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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너도 강해지고 싶잖아. 남의 들러리 역할은 너한테 안 어울려. 우리한테 오라고. 브뤼가 빠진 자리를 네가 채우면 돼. 우리는 다시 명성을 되찾을 거라고. 너를 당장 A급 헌터로 만들어줄 수도 있어. 이 녀석들이 죽으면 캐츠 아이 스톤을 내놓는다는 걸 알아? 괴수의 숙주라서 말이야. 러프 스톤보다 더 굉장하지. 러프 스톤은 괴수의 눈을 닮았지. 캐츠 아이 스톤은 어떨까? 이 녀석들의 심장을 닮았을 것 같지 않아? 아직 보지 못했지만 곧 보게 될 거야. 먼저 이 녀석들한테서 차크라를 충분히 얻은 다음에는 그 심장을 보게 되겠지. 불뚝거리는 심장을.”
이익헌은 해머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이큰. 잘 보라고. 너를 위해서 파티를 열어줄게. 너도 강해질 수 있어.”
라미실이 천천히 화면의 각도를 돌렸다. 이익헌의 눈에 놀라운 장면이 들어왔다. 목을 돌릴 틈도 없이, 손목을 비틀 틈도 없이 속박된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체격보다도 더 좁은 나무 관에 억지로 구겨 넣어진 채 레오니드와 미하일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속박되자 숙주에게 닥친 위험에 위기를 느낀 차크라가 폭주하고 있었다. 그 차크라는 하나의 관을 따라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었고 그것이 여러 개의 주사바늘을 통해 라미실과 해리의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라미실은 영양 주사라도 맞는 것처럼 태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강해지는 게 느껴져. 이렇게 빠르게. 이큰. 우리한테 합류해. 우리한테는 네가 필요하고 너한테는 우리가 필요해. 우리중에 누구도 너처럼 악마적이지 못해. 너는 우리 브레인이 돼 줄 수 있다고. 네가 원하던 거잖아. 네가 다스리라고. 미국 정부도 곧 우리한테 무릎을 꿇을 거야. 우리가 뭘 가지고 있는지 알려줬거든. 그 바보들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어떤 게 현명한 결정인지 깨닫게 되겠지. 곧 답이 올 거야. 그 녀석들이 우리를 선택하는 순간 너희는 다 끝나는 거야. 클랜 A가 추락하는 건 순식간이라고.”
헌터 협회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규태와 함께 캐츠 아이 스톤을 받으러 갔을 때 이미 헌터 협회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이익헌은 생각했다. 그제야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갔다.
"대통령도 체면이 있으니까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너희들을 끝내려고 하겠지. 클랜원들이 모두 죽어버리면 계약을 파기하는 건 클랜 A가 되는 거니까. 어려운 레이드들이 주어질 거야. 늪을 열어주는 건 브래들리한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클랜 A의 결말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어."
라미실은 말을 하면서 기계에 부착된 버튼을 오른쪽으로 돌렸고 레오니드의 입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관자놀이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미하일은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고 미하일의 아랫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의 눈에서 핏줄이 터지면서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었다.
그때 화면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혼자서 정장을 걸치고 있었고 비대한 몸을 움직이며 해리와 라미실 사이에서 분주히 돌아다녔다.
이익헌은 그 남자가 브래들리 허버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브래들리 허버트는 링거선을 잡고 차크라가 더 빨리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개폐구를 조절했다.
그는 차크라가 잘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더니 손 안에 조그만 약병을 쥔 채 거기에 주사바늘을 꽂아 넣었다. 라미실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을 터였다. 약병에 들어있던 진한 주황색의 응축액이 링거관에 퍼지며 라미실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차크라의 색깔과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설사 그게 구분되었다고 하더라도 라미실은 브래들리 허버트에 대한 열성적인 믿음을 거두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아, 저게 뭐야? 저 녀석. 야로슬라프 아냐? 이큰. 네가 보낸 거야? 깜짝 선물이야?”
뒤에서 해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인터폰 화면을 보다가 익헌을 돌아보았다. 브래들리 허버트도 인터폰을 바라보았지만 그 두 얼간이들처럼 조급하게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는 천천히 해리쪽으로 움직여 그의 링거관에도 약물을 넣었다.
이익헌은 그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지 못했지만, 그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치밀한 자라는 생각에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일단 손님맞이를 먼저 해야겠어. 이큰. 빨리 결정하라고.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아. 클랜 A는 가만히 놔둬도 추락하겠지만 내부의 배신자가 날뛰어주면 더 빨리 추락하겠지. 올 때 그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캐츠 아이 스톤을 가져와. 그러면 너를 받아줄 테니까. 러프 스톤도 챙겨와. 그걸 팔면 푼돈밖에 안 되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이큰. 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 모두의 머리 위. 우리의 옆자리.”
라미실의 웃음소리가 번졌다.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이익헌은 무엇이라도 때려부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신중해져야 했다. 차가워져야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브래들리 허버트가 어떻게 괴수의 차크라에 대해서 알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괴수의 숙주라고 말했나? 차크라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건가?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사람들이 캐츠 아이 스톤을 남긴다는 건 알고 있는 거고. 안지우랑 시현이의 정체는 모르는 거야.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끝까지 비밀을 지킨 거야. 젠장. 차라리 쓰레기였으면 너희들을 포기하는 게 쉬웠잖아, 이 개새끼들아!’
이익헌은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서성거렸다. 이익헌은 해리와 라미실을 알았다. 그 놈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놈들의 목 위에 붙어 있는 머리로는 감히 다른 인생을 상상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익헌은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서 론 디어를 빼들었다. 론 디어를 손 안에서 돌리면서 그는 제 머리가 차갑게 식어주기를 바랐다.
야로슬라프가 그들의 소굴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야로슬라프는 레오니드와 미하일의 옆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들이 먼저 당한 것과 똑같은 일을 당할 터였다. 그리고 심장같은 캐츠 아이 스톤을 그놈들에게 뺏기고 숨을 거둘 것이다. 숨을 거두고 그것을 뺏기던가. 아마 후자겠지.
이익헌은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이 분산되자 머리를 흔들었다. 이익헌의 아랫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겨우 해리와 라미실같은 놈들에게 이런 굴욕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개새끼들!!’
이익헌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결국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아아, 씨발!! 나 이익헌이야. 나 이익헌이라고. 씨발. 그런데 내가 왜?’
그 순간에 선아영이 떠올랐다. 선아영이 아니었으면 알지 못했을 감정들, 세우지 못했을 결심들.
이게 다 그 여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익헌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번져버렸다.
‘너 때문인 거냐? 결국. 네가 나를 망쳐놓은 거네?’
그때부터 이익헌의 손이 강박적으로 떨렸다. 론 디어가 순식간에 몇 바퀴나 돌아갔다.
‘그 미친 새끼들 심장을 도려내주지. 그래. 착한 새끼들아. 오래 잘 먹고 잘 살아라. 손에 사람 피 묻히는 건 아무나 하는 건 줄 알아? 씨발. 내가 해 준다고!’
그는 멀리서 무리를 짓고 서 있는 클랜원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익헌의 머릿속에 파이널이 떠올랐다. 해리의 별장에 자기가 찾아간다면 그때는 어떤 결말이 나든 그곳에 세 구의 시신이 남을 거라는 게 확실했다. 야로슬라프와 레오니드, 미하일이 죽거나 해리와 라미실, 그리고 브래들리 허버트가 죽거나.
세 구의 시신을 거기에 남겨둔 채 유유자적 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채준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그에 의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가 이어준 삶이었다.
‘그래. 어차피 여분이었어. 그렇게 끝내면. 간지는 좀 나겠다.’
이익헌의 손에서 론디어가 멈췄다. 생각의 정리는 이제 끝난 상태였다.
헌터들은 어느새 괴수에게 밀리고 있었다. 헌터들은 괴수를 공격하기는 커녕 괴수들의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도 못해서 하나 둘씩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병신같은 것들. 하는 꼬라지가 그렇더라니.’
미국 정부는 클랜 A를 버릴 것이다.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이익헌이 서규태에게 다가갔다.
“돌아가죠.”
이익헌이 말했다.
“밀리고 있잖아요. 우리가 나서야 할지 몰라요.”
서규태가 말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미국 정부는 우리를 버릴 겁니다.”
“무슨……!”
서규태가 큰 소리를 내려는 것을, 이익헌이 손가락을 제 입에 갖다대며 조용히 시켰다. 그리고 서규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뭘 달라는 겁니까?”
“스위치. 그거 줘 봐요.”
“스위…치요?”
“파이널을 터뜨리는 거 말이예요. 강 부장꺼 말고 내꺼. 일단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까 그냥 줘봐요. 필요해서 그래요."
서규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익헌을 바라보다가 갑옷 안쪽에서 스위치를 꺼내주었다.
“내것만 뺏는다고 되는 게 아니예요. 안지우씨는 절대로 이렇게 순순히 주지 않을 겁니다.”
이익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서규태에게 바짝 다가가서 말했다.
“어떤 미친 놈이 해리와 라미실한테 붙었어요. 그냥 미치기만 한 놈은 아니고 실력은 있는 놈 같아요. 그 놈이 괴수 차크라에 대해서 알아냈어요. 레오니드랑 미하일이 그놈들한테 붙잡혔고 지금 차크라를 뽑히고 있어요. 그 놈들은 레오니드와 미하일에게서 캐츠 아이 스톤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야로가 거기로 갔고요. 곧 야로도 붙잡힐 겁니다. 아직은 지우씨와 시현이에 대해서 모르지만 언제까지 비밀이 지켜질지는 몰라요. 지우씨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저 바보는.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저 사람은 시현이를 지켜야 하잖아요. 이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그놈들은 스스로 멈추는 방법을 몰라요. 그럴 때는. 누군가 나서서 멈추게 해 줘야죠. 블랙 호크 트리플은 내가 타고 갈 겁니다. 나 정도 실력을 가진 헌터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이익헌은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뭔가 그럴듯한 인사말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서규태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헌터 협회를 오가면서 뭔가가 잘못돼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서규태는 그의 말을 모두 믿었다.
"그리고. 오픈일이 앞당겨지는 것 말인데. 그것도 그 놈 짓이예요. 브래들리 허버트. 그 놈이 방법을 알아냈어요. 괴수한테 헌터가 죽으면 늪의 반경이 더 빨리 커지는 모양이예요. 그 놈이 그걸 알아내고 그걸 응용하고 있어요."
"응용요?"
"코모도 괴수의 독침을 이용하는 것 같아요. 그걸로 헌터를 마취시켜서 늪에 던지면 괴수가 헌터를 잡아먹고 늪에서 더 빨리 나오는 거예요."
"그런 걸 전부 말했다는 겁니까? 왜 그걸 순순히 말을 한다는 거죠? 속임수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놈들은 나를 끌어들이고 싶어해요. 그래서 자기들이 우월하다는 걸 보이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놈들이 이미 미국 정부한테 딜을 넣은 것 같아요. 캐츠 아이 스톤을 효과적으로 구할 방법을 알아냈다고 할지도 모르죠. 괴수의 차크라를 뽑아서 헌터한테 주입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그 놈들이 그렇게 해서 강해지면 클랜 A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국 정부는 클랜 A하고 했던 계약을 부담스러워할 거고 계약을 파기하고 싶어할 거예요. 의무 불이행의 책임을 면하려고 클랜 A를 무자비하게 돌리려고 할 거고. 그건 아마 지금부터 시작된 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