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152화 (152/331)

0152 / 0331 ----------------------------------------------

6부. 괴수의 차크라

“그럴 수도 있겠죠. 아닐 수도 있고요. 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그게 실현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질 않아요. 공대원들이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거짓말을 한다는 건데. 다시는 레이드를 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 먹었다면 모르겠지만 들통이 날 수도 있는 그런 거짓말을 한다는 건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그러면 부사장님도 러프 스톤이 아직 땅에 묻혀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예. 장비를 동원해서 그 지역을 대대적으로 찾아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러프 스톤을 잊어버렸다는 곳이 지금 새로 늪이 나타난 곳이랑 너무 가까워요. 3급 늪의 러프 스톤인데 공략된 괴수가 특이했습니다."

이익헌은 일부러 뜸을 들였다. 강요섭은 몸이 잔뜩 달아서 이익헌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회수된 괴수 사체를 보고 알았죠. 러프 스톤은 대개 괴수의 눈을 닮거든요. 그 러프 스톤은 굉장할 겁니다. 일반적인 3급 늪의 러프 스톤은 20억에 거래됩니다만 이건, 만약에 발견되기만 하면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을 겁니다. 80억 정도로 추산해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안 찾아본 곳은 지금 늪이 나타난 곳 주변 정도라고 하거든요. 거기를 찾으면 그게 나올 것 같기도 한데. 아무래도 늪 가까이 가는 건 불안해서 못 가는 것 같습니다.”

이익헌은 남우 주연상을 노려도 좋을만큼 근사하게 연기를 펼쳐나갔다. 강요섭은 이익헌의 말을 탐욕스럽게 귀에 담았다.

“그래도. 오픈일이 다가오지만 않았으면 위험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강요섭이 말했다.

“그렇죠. 그런데 요즘에는 헌터 협회에서 발표하는 오픈일을 믿기가 어렵지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냥 그렇다는 거고. 저는 이럴 때일수록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관점에서 이슈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일이 잘 되길 바랍니다.”

"예?"

러프 스톤에 대한 정보가 더 나오려나 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이익헌의 입만 보고 있었는데 이익헌이 갑자기 얘기를 끝내고 일어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강요섭은 당황했다.

"오랜만에 뜻이 맞는 분을 만나서 좋았는데. 조금 더 말씀 좀 들려주고 가시죠."

"제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이익헌은 많은 의미를 한꺼번에 담아서 그에게 말했다. 강요섭은 이익헌이 나가는데도 제대로 배웅도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80억이라.

***

강요섭의 페라리가 나타났을 때 이익헌이 야로슬라프의 팔을 팔꿈치로 건들었다.

“왔어. 국회의원이 페라리를 타고 다니네. 진짜 특이한 놈이잖아?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지 저는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 이건 거지? 재미있는 놈이네.”

“내릴까요?”

“응. 안 보이게 저쪽으로 돌아서 가는 거야.”

“네.”

“그런데 그게 정말 가능하긴 할까?”

“모르죠. 그래도 언젠가 한 번 해 보고 싶기는 했어요.”

“해 봐야 되는 거긴 했어.”

야로슬라프는 '이게 정말로 가능할까?' 라고 생각만 하면서 실현해 보지 않았던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늪의 괴수를 늪에서 끌어내오는 일이었다.

이익헌이 저를 보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강요섭은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익헌의 소형차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익헌이 타고 있던 차는 야생 동물을 촬영하는 사진 작가들의 차처럼 완벽한 위장을 하고 숨어 있었다.

성능 좋은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강요섭의 일거수 일투족을 잡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강요섭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차로 돌아가 준비해온 야삽을 꺼내왔다.

“하여간 귀여운 구석이 있어. 저 병신새끼.”

이익헌은 웃으면서 감상을 계속했다. 제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 우스웠다.

강요섭은 처음에는 겁이 나고 확신이 없었는지 여기 저기를 조금씩 깨작거려보는 식으로 파면서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내 고집이 생겼는지 겉옷을 벗고 전념을 했다.

“이런데 오는데 저렇게 입고 온 꼬라지좀 봐라. 왜 구두를 신고 와. 아오.”

이익헌은 강요섭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슬슬 늪의 상황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헌터들 중에서 야로슬라프에게만 기대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일을 하려고 한다면 일단 괴수를 힘으로 제압해야 하고 늪 밖으로 끌고 나와야 하는 것인데 시스템이, 오픈되지 않은 늪에서 괴수가 탈출하도록 허락할지 그것도 미지수였다.

늪은 5급 늪이었다. 만약의 경우에 일이 잘못돼도 야로슬라프가 단 시간에 해치워버릴 수 있는 괴수인 것이다.

‘안 되는 건가?’

늪 쪽이 잠잠한 것을 보고 이익헌은 그렇게 생각했다. 계획했던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인권을 우렁차게 부르짖던 국회의원이 땅거지처럼 여기저기 깨작거리고 삽질을 하는 모습이 유출되면 체면이 꽤나 상할 거라고 생각했다.

투사로 가장한 채 제 탐욕을 채울 생각만 하는 강요섭의 모습은 비위가 상할 정도로 천박해보였다.

“이걸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이익헌은 화면을 보면서 말했다.

슬슬 늪으로 가서 야로슬라프를 데리고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이익헌도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기가 야로슬라프에게 주의를 주었던대로 자기도 강요섭의 눈을 잘 피하면서 늪쪽으로 향했다.

늪의 주인은 4미터 정도 되는 괴수 개미귀신이었다. 그 늪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을 야로슬라프와 이익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개미지옥을 파 놓고 개미가 빠지기를 기다리다가 먹이를 산 채로 마취시키고 체액만 빨아먹고서 껍질만 남기고 죽이는 개미귀신이야말로 두 사람의 목적에 들어맞았다.

이익헌이 거의 포기를 했을 때 괴수 개미귀신이 늪 밖으로 튀어나왔다. 객관적인 사실은, 늪 밖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괴수 개미귀신은 느닷없이 늪 밖으로 끌려나와서 광분한 상태였다. 늪이 위치한 곳은 인가와 멀리 떨어진 산 속이었다. 야로슬라프와 이익헌은 이제부터 괴수를 놓치지 않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야로슬라프는 괴수 개미귀신을 늪 밖으로 끌어내놓고 이익헌에게 다가왔다. 괴수 개미귀신은 이익헌의 눈에만 보인 것이 아니었다. 강요섭의 바짓가랑이 사이가 젖어드는 것이 카메라에 똑똑히 잡혔다.

강요섭은 멍청히 야삽을 손에 든 채로 괴수 개미귀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페라리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면서 페라리를 향해 달렸다. 그러나 그것은 괴수 개미귀신을 자극하는 꼴이 되기만 할 뿐이었다. 괴수 개미귀신은 강요섭보다 더 빨리 달려갔고 페라리를 박살냈다. 납작하게 눌린 캔처럼 페라리는 형체를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었다.

“5급 괴수를 하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귀엽네.”

이익헌이 말하자 야로슬라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20미터는 그냥 넘어버리는 괴수들을 상대하다가 갓 4미터가 될까말까하는 괴수를 보려니 긴장감이 전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강요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강요섭은 페라리에 화풀이를 한 괴수 개미귀신이 저를 향해서 천천히 돌아서는 것을 보았다.

“언제 나갈까요?”

야로슬라프가 물었다.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충분히. 아주 충분히.”

“언제요?”

“저런 인간은 제대로 눌러놔주지 않으면 같잖게 복수를 꿈꾸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게 뇌까지 바짝 눌러주는 거야.”

“그러다간 죽을 텐데요?”

“그럼 그게 강요섭의 운명인 거지.”

“정말로 죽일 생각이예요, 아짐?”

“개미귀신이 강요섭을 마취시킨 다음에 체액을 빨아내기 전에 강요섭을 구할 수 있겠어?”

“너무 난이도를 높이지 마세요, 아짐. 적당히 교훈을 주면 되는 거잖아요.”

“좋아. 그렇다고 너무 빨리 끝내지는마. 나 오랜만에 제대로 흥분했다고.”

야로슬라프는 이익헌을 이상하게 보면서 슬그머니 이익헌에게서 떨어졌다. 이익헌도 자기가 한 말이 오역될 여지가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후다닥 뒷말을 덧붙였다.

“저 자식은 그냥 쓰레기잖아.”

강요섭은 정신이 없었다. 건물만한 괴수가 저를 향해서 몸을 일으킨 채 다가오고 있었다. 괴수의 커다란 턱을 보면서 강요섭은 그것을 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서 괴수가 나타나면 안 되는 거였다. 오기 전에도 여러 차례 확인을 했다. 자기가 볼 일이 있어서 묻는 것처럼 하지는 않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헌터 협회에 몇 번이나 알아보고 아직 오픈일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온 건데 이럴 수는 없는 거였다.

“말도 안돼. 왜 하필 여기인 거냐고!”

강요섭은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쳤다.

괴수 개미귀신은 빠르게 땅을 파기 시작했다. 강요섭을 거기로 끌어들이려는 것 같았다. 야로슬라프는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괴수 개미귀신이 강요섭을 개미지옥으로 끌고 들어가면 강요섭을 구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그러나 이익헌은 일부러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아짐. 저러다 진짜 죽어요.”

“야로.”

“네?”

“저 괴수 체력이 얼마야?”

“네?”

“들어가서 정보창 안 봤어?”

“340만요.”

“그렇지? 340만 맞지?”

그리고 이익헌은 야로슬라프의 팔을 잡아 헌터 타투를 확인했다.

경험치는 벌써 28,970이었다.

“이게 언제까지의 경험치야?”

“미국에서 마지막 레이드하고 났을 때의 경험치죠?”

“그렇지?”

“왜 그래요, 아짐?”

“우리가 여기에서 레이드 하는 걸로는 경험치가 안 올라. 맞지?”

“그럴 거예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28,970이라는 거지. 레이드를 하고 나서도 그대론지 보자고.”

“그대로일 것 같은데요? 근데 갑자기 그건 왜요?”

“시현이 말이야. 시현이가 만약에 늪 밖에서 레이드를 한다면 시현이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을 거야.”

“그렇겠네요.”

“그렇지? 그러면 시현이는 E급으로 올라가지 않고도 레이드를 할 수 있을 거야. 러프 스톤도 얻을 수 있을 거고.”

야로슬라프는 그 말의 뜻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차크라가 나타났다면 싸우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거예요. 아짐의 말이 맞을 것 같아요. 레이드를 하면서도 경험치가 올라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시현이는 아마 그렇게 해야 할 거예요. 괴수를 늪 밖으로 끌어내서 레이드를 하거나, 아니면 늪 밖으로 나온 괴수만 죽이는 거죠.”

“경험치를 잘 보자고. 이제 가자, 야로.”

“네, 아짐!”

괴수 개미귀신의 턱이 강요섭의 허벅지를 노리고 날아드는 순간이었다. 강요섭은 비명을 질렀고 제 허벅지에서 생생한 통증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때 그의 눈 앞에 나타난 사람은 이익헌이었다.

강요섭은 무슨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지 못했다. 이익헌은 그때까지 제 목을 꽉 끌어안고 있는 강요섭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괴수 개미귀신에게서 구해줬는데 더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강요섭은 바닥에서 일어나면서 괴수 개미귀신을 보았다. 지금까지 강요섭을 노리고 있던 괴수 개미귀신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회색눈의 헌터에게 무지막지하게 공격을 당하고 있었다. 헌터는 양 손에 든 두 개의 검을 자유자재로 휘둘렀다.

헌터의 몸을 둘러싼 차크라가 강요섭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헌터가 괴수 개미귀신의 몸을 이리 저리 밟고 뛰면서 데미지를 입히고 얼마지 않아 괴수 개미귀신이 바닥에 쓰러졌다.

야로슬라프는 괴수 개미귀신의 몸 아래로 날렵하게 뛰어내리더니 러프 스톤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혹시나 캐츠 아이 스톤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한 걸음씩 괴수의 사체 주변을 거닐었다. 그러나 그런 운까지는 따라주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