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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시현이는 잘 노냐?”
지우가 대뜸 그것부터 물었다.
“잘 놀지.”
“오늘은 뭐했어?”
“뭘 뭐해.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지.”
“다행이네.”
“응.”
“왜? 할 말 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뭐든 말해. 네가 나한테 어려워할 말이 뭐가 있어?”
지우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말했다.
“이건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은 아니야.”
“뭔데? 필요한 게 생겼어?”
“나는 그냥 단지. 시현이가 무능력한 삼촌을 가졌다는 치욕을 느끼지 않게 되길 바랄 뿐이야.”
“그게 무슨 개소린데? 너. 무슨 헛수작이야?”
“역시. 안지우 감은 아직 안 녹슬었네.”
“무슨 일 있어?”
“내가 오늘 병신지랄을 했다.”
“무슨 일인데?”
용하는 잔뜩 후회를 하면서 자기가 회사에서 벌인 일을 말했다. 지우에게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너도 형편 안 좋을 텐데. 캐츠 아이 스톤 사려면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가잖아.”
“할 말은 다 끝났어? 나는 뭔가 더 나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뭐가 더 나와?”
“그럼. 정리를 하자면 너희 4부가 1,2,3부 매출보다 더 팔아버리면 된다는 거야?”
“응? 응. 으응.”
“너희 회사에서 취급하는 것 중에 제일 비싼 게 뭔데?”
“여기저기 거래선은 많이 뚫어놨어. 경쟁력이 없어서 우리를 통해서 사려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렇지.”
“그래?”
“혹시 좋은 생각 있냐? 내가 그냥 영업1부장한테 가서 빌까?”
“너는 네 조카한테 그런 삼촌이 되고 싶어?”
“아니. 아, 진짜. 시현이한테는 완전히 멋지기만 한 삼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면 되지.”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데?”
“정말로 조직을 재정비할 수는 있대?”
“안 될 건 없겠지. 근데 영업1부만 이기기도 힘들어.”
“너는 네 친구가 누군지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지우가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건 아니야. 너말고 어떤 미친 놈이 친구한테 부가티를 덥석 안기겠냐?”
“그런 걸로는 골치 썩지 마. 그런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해 줄 수 있으니까. 시현이 삼촌이 그런 놈들한테 당하고 다니면 안 되지.”
“정말, 그럴 거냐?”
“당연하지, 인마.”
“고맙다. 너도 형편 안 좋을 텐데.”
“아니야. 괜히 일에 쫓겨서 네 상황을 먼저 못 살핀 게 미안하다. 사내 게시판이라고 했지? 거기에 네가 올려. 기간도 명확하게 잡고 조건이 뭔지, 조건을 먼저 성취한 사람이 뭘 갖게 되는지. 그것도 미리 올려서 회사 사람들이 전부 알게 하라고.”
“정말 괜찮겠어? 그 사람들도 꽤 날고 기고 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많이 잡고 있어. 상급 헌터들도 많고 고위급 정치인들도 있고. 미친 척 하고 계약을 다 끌어 당길 수도 있을 거라고.”
“그러라고 해. 절대로 발버둥치지 못할 정도로 밟아줄 테니까.”
“하아. 이 새끼. 언제 이렇게 멋져진 거야?”
“안시현 아빠가 된 때부터?”
지우의 웃음소리가 밝게 들려왔다.
***
용하는 자기가 괜히 만든 일 때문에 며칠 더 회사에 나가게 됐다고 지연에게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지연은, 불쑥 들이닥친 사람들은 자기들이니까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평소에 찬바람이 쌩쌩불던 영업 4부 사무실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일이 늘었다. 그들은 이 일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다윗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아무도 자신들이 이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싸우는 기분이란 처참했다.
주어진 날짜는 사흘이었다. 용하도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오래 낭비할 수는 없었다.
1,2,3부는 구태여 그 달에 체결할 필요가 없는 계약까지 전부 당겼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다. 그런데도 한 번 발동한 승부욕을 다스릴 수가 없어서 그 짓을 하는 중이었다.
영업1부장은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신용하를 1부로 데려가서 안지우를 만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기들이 질 거라는 상상은 할 수 없었기에 신용하를 어떻게 구슬릴 것인지 그 생각을 먼저 하는 중이었다.
3일동안 각 부에서 올린 실적은 비공개로 하기로 했지만 영업1부장은 손쉽게 데이터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영업4부에서 어떤 실적도 발생하지 않은 것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싸울 생각이 전혀 없는 거군? 한 손만 가지고 상대해 줄 걸 잘못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용하는 클랜 A의 에이스인 안지우의 절친이라는 생각에 긴장의 끈을 놓치 않았다.
그렇게 사흘째 되는 날이 밝았다. 영업1부장은 화사한 소라색 와이셔츠에 회색 스트라이프 정장을 골라입고 회사에 출근했다. 그가 로비에 들어섰을 때부터 회사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진 게 느껴졌다. 영업1부장을 본 사람들도 그를 보는 둥 마는 둥 대충 인사를 하고 어딘가로 급히 움직였다. 그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지 못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을 붙잡고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에게 붙잡히지 않으려고 일부러 서둘러서 달려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는 영업2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업2부장의 목소리는 크게 흔들렸다. 그 역시 어딘가를 향해 달리는 중이었다.
“부장님. 무슨 일입니까? 사람들이 다 왜 이래요?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영업1부장이 물었다.
“말도 마세요. 바디 펌 천기정 전무가 사장님이랑 조찬모임을 갖고 지금 회의실로 들어갔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바디 펌이요? 바디 펌이 왜요? 드디어 우리랑 계약을 하겠다고 한 겁니까?”
1부장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영업4부랑 하겠다고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그게 무슨……!”
1부장의 머리에 용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결국 그렇게 된 건가!’
“지금 회의실 앞입니다. 이사님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는데. 천기정 전무가 사장님이랑 같이 들어갔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아요.”
“회의실에는 그럼 사장님이랑 천 전무만 들어간 겁니까?”
“아뇨. 영업4부장이랑 신용하 대리도 같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미치겠군.”
“들리는 소리로는 이 계약이 성사되면 7조 2천억의 영업이익이 발생할 거라고 합니다.”
“7조, 2천억요? 벌써 그렇게 구체적인 액수까지 얘기가 나왔다고요? 7조 2천억이면 우리 회사 2분기 영업이익보다 더 높은 수치잖아요!”
“제 말씀이 그 말씀입니다.”
1부장은 그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사내게시판에 신용하가 올렸던 글이 떠올랐다. 영업4부가 영업1,2,3부의 실적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실적을 내면 조직을 개편해서 영업4부장에게 영업팀장을 맡게 하고 영업1,2,3부는 그 아래에 배치하자는 주장이었다. 배치라고는 했지만 복속시키겠다는 어감이 더 강했다.
그 일이 현실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는, 그 일이 현실이 될 거라는 사실을 의심할 사람이 없었다. 1부장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후회를 하면서 벽을 짚고 멍하니 서 있는 동안, 복도 끝에서 걸어나오던 여직원들이 1부장의 뒤쪽을 바라보더니 경악하는 표정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어머. 어머. 어머! 익스트림 헌터 대표야. 어머, 웬일이야! 오늘 우리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거래?”
1부장은 여직원들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돌아섰다.
선아영이 수행비서를 대동하고 로비에 들어서고 있었다. 패션 리더로서 워낙 이름을 날리고 있는 터라 여직원들은 멀리에서 보고도 선아영을 곧장 알아보았다. 선아영은 흠잡을 곳 없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1부장은 그 모습에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돌아섰다.
여직원들은 아이돌의 갑작스런 출연에 놀란 여고생들처럼 흥분해서 방방거렸다. 수행비서는 환영인파가 선아영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가격을 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 같은 살벌한 인상을 풍겼다.
선아영은 1부장의 곁을 소리없이 지나갔다. 1부장은 익스트림 헌터의 선아영 대표가 지금 여기에 나타났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사장의 비서실장이 내리며 선아영 대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께서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선아영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려다가 비서실장의 귓가에 대고 뭔가를 물었다. 비서실장이 1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선아영도 그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영업1부장이냐고 물은 듯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보면서 1부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패감을 느꼈다. 익스트림 헌터에서 어떤 계약을 어떤 조건으로 제안해올지는 밝혀진 것이 없었지만 바디펌과의 계약만으로 이미 승패는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치안1부장의 부재중에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치안부장이 로비에 들어오는 것을 봤을 때 영업1부장에게는 어떤 전의도 남아있지 않았다.
치안대가 치안대에서 필요한 소모품을 그 회사를 통해 공급받기로 했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미 클랜 A의 활약으로 국가의 위상이 높아졌고 국가 브랜드 가치가 수직 상승하고 있는 마당에, 클랜 A의 지인이 근무하고 있는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를 한 걸 문제삼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몇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회의실 문이 열렸을 때 그 안에서는 밝은 표정을 한 사람들이 나왔다.
유일하게 표정이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영업4부장 정도였다. 그는 아직도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뭔지 제대로 현실감각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기정은 매일 시현을 보러 아예 용하의 집으로 퇴근을 하고 있는 사이였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굴 것도 없었지만 선아영은 신용하에게 관심을 보였다. 언제 한 번 시현이를 보러 가도 되냐는 말에 용하는 아마 괜찮을 거라고 말을 하면서 천기정을 슬쩍 바라보았다. 선아영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초대를 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였지만 천기정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치안부장은 거기가 자기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분위기를 감지고 잽싸게 치안대로 돌아갔고 4부장은 신용하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렇게 회사를 그만둔다는 말인가? 나한테 이렇게 큰 짐을 남겨두고?”
“부장님도, 아니, 팀장님도 힘들면 그만 두세요.”
용하는 그렇게 말하고 환하게 웃었다.
“왜 그만두십니까? 이렇게 큰 계약을 성사시켰는데. 이제는 계약을 유지하면서 나오는 돈만 받아도 꽤 괜찮을 텐데요. 이제 실적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실 일도 없는 거고 다 잘 된 거잖습니까.”
천기정이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앞으로 4부장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세띠 아르마딜로의 등껍질, 던디의 등가죽, 각종 특이한 괴수의 사체 조각들을 한정 수량으로 파는 것을 바디 펌에서 그 회사에 일체 위임해 버렸기 때문에 앞으로 정신없이 바쁠 거라는 게 훤했기 때문이다.
선아영은 선아영대로, 익스트림 헌터에서 만들어서 내놓기만 하면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 공격 증폭률 750퍼센트의 화살을 그 회사를 통해 전량 유통시키기로 했기 때문에 4부장은 그야말로 일복이 터진 셈이었다.
사장은 용하를 바라보았다.
“신대리. 회사에 소중한 인재가 있는 걸 내가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다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알게 돼서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