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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헌터 협회장은 움찔하면서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서규태는 그에게 딱 하루를 주겠다고 말했다. 내일까지는 그 사람이 휴가에서 돌아와 있는 게 좋을 거라고 말을 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그 대단한 금고는 자기가 직접 부숴주겠다고 말했다. 헌터 협회장은 그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돌아오면서 이익헌과 서규태는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을 대하는 헌터 협회 사람들의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바뀐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참다못해 서규태가 이익헌에게 물었다.
“혹시 내가 모르게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닌 거 있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이제 깨끗이 손 씻었다고요.”
이익헌이야말로 억울해서 펄쩍 뛰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혼자 돌아다닐 시간조차 안 나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여간 마음이 상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저 놈들. 왜 저러죠?”
이익헌이 잘못한 것도 없다면 헌터 협회에서 저렇게 나오는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는 듯이 서규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집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나보죠.”
“갑자기 A급 헌터들이 생긴 것도 아닐 테고. 우리가 아니라면 대안이 없을 텐데 그 표정들이 뭔지. 마음에 안 드는데요?”
“캐츠 아이 스톤을 주지 못하는 게. 그걸로 다른 A급 헌터를 만든 건 아니겠죠?”
이익헌이 말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늪의 오픈일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시점에 그런 도박을 할 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하루 이틀 알아온 것도 아닌데. 우리 성격이 어떻다는 것쯤은 다 알지 않을까요? 저쪽에서 계약을 깨려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러게요. 그럴리가 없겠죠? 이상하긴 하네요.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그들이 트레일러로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던 헌터들은 뭔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서규태와 이익헌은 헌터 협회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이제는 모두가 같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헌터 협회에서 직접 사람이 나왔던 것이다. 약속되어있던 캐츠 아이 스톤 두 개가 엄중한 호위를 받으면서 도착했다.
착오가 있었다는 석연치 않은 설명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캐츠 아이 스톤을 받았고, 미국 정부가 클랜 A를 포기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클랜원들은 불편한 기분을 지워버리려고 했다.
"태인씨. 강부장이랑 연락 자주 하지? 강부장한테 전화할 일 생기면 여기에 들어오는 것 좀 서두르라고 해. 이 새끼들. 우리 뒤에서 딴 수작을 부리려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우리가 먼저 알아야 돼."
이익헌이 말하자 태인도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인이 지연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지연에게서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아, 지연씨.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는데."
태인이 반갑게 말했지만 그의 말은 지연의 다급한 목소리에 의해서 중단되었다.
"야로슬라프 같이 있죠? 옆에 있으면 좀 바꿔줘요."
"네. 뭐. 여기 있으니까."
전화를 바꿔준 태인은 지연이 야로슬라프를 찾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클랜 A의 다른 누구를 찾는 것보다도 야로슬라프를 찾는 게 더 이상했던 것이다.
“야로. 지연씨가 왜 너를 찾아?”
전화기를 건네며 태인이 물었다.
“그러게요?”
야로슬라프도 이유를 알지 못한채 전화를 받았다. 지연은 자기가 확인한 사실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갖는 건지 알지 못하기는 했지만 야로슬라프에게 그 일을 알려주어야 하긴 할 것 같아서 급히 그를 찾았다.
“야로. 레오니드랑 미하일한테서 연락 온 게 언제야?”
야로슬라프가 전화를 받자마자 지연이 다짜고짜 물었다.
“사흘 됐어요. 사흘 전에 레오니드가 전화를 했었어요."
"그때 레오니드가 무슨 얘길 했어?"
"별 것 없었던 것 같은데. 아. 어떤 남자에 대해서 물었는데 이름이. 어. 아! 브래들리 하비스트라는 남자에 대해서 아는 게 있냐고 물었는데 모른다고 했어요. 아니, 브레드 허버트. 아니다. 브래들리 허버트. 브래들리 허버트라는 남자였어요. 그런데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레오니드랑 미하일 두 사람.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어. 이틀 전부터.”
지연이 말했다. 야로슬라프는 멀뚱한 표정을 짓고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예요?"
"위치 추적기가 그대로 있다고. 이동이 없어. 평소에 당연히 가는 곳에도 가지 않았고. GPS 리시버에 그렇게 나타나.”
“두 사람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세요?”
야로슬라프가 물었다. 지연이 왜 그 일로 걱정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연도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어떤 존재들인지 알텐데 뭘 걱정하는 건가 싶었다.
“나도 이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 그래도 야로한테 알려줘야 할 것 같았어.”
지연이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지금. 누군가 두 사람을 납치해서 감금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왜?”
“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데?”
“두 사람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코모도 괴수의 독침은 생각보다 효과가 강력해. 채준형 마스터는 그런 의도로 만들지 않았지만 헌터들한테 사용이 되면 치명적이야. 순식간에 코끼리 세 배 몸집의 괴수를 마비시킬 수도 있는데. 두 사람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두 사람을 마취시켜서 납치하고 감금하는 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일단 제가 연락을 해 보는 게 낫겠군요."
"어떤 상태인지 모르잖아. 연락을 하는 것보다는 가 보는 게 낫지 않을까?"
"무슨 일인지 확실하지도 않은데요?"
"야로. 내 생각엔 야로가 너무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알았어요. 두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 좀 알려주세요.”
“그럴게.”
“레오니드랑 미하일이 잡혀있는 거라면. 두 사람을 붙잡고 있는 놈들이 두 사람한테 위치추적기가 있다는 걸 알아냈을 가능성도 있을까요?”
“모를 거야. 내 생각이긴 하지만.”
“알았어요. 그 생각이 맞길 바라야겠네요.”
“그런데. 아까 말이야. 브래들리 허버트라고 했어?”
지연이 물었다.
“네. 왜요? 혹시 그 사람을 알아요?”
“나는 그냥 미친 놈인 줄 알았는데.”
“누군데요?”
“자기야말로 괴수 생태학의 권위자라고 떠들고 다니던 사람이지. 조그만 사립 대학교에 돈을 왕창 주고 교수 자리를 사서 버티고 있는 것 같더니 어느날 보니까 거기에서도 쫓겨났던데. 브래들리 허버트가 찾아와서 레오니드한테 무슨 얘길 했대?”
“몰라요. 세멘노프 교수에 대해서 뭔가를 캐내려는 것 같은 인상이었대요.”
“유리 세멘노프? 그럼 브래들리 허버트가 혹시 그 차크라에 대해서 뭔가 눈치를 챈 걸까?”
“그럴만한 위인이예요?”
“집념 하나는 무서울 정도지. 남들이 다 잊고 있는 일을 혼자 기억하고 있다가 30년 후에 칼을 들고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걸? 연구를 하는데 집념처럼 중요한 덕목도 없어. 나름대로 실력도 있고.”
“그건 안 좋은 얘기네요?”
“잠깐만. 야로. 두 사람이 있는 곳. 소유자가 그 A급 헌턴가본데?”
“누구요? 라미실요?”
“아니. 그 사람 말고. 어라. 잠깐 기다려봐. 이 별장 소유자가 최근에 바뀌었는데? 해리가 브래들리 허버트한테 증여했어. 이건 확실히 안 좋은 얘기 같은데?”
“레오니드랑 미하일이 미국에 있다고요?”
“어. 내가 말하지 않았어?”
“아뇨. 누나."
"브래들리 허버트가 A급 헌터들이랑 접선을 했고 A급 헌터가 브래들리 허버트한테 별장을 줬고 지금 그 별장에 그 사람들이 레오니드랑 미하일을 감금했다면."
"두 사람의 차크라에 대해서 안 거예요. 브래들리 허버트가 레오니드한테 세멘노프 교수에 대해서 언급했다면. 확실해요."
"생각보다 안 좋은데? 그런데 야로. 브래들리 허버트가 왜 레오니드를 찾아갔을까? 왜 레오니드를 찾아가서 세멘노프 교수 얘기를 구구절절 해 댄 걸까? 그냥 바로 납치하는 게 쉬웠을 텐데."
"레오니드가 누구한테 연락을 하는지 보려고 그런 거군요."
"미하일과 야로슬라프를 잡으려고 덫을 놓은 거라고?"
"누나. 이 일은 우선 우리 둘만 알기로 해요.”
“그래야 할 것 같아?”
지연이 확신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클랜 A가 전부 이 일에 나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제 선에서 차단을 시키지 않으면 그 미친 놈이 지우 형이랑 시현이의 비밀까지 알게 될 수도 있어요. 저하고 연결됐다는 것 때문에 지우 형이랑 시현이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하게 할 수는 없어요.”
“……. 그게 옳은 선택이길 빌어. 꼭 돌아와. 나는 야로를 믿어.”
지연이 말했다.
“그 별장 위치. 바로 알려주실 수 있죠?”
“지금 보냈어.”
“바로 확인할게요. 고마워요. 누나. 고마웠어요.”
지연은 그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이익헌이 소파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야로슬라프가 들어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왜 그러고 서 있어?”
문 소리에 힐끔 야로슬라프를 보고 이익헌이 물었다.
“아짐한테 할 말이 있어요.”
“왜 그러냐? 얼굴이 꼭 바지에 똥 싼 애 같다.”
“클랜 A를 떠날 거예요. 이유는 묻지 마세요. 제가 사라진 후에 사람들이 저를 찾지 않았으면 해요. 제가 자의로 떠났다는 사실을 아짐이 말해주세요.”
“내가 왜?”
“저는 자의로 떠나는 거니까요.”
“그럼 쪽지를 써 놓으면 되잖아. 귀찮게 나를 끌어들이지 말고.”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야로슬라프는 어색하게 웃고 아짐에게 손을 흔들었다.
“고마웠어요. 그동안요.”
이익헌은 야로슬라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떠난다는 놈을 왜 잡아야 한단 말인가. 야로슬라프의 변덕이 아니더라도 그에게는 신경써야 할 일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미친 듯이 튀어나오는 괴수들과 갑자기 오픈되는 늪. 태도가 돌변한 것 같다가 다시 또 클랜 A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헌터 협회와 미국 정부. 이 모든 것들이 한 가지 이유로 생긴 일인 것 같은데 그 모든 변화를 일으킨 것이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흐트러져서는 안 되었다. 한 사람이 정신을 놓으면 이제는 그 여파가 쉽게 감당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야로슬라프가 나서서 클랜 A를 떠나겠다는 소리를 하니 그 말이 좋게 들리지 않았다. 야로슬라프에게 그런 유혹은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전부터 생각해 오기는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야로슬라프는 뛰어난 레이더였고 야로슬라프와 함께 공격대를 편성한다면 높은 성공률을 보장받을 수 있을 터였다.
이익헌은 야로슬라프를 충동질한 곳이 아마도 러시아 정부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아무리 잘해줬어도 야로슬라프가 고국을 그리워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클랜 A의 클랜원들보다는 레오니드와 미하일이 더 편했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익헌은 머릿속의 잡념을 떨쳐버리려는듯 고개를 저었다.
'의리도 없는 자식!'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하지만 그 화조차 오래 품을 시간이 없었다.
야로슬라프가 트레일러를 떠난 그 시간에도 다시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또다른 괴수, 오픈일이 예정되어 있지 않던 1급 괴수가 늪을 빠져나왔던 것이다.
블랙 호크 트리플에서 이익헌은 야로슬라프가 클랜 A를 떠났다는 사실을 말했다. 모두들 이유를 알지 못했고 야로슬라프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쩌지 못한 채 굳게 입을 다물었다. 모두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생각은 왜 하필 지금이냐는 거였다. 이제 늪을 뛰쳐나온 1급 괴수는 클랜 A에게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