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145화 (145/331)

0145 / 0331 ----------------------------------------------

6부. 괴수의 차크라

“체력은 이제 900만밖에 안 남았는데요.”

누군가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지막으로 혼심의 힘을 쏟아 딜을 퍼부었다. 강현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강현이 아래를 내려다보자 밑에 있던 탱커가 강현을 바라보았다. 강현은 무기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엑스 블레이드가 있었다. 지우가 사용하는 것은 숱하게 봐 왔지만 자기 자신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무기였다.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이대로 괴수 아나콘다를 물 속으로 놓치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강현은 소리를 질렀다.

“탱커님. 엑스 블레이드를 던져주세요.”

탱커는 무기가 놓여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제 물가에 거의 닿은 괴수 아나콘다는 다시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모두가 긴장을 한 속에서도 아나콘다 괴수의 몸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계속해서 딜을 퍼부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강현은 울컥해졌다. 탱커가 던져준 엑스 블레이드가 강현의 손에 날아와 안착했다. 이들의 노력이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강현은 엑스 블레이드를 높이 쳐들었다. 강현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 하다가 엑스 블레이드에 그대로 괴수 아나콘다의 목을 걸쳤다. 강현은 허공에서 다리를 휘저으면서 괴수 아나콘다의 목에 걸린 엑스 블레이드를 돌려 감았다.

“크아……!”

괴수 아나콘다의 입에서 나온 비명은 나오다가 그대로 멈추었다. 괴수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버리는 것을 본 치안대원들은 잠시동안, 강현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괴수 아나콘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마지막으로 혼을 다해서 딜을 퍼부었다. 탱커도 강현도 공격에 가세했다.

“끝났어요! 끝났다고요!”

누군가 소리쳤을 때에야 그들은 멈출 수가 있었다. 숨도 쉬지 않은 채 100미터를 달려온 기분이었다. 거친 숨을 토해내던 강현은 괴수 아나콘다의 몸에서 러프스톤이 떨구어지는 것을 보고 물 속으로 몸을 날렸다. 물이 찰랑거리면서 러프 스톤을 끌고 가려고 했다. 강현은 무릎 정도까지 잠길만한 깊이의 물 속에 몸을 담그고 러프스톤을 주웠다.

“러프 스톤이예요. 괴수의 아나콘다의 떨어진 목에서 나왔어요!”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딜러들은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갔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서 강현은 그쪽을 한 번 바라보고 제가 발견한 러프 스톤을 바라보았다. 물 속에서 영롱한 눈동자 같은 돌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캐츠 아이… 스톤이다! 시현아. 삼촌이. 삼촌이 찾았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새 정말로 눈물이 흘렀다. 강현은 눈물을 감추려고 물 속에 아예 얼굴을 담갔다가 뺐다. 캐츠 아이 스톤이 그의 갑옷 속으로 들어갔다. 심장은, 강현이 늪 안으로 들어온 이후에 가장 빠르게 뛰었다.

치안대원들이 다가와 러프스톤을 강현에게 건네려고 했다.

“탱커님이 알아서 분배를 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정말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강현이 말했다.

“다시 또 아나콘다 괴수를 사냥하는 거죠? 같이요?”

치안대원들은 환한 얼굴로 물었다. 모두들 감격의 도가니에서 벗어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감사하죠.”

“완전히 감잡았어요. 딜러님은 진짜 대단했어요. 괴수의 목을 베서 움직이지 못하게 할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어요. 그동안 익스트림 헌터에서 엑스 블레이드를 볼 때마다 누가 비효율적으로 저런 걸 쓴다는 건가 하고 의심했었는데 오늘 엑스 블레이드의 진면목을 제대로 봤네요.”

"클랜 A 클랜원이랑 같이 레이드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겠죠? 진짜 멋있었어요. 역시 클랜 A답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모두들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강현은 빨리 그 소식을 지우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다시 소집 명령이 내려지면 그때 뵙겠습니다.”

강현이 서두르자 모두들 아쉬움을 달래면서 그를 보내 주었다. 밖에서는 지연이 기다리고 있다가 강현을 안아주었다.

“수고했어. 아주 잘 했어. 아나콘다 괴수가 물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걸 봤어. 네가 끝장낸 것도 봤고.”

강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사람들 때문에 크게 울지는 못했지만 한 번 터진 눈물이 줄줄줄 흘러나왔다.

“왜 그래. 강현아. 네가 혼자 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먹은 거야? 그래도 잘 해냈잖아. 그러면서 크는 거야. 다음에 할 때는 아나콘다가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누나가 방법을 찾아볼게. 괴수가 끔찍하게 여길만한 약품을 물에 풀자. 물 전체를 오염시킬 수는 없어도 물가에만 저지선을 만들어도.”

지연이 얘기를 계속하면서 강현을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강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예요. 누나.”

지연은 강현을 바라보았다.  몇 초간 강현을 바라본 후에야 지연의 눈이 빛났다.

“그걸……. 혹시 그걸… 찾은 거야, 너?”

강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연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다. 빨리 가자. 빨리 가서 지우씨랑 탱커님한테 알려주자.”

지연이 강현의 팔을 잡고서 말했다. 강현은 아직 갑옷을 벗지도 않은 상태였지만 두 사람 모두 그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

“누구? 시현이?”

서규태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달려왔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임정과 지우가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아서 화상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을 봤던 것이다. 하지만 벽면에 걸린 커다란 화면에 나온 것은 강현의 얼굴이었다.

“써전님. 써전님도 잘 지내고 계시죠?”

“어, 강현씨. 잘 지내고 있어요?”

서규태의 목소리에서는 저도 모르게 힘이 뚝 빠졌다. 시현인줄 알고 반가워서 기껏 달려왔더니 왜 네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써전님은 저는 하나도 안 보고 싶으시고 시현이만 보고 싶으신 거죠?”

강현이 새침하게 물었다.

“거기에서 독심술 배우고 있어요? 잘 아네?”

“그러지 마세요, 써전님. 저는 써전님이 정말 많이 보고 싶은데.”

이익헌과 태인도 강현의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소파가 북적북적해졌고 자리에 앉지 못한 사람은 소파 등에 올라가 앉았다.

“시현아. 이리 와 봐. 내 얼굴만 보여주다가는 난리나겠다.”

그러자 화면 안으로 팔이 불쑥 들어오더니 강현에게 시현을 안겨주고 나갔다.

“고마워요, 용하형. 도와주시는 김에 그것도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용하가 쭈뼛쭈뼛 화면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용하의 얼굴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시현을 보고서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어이구, 이제는 좀 사람같이 생겼네. 전에 봤을 때는 솔직히 조카니까 이쁘다고 그런 거지 쭈글쭈글하기만 하고 빵 눌러 놓은 것 같고 그러던데.”

이익헌이 말하자 임정의 눈에서 매서운 눈빛이 나갔다. 이익헌은 움찔하면서 목을 어깨 속에 숨겼다.

“확실히 귀여워졌네. 젖살 포동포동한 것 좀 봐. 많이 컸는데요? 용하씨가 잘 봐 주나봐요.”

서규태가 말하자 용하의 얼굴에 쑥스러운 듯한 웃음이 나타났다.

“자. 이제 다들 저 좀 보세요. 정말로 중요한 얘기예요.”

강현이 말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가기는 역부족이었다. 역대 최강의 씬 스틸러(scene stealer)인 시현이 같은 화면에 등장하고 있는데 애초에 무리한 일이었다.

“저요. 캐츠 아이 스톤을 찾았어요. 아나콘다 괴수를 공략하던 늪에서요. 물 속에 그게 있었어요. 저는 러프 스톤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그걸 주우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러프 스톤을 찾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세히 봤더니 이게 캐츠 아이 스톤이었어요. 천 전무님한테 물어봐서 확실히 확인했어요. 맞죠?”

강현이 캐츠 아이 스톤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소파에 앉아 있던 클랜원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커다랗게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놀라워하다가 한 사람, 한 사람씩 지우의 어깨와 등을 토닥여주었다.

“축하해요. 지우씨.”

서규태의 말을 듣는 동안 지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임정은 지우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울고 있었다.

“형. 울지 마요. 누나도 울지 말고요.”

두 사람이 운다는 것을 알았는지 시현이도 울기 시작했다. 우엥우엥 우는 소리가 커지자 주황색 차크라가 서서히 일렁였다.

“시현아. 삼촌이랑 안 그러기로 했잖아. 시현이는 차크라한테 안 지지? 그러니까 지금은 그거 감춰야 하는 거지?”

용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시현의 차크라가 사라졌다. 시현은, 우는 건 계속해도 되냐는 듯이 용하를 바라보면서 훌쩍거렸다.

“아이구, 착해. 우리 시현이. 차크라는 시현이 부하지? 시현이가 대장님이고. 그러니까 시현이가 차크라를 이겨야 되는 거야. 알지?”

“움,움,움, 우에에에엥.”

클랜원들은 저도 모르게 용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용하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다.

“야, 봤냐. 안지우? 네 아들 이러고 운다? 움,움,움 이렇게 시동을 걸어놓고 우에에엥 그러고 울어. 그리고 이거도 봤냐?”

용하는 손가락으로 시현의 장갑을 가리켰다.

“이거 되게 귀엽지? 의자 다리에 끼우는 것 같지 않냐? 장갑인데 손가락 끼우는데는 없고 그냥 이렇게 통으로 돼 있어. 팔목에 고무줄 있고. 이걸 안 끼면 시현이가 자기 주먹으로 자꾸 자기를 때리거든. 팔이 자기 마음대로 안 움직이나봐. 손톱은 깎아줬는데 손톱으로 자기 얼굴을 긁기도 해. 손톱이 짧아도 긁히겠더라고. 그래서 찾아보니까 이런 걸 끼워주는 거라네? 그래서 사서 끼워줬지. 이거보다 더 귀여운 것도 있는데 그건 빨아서 말리는 중이고."

"죄송해요. 용하씨. 다 제가 해야 될 일인데. 시현이 맡겨놓고 인사도 변변히 못 드려서 제가 용하씨를 생각하면 늘 죄인이 된 기분이예요."

임정이 말했다. 그러나 그 순간 용하가 화면에서 사라지면서 임정은 혼자서 뻘쭘한 신세가 되었다.

"젖병 소독기를 올려놨는데 불 줄이고 오느라고. 다 탈 뻔 했다. 아. 시현이는 손톱이 왜 이렇게 빨리 자라냐? 깎은 건 다 모아놨어. 강현씨 갈 때 보내줄게. 그동안 한 열 번은 깎아줬나? 손톱이랑 발톱이 이백 개 정도 있겠다. 그리고. 어. 너랑 통화하게 되면 얘기해줘야겠다고 생각한 게 많았는데 기억이 안 나네? 아. 시현이 머리카락 많이 자랐지? 그리고 시현이 웃을 때 보조개 들어가는 거 아냐? 졸라 귀여워.”

시현이는 어느 새 우는 것도 멈추고 용하 삼촌이 좋은 소리만 하고 있는지 감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

“야, 시현이. 이렇게 입술 오므리고 눈 똥그랗게 뜨고 있으면 진짜 귀엽지 않냐? 하긴. 왜 안 귀엽겠냐. 염장 질러서 미안하다. 아무튼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레이드 열심히 해. 거기서도 좀 모으긴 했어? 캐츠 아이 스톤?”

“응. 두 개.”

지우가 말했다.

“진짜? 레이드하다가 찾았어?”

“아니. 1급 늪 공략해주고 미국 정부한테서 받기로 했던 거 받은 거야. 강현이도 찾았으니까 우리도 찾을 수 있겠지.”

“얼굴은 그렇게 나빠보이지 않네. 다른 분들은 내가 전에 뵌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고. 너무 걱정만 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닐 테니까 마음 편히 먹고 하자고. 시현이는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그쥐, 시현아.”

시현이는 허공을 향해서 주먹을 휘두르다가 자기 얼굴을 때릴 뻔 했고 용하가 그런 시현의 손을 잡아주었다.

“네 손이 네 손 같지 않아서 어떻게 하냐? 그래도 나중에는 다 잘 될 거니까 걱정마.”

시현이한테 하는 말이었지만 지우는 자기한테 하는 말 같다고 생각했다.

“시현이. 정말 행복해 보여요.”

임정이 말했다. 누구도 그 사실을 의심할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