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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46화 (14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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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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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물이 들었다. 엑스 블레이드에.

거기에 묻어서 떨어지는 핏물은 괴수의 것이 아니었다.

지우는 옆에 쓰러진 클랜원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이건 거짓말이다. 전부 다 잘못된 것이다. 다 거짓말이다.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울고 싶었지만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을 확인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임정과 시현이 있었다. 임정은 시현을 제 몸으로 덮었지만 임정의 몸을 두 동강낸 발톱은 임정의 몸을 찢고 그 아래에 숨어있던 시현의 몸까지도 조각내고 지나갔다.

써전, 론 디어, 태인과 강현, 야로슬라프까지.

그가 의지하고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 쓰러져 있었다.

지우는 고개를 들었다.

하얀 연기에 휩싸인 괴수는 푸른 빛이 나는 눈으로 지우를 노려보았다.

그 맵은 처음에 들어왔을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어울리지 않는 오두막. 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 괴수는 그곳에서 나타났다.

특색없는 몸이었지만 헌터들에게 자신에 대한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을만큼 철저하게 공략을 저지해오던 녀석이었다.

헌터들은 괴수를 심연의 공포라고 불렀다. 심연에서 떠오른 그 녀석을 마주하고 나면 생각을 뺏겼다.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생각에 곧바로 복종한 헌터들만이 살아남았다. 거기에 저항한 헌터들은 모두, 하나도 남김없이 늪 아래의 세상에 영원히 갇히게 되었다.

지우는 자기가 본능에 저항한 것을 후회했다.

심연의 공포는 헌터들의 생각을 조종했다. 괴수가 심연의 공포라고 불리는 것은 그 괴수가 심연에서 떠오르는 이유 때문이기도 했지만 보다 근원적인 의미는 괴수가 헌터의 심연에 가라앉아 있는 가장 내밀한 두려움을 끄집어 올린다는데서 기인했다. 그러나 그 이름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연의 공포와 싸우고 있는 사람은 지우 혼자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제 싸울 의미가 남지 않게 되었다.

쓰러진 클랜원들. 아내. 그리고 시현까지.

그들이 사라진 세상을 버틸 용기가 지우에게는 없었다.

지우는 칼의 손잡이를 바꿔쥐었다.

그리고 저를 위해 싸워주었던 엑스 블레이드의 칼날에 제 목을 감으려 했다.

“으아아아아아!!”

그들의 이름을 차마 부르지 못하고 지우는 비명을 질렀다. 부르짖는 지우의 소리에 엑스 블레이드가 반응하듯 차크라가 휘감겼다.

그것은 지우의 것이 아니었다. 지우가 만들어낸 허상의 시현에게서 나온 차크라였다. 시현의 차크라는 쭉쭉 뻗어나가면서 지우를 짓누르고 있던 연약한 감정의 공격을 갈기 갈기 찢어냈다. 엑스 블레이드는 스스로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이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엑스 블레이드를 휘둘렀을 때 지우의 눈 앞에는 지느러미가 달린 심연의 공포가 나타났다.

엑스 블레이드는 심연의 공포를 갈기갈기 찢어냈고, 그러는 동안 심연의 공포가 늪 아래의 세계에 드리웠던 공격이 힘을 잃고 사라졌다.

바닥에 쓰러졌던 헌터들이 하나 둘씩 몸을 일으켰다. 강현과 시현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 자리에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한국에 있는데, 애초에 이곳에 있을 수가 없는 건데 어쩌다가 그 공격에 휘말리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우는 일어서는 임정을 향해 달려갔다.

열 두 시간의 공격 제한 시간이 지나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 제가 만든 상상 속에서 죽었다가 살아온 임정을 안아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임정 역시 지우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여전히 자신을 보고 기뻐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썩을 놈의 메기 새끼! 사람을 잘도 갖고 놀았겠다!”

이익헌은 그야말로 광포해졌다. 자신의 손에 죽었던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 돌아와서 계속해서 자신을 쫓아다니다가 자신의 살덩어리를 찢어내는 광경이 이제야 눈 앞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그게 심연의 공포라는 괴수가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것을 알고난 이익헌이 순순히 넘어가줄 리가 없었다.

야로슬라프는 환상이 걷힌 후에도 한동안 멍한 표정이었다. 제 사지가 결박된 채, 지우가 자신의 살과 뼈를 전부 발라내고 캐츠 아이 스톤을 꺼내가는 것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야로슬라프의 멍한 눈과 마주쳤을 때 지우는 야로슬라프가 봤을 환상이 어떤 것이었을 거라는 것을 대충 짐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고, 나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이 섭섭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자고, 야로. 저런 건 한 방에 죽여버리자. 아니. 한 방에 죽이는 걸로는 안 되겠어. 죽고 싶다고 간절하게 빌고 싶어질 만큼 최대한 고통을 느끼게 하면서 죽여버리자고. 저 놈을 물속에서 끌어내!”

“네, 아짐!”

야로슬라프는 검을 휘두르면서 물 위로 달려갔다. 차크라를 실은 다리는 물에 빠지지 않은 채 물 위를 달려갈 수가 있었다. 심연의 공포는 야로슬라프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때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야로슬라프는 심연의 공포를 붙잡았다. 미끌미끌한 등에는 제대로 잡을 것이 달려있지 않았지만 야로슬라프에게는 그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야로슬라프의 손가락이 차크라로 물들었고 차크라를 실은 손가락은 그대로 괴수의 몸을 뚫고 들어갔다. 야로슬라프는 괴수의 몸을 꽉 쥐어잡고 그대로 물 밖으로 던졌다.

분노한 클랜원들은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들처럼 심연의 공포에게 달려들었다. 일단 정신 공격이 통하지 않게 된 후로는 더할 나위없이 쉬운 사냥감이었다. 야로슬라프나 지우가 공격기회를 따로 만들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괴수를 피해가면서 끊임없이 공격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초반에 정신공격을 당하고 쓰러져있던 시간이 길어서 공략에 성공할지의 여부는 불확실했다. 심연의 공포는 원래 자기가 맞아야 한 것보다 더 많이 맞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클랜원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보았던 장면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 다 비켜! 이 새끼는 내가 죽일 거야!”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이익헌이라고 했다면 모두들 그러련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은 서규태의 입에서 나왔다. 서규태가 어떤 광경을 본 건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서규태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대다가 그걸로는 속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태인의 손도끼를 뺏어서 그것으로 심연의 공포를 조져버렸다.

“마음은 알겠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태인은 서규태를 달래놓고 제 손도끼를 회수해서 딜을 퍼부었다. 다른 클랜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신 공격을 하는 1급 괴수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심연의 공포도 체력은 크게 높지 않았다. 괴수의 체력이 완전히 다하고 공략이 끝났을 때 클랜원들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체력이나 차크라가 바닥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환상의 잔재가 남아서 그들에게 여운을 드리운 탓이었다.

절대로 겪고 싶지 않은 일, 절대로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너무나 생생하게 비쳐지는 바람에 그들이 받은 충격은 쉽게 가시질 않았던 것이다.

“시현이가 나를 구해줬어.”

지우가 말했다.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자 지우는, 자신의 환상 속에 나타난 시현의 차크라가 엑스 블레이드에 스며들어서 엑스 블레이드를 저절로 움직이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것도 환상인지 어떤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시현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참여하지도 않은 레이드에서, 정신공격을 당하고 있는 아빠를 위해서 그런 일을 능히 해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늪을 나가려고 할 때 야로슬라프는 이 괴수의 사체는 어떻게 할 거냐고 서규태에게 물었다. 서규태는 괴수의 사체를 발로 빡 차 버리고, 이 따위 물고기는 써먹을 데도 없겠다고 말하면서 먼저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익헌이 씨익 웃었다.

“써전이 어떤 환상을 봤는지 알 것 같아. 입이 작은 여자를 드디어 만났는데 발기가 안 된 거야.”

이익헌의 말에 다들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는 했지만 왠지 그런 거라면 서규태의 반응이 이해될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심연의 공포는 클랜원들을 몸서리치게 만들었으면서도 그 러프 스톤만큼은 저절로 무릎을 꿇고 싶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괴수의 푸른 눈을 닮은 러프 스톤은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깊었다.

“이건 진짜 비싼 값에 팔릴 것 같아. 다른 러프 스톤보다도 훨씬 더 비싼 가격에. 왜냐면, 나한테 그렇게 요구를 해도 사고 싶을 것 같거든.”

이익헌이 말했을 때 모두들 그 말을 이해했다. 괴수의 눈을 닮은 푸른 러프 스톤은 그렇게 클랜 A에게로 돌아갔다.

“당신은 뭘 봤어?”

지우가 임정에게 물었다.

임정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어떤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임정이 본 모습은 헌터들에게 둘러싸여 사냥을 당하는 지우와 시현,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지우는 시현을 품에 안은 채 사람들이 시현을 건들지 못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두 사람을 둘러싼 헌터들은 원을 점점 좁혀가면서 칼 끝으로 지우의 몸을 마구 찔러댔다.

제발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러대던 임정의 목에서는 피가 터져나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멈추지 않았고 지우의 몸을 마구 찔러댔다. 지우의 몸이 칼날에 베어지고 찢기고 뼈가 드러났지만 지우는 제 통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현에게 날아 들어오는 칼날을 피하기 위해 몸을 동그렇게 웅크렸다.

지우의 몸이 시현을 완전히 감싸자 헌터들은 괴수의 캐츠 아이 스톤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커다란 돌을 집어들었다.

돌이 지우의 머리로 날아들었고 지우의 머리가 석류처럼 쪼개졌다. 그런데도 지우는 시현을 놓지 않았다. 임정은 한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그들에게 달려가려고 했지만 제 몸이 묶여있는 것을 깨달았다. 제발 그만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는 공중으로 떠오르지도 못하고 흩어졌다.

마침내 지우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추었을 때 임정은 자신의 숨이 멈춘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심장은 이미 지우에게 가 있었던 거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임정은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임정은 그게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사라진 세상은 더 이상 그녀에게 의미있는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갑자기 거대한 장막이 눈 앞에서 가로로 길고 거칠게 찢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장면이 나타났다. 늪 아래의 세상이었다. 자기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쁘게 생각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태어나서 느꼈던 모든 기분 좋은 순간을 다 갖다가 비교해도 댈 수 없을만큼 기뻤다.

임정은 지우의 손을 잡았다. 놓으면 어딘가로 가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한동안 지우의 손을 놓지 못했다. 지우는 그런 임정의 어깨를 한없이 쓰다듬어 주었다.

***

세띠 아르마딜로는 헌터들이 까다로워하는 개체 중 하나였다. 그래서 세띠 아르마딜로가 사는 늪의 배정은 클랜 A에게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클랜 A로서는 손해날 일이 아니었다. 클랜 A는 1급 늪의 공략을 맡아주기로 했지만 미국 정부가 스스로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낮은 급의 공략을 부탁한 것이니 그게 1급 늪이 아니라고 해서 카운트에서 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띠 아르마딜로를 공략하는 방법은 점점 다변화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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