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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테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참고 참는 지우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용하는 몰래 서규태에게 연락을 취했다.
시현이를 데리고 잠깐 미국에 가려고 하는데 어떨 것 같냐고 물었던 것이다. 서규태는 당연히 좋다고 말을 했다가 자기가 혹시 사심을 가지고 말을 한 건지 고민을 했다.
시현이를 보고 싶은 마음은 엄마랑 아빠가 더하겠지만 두 사람이 시현이를 못 오게 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서규태는 혼자서 결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익헌의 도움을 청했다. 이익헌은 괜찮은 계획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심에서 한 말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시현이가 보고 싶었다. 잠깐 오는 걸로 무슨 문제가 생기겠냐는 마음도 있었다.
용하는 시현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기 전에 근사한 사진첩을 만들어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말하자면 용하가 시현에게 주는 백일 선물이었다.
“시화호에 가는 거야. 거기에 철탑이 두 줄로 있는데 철탑 중간에 해가 딱 걸리는 때가 일년 중에 5일뿐이래.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때고. 삼촌이 사진을 찍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고 시현이한테 그걸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삼촌이랑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러자고 약속했잖아. 아마 맞지?”
“암마.”
이제 제법 옹알이도 했다. 용하가 하는 말을 자꾸 끊어서, 하던 말을 잊어버리기도 했지만 용하는 시현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게 신기했다.
이제 차크라는 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용하는 자주 시현이를 데리고 지우가 살던 집에 갔다. 그곳이 시현의 차크라를 안정시켜주는 것 같다는 지연의 말 때문이었다. 그것 때문이었는지, 용하의 부탁을 시현이 들어줘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효과가 나타난 것 같기는 했다.
용하는 헌터가 아니었고 시현이를 데리고 늪 아래에 내려가지는 못했지만 지우가 살던 집을 보여주면서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말해줄 수는 있었다.
“여기는 아빠 책상인데 아빠가 여기에 앉아서 공부한 일은 별로 없었을 걸? 시간 나면 삼촌이랑 술 마시느라고 바빴거든. 만약에 나중에 시현이 네가 커서 공부를 못하게 되면, 그건 아빠 때문이라고 말해버려. 아빠도 공부를 그렇게 잘 한 건 아닌 걸로 알고 있거든.”
“흐으음마!”
“그렇지? 놀랍지? 그 자식, 얼굴보면 범생이 같이 생겼잖아. 공부도 잘 하게 생겼고. 그지? 그런데 그게 다 사기라니까?”
용하는 잔뜩 열을 올리면서 시현에게 지우 얘기를 해 주었다.
“으음마?”
“진짜야, 인마. 이 자식이 지 아빠 편드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림스 얘기도 해 주고 지우의 흑역사 얘기도 해 주면서 용하는 차곡차곡 시현의 마음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시화호를 향해 떠났다. 일출 장면은 감격적이었다. 용하는 아기띠로 시현을 앞에 차고 일출 사진을 찍었다.
“있다가 아빠한테 사진 보내주자. 시현아. 삼촌 사진 잘 찍지? 사진작가 같지? 이런 사진은 아무나 못 찍어. 운도 따라야 되고. 이거봐. 철탑 가운데에 해가 들어가 있지?”
시현은 도무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 듯했지만 용하는 신이 나서 여러 장을 더 찍었다. 시현을 차에 태우고 시현을 찍어주기도 했다. 시현은 삼촌이 뭘 하든간에 때에 맞춰서 밥만 주면 크게 상관은 없다는 주의였고, 용하도 시현을 굶길 정도로 사진에 푹 빠지지는 않았다.
한바탕 일출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늘이 달랐다.
“비가 올 건가봐. 어떻게 날씨가 이렇게 확 바뀌냐? 신기하지? 거기에는 해가 그렇게 예쁘게 떴는데.”
시현이 대꾸해 줄 리도 없는데 용하는 부지런히 말을 걸었다. 네비게이터의 지시가 이상했다.
“정말 이렇게 가면 길이 있다고?”
용하는 그렇게 물어가면서 지시를 따랐다. 그렇지만 그렇게 가서 만난 것은 폐쇄된 길이었다. 도로가 폐쇄됐다는 표지판을 보면서 용하는 약간 불길한 기분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 근방에는 늪이 없다고 지연이 확인을 해 주었기에 마음을 가다듬었다.
“별 일 없을 거야. 삼촌만 믿어.”
차를 타자마자 잠들어버린 시현에게 용하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떨어졌다. 후두둑 후두둑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줄기의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용하는 시현을 바라보았다. 시현은 잘 자고 있었다.
“금방 도착해. 갈 때까지 그렇게 잘 자고 있어, 시현아.”
용하가 말했다.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창문에 날아와 들러붙는 빗방울들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했다.
“안 되겠다. 잠깐 있다가 가자. 지나가는 비인 것 같은데 이 빗속을 뚫고 무리해서 가는 게 더 위험할 것 같아.”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를 피해 길가로 차를 붙이려던 용하는 뒤에서 무언가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어둠이라고밖에는.
거대한 어둠이라고밖에는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형체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가까이에 붙어서 따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하, 씨발. 안 돼. 왜 지금이야!”
용하는 소리를 지르고 급하게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차 지붕을 두들기는 빗소리가 요란했고 시야는 완전히 가려지다시피 했지만 자기들을 뒤쫓아오는 정체불명의 괴수한테 가만히 앉은 채로 당할 수는 없었다.
용하는 스마트폰으로 1번을 길게 눌렀다. 전국 어디에서나 1번을 길게 누르면 치안대에 신고가 되게 되어 있엇다. 차의 GPS시스템으로 신고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자동으로 확인이 되었다.
치안대원의 목소리가 들리자 용하는 소리를 질렀다.
“괴수한테 쫓기고 있습니다! 늪에서 탈출했나봐요! 지금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앞이 보이지 않아요. 제발 와줘요. 이러다 교통사고가 날지도 모르겠어요. 제발 와줘요. 아기가 타고 있어요! 클랜 A의 안지우의 아기예요. 이 아이는 절대로 죽으면 안 된다고요!”
용하의 얼굴에서 땀이 쏟아졌다. 와이퍼는 최고 속도로 움직였지만 용하의 눈 앞에는 희뿌연 유리만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모든 게 다 꿈이었다는 듯이 비가 멈췄다. 차 지붕을 두드리던 요란한 빗소리도 일시에 그쳤다. 그러나 여전히 어두웠다.
“선생님. 지금 치안대가 출동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 괴수는 해파리 괴수인 걸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금 차 안에 계신 거면 차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마시고요. 촉수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시고요, 선생님.”
치안대원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오다가 뚝 끊겼다. 차가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용하는 뒤를 바라보았지만 시현을 붙잡아줄 시간도 없었다. 안전벨트를 한 몸이 들썩였다. 핸들을 움켜쥔 용하의 손의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차를 감은 것은 해파리 괴수의 촉수였다. 해파리 괴수는 장난감을 움켜쥔 것처럼 차를 쥐었다가 던졌다. 부우웅 날아가서 바닥에 떨어졌을 때 차는 통제불능이었다.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차 옆면이 가드레일에 부딪쳤다. 불꽃이 튀는 것이 보였다.
해파리 괴수가 정면으로 나타났다. 흐물흐물한 젤리같은 것이 바닥에 퍼졌다가 부풀어 오르면서 촉수를 사용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용하는 괴수를 본 적이 없었다. 헌터가 돼서 늪 아래로 내려가서 괴수를 보는 게 어떤 느낌일지 가끔 궁금해하기는 했지만 그 시간 이후로는 절대로 궁금해하지 않겠다고 저절로 다짐이 되었다.
그렇게 생긴 것은 그냥 자신의 서식지에서, 딱 자기에게 어울리는 크기를 하고 살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모든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런 채로 용하와 시현이 타고 있는 차를 향해서 천천히 흐느적거리면서 다가온 것이다.
어찌나 무서웠는지 용하는 모든 것을 그만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시현이 용하와 같이 있지 않았다면 용하는 유리창을 깨고 기다란 유리 조각으로 제 손목을 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괴수의 공격을 당하면서 끔찍하게 죽는 건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기왕 죽는 거라면 능동적으로, 자신의 의지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현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야 하는 존재가 있었다. 시현이 용하에게 용기를 내게 했다. 아직은 포기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용하의 머릿속에 들었다.
해파리 괴수는 용하를 향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아직 차 안에 있기는 했지만 그곳이 더이상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용하는 깨닫고 있었다.
해파리 괴수의 촉수가 차를 들어올려 그대로 공중에 던져버렸다. 차는 순식간에 도로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차가 굴러떨어지는 동안 용하는 필사적으로 시현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무를 들이받고서야 차는 멈추었고 와이퍼가 작동을 멈췄다. 앞 유리에는 금이 가고 차 지붕이 형편없이 눌려 내려앉았지만 용하는 자기가 다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찰과상 하나 없었다.
튀어나가려는 몸을 안전벨트가 강하게 잡아조여서 가슴에서라도 통증이 느껴져야 할 것 같았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유리창은 한 템포 늦게 산산조각이 나면서 부서졌다.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힘이 일순간에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용하는 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문이 열리질 않았다. 용하는 몇 번 더 문을 발로 차다가 이내 포기하고 반대쪽 문을 열려고 했다. 그쪽도 열리지 않았다.
용하는 시현에게 넘어갔다.
“시현아. 아가야.”
시현은 눈을 뜨고 있었다. 겁에 질린 표정은 아니었다.
“흐음마.”
이것이 일종의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용하는 시현의 주위를 밝히고 있는 것이 시현의 차크라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현아…….”
시현이도 전혀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용하는 유아용 카시트에서 시현을 풀어주려다가 다시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차 지붕을 두드리던 소리가 또다시 멈춘 것이다. 용하는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자기가 물의 장막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흐물흐물한 해파리 괴수의 몸이 차를 감싸고 있었다. 어차피 정해진 죽음이라면 고통 없이, 두려움 없이 빨리 맞이하고 싶다고 용하는 생각했다. 그야말로 오줌을 지릴 정도로 겁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시현을 안고 있는 용하의 팔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여기에서 살아나가서 제 몸을 살펴볼 기회가 생긴다면 무릎 사이에 피멍이 들어있는 걸 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용하는 시현의 몸을 제 몸으로 감쌌다.
"괜찮아. 시현아. 삼촌이 지켜줄 거야."
용하는 시현이 죽는 순간까지, 자기가 느끼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열심히 거짓말을 하는 중이었다. 용하가 시현을 감싼 것처럼 시현의 몸에서 피어난 차크라가 두 사람을 함께 감쌌다.
해파리 괴수는 아직 장난을 끝낼 생각이 없는 듯이 보였다. 해파리 괴수는 몸으로 차를 감쌌다.
용하는 차 문을 잠갔지만 유리 파편이 떨어져나간 앞쪽의 창문은 속수무책이었다.
"삼촌이 사랑했어. 시현아. 알지? 많이 잘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차크라 쓴다고 혼낸 것도 미안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혼내는 거였는데. 괜히 시현이 속상하게 혼냈다. 그지?"
용하가 시현에게 속삭였다.
해파리 괴수의 촉수 수 십 개가 한꺼번에 깨진 유리창을 뚫고 들어왔다.
그것을 본 용하가 시현을 제 품에 안고 거친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말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시현이 아무런 고통 없이 죽게 되기를. 그것말고는 어떤 소원도 없었다.
해파리 괴수의 촉수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