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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어차피 두 사람이 미국에 올 거라는 일정을 전부 들켜버린 후라서, 깜짝 방문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는 일정을 앞당겨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블랙호크 트리플에서 내린 사람은 그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이익헌의 눈에는 선아영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아영의 원피스가 질풍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 이익헌이 달려가며 셔츠를 벗어서 선아영의 허리에 감아주었다.
구릿빛으로 달궈진 팔이 어깨에 둘러지고 입술이 맞춰졌을 때 선아영은 남들이 보는데 왜 이러냐고 했지만 두 사람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시현이를 보고 달려나와서 미친 듯이 환영했다.
너무 어렸을 때 헤어져서 엄마와 아빠를 알아보기는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시현이는 지우를 발견한 그 순간부터 저를 데려가 달라고 발버둥을 쳤다. 지우는 감격스러워하면서 시현이를 안아들었다.
용하는 묘한 배신감까지 느껴져서 시현이를 쥐어박았지만 시현이는 용하를 보면서 히죽 웃었다.
“시현이 이 좀 봐.”
“시현이 다리 통통해진 것 좀 봐.”
“시현이 머리봐. 실제로 보니까 진짜 귀엽다.”
시현이를 보고 온지 얼마 안 되는 강현과 이익현, 야로슬라프까지도 시현이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다는 듯이 계속 그 주위를 머물렀다.
임정도 시현이를 안아보았고, 그 후로는 시현이를 내려놓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시현이가 불편해하면서 몸부림을 쳤다.
용하는 그렇게 안는 게 아니라고 말을 해 주었지만 임정은 도무지 용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시현이는 엄마의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임정은 새내기 엄마로서 아기를 편하게 안아주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졌다.
결국 임정이 시현이를 내려주자 그때부터는 트레일러 안의 모든 곳을 기어다니면서 청소를 시작했다.
용하가 안았을 때 시현이의 옷은 걸레로 쓰기에도 더러울 정도가 되어 있었다.
“청소들은 안 하나봐요? 레이드하느라고 바빠서 그러신가? 시현이를 여기에 두고 갈까요? 청소 로봇이 따로 없어요. 밥만 먹여주면 하루 종일이라도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바닥을 다 닦거든요.”
용하가 말했다. 시현이는 용하의 얼굴을 만지면서 까르륵거렸다.
“좋은 생각이네요.”
서규태가 적극적으로 말했다.
“청소는 신세진 시키세요 신세진. 세진이는 레이드도 잘 못할 텐데. 야, 신세진. 너는 청소도 안 하고 뭐하냐?”
용하가 오랜만에 만난 사촌동생을 보고 반갑다고 갈구기 시작하자 강현이가 나섰다.
“세진이도 이제 잘 해요. 경험치도 많이 쌓았고 조만간 세진이도 D급이 돼요.”
“세진이가 벌써 D급이? 우와. 이건 진짜 완전 사기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뭐가 벌써 D급이야? 야, 신세진. 너 그거 진짜야?”
용하가 진심으로 놀라서 물었다.
“응. 여기 진짜 최고야. 나는 진짜 운이 좋은 것 같아.”
세진이 말했다.
“그건 별로 관심 없고.”
얘기가 길어지려는 것을 눈치채고 용하가 미리 선을 그었다.
“시현이는 뭘 좋아해요?”
임정이 물었다.
“저 앞니 네 개가 꽤 막강해서 저걸로 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요. 과자도 먹고 과일도 잘 먹고.”
임정이 어느새 딸기를 씻어다 시현에게 주자 시현은 앞니만 가지고 딸기를 오물오물 씹어서 삼켰다.
시현이가 하는 짓은 뭐든지 다 신기해하면서 헌터들이 주르륵 모여 목을 빼고 시현이가 하는 짓을 전부 다 보고 있었다.
“차크라는 이제 안 나오나요?”
강현이 묻자 용하가 어설프게 대답을 했다.
“시현이가 갑자기 몰입하는 일이 생기면 그때는 차크라가 나와요.”
“몰입요? 아기가 몰입을요? 어떤 거예요?”
임정은 용하를 거의 독차지하고서 용하에게 거의 쉬지 않고 질문을 해댔다.
“개미나. 모기나. 파리나. 그런 거 있잖아요.”
“아. 요즘에도 차크라로 파리를 쫓아요? 이제 안 그러는 줄 알았는데.”
“아뇨. 파리 쫓는데는 차크라를 안 쓰는데.”
“그럼요?”
“아직은 그런 게 나오면 안 될 것 같아서 못하게 하기는 했는데.”
용하가 빨리 대답을 하지 못하는 동안 모두의 시선이 용하에게로 모아졌다.
“뭔데?”
지우도 답을 재촉했다.
“날아가는 걸 얼리더라?”
“뭐?”
“말 그대로야. 얼렸어. 그게 떨어지면서 조각이 나더니 녹으면서 사라졌고.”
“…….”
야로슬라프가 용하를 바라보았다.
“그런 일이 자주 있었어요?”
“아뇨. 못하게 하면 안 해요.”
“못하게 하는 건 안 하고, 아직 금지되지 않은 쪽으로는 계속 시도를 해 본다는 거네요?”
“그런 건가? 그런가 보네요. 이러지 마, 라고만 했지 곤충들을 얼리지 마. 그렇게 말한 건 아니었으니까. 시현이는 시현이한테 하지 말라고 하는 건 안 해요.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는 것들을 하죠.”
시현이는 어느새 혼자 식탁 밑에 기어들어가서 식탁 다리를 붙잡고 앉아 있었다.
“이제는 혼자서 앉네? 전에 봤을 때는 못 앉았는데.”
강현이 말하자 모두들 시현이를 바라보았다. 시현이의 시선이 어딘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도마뱀인가?”
태인이 말했다.
“도마뱀요? 도마뱀이 있어요? 도마뱀이 있는 집에 애기를 초대한 거예요?”
용하가 호들갑을 떨었지만 아무도 그 말에 신경쓰지 않았다. 시현의 몸에서 차크라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잠깐만. 용하야. 하지 말라고 하지 말아봐. 시현이가 뭘 어떻게 하는지 보자.”
지우의 말에 용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혼자 시현이를 데리고 있는 동안에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치유 능력을 가진 임정도 있고 차크라 숙련도가 높은 헌터들이 깔려 있으니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태인이 조용히 시현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도 시현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소리없이 움직여 가까이 다가가서 시현이 보는 것을 보았다.
시현의 눈 앞에 있는 것은 그들이 예상했던대로 도마뱀이었다. 도마뱀은 사냥꾼처럼 납작 엎드린채 무언가를 노리고 있었다. 파리 한 마리가, 사냥하기 까다로운 곳에 앉아 있었다. 도마뱀은 파리가 날아오르기를 기다리는 중인 듯했다.
도마뱀은 움직이지 않고 파리를 바라보고 있었고 시현이는 도마뱀을 보고 있었고 헌터들은 시현이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파리가 날아올랐다.
도마뱀이 혀를 길게 뻗었다. 시현의 몸에서 차크라가 뻗어나간 것은 그때였다.
파리는 그대로 날아가버렸지만 도마뱀은 화를 피하지 못했다. 재앙은 파리에게 닥칠 것으로 보였는데 희생자는 도마뱀이었다. 그리고 파리는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탈출했다.
긴 혀가 쭉 빠진 상태 그대로 얼어붙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용하가 설명했던 것과 같았다. 얼음 조각이 바닥에 부딪쳐 깨지면서 파편이 튀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녹아 물이 되었고 곧 그것마저 사라졌다.
시현이는 고개를 돌렸다가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있는 걸 보고 놀라며 외쳤다.
“아, 까따가!”
“'아, 깜짝야' 라는 말이야.”
용하가 통역을 해 주었다.
시현이는 정말 놀란 건지, 용하가 그럴 때 하는 걸 보고 외워뒀던 건지 가슴까지 쓸어내리고 한숨까지 쉬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와 있는 지우의 얼굴을 만지면서 지우에게 안아달라고 팔을 벌렸다. 지우는 시현이를 안아주면서 한숨을 쉬었다. 지우의 시선이 야로슬라프를 찾았다. 야로슬라프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우가 익헌을 바라보자 익헌이 고개를 끄덕이고 선아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강현도 세진을 데리고 나갔다. 이런 일은 최소한의 사람들만이 아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지우였다. 용하는 왜 이렇게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진 건가 했고 시현이마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용하를 향해 버둥거리면서 저를 데려가달라고 재촉했다.
“용하야. 우리는. 네가 컨트롤러라고 생각해.”
지우가 말했다.
“컨트…롤러? 조종자 같은 거야? 뭘 조종하는데, 내가?”
용하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시현이의 차크라.”
“응?”
“시현이의 차크라. 아니. 괴수의 차크라.”
“뭐?”
“네가 보내준 동영상을 봤어. 시현이한테서 차크라가 나가면 네가 시현이한테 주의를 줬지. 그러면 차크라가 사라졌어.”
“그건. 시현이가 내 말을 무시하지 않고 들어주기로 마음 먹어서 그런 거겠지. 내가 어떻게 시현이 차크라를 조종해? 나는 내 차크라도 못 가진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남의 차크라를 조종하겠냐?”
“네가 보내준 동영상들을 전부 봤어.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됐지. 시현이는 아무 때나 차크라를 썼어. 시현이가 차크라를 쓴 건지 차크라가 시현이한테서 나간 건지. 그건 자세히 몰라. 그렇지만 어쨌거나. 네가 관여된 건 분명해.”
“내가 어떻게?”
“내 생각인데. 너는 헌터한테 믿음을 주고,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 같아.”
“무슨 소리야?”
“그건 내가 알아.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말을 해 봐, 인마.”
용하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헌터가 됐을 때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생각해 봐. 나한테는 너하고 천 대리님밖에는 없었어. 실패만 거듭하다가 완전히 무력해진 상태였고. 너랑 천 대리님은 바닥에 있는 나를 끝까지 잡아 일으켜주려고 했어. 용하 너는 나한테, 내가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남은 끈이랑 거의 비슷했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지막 남은 끈은 아니었겠지만 나한테는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어. 동영상에 나와있는 시현이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어. 시현이도 그런 거야.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거야. 네가 자기를 믿고 응원해준다는 걸 알기 때문에 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래서 해보기로 결심하는 거지. 자기가 차크라를 통제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도해 보는 거라고. 시현이는 네가 하는 말을 전부 믿는 거야. 시현이가 대장이고 차크라는 부하라는 말도 그렇고. 네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시현이의 차크라를 통제해주고 있는 것 같아. 정확히 말하자면, 차크라를 가진 헌터가 자기 차크라를 통제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닌 것 같아?”
“너무 거창하게 말하는 것 같아서. 잘 모르겠어. 그 말이 맞다면 좋겠다. 나도 뭔가 할 수 있으면 좋은 거잖아.”
“너야말로 굉장한 일을 해 오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지.”
지우가 말했다.
“이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지우는 세계 탑 헌터잖아요. 지우가 탑인 건 시현이가 아직 데뷔를 안 해서 그런 것 뿐이고요. 커튼 뒤에 숨어있는 시현이야말로 진짜 탑이죠. 그 두 탑 헌터를, 그 헌터들의 차크라를 용하씨가 적절하게 눌러줘 왔다는 거잖아요.”
태인이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요.”
“네. 아직은 확실하지 않죠. 하지만 그걸 확인해볼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야로슬라프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자신의 동료들이 러시아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용하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야로슬라프로부터 듣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