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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20화 (1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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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그래서 같이 있다가 헤어지면 그렇게 진이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희한한 것은 다시 같이 있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는 점이었다.

지연은 언제부턴가, 뭔가를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면 태인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었다. 태인도 마찬가지로, 지연이 자기를 바라보다가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몇 번 목격했다.

지연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구를 계속 해야했기 때문에 혼자만 일정과 동선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때부턴가는 태인이 지연의 경호를 자처하고 나서서 이제는 지연이 가는 곳에는 의례 태인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지연의 연구는 간단했다. 지연은 감응기에 나타나는 괴수의 차크라를 면밀히 관찰하고 데이터를 자신의 방식으로 분류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괴수의 차크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게 되고, 그러면 지우의 차크라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개체가 크다고 해서 차크라의 양이 더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5급 괴수보다는 1급 괴수의 차크라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괴수의 체력이 높고 공략이 어렵고 강할수록 차크라의 양이 많은 것은 거의 정설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지연이 장비와 함께 철수하려고 했을 때 감응기에 한 무리의 차크라가 나타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러시아의 치안대원들이 탄 차량이 지나가고 있었다.

"허!"

지연이 갑자기 이상한 숨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 태인이 다가갔다. 그도 지연이 바라보는 감응기의 화면을 보고 있었다. 지연은 말도 하지 못하고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면서 태인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군용 카고 트럭을 향해서 달렸다.

화면을 본 태인도 곧바로 지연의 뒤를 따랐다. 화면에는 한 무리의 헌터 차크라가 여러 개의 점으로 나타났고 그 사이에 이질적인 하나의 차크라가 있었다. 분명히 괴수의 차크라였다. 그 차크라 무리를 태운 카고 트럭이 이동함에 따라서 차크라의 점들은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잠깐만요!”

지연이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갔지만 카고 트럭에 탄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태인이 차크라를 실어 달렸지만, 트럭을 잡겠다고 자리를 비웠다가 그 사이에 지연에게 다른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멈추었다. 태인이 지연에게 다가갔을 때 지연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태인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달았다.

“괴수의 차크라였어요.”

지연이 말하자 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생각을 정리해서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괴수의 차크라를 가진 헌터가 지우뿐만이 아닐 거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알기로,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기로 지우는 유일한 존재였다.

헌터 테스트에서 헌터 타투가 생기지 않았다가 한참 후에 헌터 타투가 생긴 유일한 헌터였고 기본 공격력과 방어력이 10밖에 되지 않는 유일한 헌터였다. 그래서 괴수 차크라가 나타난 사람도 지우가 유일할 거라고 생각했었던 건가.

태인은 제 생각을 짚어 보려고 했다.

“방금 지나간 사람들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지연이 물었다. 그러자 태인이 서규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써전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태인은 방금 자기들이 목격한 일을 알려주었다.

“이 시간에 이 지역을 지나간, 군용 카고 트럭을 타고 있었거든요. 그걸 타고간 치안대원들에 대해서 알아봐 주세요. 그 사람들 중에 있어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감응기로 그 사람을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요.”

태인의 말을 듣고 서규태는 알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서규태도 꽤나 놀란 듯한 반응이었다.

러시아를 돕기 위해 특별히 와 준 클랜 A인데다 한국의 치안 1부장이 직접 하는 부탁이니 러시아의 치안대에서도 협조적으로 굴 거라고, 지연과 태인은 쉽게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서규태의 연락을 기다리던 지연과 태인에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클랜 A가 한국을 떠나올 때 한국의 고궁에서 벌어졌던 일이 러시아에서도 벌어졌던 것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리드를 제거했고, 관리되지 않은 늪에서 괴수가 튀어나왔다. 카고 트럭을 타고 이동하던 치안대원들은 바로 그 현장으로 출동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치안대는 서규태의 연락을 받고도 곧바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

괴수가 나타났다는 현장에 러시아의 치안대가 출동했지만 괴수가 인가로 숨어들어가자 치안대는 거기에 효과적으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괴수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달아난 후에야 치안대는 피해 현장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는 영영 괴수를 잡지 못하고 피해는 급속하게 늘어날 판이었다.

그러나 지연과 태인은 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괴수가 출몰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군용 트럭에 타고 있던 치안대원들의 모습이 선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괴수 차크라를 가졌다는 의미였다.

“누구였는지 기억이 나요?”

지연이 물었지만 태인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어서 괴수의 차크라가 헌터 차크라 사이 어디 쯤에 섞여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일반 치안대원 같았는데. 높은 계급이 아닌 것 같았고요. 그렇죠?”

지연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고 있었고 태인도 지연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주면서 갑자기 나타난 정체 불명의 남자를 찾을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느라고 두 사람은 감응기의 화면에 나타난 커다란 괴수의 차크라를 보지 못했다.

치안대를 따돌리고 도망치던 괴수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바위가 공중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천천히 기어올 때는 송곳처럼 아무렇게나 돋아난 가시 때문에 그 모습이 제대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허리를 펴고 두 개의 뒷발에 의지해서 몸을 세웠을 때는 한숨이 저절로 토해져 나왔다.

태인은 그것을 보고 악어 거북을 떠올렸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지독한 턱을 보았을 때 떠오른 생각이었다.

지연은 태인이 제 손을 붙잡았을 때에야 사태를 파악했다. 태인은 지연을 안아 든 채 차크라를 다리에 두르고 전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둔하게 생긴 괴수의 속도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지연과 함께 도망치는 게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태인은 지연을 내려놓았다.

“차가 있는데까지 가요. 그리고 도망쳐요!”

말을 하면서도 태인은 지연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연을 설득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늪에서 뛰쳐나온 놈이 몇 급 괴수인지 그는 알지 못했다. 태인은 자기가 그 놈을 혼자서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시간을 끄는 동안 치안대가 와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태인은 괴수를 도발하고 유인했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벅찼다. 혼자서 싸워본 적이 거의 없었고, 맵이 아닌 자연 상태에서 싸워본 적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뭔가 생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머리가 그대로 딱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태인은 허리춤에서 손도끼를 빼들었다. 괴수의 입에 몸이 들어가면 그 순간에 바로 바삭바삭한 과자가 부서지듯이 잘게 부서져나갈 거라는 것을 태인은 직감할 수가 있었다. 태인이 손도끼로 괴수를 유인하려고 했지만 괴수는 태인을 기피했다. 그리고 지연을 향해서 방향을 틀었다.

지연은 태인이 시킨대로 차를 향해 전력으로 달리는 중이었다. 지연은 자기가 차로 태인을 구출해서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차에 닿기도 전에 괴수가 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뛰는 폼은 생긴 것과 전혀 달랐다. 그렇게 뭉뚝한 다리를 해 가지고 표범처럼 도약을 해 오는데 지연은 피할 방향도 찾지 못한 채 이를 악물고 뛰기만 했다.

태인이 무서운 속도로 저를 향해 달려왔을 때 지연은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 내던져졌다. 지연의 몸은 바닥에서 몇 바퀴나 뒹굴었고, 괴수의 진행 방향에 태인이 엎드려 있었다.

지연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태인도 마찬가지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느라고 가슴과 어깨가 크게 들썩여졌다. 태인은 혼이 빠질 정도로 놀랐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괴수가 어디에 있는지 보고 지연을 데리고 도망치는 것밖에는 달리 생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괴수가 없었다.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고 있는 그 곳에는 멀뚱하게 서 있는 강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른 채로 강현을 바라보는 태인을, 강현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강현은 거기로 차를 몰았을 뿐이었다. 지금 한쪽 차 문이 떨어져서 덜렁거리고 있는, 바로 그 차였다. 그곳에 괴수가 나타났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거기에 괴수 차크라를 가진 헌터가 지나갔다는 말을 서규태에게서 듣고 지우와 함께 와 본 것 뿐이었다.

차 문이 떨어져나간 그 자리에는 지우가 타고 있었지만 지금은 없었다. 두 사람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태인이 괴수를 도발하려고 했지만 괴수가 방향을 틀어서 지연을 쫓아간 것과, 태인이 몸을 날려 지연을 밀어내고 자기가 괴수의 앞에서 나뒹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강현은 뭘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 못했다.

자기들이 너무 늦게 도착했고, 전부 끝나 버렸다고 생각했다. 괴수의 무시무시한 턱에는 이미 힘이 들어가고 있었고 그 머리가 태인의 몸에 닿기까지 0.5초의 시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지우가 차에서 튕겨나갔고 눈을 깜짝하기도 전에 괴수와 지우가 함께 사라져버렸다. 발이 땅에 닿을 틈도 없이 날아갔고, 그 속력으로 괴수를 낚아채서 몇 십 미터나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강현은 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태인은 강현이 침을 넘기는 것을 보았다. 쓰러지지 않고 그 자리에 여전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격려를 해 줘야 할 지경이었다.

지연이 태인을 향해 달려갔다.

“괜찮아요? 다치지 않았어요?”

지연이 묻자 태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괴수가 어디로 사라진 건지, 그보다 지우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기 위해 먼지가 일고 있는 방향을 따라서 달려갔다.

“도와주세요. 엄청나게 몸부림을 치네요.”

지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우는 갑옷도 입고 있지 않았고 괴수 차크라를 감춰주는 얇은 소재의 셔츠 하나만 옷 위에 더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괴수는 인가쪽으로 도망치려고 틈을 노렸다. 지우에게 몇 대를 얻어맞기는 한 모양이었지만 빠른 회복력을 보이고 있었다. 괴수가 마을을 향해 도망치려고 해서 지우에게는 그것이 신경 쓰였다. 괴수의 진행 방향을 막으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면서 싸우려니 영 각도와 방향이 편하게 나오질 않았다.

“옆에 늪이 있어.”

태인이 소리쳤다.

“네?”

그게 무슨 말인가 해서 지우가 되물었다.

“거기로 데리고 가자.”

태인은 말을 하면서 지연을 바라보았다.

“클랜원들에게 모두 여기로 오라고 말해줘요. 강현아. 갑옷 입어.”

“형!”

강현은 소리를 질렀지만 태인이 그런 식으로 말할 때 어떤 의지인지 그 의지의 강도까지 파악하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에 우는 소리를 내면서도 제 갑옷을 챙기러 갔다.

지연은 곧바로 클랜원들을 소집했고 지우는 태인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괴수를 몰았다. 괴수는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지우의 괴력을 당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우는 괴수를 늪에 던져버리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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