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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아니면 이거?”
야로슬라프는 브래들리 허버트의 목을 완전히 꺾었다. 브래들리 허버트의 목에서 손을 뗐을 때 브래들리 허버트는 이미 산 사람이 아니었다. 머리가 목에 겨우 붙은 채 덜렁거렸다.
"뭐야. 그거. 360도를 돌려버린 거야?"
이익헌이 물었다.
"359도만 돌렸어요."
야로슬라프가 브래들리 허버트의 죽음을 확인하고 말했다.
“괜찮은 거죠, 아짐?”
야로슬라프가 이익헌에게 다가가 그물을 걷어주었다.
“끝을 확인하기 전에는 그렇게 건방지게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야.”
이익헌은 쓰러져있는 라미실과 해리를, 방금까지 자기를 속박하고 있던 문제의 그물로 얽어맸다.
"영웅놀이를 하러 왔으면 영웅이 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바보 놀이 하러 왔던 거였어?"
이익헌이 야로슬라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짧은 순간동안 이익헌의 시선이 여기저기를 스치며 지나갔고 야로슬라프가 크게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자서 안도했다.
“레오니드랑 미하일을 데리고 나가, 야로.”
“같이 나가요, 아짐.”
“잔말 말고.”
“아짐!”
“미안하지만. 클랜 A로는 돌아가지 못할 거다. 이제 너는 클랜 A로 돌아갈 수 없어. 나도 마찬가지고. 너희가 클랜 A하고 연결되는 순간, 클랜 A는 이 녀석들의 죽음에 책임을 피하지 못할 거다. 그 사람들을 그냥 놔 둬.”
“아짐…….”
“너희도 책임질 필요 없어. 이 일은 처음부터 내가 책임져야 되는 일이었어. 이 쓸모없는 두 인생을 데리고 가서, 사후 세계에서 이 놈들을 내 노예로 쓰지 뭐. 별로 쓸모는 없겠지만 그래도 두 놈이니까.”
“아짐, 무슨 생각을……!”
“괜찮아. 어차피 한 번은 책임을 져야 되는 거였어. 레오니드랑 미하일을 데리고 떠나. 그리고 할 수 있겠으면 캐츠 아이 스톤을 모아줘. 나한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면 안지우한테 갚아줘. 이상하게 말이야. 안지우한테 내가 뭘 받은 것도 없는데 그냥 빚진 기분이 든다고. 나는 이런 기분 굉장히 싫어하거든. 다른 건 필요없고 그냥. 안지우랑 시현이를 기억해 줘.”
이익헌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그의 말을 듣는 야로슬라프의 얼굴이 구겨졌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이 녀석들이 깨어나기 전에 떠나라. 저 돼지새끼는 세 시간동안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원래 악당 말을 믿으면 안 되는 거야. 빨리 떠나. 레오니드랑 미하일이 빨리 차크라를 회복할 수 있게 해 주고. 저 녀석들. 깨어나기는 하는 거지?”
"그럴 거예요."
"그래. 됐어, 그럼. 가."
“아짐!”
“가!”
야로슬라프는 눈물을 훔치고 레오니드와 미하일을 향해 달려갔다. 그들은 차크라를 강제로 추출당하고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생명에 지장이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레오니드. 미하일."
야로슬라프가 그들을 깨우려고 했지만 그들은 눈을 뜨지 못했다. 야로슬라프는 두 사람을 양쪽 어깨에 얹고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서 야로슬라프가 익헌을 향해 몸을 돌리려는 찰나 불호령같은 이익헌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가, 개새끼야, 돌아보지 말고!”
야로슬라프는 레오니드와 미하일을 짊어진 채 달려나갔다.
이익헌은 천천히 숫자를 셌다. 이제 야로슬라프가 완전히 떠났을 거라고 생각된 순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론 디어가 그의 손 안에서 빛났다. 해리와 라미실을 향한 브래들리 허버트의 불신이 이익헌의 일을 손쉽게 만들어주었다. 그렇다고 그 돼지새끼 같은 놈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익헌은 일어서서 라미실을 향해 다가갔다.
“즐거웠다. 라미실. 이 개같은 새끼야.”
이익헌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론 디어가 라미실의 목을 베어냈다. 이익헌은 쓸데없는 감상을 뒤로 하고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해리. 끝까지 정이 안 들던 놈. 너도 잘 가. 너무 서두르지는 말고. 네 주인님이 너를 잡을 수 있게 천천히 가 있어.”
해리의 목도 잘려나갔다. 그로써 이익헌은 빼도 박도 못하는 크리미널 헌터가 되었다.
"너희 잘못은. 깜냥도 안 되는 것들이 A급 헌터가 됐다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사양했어야 했던 거였어. 애초에 거기까지 올라가서 그런 지위를 누려보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욕심이 생기지도 않았겠지. 아니다. 너희 잘못은 그것보다는. 나라는 인간을 만난 거였겠지. 좋아. 사과하지. 미안하다. 너희들한테 걸려들어서. 너희가 나한테 걸려든 건가? 어쨌든. 잘들 가. 곧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고."
이익헌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사랑이란 건 귀찮은 거네. 그 여자만 없었으면 실컷 웃으면서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익헌은 스위치를 꺼냈다.
"사랑한다. 선아영. 들리냐, 바보야? 들리냐고. 씨발. 좆나게 보고 싶네. 보고 싶다고!"
이익헌은 마지막으로 스위치를 만지작거렸다. 그것이 고통없이 제 숨을 거두어주기를 바랐다.
“어이, 환우. 이제 파이널 병은 강 부장만 앓는 거야. 나는 먼저 간다고.”
스위치에 얹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탁.
자기도 모르는 순간,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참았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개미가 발을 구르는 진동만큼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하아아아…….”
그는 멍하니 스위치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정녕,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그동안 파이널이니 폭탄이니 하면서 공갈을 쳐 왔다는 건가? 그 많은 사람들이 작당을 해서 순진한 한 사람을, 아니, 강지연도 속았으니 한 사람은 아니다.
멍하니 스위치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던 이익헌의 눈에 알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를 잘리고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닭이 살아서 뛰는 것처럼, 해리와 라미실의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두 손이 더듬어 찾으려고 하는 것이 머리라는 것을 깨닫고 이익헌은 곧 쓰러질 것 같은 와중에도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의 발이 라미실의 머리를 멀리 걷어차자 라미실은 팔에 힘을 주어 몸을 끌면서 손을 더 멀리 뻗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금방이라도 구토가 나올 것 같았지만 이익헌은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었다.
그가 해리의 머리를 차내려고 했을 때였다. 해리의 다리가 이익헌의 다리를 걷어찼다. 이익헌은 뜻밖의 공격에 놀라 제대로 방어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넘어졌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해리의 공격이 한 번 더 이어졌다. 이익헌은 해리의 발길질을 당하고 이십 미터도 더 되는 거리를 한꺼번에 날아가 벽에 허리를 부딪치며 바닥에 떨어졌다.
'괴수의 차크라다!'
이익헌은 벌떡 일어서려고 했지만 해리의 손에서 뻗어나온 마른 나뭇가지 같은 것이 순식간에 이익헌의 몸을 휘감았다.
'어떤 새끼야, 레오니드야, 미하일이야! 이 개새끼들!'
이익헌은 뜻밖의 공격을 당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해리에게 차크라를 뺏긴 녀석이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몸에서 나온 관이 어떻게 연결되어 누구에게 들어간 건지도 알 수가 없었기에 이익헌은 처음부터 자기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야. 저건 미하일은 아니야. 미하일의 차크라는 저렇게 변하지 않았어.'
이익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미하일의 차크라가 폭주했을 때 미하일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미하일의 팔은 저런 식으로 변하지 않았다.
'레오니드인 건가? 저 녀석들. 두 사람의 차크라를 주입했다고 벌써 그 힘이 나타난다는 건가?'
이익헌은 미칠 지경이었다. 라미실이 제 머리를 찾아 움직이는 것을 깨달은 해리가 라미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은 손이 아닌 나뭇가지였다. 손가락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끊임없이 나뭇가지가 자라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자라난 나뭇가지가 순식간에 라미실의 몸을 휘감았다.
라미실은 나뭇가지에 칭칭 감긴 채 그 안에서 조여지고 말라비틀어졌다. 멀리 떨어져있던 라미실의 목은 다행히 그 고통에서 벗어나 있었다. 나뭇가지는 자비도 없이 라미실의 몸을 계속해서 감아조였고 라미실의 몸은 거대한 블렌더에 갈리는 것처럼 으깨지며 피를 토해냈다.
‘저 놈들도 캐츠 아이 스톤을 떨굴 건가?’
이익헌은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을 했지만 라미실의 몸에서 캐츠 아이 스톤은 나오지 않았다. 러프 스톤도 없었다.
‘괜히 기대했네.’
이익헌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는 자기 혼자서 멋대로 기대를 해 놓고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바보라고 해도 바보 둘보다는 바보 하나를 상대하는 게 편하다. 녀석에게 괴수 차크라가 있건 말건, 이익헌은 해리 따위한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A급 헌터가 아니라 A 플러스급, A 트리플 플러스급 헌터라고 하더라도 해리 따위에 기죽을 자기가 아니라고 이익헌은 속으로 용기를 북돋웠다.
해리가 레오니드의 차크라를 받았다고 한다면 조금 어려워질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승률은 반반이었다.
“좋아. 내가 누군지 제대로 보여주지.”
이익헌이 일어서며 온몸에 차크라를 돌렸다. 해리는 굴러다니던 머리를 찾아 제 목 위에 얹어 그것을 붙였다.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해리가 그런 일을 한다고 해서 새삼스럽게 놀랄 것도 아니었다. 이익헌은 그런 해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목도 없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제가 아는 얼굴을 보면서 싸우는 게 훨씬 현실감이 들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머리의 주인이 해리라면 싸울 의욕도 한층 고취되는 것이 분명했다.
“해리. 한 가지만 부탁하자. 그런 짓까지 했으면서 러프 스톤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말로 화가 날 것 같거든? 너는 괴수인 걸로 하자고. 그러니까 러프 스톤을 내놓는 걸로 하자고. 알았지? 열심히 싸울 테니까 그걸 주는 거다. 응?”
해리는 그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 않았다. 멍청한 녀석이 어느덧 괴수의 차크라에 완전히 잠식당해버린 듯했다.
해리의 몸은 나무 껍질로 감싸졌고 그 크기가 점점 부풀어갔다. 해리의 별장이 애초에 천장을 그렇게 높이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쯤 벌써 천장을 뚫고 나갔을 정도로 빠른 성장이었다.
이익헌은 해리의 성장이 어느 곳에서 이루어지는지 유심히 바라보다가 해리를 향해 달려갔다. 손 쓸 틈 없을 정도로 커지기 전에 공격을 하고 감을 익히려는 생각이었다. 이익헌의 론디어는 해리를 공격하는데 그다지 효과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이럴 때 태인의 손도끼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나 이익헌은 제게 있는 것으로 최선의 공격을 했다. 그것은 해리도 마찬가지였다.
해리의 발이 있던 곳에서 나무 뿌리가 순식간에 뻗어 나오면서 이익헌을 붙잡으려고 쫓아왔다. 이익헌은 옆에 있는 가구와 장식품들을 내던지면서 도망쳤고 나무 뿌리에 감긴 탁자가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흐으윽. 전심으로 싸운다 이거네? 그래. 좋은 자세야.”
이익헌은 나무 뿌리로부터 달아나면서도 차크라를 조절했다.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상대와 똑같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도망치면서 관찰한 결과, 이익헌은 해리의 공격 패턴이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레오니드의 차크라를 좀 더 공급받았더라면 이 싸움은 장담할 수 없게 변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해리의 운은 그냥 거기까지였다.
몸에서 빠르게 나무 뿌리와 나뭇가지가 자라서 뻗어나가게 하고 그것으로 상대방을 옭아매는 것이 해리의 공격 수법이었다. 이익헌은 나뭇가지가 자신의 몸에 닿기 전에 멀리 도망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