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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28화 (12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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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실력이 기대되는데? 야로슬라프. 에이. 야로라고 불러도 되지? 야로슬라프라는 이름을 다 부르다가는 할 말도 못하고 괴수 밥이 되겠다. 차크라를 모으는데 얼마나 걸려, 야로?”

태인이 물었다.

“그런 건 물을 필요도 없죠. 야로 형은 지우 형이랑 같은 과잖아요.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는 거의 다 비슷하겠죠. 그러니까 야로 형도 일 초에 두 방씩은 때리겠죠.”

강현의 말에 야로슬라프는 턱이 빠진 듯이 입을 벌리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일 초에 두 방씩을 때린다고? 누가? 나는, 그렇게 못 하는데?”

야로슬라프의 말에 모두들 충격에 가까운 놀라움에 빠졌다. 그들은 결국 충격 한 방씩을 주고 받은 셈이 되었다.

“어이, 야로. 너는 안 그렇다고?”

갑자기 이익헌이 화를 냈다. 당장 야로슬라프를 러시아 정부에 반품이라도 할 기세였다.

"이거. 이거. 우리가 너무 간단하게 일반화를 해 버렸나?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는 다 안지우씨 같을 거라고 쉽게 생각해 버린 건가? 야로를 데려오기 전에 먼저 시험을 해 봐야 되는 건데 그랬던 건가?"

이익헌이 말했다.

"정확히 러시아 정부에 어떤 제의를 한 건데요? 그것 먼저 말해봐요."

태인도 이게 그냥 조용히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듯이 이익헌을 재촉했다.

"아니야. 아니야. 우리가 러시아 정부에 크게 해 줄 건 없어. 러시아에 앞으로 성장하는 1급 늪이 나타날 때 한국 다음으로 러시아에 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것 밖에 없어. 러시아 정부한테서 빌려온 캐츠 아이 스톤을 야로한테 써서 야로를 A급 헌터로 만들어주기로 했고, 우리 클랜 A가 앞으로 야로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야로가 가지고 있던 캐츠 아이 스톤 열 한 개를 야로가 콩알한테 넘기기로 했고. 그러니까 아무리 따져도 잘한 장사지."

이익헌이 재빠르게 브리핑을 하자, 모두들 고개를 이익헌쪽으로 내밀고 있다가 수긍을 했다. 그보다 더 장사를 잘 하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결과였다.

임정이 2급 러프 스톤 50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 놀랐었던가 싶은 생각이 서규태의 머릿속에 들었다.

캐츠 아이 스톤이 열 한 개라니.

개당 가격이 천 조라고 하면, 이건 뭐. 그건 팔 수 있는 게 아니고 괴수 차크라를 가진 사람들이 등급을 올리는데 사용돼야 할 거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단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어휴. 이런 걸 어떻게 집에 가지고 있었어? 집에 강도라도 든다고 생각해봐. 아. 그래서 집을 일부러 그렇게 허름하게 하고 있었던 거야? 안에 별 것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래도 그건 너무 심했다. 방범 시스템을 강화하는 게 더 안전했을 텐데."

서규태는 자기 혼자서 추리를 하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리 써전님의 밑도 끝도 없는 추리가 또 시작됐다."

태인이 말하자 강현과 지우가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야로는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같이 웃지를 못했다.

“그래서. 차크라를 모으는데 몇 초가 걸려요? 1분에 괴수를 몇 번이나 공격할 수 있어요? 완전히 괴수가 무력화됐다는 가정하에 말해 보세요. 괴수가 움직이지 못하고, 형이 차크라를 모으기만 하면 공격을 할 수 있는 거라는 가정하에. 몇 방이예요?”

야로는 그 생각을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강현이 다시 물었다.

“우리 지우 형은 1초에 두 방 정도 날리는데 그 시간이 점점 더 줄고 있거든요. 이제는 2초에 다섯 방 정도까지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야로 형은요? 1초에 한 방? 그것도 대단한 거긴 해요. 같은 괴수 차크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괴수가 차크라를 줬는지에 따라서 급이 다르기는 하겠죠? 내 생각에 지우 형은 세계 최고거든요. 지우 형한테 차크라를 준 괴수는 1급 괴수였을 거예요, 보나마나. 아니. 1급 괴수보다 더 센 놈이었을 것 같아요. 차크라가 진짜 어마어마하죠. 아. 저는 이제 5초대에 진입했어요.”

강현은 나름대로 야로슬라프의 사정을 생각해준답시고 자신을 예로 들어 말해주었다. 너무 지우 얘기만 하다보니까 괜히 비교가 되고 위축이 돼서 말을 하기가 힘든 모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차크라를 모으는데 5초나 걸리는 나라는 인간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편하게 말을 하면 된다는 그런 의미였다.

“5…초?”

야로슬라프는 제 얼굴을 만져보았다. 감각이 느껴졌다. 그래봐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후 세계에서도 감각이 느껴지는 건지 어쩐 건지 죽어본 적이 없었는데 뭘 알겠는가.

“야로 형!”

강현이 대답 좀 해 보라고 야로슬라프를 재촉했다.

야로슬라프도 말을 하고 싶기는 했다. 그런데 차마 말은 나오지 않아서 야로슬라프는 손가락 일곱 개를 폈다.

모두가 일시에 얼어붙은 듯했다.

7초는, 일반적으로 헌터들이 괴수에게 공격을 가할 때 차크라를 모으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최상위 0점 몇 퍼센트의 헌터를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그 시간이 걸렸다. 원거리 딜러에게는 15초가 걸린다. 지금은 그걸 논하자는 게 아니니 근거리 딜러의 리로딩 시간만 말을 하겠지만 그거야말로 일반적인 얘기였는데 클랜 A의 클랜원들은 갑자기 7이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가 하고 한참을 어리둥절해 했다.

남들한테는 일반적인 이야기가 이제 그들에게는 일반적이지 않은 게 되었던 것이다. 클랜 A에서는 차크라를 모으는데 5초가 걸리는 사람이 쩌리 취급을 받고 있었는데 괴수 차크라를 가졌다는 사람이 손가락 일곱 개를 펴는 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했다.

“아……. 그건 지우만의 얘기인 건가보다…….”

태인이 강현에게 말했다. 귓속말이면 귓속말답게 손으로 가리고 말을 하던지 할 것이지 그런 것도 없이 모두에게 들릴만한 소리로 우렁차게 말을 했다.

“그래도……. 차크라는 안 떨어지는 거죠? 도중에 지친다거나 하는 건 아니죠?”

강현이 묻자 야로슬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만큼은 확실하다는 태도였다. 멋대로 오해를 한 쪽은 자기들이면서 왜 야로슬라프가 사과를 해야 하는 분위기 같은 게 만들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건가 봐. 야로한테 차크라를 싼 놈은 그냥 쩌리였던 거지. 쩌리 주제에 특이한 늪의 주인이었고, 그 놈이 야로한테 가서 차크라를 싼 거야. 야로는 그런 차크라를 받은 거고."

이익헌이 나름대로 자기가 생각한 것을 정리해주었다. 모두가 갑자기 야로슬라프를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쌌다'라는 이익헌의 표현을 문제삼는 사람도 없었다. 그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어느새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현의 머릿속에서, 지우와 야로슬라프에게 일어난 일이 각각 다르게 상상되었다.

지우에게 일어난 일은, 말하자면 지우가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에 거대한 괴수가-아니, 분명히 그렇게까지 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침실 문으로 통과해 들어갈 정도였으면. 이동한 것은 괴수가 아니라 차크라뿐일지도 모르는 거고- 어쨌거나 찬란한 빛으로 똘똘 뭉친 엄청난 차크라가 지우에게 다가가서 지우의 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상상되었는데 야로슬라프를 보면 그에게는 일이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 것 같았다.

맹하게 생긴 급 낮은 괴수 하나가 멍때리면서 지나가다가 야로슬라프를 발견하고 야로슬라프에게 똥을 누듯이 차크라를 찍 싸고 가는 장면이 상상된 것이다.

이제 슬슬 나갈 채비가 끝나가고 있었는데 임정이 조금 더뎠다.

"조금만 기다려줘. 거의 다 돼 가."

임정에게 갑옷을 입혀주면서 지우가 말했다. 임정은 이제 산처럼 불러온 배 때문에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했다.

"천천히 해요. 천천히. 탱커님은 우리한테 여분의 목숨을 공급해주는 분이나 마찬가진데."

서규태가 말했다. 그렇게 모두 멈춘 채로 임정을 기다려주다가 갑자기 강현이 질문을 생각해냈다.

"차크라 양을 계산하지는 못해요, 그 감응기? 우리도 그 감응기를 쓴지가 꽤 됐잖아요. 그럼 다음 버전도 나오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예요?"

강현이 지연에게 물었다. 지연은 갑자기 왜 화살이 자기한테 날아온 건가 하면서도 절대로 기죽은 표정이 아니었다.

"알고 싶었어? 김강현이 알고 싶어할 줄은 몰랐다. 멘탈이 꽤 센가본데?"

강지연은 즉각 그렇게 대답을 해 주었다.

"네? 그럼 누나는 아는 거예요? 우리 차크라 양을요?"

강현이 놀라면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즉각 관심을 보였다.

"차크라 양을 안다고?"

이익헌과 서규태조차도 강지연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정확한 수치를 아는 건 아니지만 비교 상대가 있으면 비율로 계산해 낼 수는 있어요."

"언제부터?"

이익헌이 물었다.

"나도 놀고만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 거 저런 거 계속해서 업데이트시키고 있거든요? 흥!"

헌터들의 목구멍으로 침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괜히 촐랑거리다가 난데없이 성적표를 받게 된 꼴이라서 이제는 그것을 사양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남자들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지우씨야 당연히 논외로 해야 되는 거고."

지연이 말하자 당연한 얘기라는 듯이 모두가 아주 목이 끊어질 정도로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 다음으로 차크라가 가장 높은 분은 서규태 치안부장님이고요."

이익헌의 눈썹이 올라갔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수긍할만한 결과였다.

"그 다음이 임정 치안부장님이고요."

이익헌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비쳤고 지우는 임정을 보면서 예쓰! 라고 속삭였다.

"그 다음이 이익헌 부사장님."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아니지?"

이익헌이 굳이 그걸 따져묻는 바람에 이익헌은 그냥 넘길 수도 있던 비밀의 방을 열게 되었다.

"'많이'라는 말이 상대적이긴 한데. 서규태 치안부장님을 10이라고 하면 임정 치안부장님은 9.8, 부사장님은 9.78정도예요. 왜요? 부사장님껀 소수점 셋째자리까지 말씀드려요? 그러나마나 3인데."

"그걸 말 하라고 한 적은 없잖아. 차이가 많이 나는 건 아니지라고 물은 것 뿐이야. 그렇다, 아니다, 그렇게만 대답을 하면 되지. 사람이 왜 그래, 사람이?"

이익헌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궁금해하시는 표정이었거든요."

지연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안 궁금하니까 내껀 말하지 마요."

태인이 잽싸게 말하자 지연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 형은요?"

강현이 물었다.

"7만이 넘죠."

침묵이 감돌았다.

"나머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럼 야로는?"

이익헌이 급하게 물었다.

"200요."

"무슨 단위 차이가!"

야로슬라프도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지우의 차크라에 대해서 듣고 현실감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제 양을 들은 것이다. 10보다 높은 거면 몇 백이거나 몇 천일 줄 알았는데 7만이라는 말을 듣고는 생각 자체를 멈추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분명히 자신의 차크라가 200이라는데, 그건 다른 클랜원들 중에 가장 높다는 서규태보다 스무 배가 많은 건데, 이 사람들이 안지우를 기준으로 삼고 자기를 깔보듯이 하는 걸 보자 본격적으로 화가 나려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거네. 야로한테 차크라를 싸고 간 괴수는 5급 괴수쯤 되는 놈이었나보다."

이익헌이 결론을 내렸다.

"의왼데요? 클랜 내에서 차크라 서열이 그렇게 낮을 줄은 몰랐어요. 우리 빼고는 꼴찌라는 거잖아요. 우리는 얼마전까지 F등급이었는데 F등급들 이겼다고 좋아하실만큼 염치없는 분은 아니시고. 꼴찌라니. 우와아아아."

태인이 이익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하자 이익헌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자기가 지금 야로슬라프를 놀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 깨달아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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