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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그는 분명히, 임정의 곁에서 싸우다가 지쳐있는 태인을 구출했는데 방금 전까지 그럭저럭 포지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딜을 가하던 임정을 향해 미노타우로스의 두 얼굴 중 하나가 정면으로 향해 있었다. 미노타우로스가 언제 방향을 바꾼 건지도 알 수 없었지만 미노타우로스는 악랄한 입을 벌려서 임정에게 검은 재를 뿜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서규태가 나서서 방패로 막아주려고 했지만 그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지우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리로 몸을 날렸다. 제발 늦지 않고 임정을 지킬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미노타우로스의 머리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눈 아래, 입이 있던 부위가 말끔하게 사라진 것이다. 그것이 어디로 간 건지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차게 얼어붙은 그것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버렸던 것이다.
미노타우로스의 다른 머리는 제 다른 머리에 일어난 일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그렇게 해 봐야 절대로 그것을 볼 수는 없었다. 꼬리를 물려고 빙글빙글 도는 꼴밖에는 아니었다. 그 녀석은 절대로 자신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없는 운명이었지만 자신의 다른 얼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것까지 모를 운명은 아니었다. 곧 똑같은 일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남아있던 다른 머리까지 순식간에 얼어붙어 떨어져나갔다.
모두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차렸다. 검은 재를 뿜을 수 없게 된 미노타우로스는 무력했다. 이익헌과 태인은 곧바로 낌새를 눈치채고 무기를 들고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레이드를 시작하고 처음 만들어진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날릴 수가 없었다. 검은 재가 멈추는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시간을 살려야만 했다. 다시 또 그 악랄한 머리가 목에서 돋아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의 움직임은 급하기만 했다.
지우는 옥상 위를 바라보았다. 시현의 몸에서 차크라가 뻗어나오고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것이 꼭 용하에게서 나오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차크라는 두 사람을 완전히 감싼 채 짙은 안개처럼 퍼져나왔다.
지우는 시현을 향해서 엄지를 들어보이고 엑스블레이드를 들고서 미노타우로스의 무릎을 단번에 끊어버렸다. 미노타우로스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넘어졌고 그 위에 헌터들이 쏟아져내렸다. 그 중에는 강현과 세진도 있었다.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시현이를 지키는 일이었지만 그들이 옥상에서 이탈했다고 아무도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시현이를 지켜주라고 하는 거야말로 바보같은 짓이었다. 이들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 시현이라는 것을, 그리고 누구도 시현이를 해치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들은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시현이의 보호 아래에서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공격 증폭률을 가진 무기라고 하더라도 공격을 할 기회를 한 번도 얻지 못하면 그것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리고 이제야말로 클랜 A의 클랜원들이 가진 무기는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미노타우로스가 다시 몸부림을 치면서 일어서려고 했을 때 지우가 미노타우로스의 머리를 밟고 올라갔고 야로슬라프도 그와 때를 맞추어 미노타우로스의 다른 머리를 노렸다. 지우는 야로슬라프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야로슬라프의 검이 미노타우로스의 귀를 뚫고 들어가 뇌를 관통하는 그 순간에 맞추어 미노타우로스의 머리를 엑스 블레이드로 베어냈다.
미노타우로스의 머리가 툭 떨어지고 헌터들은 다시 차근 차근 데미지를 입혔다. 이제 제법 여유를 갖게 된 헌터들은 가끔 옥상 위를 바라보면서 시현이를 향해 엄지를 들어보였고 그럴 때마다 시현이는 용하의 품에 안긴 채로 들썩거렸다. 그 모습이 꼭 헌터들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긴, 긴, 레이드가 끝이 났다. 미노타우로스의 머리에서 러프 스톤과 캐츠 아이 스톤이 같이 떨어졌을 때 서규태가 소리를 질렀다.
“당연히 줘야지, 이 개새끼야! 아니. 소새끼야. 고맙지도 않다! 안 줬으면 화냈을 거야!”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다행히 갑옷과 방패가 검은 재의 파괴력을 완화시켰고 헌터들의 피부는 화를 면했다. 그래도 임정은 꼼꼼히 살피고 돌아다녔다.
다시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블랙 호크 트리플에 올랐을 때에야 그들은 긴장됐던 순간들에 대해서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시현이가 아니었으면 이번에는 성공할 수가 없었어.”
이익헌이 말했다.
“레이드를 하면서, 내가 이 레이드를 끝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건 정말 오랜만이었어.”
이익헌은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한지 몸서리를 쳐가면서 말했다.
이동중에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의례적인 감사 인사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해진 소식은 심각했다.
지금 클랜 A의 레이드 장면이 동영상으로 녹화돼서 퍼져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문제는 옥상 위에 서 있던 남자에게서 차크라가 흘러나가는 장면이라면서 대통령도 그 장면이 유출될 경우에 문제가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유출을 막으세요. 그건 큰 틀에서 이미 합의가 됐던 사안입니다. 거기에 저항하는 언론사나 포털이 있다면 파산이 날 때까지 우리가 대응할 거라고 하세요. 목숨을 걸고 한 일을 이딴 식으로 갚을 겁니까?”
이익헌은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통령도 그 점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변명을 하지도 못했다. 모두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졌다.
“시현이… 차크라가……. 드러난 거죠…….”
임정이 숨을 죽여가며 말했다. 서규태가 고개를 저었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은 아마도 그게 용하씨라고 생각할 겁니다. 다행인 건 화질이 좋지 않아서 용하씨랑 시현이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도 본보기를 확실히 보일 필요는 있을 겁니다.”
이익헌이 통화를 하는 동안 동영상을 찾아본 서규태가 말했다.
기사로 돈벌이를 하는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해서 사진이 퍼지고 있었다.
[아이를 안은 차크라 영웅.]
[차크라 영웅이 쿠퍼티노를 구하다.]
[클랜 A의 새 비밀병기, 아기를 안은 남자는 누구?]
***
몇 몇 언론사들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클랜 A가 과도하게 정보를 통제하면서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를 파괴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입에 올리는 권리의 주인인 국민은 그것이 돈벌이 수단을 지키려는 꿍꿍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고 그들을 전혀 지지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주장을 굽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옥상에서 시현이를 안고 있던 용하의 모습은 인터넷을 통해 꽤 오랫동안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딱히 알 권리를 주장하면서 클랜 A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몇몇 치기어린 바보가 따온 과일을 거절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자신들이 동경하는 영웅들의 레이드 장면을 소장했다.
다행히 처음에 서규태가 말했던 것처럼 화질이 좋지 않았다. 구식 방법으로 화면을 확대해볼 수는 있었다. 바로 모니터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 봐야 화질을 개선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서 옥상 위의 남자와 그의 품에 안겨있던 아기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 것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익헌은 그것을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이번에는 운좋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나중에 혹시 성능좋은 망원 카메라에 찍히기라도 한다면 자기들이 모든 것을 걸고 지키려는 시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서규태와 이익헌이 그 일로 머리를 맞댔다. 두 사람은 사진과 기사를 싣고 동영상을 유포한 사람들을 찾아냈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은 언론인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었는데 두 사람은 그런 사람들을 다루를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서규태와 이익헌은 전방위로 압박을 가했다. 기사를 쓴 기자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언론사들을 압박했다. 그들의 기사를 앞으로 실어주지 말 것을 종용하면서 그들이 클랜 A의 권리를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미국 시민의 안전이 얼마나 위협을 받게 될지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결국 기자들은 손에 쥐고 있던 많은 것을 뺏겼다. 기자로서의 자존심과 신뢰. 그들이 쓸 수도 있었을 기사. 알차게 모아두었던 예금. 그 모든 것이 손바닥 위에서 사라졌다. 그런 해결 방식을 두고 클랜 A가 지나쳤다는 여론도 있었지만 왜 클랜 A가 미국인의 영웅이라는 이유로 사생활의 비밀까지 포기해야 하는 거냐는 옹호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옹호하는 여론이 있든 없든, 어쨌거나 그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면 클랜 A는 언제든지 같은 방식으로 일을 해결할 거라고 이익헌은 강도 높은 코멘트를 했다.
그래도 이미 퍼져나간 사진과 동영상을 회수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인터넷의 위력은 대단했다. 더군다나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정보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했다. 사람들은 옥상 위에 있던, 아기를 안은 남자에 대해서 끊임없이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누굴까. 누굴까. 누굴까.
절대로 자신들이 풀 수 없는 문제를 떠안게 된다는 것은 무너지는 건물 안에서 사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일이었다.
***
라미실과 해리는 브래들리 허버트를 다시 만났다. 브래들리 허버트는, 그들이 만나자고 청했을 때 돈이 준비되었는지를 먼저 물었다. 라미실과 해리는 돈을 준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쿠퍼티노에 출몰한 괴수 미노타우로스가 브래들리 허버트의 작품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브래들리 허버트는 거만한 자세로 해리의 별장에 찾아왔다. 처음에 그곳에 왔을 때부터 그곳이 마음에 들었던 브래들리 허버트는 해리에게 당돌하게도 그곳을 요구했다.
“천 억 달러를 주는 것과 별개로 이 별장을 선물로 주는 건 어떻겠습니까? 성의를 보여준다면 내 입이 좀 더 가벼워질 것 같기도 한데요.”
해리와 라미실은 재산의 많은 부분을 사회에 환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한 자산을 굴리고 있었기에 그런 정도로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았고 브래들리 허버트가 원하는 별장을 그에게 주기로 했다.
그 후로 브래들리 허버트는, 가벼운 입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될 일도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진실들은 해리와 라미실이 질문을 해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의 저편에 진실들이 묻혀 있었기에 브래들리 허버트가 스스로 알려주지 않는다면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괴수가 서식하고 있는 늪의 오픈 시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겁니까?”
해리가 묻자 브래들리 허버트는 고개를 저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방학을 이용해 헌터 협회에서 인턴으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헌터 협회에서 그가 한 일은 리드가 보내온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에 어느날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드론이 늪을 발견하면 그곳에 리드를 덮고 그 후로는 리드에서 보내오는 데이터를 헌터 협회에서 관리하도록 되어 있었다. 늪은 하루에 0.5센티씩 커지고 반경이 3미터에 이르면 늪이 오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거기에는 예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