자국에서 일어나는 재앙으로 고통받고 분노한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고 이러는 것뿐입니다. 안지우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런 클랜 A의 일원이며 지금까지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의 1급 늪을 공략하다가 지금은 심각한 부상을 당해 의식을 회복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를 지켜낼 것입니다."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지만 협회장은 그 소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이제 치안대장으로부터 치안대의 입장에 대해서 들으시겠습니다. 대한민국 치안대의 치안대장입니다.”

헌터 협회장의 말에 웅성거리는 소리는 극에 달했다. 치안대장은 그동안 대중의 눈 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누구보다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치안대장 자체가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돼 있으며 그 이유로 다른 나라의 타겟이 될 수도 있다는 문제 의식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협회장이 치안대장을 소개한 것이다.

소개를 받고 한 여자가 단상으로 올라왔다. 굳은 표정이었지만 긴장감 때문은 아니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아직 걷는 게 불편하기도 했고, 자기를 직접 움직이게 만든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뿐이었다.

여기저기에서 플래쉬가 터졌다. 외신 기자들의 수도 엄청났다.

“클랜 A의 임정 탱커님 아닙니까?”

한 미국인 기자가 물었다. 임정은 그를 한 번 바라보고 카메라를 보았다.

“오늘 중대한 발표를 위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클랜 A는 해산합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싶어하겠지만 클랜 A의 해산은 도피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레이드를 할 겁니다. 누구의 생명은 무겁고 누구의 생명은 가볍지 않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사는 곳 근처에 생긴 늪에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것도 이제는 거절할 생각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클랜 A는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겁니다. 모두를 구할 수도 없고 모든 괴수를 처치할 수도 없고 그 모든 일을 다 감당하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무적의 존재들도 아닙니다. 우리도 소모됩니다. 우리도 닳아요. 우리도 지치고. 우리의 도움을 구한 사람과 조직과 정부에 도움을 주었다가 엿을 선사받기도 하지요. 정에 호소하면서 구걸을 하거나, 그동안 받은 걸 다시 내 놓으라고 협박을 하는 사람도 만납니다. 일부분, 클랜 A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의 싸움은 처음부터 당신들에게 맡겼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클랜 A는 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당신들이 기다리는 영웅은 당신들이 되십시오.”

임정은 자기가 할 말을 다 마쳤다는 듯이 마이크에서 몸을 뗐다.

그러자 헌터 협회장이 슬쩍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임정에게 소곤거렸다.

자기가 클랜 A의 클랜원이 아니라 치안대장으로 당신을 소개한 거라고 말하자 임정이, ‘아참.’ 이라고 말하고 잠시 말을 골랐다.

“대한민국의 치안대원들께 고합니다.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괴수는 더 강해질 거고 레이드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겁니다. 헌터들이 더 강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의 상황이 비관적이지만은 않은 것은, 대한민국에는 헌터들을 위해 뛰는 기업들이 있다는 겁니다. 바디 펌과 익스트림 헌터가 그곳이죠. 이건 제가 익스트림 헌터의 전속 모델이라서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 말에 여기 저기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떻게든 친한 척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기회만 노리다가 웃어댄 것이다.

“헌터들이 가장 좋은 환경에서 레이드를 할 수 있도록 헌터 협회와 치안대는 계속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치안대장으로서, 그리고 헌터로서, 나는 이제 여러분에게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설지 결정을 해야 할 순간에 여러분은 이것도 같이 결정을 해야 합니다. 최후의 순간에 내가 누구와 싸우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바른 곳에 서십시오. 최후의 순간에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고 싶지 않다면 여러분이 설 곳을 바르게 선택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쓰러진 희생자는 순진해보이지만 악랄한 일을 도모하다가 죽임을 당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임정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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