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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미국 대통령이 그들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전갈이 전해진 것은 그때였다. 배가 아프다고 줄행랑을 쳤던 서규태가 쏜살같이 돌아나왔다. 배는 괜찮냐고 지우가 묻자 임시로 해결은 했다고 말을 했다.
대통령은 백악관 대신 다른 장소를 지정했다. 특별한 이야기이니만큼 특별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대통령은 해리의 해변 별장에서 원인 모를 폭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다행히 사고가 일어나는 동안 안에는 아무도 없었던 걸로 밝혀졌다는 말에 이내 안심을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하면서 대통령은 자리를 옮겼다.
지우와 서규태가 도착한 곳은 권투 경기장의 개인 관람석이었다. 대통령은 미리 와 있었다. 사각의 링이 밑으로 내려다보였다.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링과 관중석에서는 개인 관람석 안쪽을 볼 수가 없었다.
대통령은 경기를 보고 있었다. 지우와 서규태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주심이 너무 자주 경기를 중단시킨다고 불평을 하는 중이었다. 경기는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경기를 멈추지 않으면 한쪽이 곧 쓰러지고 그대로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선수는 이미 싸울 의지를 잃은 것 같았다. 그러나 관중들은 그를 죽여버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대통령은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힐끔 바라보고 다시 선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실 얘기가 있는 걸로 알고 왔습니다만.”
서규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람을 불러놓고 하는 짓치고는 대통령의 태도가 꽤나 예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서규태에게 대통령의 모습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잠깐 즐기는 건 괜찮지 않습니까?”
대통령이 말했다.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같이 즐기고 싶었으면 상대방의 취향을 먼저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지우가 말했다. 대통령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클랜 A의 핵심이면서도 이제껏 자기 주장을 제대로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가 말을 하고 있었다. 한 눈에 봐도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훤히 보였다.
대통령은 웃음을 지었다. 그의 심사가 왜 뒤틀렸는지 그는 필요 이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개인 관람석은 좁은 공간이 아니었지만 스무 명이 넘는 헌터 요원들 때문에 좁게 느껴졌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준비하고 있기에 이렇게 과도할 정도로 방어를 하는 건지 지우는 알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두 사람을 향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았다.
“레이드 도중에 장소를 이탈하셨더군요.”
대통령이 말했다.
“그렇습니까? 다른 공격대를 보낸 걸 보고 다른 계획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설마요. 우리 사이에는 맹약이 있지 않습니까.”
대통령의 얼굴에 비열한 웃음이 지어졌다. 서규태는 책상 아래에서 주먹을 쥐었다.
“피곤하신 것 같으니 바로 말을 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지우는 그를 향한 시선을 치우지 않았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헌터 중에 희한한 차크라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였죠. 그 일단의 사람들은 괴수의 숙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죽으면 캐츠 아이 스톤이 나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지우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면서 서규태는 그 얘기를 미리 하지 않은 것을 자책했다. 지우에게도 미리 얘기를 하고 그를 준비시키는 것이 좋았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우는 이내 평정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그 사람은 미국의 앞날을 위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괴수가 출몰하는 이런 시대에 미국이 더 견고하게 서서 세계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이었습니다. 나도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그 가치가 중요하다고 해도 적의 손에 그것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도 했죠.”
대통령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적이라고요?”
지우가 물었다.
“헌터들의 적이 누구겠습니까? 괴수가 아닙니까?”
대통령이 말했다. 지우는 그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통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대통령의 얼굴을 바라보는 서규태의 얼굴에서 땀이 흘렀다.
“그 사람은 몇 가지 사실을 용케 알아내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알지 못하더군요. 나는 그 사람이 물어가지고 온 정보를 바탕으로 내 정보망을 가동시켰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죠. 가령 이런 겁니다. 미노타우로스 괴수를 처치할 때 나타났던, 옥상 위의 남자. 사람들은 그 거대한 차크라가 그 남자의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니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안지우씨?”
지우의 몸이 이번에는 좀 더 크게 움찔거렸다.
“시현이라고 했던가요? 아기가 귀엽던데.”
“…….”
“비밀을 유지하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해 왔던 것 같긴 하지만. 블랙 호크 트리플 조종사 입을 여는데는 큰 돈이 들지도 않았습니다. 딸이 예일대에 들어가고 싶어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약간의 예금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고.”
대통령은 자기가 이룬 쾌거를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얼굴이었다.
지우는 그 사이에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하실 말씀을 하시죠. 주절거리는 게 취미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가 용건도 없이 만날만큼 허물없는 사이도 아닌 걸로 아는데 말입니다.”
지우가 말했다. 대통령은 당신이 언제까지 그렇게 고자세로 나올 수 있는지 보자는 듯이 태블릿을 켰다. 그가 지루하게 터치를 반복하더니 지우를 향해 태블릿을 밀었다.
지우는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시선만 내려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서규태도 그것을 보았다.
“오늘 도착한 영상입니다. 보기에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괴수의 숙주라는 걸 기억하면 그렇게 힘들지 않을 겁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화면에는 속박당한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들에게서 차크라가 일렁이고 그 차크라가 해리와 리마실에게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지우는 화면을 보고서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이 일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거냐고 묻고 싶은 눈치였다. 서규태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다 제 탓 같았다. 레오니드와 미하일을 죽음에 소굴에 버려둔 것도, 야로슬라프와 이익헌이 그곳으로 떠날 때 그들을 붙잡지 않은 것도.
화면을 보는 지금, 서규태의 머릿속에는 이익헌의 등을 떠민 사람이 자기였던 거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지우는 서규태를 바라보았지만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서규태를 자기 자신보다도 더 잘 알았다. 서규태가 그 사실을 숨긴 것이 무슨 이유인지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었다. 그가 자신과 시현을 보호하고 싶었을 거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지우는 제 처지가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서규태를 따뜻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런 시선을 깨달은 서규태는 더 괴로워졌다.
“괴수의 숙주들에게서 차크라를 뽑아서 우리 A급 헌터들한테 주입하는 광경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A급 헌터들은 다시 명성을 되찾게 되겠지요. 안지우씨.”
대통령의 말에 지우는 주먹을 쥐고 대통령을 노려보았다.
“내 제안은 간단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아들 역시 그 차크라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아냈죠. 당신의 아들은 괴수의 숙줍니다. 부정하고 싶은 눈으로 보고 있지만 그래봐야 달라지는 건 없죠. 우리 A급 헌터들이 나한테 바란 건 따로 있지만 나는 우리 나라를 위해서 대승적인 결론을 내려고 합니다. 안지우씨. 나도 어린 아이를 사람들한테 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괴수들한테 자기 가족들을 잃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괴수의 아버지가 괴수를 뒤에 숨겨놓고 선량한 헌터인 척 하면서 자신들의 피를 빨아먹는 거라는 걸 알게 된다면요?”
대통령은 그 말을 하면서 웃었다.
“하지만 그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죠. 클랜 A는 지금까지 과분한 보상을 받아가면서 레이드를 했지만 이제는 과오를 씻기 위해서 무보수로 레이드를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대통령은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지우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기는 했지만 표정을 감추었다.
“당신들은 우리를 기망한 겁니다. 기망을 이유로 계약을 취소하고, 그동안 부당하게 가져갔던 캐츠 아이 스톤의 반환도 요구하는 바입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그런가요? 그렇군요. 그게 당신 생각이군요. 굉장히 흥미롭네요. 계약할 때 나한테 물어보지 그랬습니까? 괴수냐고. 물어본 적도 없었으면서 뭐가 기망이라는 거죠? 내가 당신을 속였습니까? 내가 뭐라고 속였습니까? 아니면. 당신이 멍청하게 혼자 착각에 빠져있는데 내가 바로잡아주지 않았다는 건가요? 혹시 그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지우가 느리고 차가운 어조로 말하며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아직 당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한 건지 잘 깨닫지 못하는 모양인데. 괴수한테 가족들을 잃은 사람들이 당신 아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습니까? 괴수라는 걸 알고도?”
대통령이 말했다.
“정확하고 솔직하게 말하지만 내 아들은 괴수가 아닙니다.”
“그 아이는 괴숩니다. 이 사람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옥상 위의 영상이 그 증거죠. 클랜 A가 우리 뜻에 따라 주지 않을 때 당신 아들이 어떻게 될지 알고 싶으면 이 영상을 보면 됩니다.”
대통령은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영상을 지우를 향해 더 바짝 밀었다.
"당신은 좋은 아버지일 겁니다. 다른 아버지라면 이런 경우에 자식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만 하면서 말이예요. 하지만 당신은 다릅니다. 당신은 클랜 A의 에이스고 클랜 A는 당신 말이라면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어할 테니까 말입니다. 당신이 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요? 그동안 해 왔던 생활을 그대로 계속 해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돈은 그동안에도 충분히 모아 놓지 않았나요? 우리도 완전히 노동을 착취하기만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성의 표시는 할 거예요. 나쁜 조건은 아닌 것 같은데. 괴수를 사면해 주겠다는 건데. 원래는 이런 운명이 될 괴수를 말입니다."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모니터를 가리켰지만 지우는 이제 그것을 보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할 거라는 걸 확실히 하기 위해서 아이를 우리가 데리고 있긴 해야겠죠. 괴수라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거고, 그런 아이를 가두려면 시설을 아마 새로 지어야 할 겁니다. 당신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겁니까? 어쩌다가 괴수를 낳은 겁니까? 하긴. 그것도 차차 연구를 하면 밝혀지겠죠. 우리는 당신의 아이를 철저하게 연구할 생각입니다. 당신의 아이는 재앙으로 태어났지만 당신의 아이에게서 우리가 괴수를 괴멸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꼭 재앙이라고 할 수도 없겠죠. 우리가 당신의 아이에게 다른 의미를 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그 입. 이제 그만 닥치지."
지우가 말했다. 서규태가 지우를 바라보았다. 지우의 얼굴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서규태의 착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력한 눈물이 아니었다. 불처럼 타오르는 차크라였다.
"나는 당신을 적으로 삼고 싶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말했다. 지우의 태도가 변한 사실에 놀랐으면서도 그 사실을 아직 감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