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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23화 (12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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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거의 비슷했어요. 그렇죠?”

지연이 태인에게 묻자 태인은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이 비슷했어. 그런데 뭐랄까. 내가 느끼기에. 그게 좀 이상한 건데. 내 주관적인 생각이니까 그냥 들어. 지우씨 안에 있는 차크라는 거대하고 충만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통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그런데 그 차크라는 뭔가. 뭐라고 해야 하지?”

“폭주요.”

지연이 말을 도와주었다.

“그래. 그거예요. 지연씨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네. 굉장히 불안정해 보였어요.”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걸까요? 나도 그렇게 될까요?”

지우가 물었다.

“그건 몰라요. 그냥 그건 우리가 그렇게 생각한 것 뿐이고. 괜히 말했나보다. 내일 레이드도 해야 되는데.”

태인이 후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연도 입을 꽉 다물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그 사람. 나이가 어느 정도 돼 보였어요? 아이가 있으려나요?”

임정이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지연과 태인은 이 두 사람이 그 문제를 엄청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연은 그것까지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 사람이 지우의 차크라에 대한 의문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 하면서 지연은 태인을 바라보았다.

***

러시아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1급 괴수에 대한 레이드가 한창 진행될 때였다.

“지우씨. 안 될 것 같으면 다음으로 미룹시다.”

서규태가 지우에게 다가와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지우가 레이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챘다.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지우는 자꾸 다른 생각을 했고, 그러다보니 다른 헌터들과 동선이 겹쳐졌다.

다른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회를 만들어주고 빠지면서 자신의 기회를 새로 만들어가던 지우가, 그 날은 다른 사람이 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자기가 먼저 가서 공격을 가하곤 했다. 지우가 정신만 제대로 차릴 수 있다면 그냥 차라리 혼자 하라고 자리를 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지우가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린 틈에 지우를 공격해 오는 괴수를 서규태와 이익헌이 막아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서규태의 말에 지우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우는 습관적으로 임정을 바라보았다.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정도 그를 걱정하고 있었다.

“죄송해요.”

지우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행히 괴수도 많이 지쳐 있어서 헌터들의 회의를 기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괴수는 헌터들이 충분히 시간을 갖도록, 제자리로 물러나서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괴수에게도 꿀같은 휴식이었다.

“죄송해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이네요.”

“형.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저 정도면 우리끼리 세 시간동안 하면 충분해요. 머리가 식을 때까지 누나 옆에서 쉬어도 돼요.”

강현이 의젓하게 말했다. 어린 강현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서규태가 지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강현씨 말이 맞습니다. 이럴 때 한 번쯤은 우리가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좋은 거죠. 그동안은 우리가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 맞아. 오늘 같은 날이나 실력 발휘를 하게 해 줘.”

태인까지 그렇게 말하자 지우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거. 별 것 아닐 겁니다. 건강검진 결과 나올 때처럼 괜히 긴장되기만 하는 거고 결국 결과를 받아보면 전부 양호하다고 나와 있을 거라고요.”

이익헌이 말했다.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요. 빨리 머리 식히고 합류할게요.”

지우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괴수 역시, 자기도 다시 링 위에 올라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천천히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지연은 헌터들이 나오자마자 그들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였어요? 누가 다쳤어요? 갑자기 차크라들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멈춰버리는 바람에 나는 감응기가 고장난 줄 알았어요. 다행히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있던 거였어요?”

지연이 물었다.

“무슨 일은요. 아무 일도 없었죠. 그냥 평상시처럼, 멋진 헌터들이 멋지게 활약을 했고 클랜 A의 보물 창고에 던져 넣을 러프 스톤을 하나 더 얻어온 것 뿐이예요.”

강현이 에메랄드처럼 영롱한 녹색 빛으로 빛나는 러프 스톤을 보이며 말했다. 그러나 지연은 레이드가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했다. 더 믿기 어려웠던 것은, 그렇게 안 풀린 레이드였는데도 1급 괴수를 공략하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지우는 저로 인해 생겨난 문제에 대해서 다시 사과를 하고 싶어했지만 태인이 먼저 지우의 어깨를 두 팔로 확 감싸고, 지우가 멍 때린 덕분에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을 해 버렸다.

“그리고 안지우. 괜히 걱정하지 마. 거기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고 어떤 말을 듣게 되더라도 네가 안지우인 건 변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갑자기 너를 떠날 일도 없을 거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안지우랑 콩알은 우리가 지키자고 우리끼리는 모두 뜻을 모았어.”

태인이 말했다. 임정이 지우의 곁으로 다가와서 지우의 팔을 쓰다듬었다.

“무슨 말을 듣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거예요. 그게 지우씨 운명이라면요. 그게 지우씨 운명이라면 그건 내 운명이기도 해요. 나는 그게 어떤 거든 받아들일 거예요.”

임정의 말에 지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 정부에서는 성공적인 레이드를 마치고 돌아온 클랜 A를 위해 크게 축하연이라도 베풀어주고 싶어 했지만 클랜원들이 모두 전심으로 사양했다. 몇 번 더 권했다가는 화를 낼 것 같아서 러시아 정부에서도 곧 뜻을 접었다. 클랜 A의 컨디션이 괜찮다면 수일 내로 다른 1급 늪을 공략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이 전해졌다.

서규태는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될 거라고 말을 하고, 차크라 회복을 위해서 쉬는 동안 러시아의 치안대를 방문해 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러시아 정부와 치안대는 흔쾌히 허락하면서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클랜원들은 치안대에 모두 따라나섰다. 그것은 일종의 연막 작전이었다. 일단 치안대에 가기만 하면 괴수 차크라를 가진 사람이 누군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감응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괴수 차크라를 가진 사람하고만 면담을 한다면 그 사람에게 괜히 치안대의 관심이 집중되고 그 사람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클랜 A의 클랜원 모두가 치안대에 견학을 가는 형식을 취하기로 한 것이다.

임정은 자기가 지우와 팀을 이루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지우가 원하지 않았다. 지우는 임정이 정제되지 않은 소식을 곧바로 듣기를 원하지 않았다. 임정도 결국에는 그 뜻을 받아들였다.

통역을 따로 두지는 않고 통역기를 사용하기로 결정을 보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람이 끼지 않은 통역기가 개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치안대로 향했다. 러시아의 치안대는 한국의 치안대와 달랐고 커다란 캠퍼스를 연상시켰다. 자유롭게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각자의 스케쥴에 맞춰서 움직였다.

지연의 감응기는 계속해서 헌터 차크라만을 잡아냈다. 야로슬라프를 만나게 될 때까지 그들은 거의 한 시간 이상을 그 안에서 방황했다.

그들이 클랜 A의 클랜원들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클랜원들은 곧 열성적인 치안대원들에게 포위되다시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치안부장의 통제로 다시 수색에 나설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야로슬라프를 발견했다.

지연의 걸음이 우뚝 멈췄을 때 클랜원들은 무슨 일이 생긴 건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챘고 곧장 주위를 둘러 보았다. 지연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그곳에서 빠르게 한 남자가 다른 건물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저 사람이예요?”

지우가 물었다. 그러면서 지연이 들고 있는 감응기를 바라보았다.

확실했다.

서규태는 동행하고 있던 치안부장을 불렀다. 그리고 클랜원들이 치안대원들과 개인적인 면담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치안부장은 전혀 거리낌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었다.

서규태는 야로슬라프를 지목했고 치안부장은 곧바로 그를 불러 주었다. 야로슬라프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야로슬라프가 다가오는 동안 감응기에서는 하나의 괴수 차크라가 지우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로써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서규태는 다른 치안대원들도 지목했고 클랜원들이 의미도 없는 면담을 하러 각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지우는 지연과 함께 야로슬라프를 향해 다가갔다. 야로슬라프는 지우와 지연이 자기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치안부장으로부터 전해들었다.

심드렁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그는 지우에게, 알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고 말했다.

지우는 일반적으로 헌터들이 만났을 때 서로 물을만한 것들을 물었다. 그가 몇 급 헌터인지, 딜러인지 탱커인지,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지 그런 것들이었다.

야로슬라프는 B급 딜러였고 경험치가 매우 높았다. 야로슬라프 정도의 B급 딜러가 있는데 왜 러시아가 캐츠 아이 스톤을 야로슬라프에게 사용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지우는 그의 차크라 등급에 대해서도 물었다. 야로슬라프는 1등급이라고 대답했다.

“잠깐 겨루기를 해 보는 것도 가능한가요?”

지우가 묻자 야로슬라프는 안 될 것도 없다고 말했다. 서로의 차크라를 느끼기에 대련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지우는 야로슬라프가 서서히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도록 그를 공격했다. 정중해보이는 동작으로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공격이었다.

야로슬라프도 곧 지우의 의도를 눈치챈 듯했다. 그렇다고 긴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우가 왜 자신의 급소를 노리고 공격을 해 오는 건지 알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그는 차크라 사용에 능숙했다. 두꺼운 가운으로 제 몸을 가리는 것처럼 순식간에 차크라를 실었다. 온몸에 빈틈없이 보호막이 둘러졌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지우는 야로슬라프가 자기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야로슬라프는 처음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그 역시 지우의 몸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류라는 인식이 그의 머릿속에 들었다.

야로슬라프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보면서 지우도 그가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공격을 멈추고 차크라를 거두면서 지우가 말했다.

야로슬라프는 질문이 뭔지를 묻지도 않았다. 그러더니 그대로 자리를 떠나버렸다.

“저기요!”

지연이 달려갔지만 야로슬라프는 걸음을 빨리 해서 사라져버렸다. 다른 곳에 있던 클랜원들이 모두 그들을 바라보았다. 입을 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의 입을 강제로 열 방법은 없었다. 적어도 지우가 원하는 방식으로는.

그래도 야로슬라프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큰 성과라고 자위하며 그들은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조용하고 엄숙하기까지한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 한 명의 방문객이 그곳을 찾아왔다.

야로슬라프였다.

***

야로슬라프는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알고 싶어했다. 지연은 지우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지우는 말을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표시를 했다.

지연은 감응기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야로슬라프는 감응기에 관심을 보였고 지연은 자기가 만든 감응기를 보여주었다. 야로슬라프는 지연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놀라워했다.

그 감응기에서 지우는 헌터 차크라를 띠고 있었다. 야로슬라프만이 홀로 괴수 차크라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로슬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내 차크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겁니까?”

그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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