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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83화 (18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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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그랬으면 좀 더 조심하는 게 좋았겠지. 당신의 그 대단한 정보망으로 놓친 게 있는데. 네가 말한 그 괴수는 나다. 그리고 너는. 그 괴수한테 죽을 운명이다.”

지우는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랬기에 지우가 하는 말을 다 듣고도 지우가 무엇을 계획하는지 알아차린 사람이 없었다.

지우의 두 팔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대통령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려 졌을 때 대통령은 지우의 얼굴에서 눈이 사라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우의 흰자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핏줄이 터진 것이 아니었다. 붉은 차크라가 스며들며 흰자위를 덮고 있었다.

대통령은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거렸다. 의자 아래에 얌전히 붙어있던 발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달아날 곳을 찾아 방황했다. 지우의 얼굴은 지극히 평온해 보였다. 그 엄청난 괴리감이, 어떤 물리적인 접촉도 없이 대통령의 숨통을 조여버렸다.

대통령은 스스로 제 목을 붙잡았다.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갑자기 자신의 어깨에, 견디기 힘든 압력이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차크라가 땅으로 처박을 듯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 사, 살려, 줘,요!"

대통령이 간신히 말을 했지만 그의 행동은 그냥 발작처럼 보였다.

"살려줘! 살려줘요!"

대통령은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어떤 도움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우는 어떤 표정도 없는 얼굴로 그를 노려볼 뿐이었다.

"당신 제안은 거절됐다."

지우가 말했다.

"당신 의사를 존중해서 클랜 A는 계약을 파기한다. 당신이 당신 국민들한테 지옥 문을 열어주고 죽게 됐군. 네 욕심이 네 국민들을 벌거벗긴 채 용광로에 던져넣은 거야. 혼자만 편안한 죽음을 맞는다면 그거야말로 불공평하지. 안 그런가, 대통령? 당신 같은 사람이 혼자만 편히 죽을 수 있겠어? 자기 국민을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미안해서. 응? 느껴봐. 네가 직접. 괴수한테 죽는 게 어떤 건지."

지우가 말했다.

경호원인 헌터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은 대통령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들중 몇 명이 대통령을 향해 움직이려 했을 때였다. 대통령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대통령이 앉아있던 의자가 저만치 밀려나갔고 대통령의 몸이 떠올랐지만 그를 경호하기 위해 모여있던 헌터들조차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천장에 거의 닿은 벽에 대통령이 박혀 있었다. 그의 이마 사이를 꿰뚫고 그의 몸을 벽에 박은 것은 이글거리는 차크라였다. 차크라는 제게 닿은 것들을 녹여 흘려내고 있었다. 타는 냄새와 함께 액체가 흘러내렸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불에 던져진 것처럼 대통령의 몸은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대통령에게는 눈이 남아있지 않았다. 차크라를 타고 뇌액이 흘러나왔다. 헌터들이 뒤늦게 지우를 향해 달려와 지우를 제압하려고 했지만 지우의 몸에서 한꺼번에 스무개가 넘는 차크라가 뻗어나가 그들의 몸을 꿰뚫었다. 심장을 관통하지 않았어도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서규태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의 눈 전체가 붉어져 있었다. 서규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자기가 지우를 돌이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바닥에는 순식간에 수십 구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신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헌터들의 몸에는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포탄이 지나간 것처럼.

서규태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지우는 아직 분노가 가라앉지 않은 듯, 그를 감싼 차크라는 점점 더 강하게 일렁거렸다.

서규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동시에 모든 클랜원에게 신호가 갔다. 누구와 연결이 됐는지, 누가 아직 전화를 받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절망에 찬 소리로 절규했다.

“지우씨가……. 지우씨의 차크라가……. 폭주했습니다!”

***

이익헌이 채준형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서규태가 전하는 말을 같이 들었다. 채준형도 큰 충격에 빠져 있었지만 이익헌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A급 헌터 살해범이었다. 아니. 그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단지 자신의 죄질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대통령을 포함해 스물 한 명.

지우가 죽인 사람들의 숫자였다.

이익헌은 서규태에게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이 모두 구출됐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차크라를 뽑히기는 했지만 곧 회복될 거라고 야로슬라프가 분명히 말해주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브래들리 허버트와 두 A급 헌터가 모두 확실히 죽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익헌은 그 말로 지우를 가라앉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인을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어떤 사람들은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한 순간 이기지 못해서 살인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짓누르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해서 사람을 죽인다.

이익헌이 생각했을 때 지우는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지우가 어떤 상황에서 대통령을 죽였는지 서규태의 설명을 들었을 때는 더욱 확실해졌다. 하지만 지우의 차크라가 폭주한 이상, 지우는 이익헌이 아는 그 사람이 아니었다.

서규태는 지우가 차크라에 완전히 잠식당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동안 그의 뒤에서 지우의 비명 소리가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서규태는 지우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말을 하면서 클랜원들에게 상황을 전했다. 모두들 서규태가 알려준 장소로 가면서 서규태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규태는 대통령이 한 말과, 블랙 호크 트리플 조종사가 싼 값에 자신들의 비밀을 팔아넘겼다는 얘기도 했다.

"젠장. 그 인간. 해변 별장에서 일어난 일도 알고 있겠군요. 나를 해리의 해변 별장으로 데려다 준 게 그 놈인데. 그 놈은 해변 별장에 해리와 라미실이 있었다는 걸 알 거예요. 브래들리 허버트가 같이 있었다는 것도 어쩌면 알 테고. 그놈들이 그곳에서 죽은 걸 알 겁니다. 내 짓이라는 것도 알 테고. A급 헌터를 죽인 걸 감쪽같이 숨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놈이 입을 나불거리면 나도 그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될 수 있겠는데요?"

이익헌이 말했다.

"어차피 지우씨한테는 다른 사람들이 가고 있으니까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죠. 클랜 A의 비밀을 가지고 한 번 성공적으로 장사를 해 본 놈인데 다시 그 입을 열지 말라는 보장이 없죠."

이익헌이 채준형에게 말했다. 그가 누구를 만나러 갈 생각인지 채준형도 이해했다.

대통령이 했다는 말을 듣고는 채준형도 고개를 저었다.

"대통령도 미친 거군요. 받아간 캐츠 아이 스톤도 돌려달라니. 그리고 무보수로 미국에 남아서 레이드를 하라고 했다니. 그것도 아이 목숨을 담보로 그런 소리를 하다니 정상이 아닌 거예요. 아이 납치범보다 더 악질인 거잖아요, 그 대통령이 한 행동은."

"내 말이 그 말입니다. 지금까지 왜 클랜 A가 한국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보고 싶은 시현이를 보지도 못하고 여기에서 레이드를 했는데. 총을 입에 물고 쏜 거나 다름이 없죠. 그런 소리를 해 놓고 살기를 바랐다면 그거야말로 자기가 바보라고 인증하는 거고."

이익헌이 거칠게 말했다.

한국에서도 곧바로 전용기가 떴다. 용하가 시현이를 데리고 올 거였고 강지연과 선아영, 천기정까지, 지우와 감정의 연결고리가 있는 모두가 올 터였다. 그러나 서규태는 지우가 그때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지우의 차크라는 이미 서규태를 노리고 있었다. 지우는 차크라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제 목을 조르기까지 했지만 서규태는 지우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서규태는 화재 경보기를 울렸다. 밖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일대 소란이 벌어지고, 서로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 때문에 사고가 일어났다. 몇몇이 바닥에 깔렸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밟고 달려나갔다. 지우의 차크라는 괴수를 닮아가고 있었다. 차크라 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괴수 같았다.

지우의 몸은 미하일처럼 형체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지우를 둘러싼 차크라가 점차 형체를 띠어가려 하고 있었다.

“써전님……!”

지우가 손을 내밀면서 부르짖었다. 서규태는 지우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우였다. 그것은 지우였다. 괴수가 아닌, 차크라에 잠식당한 나약한 헌터가 아닌 지우였다.

“안지우씨. 당신이 아니었으면 나는 다시 레이드를 꿈꾸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불가능했던 꿈들을 안겨줬어요. 그리고 그걸 실현시켜 줬어요. 당신은 그런 사람입니다. 당신은 지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고. 시현이의 영웅이잖아요. 시현이가 안지우씨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안지우씨도 알잖아요!”

지우가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무릎을 끓었다. 혈관을 타고 용암이 흐르는 것처럼 끔찍한 고통이 매 순간 찾아오면서 그의 의식을 점령하려 했다. 너무 끔찍한 고통이어서, 차라리 이대로 전부 다 포기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우는 숨을 헐떡였다. 그의 고통을 잠재우기 위해서 뭐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서규태는 지우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다. 대통령의 경호원들을 순식간에 죽였던 차크라가 다시 지우의 몸 주위로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계속해서 서규태를 노렸다. 지우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연신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괴수가 아니예요. 써전님."

지우가 힘겹게 말했다.

"알아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요!"

"써전님. 저는 괴수가 아니예요. 괴수가 될 수 없어요. 제가 괴수가 돼 버리면. 시현이도 그럴 거예요. 아빠가 괴수가 돼서 헌터들한테 사냥당해 죽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시현이한테 기회를 주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시현이는 절대로 괴수가 아니예요, 써전님."

서규태는 지우에게 다가가서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지우의 차크라가 지우를 가둔 채로 서규태를 경계했다.

지우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고 공격을 당한 것도 아니었는데 살이 찢어지고 터지면서 피가 솟구쳐 흘러나왔다. 지우는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서규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안지우씨. 조금만 버텨요. 시현이 엄마가 올 테니까 조금만 버텨요. 당신은 살아야 돼요. 시현이를 위해서 그걸 증명해줘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안 돼요, 써전님. 그 사람을 오게 하면 안 돼요. 정이를 못 오게 하세요. 그리고 써전님도 이제 나가세요. 제가. 제가 버티지 못하게 되면. 제가. 써전님을. 흐으으으으!!"

뇌가 부서져나갈 것 같은 충격에 지우의 눈이 뒤집혔다. 그러나 지우는 격렬하게 고개를 젓고 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채 악착같이 버텼다.

차크라가 서규태를 향해 뻗어나갔다. 예리한 칼날 같기도 하고 불길 같기도 한 그것은 서규태를 시시각각 노리며 다가갔다. 지우는 제 팔을 깨물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버텼다.

"안지우씨.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제발 알려줘요!"

서규태가 눈물 속에서 절규했다. 그때 건물 밖에서 차들의 크랙션 소리와 급정거하는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지우의 차크라는 이제 서규태에게 거의 근접하고 있었다. 지우는 차크라를 통제하려고 했지만 이미 제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죽이느니, 차라리 창밖으로 몸을 던져서 자기가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우는 가까스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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