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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29화 (12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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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야로슬라프는 자기가 왜 이런 괴물들 틈에 끼어서 변기 취급이나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들도 웃겼다. 10이니, 9.78이니 하는 얘기를 하다가 200이라는 말을 해 줬으면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 텐데 왜 7만을 말하고 나서 200이라고 말하고 자기들끼리 멋대로 실망하는 건지. 그런데 도대체 차크라 양이 7만이라는 헌터는 뭐란 말인가. 야로슬라프는 자신의 차크라가 다른 사람의 차크라보다 적다는 생각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과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7만이라니.

놀라운 것은 지우의 차크라만이 아니었다. 차크라를 시각화해서 헌터의 차크라와 괴수의 차크라를 구분하고 차크라의 양을 계산해내는 강지연도 놀라웠다. 세멘노프 교수도 차크라 양을 알아내서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헌터들을 모으기는 했지만 그것은 헌터 아카데미의 시스템과 직관에 의존한 방식이었다.

야로슬라프는 클랜 A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간적인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지금 가려는 늪은 5급 늪이야. A등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캐츠 아이 스톤을 가지고 레이드에 성공을 하기만 하면 되는 거고 그 마지막 늪이 몇 급 늪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한 같은 건 없는 것 같거든. 그러니까 성공 확률이 높은 늪을 공략하는 게 확실하지. 긴장할 건 전혀 없어.”

태인이 야로에게 설명해 주었다. 태인은 자기들이 선호하는 대형과 공격방법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 주었고 클랜 A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은 뭐든지 물어보라면서 살갑게 대했다. 야로슬라프가 자신의 캐츠 아이 스톤을 전부 콩알에게 넘기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야로슬라프를 향한 애정이 꾸역 꾸역 솟아났던 것이다.

“저 사람은 뭐라고 불러요?”

야로슬라프는 이익헌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뭐라고 부르는지 눈치로 때려잡았는데 이익헌을 부를 때는 서로들 호칭을 애매하게 넘어가는 것 같았다. 누구는 론 디어라고 불렀고 누구는 부사장이라고 불렀는데 자기는 그를 뭐라고 불러야 될지 알고 싶었다.

지우나 태인은 그냥 형이라고 부르고 지연과 임정은 누나라고 부르고 서규태는 치안부장이라고 부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이익헌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는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글쎄다. 뭐라고 부를래?”

“형은 뭐라고 부르는데요?”

“우리끼리는 론 디어라고 부르고.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론 디어거든.”

“저도 론 디어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음. 뭐. 아짐이라고 부를래?”

“아짐요?”

“응. 잔소리 많은 아줌마 같잖아.”

“아짐요.”

“응. 아짐.”

“좋아요!”

그 후로 야로슬라프는 이익헌을 아짐이라고 불렀고, 이익헌이 저를 끝까지 돌아보지 않으면 이익헌에게 다가가서 이익헌의 어깨와 팔을 잡고 흔들면서까지 그를 불러댔다. 이익헌은 그게 태인의 짓이라는 것을 단번에 깨달았지만 태인은 일부러 시야에 들어가지 않게 도망쳐다녔다.

클랜 A와 야로슬라프는 늪을 향해 달려갔다. 5급 늪이었다. 야로슬라프를 A급으로 올려주기 위해서 반드시 성공을 해야 하는 레이드였다.

늪으로 내려가기 전에 강지연이 야로슬라프를 불렀다. 그는 쭈뼛거리면서 지연에게 다가갔다. 지연은 감응기를 보여주었다. 늪 아래에서 괴수의 차크라가 잡혔다. 그것을 보고 놀라는 야로슬라프에게 지연이 다른 점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여주었다. 모든 게 헌터 차크라였다. 야로슬라프는 자신의 차크라는 왜 잡히지 않는지 물었다.

지연은 하나의 점을 보여주었다. 야로슬라프는 감응기 앞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고 그 점이 자신의 움직임과 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게 난가요? 왜 내 차크라가 이렇게 나오죠?”

“그건 안지우씨의 여분의 갑옷이거든요. 헌터 차크라가 나오도록 특수 소재로 만들었죠.”

“아아…….”

야로슬라프는 갑자기 그 사람들에게 믿음이 생겨났다. 그동안은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서서 앞으로 걸어가도록 강요만 받아온 것 같았는데 어느덧 그 앞에 빠르게 땅이 돋아난 것 같았다. 발을 내디뎌도 천길 낭떠러지로 혼자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들어가죠.”

서규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로슬라프는 지연을 한 번 바라보고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헌터 차크라로 보이는 점 하나가 차크라 점의 무리로 달려 들어가는 모습을 지연은 감응기를 통해서 바라보았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타겟이 된 5급 늪의 주인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살육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익헌은 탱커의 팔을 달고 온 것을 분하게 여겼다. 야로슬라프는 이번에도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이 이익헌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체력 310만 6천의 괴수는 클랜 A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괴수를 두들겨대다가 정보창을 바라봤을 때는 어느새 자릿수가 확 줄어서 홀쭉해져 있었다. 늪의 공략에 걸린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았다.

강지연은 늪으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몇 분만에 다시 나오는 것을 보고 뭔가 잘못된 건 줄 알았다가 강현의 손에 들린 러프 스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5급 늪은 들어가보지 않은지가 한참 되어서 거기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감을 완전히 잃었던 것이다.

그중에 가장 놀란 사람은 잘 걷지도 못하는 야로슬라프였다.

“야로슬라프가 A급 헌터가 되고 나면 대통령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그런데 우리 꼭 대통령을 만나고 와야 돼요? 귀찮은데. 그냥 인증 사진이나 한 장 보내주고 끝내면 안 되나? 그렇게 하죠? 1급 늪을 공략하려면 준비할 게 많다고 하고.”

이익헌이 슬슬 서규태를 선동하자 서규태도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죠. 안 그래도 아까운 시간을 내 주는 건데 얼굴 마담 노릇까지 하지는 못하죠.”

쿨하게 자기들끼리 결정을 내려놓고 서규태는 전화 한 통화로 상황을 종결지었다.

러시아 대통령은 이번에야말로 그들과 정식으로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다시 기회를 놓쳤다. 기자회견장에는 그가 미리 불러 놓은 주요 언론사와 외신 기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지만 그들은 원하는 사진은 하나도 건지지 못한 채 해산을 해야 했다. 그래도 거기에 크게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론이 조금만 클랜 A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기사의 방향을 잡으면 곧바로 사회 전반부에서 질타가 쏟아졌다.

‘클랜 A가 얼마나 예민한데 클랜 A 마음을 상하게 하는 거냐.’

‘그렇게 해서 클랜 A가 러시아에 등을 돌리면 그때는 너희가 괴수들을 잡을 거냐.’

‘클랜 A는 이제 괴수를 늪으로 몰아 넣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늪으로만 몰 수 있겠냐? 클랜 A가 괴수를 너희 집으로 몰아버릴 수도 있으니 조용히 짜져 있어라.’

그런 식의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클랜 A는 어느덧 전 세계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클랜 A는 러시아 대통령과 정부를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그들을 대할 때 거리낌도 없었지만 야로슬라프는 달랐다. 야로슬라프는 그곳에 적(籍)을 두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동안 나름대로 사회에 융화하면서 둥글게 둥글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야로슬라프는 한동안 정부와 언론에 얼굴을 비치면서 각종 행사에 참석을 하며 돌아다녀야 했다. 그것이 클랜 A에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

러시아는 자국에도 A급 헌터가 있다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연일 야로슬라프의 기사가 나왔고 야로슬라프의 행적을 담은 특집 기사와 특집 프로그램으로 미디어가 도배되었다. 온 국가가 축제 분위기였고 그들은 야로슬라프로 인해서 기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야로슬라프만 있으면 이제 모든 근심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굴었다.

늪의 성장과 괴수의 출현은 끝난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현실에 눈을 감으려는 듯이 굴었다. 오랫동안, 너무 오랫동안 희망도 없이 지쳐버려서 그런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잠시 잠이 들어 꿈을 꾸었고 그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야로슬라프는 그렇게 대중의 요구에 맞게 소비되고 있었다. 러시아 정부와 국민들은 야로슬라프가 클랜 A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믿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은근슬쩍, 야로슬라프가 클랜 A의 핵심전력이며 클랜 A에 야로슬라프가 없으면 공략의 성공확률이 떨어진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클랜 A의 눈치를 보는 일은 중단하지 않았고 언제나 클랜 A를 같이 띄워주면서 클랜 A에게 고마움과 애정을 표시했다.

클랜 A는 러시아 정부가 클랜 A만 믿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순간까지도 계획대로 움직였다. 쉴 시간에는 쉬어야 했다. 그것은 단순한 무위가 아니라 차크라를 회복하는 시간이었는데 정치인들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것은 큰 손실이었다.

클랜 A에는 말을 하는데 제동장치라는 것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익헌은 러시아 정부에게 불편한 심경을 가감없이 전했다. 클랜 A는 야로슬라프가 클랜의 전력 보강에 도움을 줄 거라고 기대하고 영입을 추진했지만 야로슬라프는 기대에 미치기는 커녕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지켜보다가 야로슬라프가 클랜 A에 적격이 아니라는 점이 판명되면 러시아 정부에 제의했던 모든 내용을 철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위약금이 얼마가 발생하든 간에 그것을 지불하고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말에 러시아 정부는 클랜 A의 눈치를 살폈다.

야로슬라프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인지도와 호감도를 높여가고 있던 정치 실세들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면서 야로슬라프의 손을 놔 줘야 했고 그렇게 해서 야로슬라프는 겨우 클랜 A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야로슬라프. 할 말도 못 하고 끌려다니면서 네 시간을 낭비하고 다니지 마. 우리가 너를 선택했을 때는 네가 그런 놈이라는 걸 몰랐어. 그래. 그건 우리 실수라고 하자. 그래서 너는 꼭 우리가 실수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겠다는 거야?”

지우가 야로슬라프에게 말했다.

그들이 자신의 이름을 야로 대신 야로슬라프라고 부른다는 것은 자신에게 화가 나 있다는 거라는 것을 깨달은 야로슬라프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은 하고 살라고. 그러지 않으면 너한테뿐만 아니라 팀한테도 피해가 가. 뭐가 중요한지 잊지 말고. 유명인이 되고 싶어? 그러면 유명인이 돼. 우리 눈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우리한테는 진짜 헌터가 필요한 거야. 인기를 얻고 싶어서 안달난 놈이 아니라.”

야로슬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할 말은 하고 사는 야로슬라프가 탄생했다. 그것이 직언 야로 선생의 탄생 배경이었다. 야로슬라프는 이제 뭐든지 말을 했다. 머릿속에만 담아두는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게 도었다.

서규태에게는, 왜 아직도 여자 친구가 없이 혼자서만 지내는지를 물었다. 아짐을 보면 아짐이 여자들을 정리하는 것 같은데 치안부장님을 보면 치안부장님이 여자들한테서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서규태는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없었다. 못 들은 척 하거나 관심없는 척 하면 야로슬라프가 스스로 떨어져나갈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야로슬라프는 꽤나 끈질겼고, 길지 않은 시간동안 자기가 서규태를 보면서 깨달아온 바를 알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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