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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49화 (14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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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용하는 그것이 곧 자신의 몸을 관통하리라고 생각했다. 해파리 괴수는 의기양양하게 놀잇감을 포획했지만 자기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해파리 괴수는 촉수를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그 동작은 생각만큼 빠르지 못했고 촉수를 거두어들였을 때는 이미 거친 절단면을 남긴 채 촉수들이 베어져 있었다.

투두두둑 소리가 나면서 촉수의 끝부분들이 용하의 발 옆으로 떨어졌다. 용하는 소스라칠듯이 놀라면서도 시현을 안은 팔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용하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보려고 고개를 들었고 그때에야 저희들의 주위를 감싼 차크라의 빛을 보았다. 해파리 괴수의 촉수를 베어낸 시현의 차크라는 점점 더 기세좋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해파리 괴수는 위험을 직감했다.

시현의 차크라는 점점 더 넓게 뻗어갔고 이제는 방어를 하는 것에서 멈출 생각이 없는 듯이 보였다. 해파리 괴수의 앞에 거대한 차크라가 나타났을 때 해파리 괴수는 뒤로 돌아서 전력으로 달아났다.

물 속에서 부영하듯,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제법 속도를 내가면서 달렸다. 그러나 도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해파리 괴수는 달리는 동안 제 몸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먼저 촉수가 사라지고, 인식이 사라지고 존재가 사라졌다. 해파리 괴수는 희한한 경험을 하면서 쓰러졌다. 그런 후에도 차크라의 공격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도저히 제 주군을 공격한 괴수를 용서할 수가 없고 치가 떨려서 그 분노를 가라앉힐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차크라는 시현에게 돌아가려다가 바닥에 떨어진 러프 스톤을 인식했다. 러프스톤이 차크라에 감기면서 허공으로 떠올랐다. 차크라는 행여 그걸 떨어뜨릴세라 조심 조심, 물동이를 인 새색시처럼 조심스럽게 시현에게로 돌아갔다.

시현의 카시트 안에 러프 스톤 하나가 떨어졌다. 용하가 시현을 바라보자 시현이 두 팔을 뻗고서 칭얼거렸다. 안아달라고 할 때의 동작이었다.

“그래. 이리와. 다 끝났어. 다 끝났어, 시현아.”

안전벨트를 풀고 시현이를 감싸 안고 용하는 시현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어 주었다. 시현은 익숙한 냄새를 맡고 안심이 되었는지 고요한 숨을 쉬었다.

“다 끝났어. 이제 다 괜찮아. 잘 참았어. 시현이가 제일 용감했어. 역시 시현이는 멋있는 대장님이고 차크라는 시현이 부하였어.”

용하는 계속해서 그 말을 되뇌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용하의 턱 아래에서 닿았다. 그 촉감이 아니었다면 용하는 한동안, 제가 현실 속에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

치안부장은 출동을 준비하면서 강현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소식을 들은 강현은 곧바로 차에 올랐다. 그리고 한 번도 내 본 적이 없는 속도를 냈다. 한 눈에 봐도 죽기를 각오한 것 같은 질주라서 사람들은 감히 강현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죽을 때 차크라를 가지고 죽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인 거라고 강현은 생각했다. 죽기 직전이라면, 죽음을 보았다면, 남아있는 차크라가 하나도 없도록 전부 다 불사르고 죽어야 하는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자기가 한국에 있는 동안 시현을 괴수에게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용하가 시현을 데리고 시화호에 갈 거라는 건 강현도 알고 있었다. 지연이 미리 그 주위의 사정을 전부 다 조사를 했고 근처에 늪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괴수가 나타난 것이다. 누군가 다시 리드를 훔쳐가고 헌터 협회의 정보를 조작했다는 뜻이었다. 왜 하필 그 괴수가 시현이를 덮친 건지. 강현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안돼. 안시현. 죽으면 안 돼. 시현아. 삼촌이 가니까. 제발 삼촌이 도착할 때까지만 기다려줘. 너는 지우 형 아들이잖아. 그리고 특별한 차크라를 가진 아이고. 그럴 수 있지? 그래줄 수 있지? 삼촌이 늦지 않을게. 조금만 버텨줘. 조금만 더 버텨줘!”

강현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자기가 하는 말을 시현이 들어주기를 바랐다. 타이어에서 불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불이 나도 상관은 없다는 생각이었다. 위험천만한 질주를 한 끝에 강현은 용하가 신고를 했다는 장소에 도착했다. 강현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제 몸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지우에게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그는 자기가 전할 소식의 내용이 달라질 거라고 믿고 싶었다.

시현이를 구했다. 시현이는 괜찮다.

반드시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 말이 아닌 다른 말은 지우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거세게 퍼부어대는 비가 발길을 묶었다. 웅덩이를 뒤집어서 비를 쏟아붓는 것 같은 엄청난 비였다. 그 아래에서 눈을 뜨고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고 빗방울이 얼굴과 머리를 때릴 때 그게 아프다고 느껴질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아마 그것 때문에 치안대도 빨리 오지 못하고 있는 걸 거라고 생각했다.

캠핑카가 있어야 할 곳은 텅비어 있었다. 강현은 설마설마 하면서 길 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30미터는 족히 되는 낭떠러지에 캠핑카가 처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강현은 생각할 것도 없이 캠핑카를 향해 내려갔다. 주르르륵, 비에 젖은 흙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구를 뻔했지만 강현은 제 몸을 가누면서 캠핑가로 달려갔다.

강현이 캠핑카를 향해 달려갔을 때, 강현은 길 가에 흐물거리는 젤리같은 것이 퍼져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게 뭔지 살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시현의 안전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용하 형! 시현아. 용하 형! 강현이예요. 용하 형!”

살아있다면 대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강현은 안타깝게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 여기에 있어요!”

안에서 분명히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용하의 목소리였다.

‘살았다!’

강현은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살아있었다. 강현은 차를 향해 다가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아서 문을 뜯어냈다. 문은 젖은 종이처럼 쉽게 떨어졌다. 그 안에 있던 용하가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놓고는 문을 뜯은 사람이 강현이라는 것을 알고 멋쩍어했다.

“해파리 괴수가 다시 온 줄 알았어요.”

끔찍하다는 듯이 몸서리를 치면서 용하가 말했다. 강현은 비에 흠뻑 젖은 몰골로 시현이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세상에……. 내가 늦으면 어쩌나 하고……. 미치는 줄 알았어요.”

강현의 몸에서 진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고마워요. 형. 시현이를 지켜줘서. 시현아. 시현이도 정말 고마워. 살아있어줘서.”

강현이 말했다.

백번 천 번을 반복해서 말해도 부족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빗줄기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지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빗줄기가 뺨을 때리든 발길질을 하든 얼마든지 참아줄 용의가 있었다. 오늘은 세상의 어떤 것들이라도 다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현이는 괜찮아요. 우리는 조금도 안 다쳤어요.”

용하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시현이의 차크라가 우리를 구했어요.”

용하가 말했다. 강현은 고개를 들었지만 비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강현은 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시현이 강현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가, 아무래도 그 몰골로 자기를 안았다가는 자기도 다 젖겠다고 생각했는지 홀랑 용하에게로 다시 안겼다.

“시현이의 차크라가 구했다고요?”

강현이 물었다.

“그리고 시현이가 러프 스톤도 구했어요. 저기요. 저게 러프 스톤 맞죠? 캐츠 아이 스톤이랑은 좀 다른 것 같긴 한데. 생기기는 커다란 물방울처럼 생겼더라고요.”

용하가 하는 말이 전부 다 헛소리 같았다. 그러나 시현이의 카시트에 정말로 러프 스톤이 있었다.

“러프 스톤은 러프 스톤을 떨어뜨리고 죽는 괴수의 눈을 닮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괴수는요?”

강현이 러프 스톤을 보면서 물었다.

“몰라요. 도망쳤어요. 차가 구르면서 앞 유리가 깨졌거든요. 우리를 쫓아 내려와서 앞 유리로 촉수를 뻗었는데 시현이의 차크라에 닿고 불에 닿은 것처럼 놀라면서 도망쳤어요. 촉수가 우리 몸에 닿을 뻔 했는데 우리를 향해서 뻗어진 촉수가 다 잘라져 나갔어요. 시현이 차크라가 한 일 같아요.”

“일단 제 차로 가세요. 먼저 올라가서 쉬죠. 움직이실 수 있겠어요? 지연이 누나도 올 거예요. 같이 오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제가 제대로 운전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먼저 와 버렸어요.”

“제대로 운전을 못할 것 같은데 혼자 왔다고요?”

“저 혼자 타고 있으면 죽어도 상관 없지만 누나랑 같이 타면 그럴 수가 없잖아요.”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차에서 구를 때부터 시현이의 차크라가 우리를 감쌌어요. 그게 아니었으면 아마 우리는 살아있지도 못했을 거예요.”

용하의 말에 강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괴수를 어떻게 만난 거예요?”

“네비만 믿고 따라왔는데 길이 막혀 있었어요. 그래서 돌아가려는데 그게 우리 뒤를 따라왔어요.”

용하가 너무 놀라고 지친 것 같아서 강현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

“시현이가 클랜 A의 안지우 아들이라고 말했어요. 치안대에 구조 요청을 하면서요.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겠죠? 나는 그렇게 말하면 치안대에서 좀 더 빨리 와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혹시 내가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차가 굴렀는데 우리 둘은 너무나 말짱하고 치안대원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괴수는 도망쳤고, 여기에는 괴수 촉수들이 남아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되죠? 시현이를 의심하게 될까요?”

용하가 물었다.

“이제 제가 왔으니까 제가 그런 걸로 하죠. 제가 괴수 촉수를 벤 걸로요.”

“우리한테 상처가 없는 건 어떻게 설명하죠?”

“모르겠네요. 일단은. 저한테 미약하게나마 치유 능력이 발현된 걸로 하죠. 시현이 엄마한테 그 능력이 있어요. 없던 일도 아니니까 의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다음에는 더 신중해야 할 것 같아요. 계속해서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렇긴 하죠.”

“웃기죠? 죽게 생겼다고 생각했을 때는 다른 것들이 전혀 걱정거리가 아니었는데 일단 살고 나니까는 자잘하고 사소한 것들이 또 금세 걱정거리가 돼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거예요.”

“그러게요. 지우형이 그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심판의 날은 이미 지나갔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아마게돈이 아니겠냐고.”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용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품 안에서 시현이의 온기가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은 이 세상이 아마게돈이 아니라 천국처럼 느껴졌다.

“제 차를 타고 먼저 돌아가실 수 있겠어요? 치안대와 마주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긴 해요. 치안대가 저희쪽에 호의적이기는 하지만 치안대원들 개개인 중에는 불필요한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게다가 지우 형의 아들이라는 걸 이미 알았으면 시현이한테 관심을 가지기는 할 거예요.”

용하도 같은 생각이었고 강현이 먼저 제안하지 않으면 자기가 부탁이라도 할 참이었기에 그 말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뒤에 우산이 있는데 좀 가져다 줄래요? 젖은 사람이 계속 젖는 걸로 합시다. 나는 시현이를 안아야 하는데 내가 젖으면 그렇잖아요.”

용하가 말하자 강현이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그런 심부름은 언제든 편하게 시키셔도 된다고 말하고 우산을 가져왔다.

카시트까지 옮겨 달고 두 사람이 차를 타고 안전하게 돌아간 후에야 강현은 주위를 돌아볼 생각을 했다. 강현은 해파리 괴수가 죽은 것을 발견했다. 그것을 보면서 강현은 언젠가 지우가 들려줬던 얘기를 생각했다.

늪에서 괴수끼리 싸운 얘기였다.

강현은 지금 자기가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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