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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괴수의 차크라
해리와 라미실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분노로 이성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희생 제물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눈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이 해리와 라미실이었다.
A급 헌터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한 일이 뭐가 있냐는 직접적인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상급 헌터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쓸어 가져갔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가에서 A급 헌터들에게 더 많은 돈을 준 것은 괴수를 해치우는 결과를 가져오라는 거였지 그 시늉을 하는 대가로 준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이상 정부로부터 받은 돈을 전부 토해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해리와 라미실의 저택이 공개되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사람들을 구하지도 못하고 돈은 착실히 챙겨서 자기들의 배만 불려왔다는 거였다.
해리와 라미실이 레이드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들은 '위급한 사안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대 왔지만 위급한 사안에 대응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 다음에도 2급 이하의 늪에 대한 공략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졌다.
미운 놈은 뭘 해도 미운 법이어서 만약에 해리와 라미실이 2급 이하의 늪들을 많이 공략했더라면 그것을 가지고 비난을 했을 판이었다. 해리와 라미실은 자기들이 벌어 들였던 돈의 60퍼센트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여론이 잠잠해진 것은 그들을 용서해서가 아니라, 화력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데 해리와 라미실에게는 더 태울 것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서였다.
여론은 방향을 바꿨다. 여론을 주도해서 클랜 A를 떠나게 만들었던 칼럼니스트나 신문 기자들도 분노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애초에 너희들이 같잖은 알파벳 열거에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복수도 있었다. 클랜 A를 쫓아내다시피 했던 언론인들은 본인과 가족들의 신분이 전부 노출되고 사회 생활까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게 되고 보니 클랜 A는 미국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느꼈다. 거기에 야로슬라프로부터 받는 무언의 압박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는 클랜 A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같은 때에는 클랜 A가 가진 힘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한다고 말을 들을 야로슬라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클랜원들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오래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이제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서 치안대와 바디 펌, 익스트림 헌터의 사정도 다시 돌아봐야 했고 무엇보다 임정의 출산이 임박해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했다.
미국에 와달라고 읍소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그러겠다고 말을 한 후에 클랜 A의 클랜원들은 미국과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지 궁리를 시작했다.
“성장하는 1급 괴수 세 개 당 캐츠 아이 스톤 하나씩을 요구하는 건 어떨까요?”
태인이 말했다.
"세 개? 미치지 않고서야 받아들이지 않을걸?"
이익헌은 그렇게 말을 하고도 아주 나쁜 의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캐츠 아이 스톤을 모아야했다. 모든 채널을 총 가동을 해서, 하나라도 더 모아야 했다.
"세 개에 하나씩은 안 줄 것 같고. 어쨌거나 그 갯수를 조율해서 계약을 하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이익헌이 말했다. 서규태도 이익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웬일인지 미국에서는 성장하는 1급 늪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데 늪은 뭘 그리 바쁘게 생겨나고 자라나는 건지 알 수없는 노릇이었다. 미국이 그 제안을 한 번에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지만 어쨌거나 미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캐츠 아이 스톤을 받아내는 것에 중점을 두고 협상을 해 나가기로 결정을 보았다.
클랜 A의 전용기가 도착했을 때 공항은 엄청난 환영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클랜원들 중 누구도 그 환영 인파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를 뚫고 지나갈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진이 다 빠졌고, 쓸데없는 일로 시간과 정신력을 소모하게 하는 미국 정보에 갑자기 화가 나기까지 했다.
이익헌은 그 자리에서 미국의 대통령에게 연락을 취했다.
“교통을 통제하지 못할 것 같으면 우리는 내리지 않고 곧바로 한국으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매번 실망시키기도 어려울 것 같군요. 상대가 뭘 싫어하는지 알면서도 그랬다면 무례한 거고 몰라서 그랬다면……. 말이 심해질 것 같아서 이 이상의 발언은 안 하겠습니다. 5분동안 기다려보죠. 여기에서 통제가 안 되면 늪에 도착할 때까지의 환경도 통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간주하고 떠나겠습니다.”
대통령은 5분으로는 너무 촉박하다면서 15분을 줄 것을 요구했다.
야로슬라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 사람들은 클랜 A를 환영하려고 나와준 사람들인데.”
"야로. 왜? 너는 저런 걸 즐기고 싶어?"
"그런 건 아니지만요.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거냐면 이 말을 우리가 처음 하는 게 아니라서 그러는 거야. 이미 충분하게 얘기를 했었다고. 통제에서 실패한 사람은 자기 권위를 인정해 달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거야. 통제는 클랜 A가 미국에 요구한 몇 가지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고 미국 대통령은 통제에서 실패한 거고."
"좀 사교적으로 굴어도 될 것 같아요."
야로슬라프가 말했다.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까 조금 더 설명을 해 주지. 우리는 일단 저런 인파가 전혀 고맙지 않고 그 다음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해 놓고 협상을 시작하면 우리한테 유리한 결과를 얻어내는 게 훨씬 쉬워져. 그리고 우리한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캐츠 아이 스톤을 모아야 할 이유가 있고 미국 정부는 그걸 가지고 있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몇 개나 더 모았을지도 몰라.”
이익헌이 말했다.
“그것 때문에 이런다는 거죠? 진작 그렇게 말했으면 됐을텐데. 이제 저도 완전히 이해했어요.”
미국 대통령은 곧 문제를 해결했다. 주변 교통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대통령은 클랜 A가 그것을 더 이상 골칫거리로 여기지 않도록 해결을 해 주었다.
라미실의 집에 머물렀을 때와 마찬가지로 블랙 호크 트리플과 초호화 트레일러가 클랜 A에 제공된 것이다.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 늪이 있는 곳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블랙 호크 트리플의 파일럿이 말했고 서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호크 트리플은 그곳에서 발이 묶여 있던 클랜 A를 이동시켜 주었다. 레이드와 무관한 세리모니를 싫어하는 클랜 A는 그제야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 같아 안도했다.
가는 동안 조종석 옆자리에서 서규태는 늪과 괴수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네바다 주로 갈 겁니다. 늪은 네바다 주의 사막 한 가운데에 생겨났습니다. 그걸 드론이 발견해서 우리나라의 헌터 협회에서 거기에 리드를 덮고 계속 관리를 해 왔죠. 사막 한 가운데에 있어서 따로 리드를 덮을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정말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렇죠. 꼭 거기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죠."
"네. 그리고 그 늪이 자라기 시작했고요."
"사막 한 가운데라면 인가는 없겠군요."
"맞습니다."
"레이드를 하기에는 좋은 조건이네요."
"네. 도와주기로 결정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위에 인가가 없다는 것은 헌터들을 크게 안심시켜 주었다. 유일한 문제라고 한다면 늪의 오픈일에 대한 계산 착오 뿐이었을 것이다. 6일의 오차는 확실히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
블랙호크 트리플은 클랜 A의 클랜원들을 사막 한 가운데에 내려놓고 떠났다. 그러나 불편을 느낄 일은 없었다. 거기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초호화 트레일러가 클랜원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했다. 트레일러는 라미실때 사용했던 것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고 사막이 아니라면 세워 놓기도 힘들만큼 큰 규모였다.
강지연은 감응기를 가지고 늪을 먼저 탐사해보고 싶었지만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결국, 몇 분만이라도 쉬다가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지연은 먼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침실로 사라졌다.
남은 사람들은 넓은 거실에 모여 앉아 늪의 공략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먼저 서규태가 괴수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늪의 주인은 대형 코모도였다. 몸통의 길이만한 꼬리가 달려 있었고, 꼬리까지의 총 길이는 30미터를 넘었다. 꼬리를 꼬리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코모도의 꼬리는 몸통의 절반만한 굵기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그 꼬리에 정통으로 맞기라도 한다면 치유능력을 가진 탱커가 같이 있다고 하더라도 살아나기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터였다.
미국 정부로부터 공략을 의뢰받은 이 늪의 주인인 코모도 괴수에게는 사람을 마비시키는, 독성 강한 침이 있었다. 긴 혀는 반경 10미터를 휘두를 수 있을 정도였다. 헌터들이 그 범위내로 다가가기가 힘들었기에 공략에 까다로운 괴수라는 것은 틀림이 없었다.
"이 녀석도 가죽이 질기고 단단해서 원거리에서 공격을 하는 건 잘 안 통한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혀 때문에 근딜이 쉬운 것도 아니고. 다른 어느 때보다 집중을 해야 됩니다."
서규태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나갔다.
"맵은 지연씨가 나오면 그때 도움을 받기로 합시다. 우리끼리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으니까 우선은 쉬도록 하죠. 쉬면서 차크라를 회복하고 무기랑 장비로 마지막으로 점검을 하고요."
그렇게 회의가 끝이 났고 클랜원들은 무기 점검에 들어갔다.
야로슬라프는 호기심이 생겼고, 자기가 먼저 나가서 본다고 큰 일이 생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야로슬라프가 아니었다면 괴수의 발견은 훨씬 더 늦은 시간에야 가능해졌겠지만 그 괴수는 운이 굉장히 나빴다.
늪을 기어 나오다가 야로슬라프에게 발각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 바로 그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야로슬라프는 트레일러 안에 대고 아짐을 부르면서 소리소리를 질렀다.
“아짐. 아짐!!”
야로슬라프는 그렇게 아짐을 외쳐 부르면서 트레일러 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그리고 가장 먼저 갑옷과 무기를 챙기면서 사람들에게 소리를 쳐댔다.
“괴수가 늪 밖으로 나왔어요!”
야로슬라프가 목 놓아 부르던 이익헌은 웬 헛소리를 하는 건가 하면서도 즉각 상황을 파악했다.
“계산이 잘못된 거야. 아니면 라미실이나 해리가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르고. 내 생각에는 그 두 놈들이 그랬을 것 같지만. 그래도 상관은 없잖아?”
모두들 준비를 하고 나가는데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연도 밖으로 나와 있었다. 자기 때문에 그 일이 생긴 것 같아서 지연은 미칠 것 같았다. 감응기로 늪 아래의 상황을 먼저 살폈다면 괴수가 탈출하려는 것을 먼저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괴롭혔다.
다른 헌터들이 모두 준비를 마쳤는데 이익헌이 조금 지체되었다.
“지연씨. 내 팔 좀 잘라줘. 한 번에 해 줘. 시간 없어.”
지연은 이익헌이 탱커용 팔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걱정을 했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이익헌이 탱커용 팔을 준비한다는 것은 헌터들이 부상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