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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컨트롤러
평화로워보이는 나날이었다.
이익헌과 야로슬라프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클랜 A에서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 시현이야말로 자기들을 전부 합쳐놓은 것보다 훨씬 더 센 녀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조만간 용하가 시현을 데리고 깜짝 방문을 할 계획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어떻게 된 것이, 말은 깜짝 방문이라고 하는데 전부가 다 아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서규태의 잘못이었다. 이익헌만 있는 줄 알고, 시현이가 온다는 날이 이제 5일 남은 거냐고 물었는데 문 밖에서 지우가 뛰어들어온 것이다. 지금 뭐라고 하신 거냐고 하면서 완전히 미친 놈처럼 날뛰는 지우를 진정시키느라고 그들은 한동안 고생을 해야했다.
지우는 시현이가 보고 싶어서 하루하루 몸이 말라가는 것 같은 실정이었기에 거기에 일절 토를 달지 못했다. 시현이가 여전히 무력하기만한 갓난아기라면 모를까, 시현이의 진면목이 드러난 판에 만남을 미루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참에 시현이랑 다시 합치는 게 어떨까 하고 임정과 신중하게 논의를 하기는 했지만 당분간은 용하와 시현이가 안정된 환경에서 살아가게 하는 게 좋을 거라는데 뜻이 모아졌다. 그동안 부지런히 레이드를 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캐츠 아이 스톤을 받아서 돌아가면 다른 걱정 할 것 없이 시현이와 살 수 있을 거라는 거였다.
시현이가 올 거라는 사실에 들떠서 클랜 A의 모든 클랜원들은 하루하루 미친 듯이 레이드만 해댔다. 레이드를 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훌쩍 지나가 있었기에 시현이를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는데는 레이드만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시현이가 미국에 오면 그때는 닥치고 놀기만 할 생각이어서 그 기간에 맞춰서 오픈될 늪을 미리미리 찾아내 공략을 하는 중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건 클랜 A뿐만이 아니었다. 용하와 시현도 한창 바빴던 것이다.
“시현아. 헌터들 소굴로 들어가는데 삼촌이 너무 약해 보이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삼촌이 좀 세게 보일까? 응? 머리를 확 밀어버릴까?”
용하가 진지한 얼굴로 거울을 보면서 머리 모양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내며 물었다.
“아뜨와?”
“그래? 좋은 생각 같아?”
“아암마!”
“그지. 괜찮겠지? 삼촌이 머리통이 또 잘 생겼거든. 괜찮을 것 같아. 스킨 헤드로 하고 가죽 잠바 딱 걸치고 나타나면 헌터들이 벌벌벌 떨겠지? 좋아. 오늘은 일단 미용실에 다녀오자.”
“으자!”
시현이의 얼굴에서는 이제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는데 임정의 얼굴을 더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임정은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 성형 수술을 거친 얼굴이었으니 임정의 본판인 서이진의 얼굴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시현이에게는 축복이었다. 지우의 얼굴은 비율과 배합이 굉장히 중요해서 거기에서 조금만 균형을 잃으면 굉장히 난감한 얼굴이 될 터였다. 그런데 다행히도 엄마의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를 갖다 박은 덕에 대충 눈, 코, 입을 붙여놓은 것 같은데도 귀여운 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신생아때의 쭈글쭈글함은 사라졌고 이제는 얼굴도 판판해지고 달덩이 같은 얼굴에 생글생글 웃음도 잘 지었다.
이 나오는 게 다른 애들보다 늦는 것 같아서 그것 때문에 용하가 걱정이 많았는데 일단 한 번 나오고 나니 아랫니 윗니가 두 개씩 순식간에 네 개나 나왔다.
그것도 이라고, 닦아주는 게 굉장히 고달팠지만 그래도 잘 닦아놓고 나면 아빠 구두를 닦아놓은 것처럼 성취감이 느껴졌다.
“아빠 보여주자, 이 반짝거리는 이들.”
이제 용하가 ‘이~’라고 신호를 보내면 이를 드러내면서 웃을 줄도 알게 되었고 아무튼, 나날이 환상의 콤비를 이루어가는 두 사람이었다.
미용실에 두 사람이 등장하자 포스가 남다른 여자 헤어 디자이너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머리는 누가 하실 건데요?”
그러면서 시현이와 용하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저요.”
용하가 말했다.
“아아. 이쪽으로 앉으세요. 아기는 혼자 앉아있을 수 있나요?”
“아마 그럴 걸요?”
그러면서 용하는 시현이를 바라보았다.
“그럼 아기는 아빠가 멋져지실 동안 옆에서 아빠 보고 있자. 안전하게 앉혀 줄게.”
시현이는 떼를 쓰지도 않고, 저에게 하는대로 놔두었다.
시현이가 용하의 목둘레에 커트보가 둘리는 것을 보면서 엄청 부러워하는 눈으로 입까지 벌린 채 바라보자, 용하는 아기한테도 이걸 둘러주면 안 되겠냐고 했고 디자이너가 흔쾌히 허락을 하면서 시현이에게도 둘러주자 시현이는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는 어떻게 해 드릴까요?”
디자이너가 물었다.
“아, 제가 좀 세 보여야 되거든요. 그래서 그냥. 스킨 헤드로 결정을 했어요.”
“음. 머리를 다 미신다고요?”
“네.”
“이…, 두상으로 말이죠.”
“…….”
“일단 도전을 해 보시는 건 상관없을 텐데, 하는 도중에 손 쓸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손님들 중에는 절망을 하시는 분도 있고.”
“그래도 해 보고 싶은데요?”
“그럼 이렇게 하죠. 일단 윗머리는 놔두고 아래부터 밀어드릴게요.”
“그게 좋을 것 같네요.”
디자이너는 스프레이로 물을 쉭쉭 뿌리고 용하의 머리를 조금씩 갈라서 큼지막한 핀으로 고정을 시켜 올리고는 아랫부분부터 머리를 슁슁 밀었다.
용하는 차마 제 얼굴을 보지는 못하고 거울을 통해서 시현이의 얼굴만 보고 있었는데 시현이가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제 머리에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시현아. 이상해?”
“이따아아아아.”
시현이는 마구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삼촌의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가는 게 나름대로 충격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잘린 머리카락은 다시 자랄 거라는 것이 시현의 머릿속에서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듯했다.
“어, 왜 그래? 아빠 멋지게 해 드리는 중인데.”
디자이너가 말했지만 시현이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미간까지 찌푸리고 입을 동그랗게 모았다.
'과연 저게 잘하는 짓일까?'
마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가 그런 표정을 짓는다고 디자이너가 웃었다.
“자. 한 번 보세요. 아직까지 그 마음이 계속 있으시면 위에 남은 걸 마저 자르면 되고요.”
디자이너가 거울 속에서 용하의 눈을 찾아 맞춘 채로 말했다.
“…네.”
“자를까요?”
“…네.”
“주저하시는 것 같은데 그럼 윗부분은 조금 더 남겨볼게요. 그 다음에 결정하셔도 돼요. 이제 귀 위까지 올라갑니다.”
“…네.”
침이 꿀꺽 넘어갔다. 머리카락이 다시 한 번 숭덩 숭덩 떨어져나갔다.
“오오오오오오오!”
시현이는 다시 또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뇨. 저기요. 안 되겠네요. 일단 멈춰보세요.”
용하가 소리를 지르다시피했다. 디자이너를 멈췄을 때는 굉장히 애매한 순간이었다. 뚜껑을 얹고 있는 도토리같은 얼굴 하나가 거울 앞에 커트보를 두른 채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디자이너도 열심히 거울 속의 용하를 바라보기는 했지만 마음에 드냐거나 잘 나왔다거나 하는 말도 하지 못했다.
용하는 상심이 컸다. 제가 봐도 두상이 영 아니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자기가 자기 두상에 대해서 그렇게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던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모양도 괜찮아요. 젊고 개성있는 분들 중에 이런 머리를 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거든요.”
디자이너는 수습을 해 보려고 머리카락을 털어주고 샴푸를 해 주고 드라이를 해 주면서 열심히 모양을 잡았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모든 게 완성, 이라고 생각되는 시점에 다다랐다.
그냥.
커다란 도토리 하나가 목 위에 얹어져 있었다.
“이상하냐?”
울상을 짓고 용하가 시현이를 바라보며 묻자 시현이가 입을 활짝 벌린 채 아하하하 하고 웃고 있었다.
딱히 용하의 얼굴을 보고 웃은 것은 아니었을 테고 요즘에는 시현이가 하는 일이 웃는 일이었는데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아진 용하의 눈에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질 않았다.
디자이너는 자기는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괜히 죄를 지은 표정이 되어버렸다. 용하가 디자이너와 거울 속에서 눈을 마주친 후에 시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쟤도 이렇게 해 주세요.”
“네?”
“오!”
시현이는 왜 사람들이 전부 자기를 쳐다보는가 하는 것 같았다. 디자이너는 어느새 스르륵 시현이의 뒤로 자리를 옮겼다.
“준비됐지?”
스프레이로 물을 머리에 뿌리자 시현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도 그게 싫지는 않고 재미있었는지 눈을 깜빡거리면서 위에서 흩날리며 떨어지는 안개같은 것을 바라보았다.
삼촌이 하는 걸 봐서 그런 건지 시현이도 제법 잘 참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조그만 도토리 하나가 똑같이 만들어졌다. 시현이는 거울을 보고 자기 머리가 삼촌 머리와 똑같아진 것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좋냐?”
용하도 웃었다.
“아빠랑 아들이 많이 닮았네요.”
이 분이, 친 아빠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겁도 없이 해대고 있었다. 용하는 기분이 좋아져서 시현과 자랑스럽게 귀가를 했다.
오는 길에 지우에게 사진을 보내주었다.
[야, 미용실에서 시현이가 내 아들인줄 알더라. 아빠랑 아들이 똑같대.]
염장을 지르려고 보낸 건 아니었지만 그걸 보는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지우는 하루종일 시무룩해져서 의기소침하게 굴더니 혼자서 미용실에 찾아갔다. 그러고는 그 사진을 보여주고 자기도 똑같이 잘라달라고 주문을 했다.
“이 아기하고요. 이 큰 도토리놈 말고. 우리 아들이랑 똑같이 잘라주세요. 이 귀여운 아기가 내 아들이거든요.”
“아, 네. 닮았네요. 말씀 안하셔도 같이 있으면 다 알아보겠어요.”
“네. 그렇죠? 같이 있을 수가 없어서 그런 거긴 한데.”
“그런데 혹시 클랜 A 헌터 아니세요?”
“아닌데요.”
지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아. 진짜 닮으신 것 같아서.”
“별로 닮지도 않은 것 같은데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아.”
“완전히 똑같게 해 주세요.”
지우는 시현이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다시 한 번 정확하게 말했다.
임정은 지우가 왜 갑자기 그렇게 바보같은 머리를 하고 온 건지 알지 못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세상의 온갖 것들을 좋게 보기로 작정을 하고 심호흡을 삼백번 쯤 하고 보면 귀엽게 보일 수도 있는 머리 모양이기는 했다.
그러다가 임정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지우의 변덕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지우씨도 웃긴다. 그러지 않아도 시현이는 아빠 판박인데.”
클랜 A의 다른 사람들은 그 사진과 지우의 머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은 채 넘겼다.
다음날, 다같이 1급 늪을 공략할 때까지만 해도 임정은 그 후에 벌어질 일을 알지 못했다. 1급 늪 공략 후에 각자 훈련을 겸해 하급 괴수들을 공략하고 트레일러에 모여서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정해진 일과였는데 식사 자리에 나타난 사람들의 머리가 모두 도토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강현만큼은 세진이 결사 반대를 한 덕에 그 꼴을 모면한 듯했다.
“우리도 시현이 삼촌이니까. 이럴 권리가 있다고요.”
서규태는 임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미리 선수를 쳤다. 클랜 A가 갑자기 그런 머리 모양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헌터들 사이에서도 그게 유행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대놓고 따라했다는 인상을 피하려고 도토리 뚜껑을 좀 더 길고 덥수룩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도토리 모양을 추구했다.
헌터들에게는, 그렇게 하면 도토리 뚜껑에 차크라를 잘 모을 수 있다는 기담까지 번져갔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이 그렇게나 기다리던 두 도토리가 트레일러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