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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17화 (11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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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클랜 A와 친목을 다지고 싶어했고 클랜 A와 함께 할 자리를 마련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이 보였다. 그러나 클랜 A의 대변인을 자처한 이익헌은 그런 류의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축하할 일이 생겼고 그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파티를 열어야 한다고 강지연이 주장을 하고 나섰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미국에 있는 동안 서규태의 생일이 돌아온 것이다. 때는 이때다 하고 여기저기에서 화환과 선물이 들이닥쳤다.

라미실과 해리, 거기에 브뤼까지 가세를 해서 서규태의 생일 파티를 열 계획을 세웠다. 이익헌까지 허락한 일이라서 그들은 잔뜩 들뜬 분위기로 파티를 준비했다.

세 사람의 A급 헌터들은 돈지랄이란 이렇게 하는 거다 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 봐야 파티에 들어간 돈은 그들이 한 달 동안 이자 수입으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전부 다 충당이 되고도 남았다.

대형 무대가 마련되고 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는 가수와 밴드들이 초대되었다. 웬만해서는 행사 무대에 서지 않는 아티스트들도 클랜 A의 클랜원을 위한 파티라는 말을 듣고는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OK를 했다.

서규태는 자기가 좋아했던 가수들이 무대에서 직접 자기를 바라보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에 황홀해했다. 나중에는 다리를 흔들면서 앙증맞은 춤을 추기도 했다. 생일을 맞은 당사자가 분위기에 흠뻑 취해서 즐기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내 생일도 여기에서 맞을 수 있으면 나는 핑크를 불러야지. 핑크 알아? 핑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거든. 애기라서 모르나? 형이 나중에 그 노래 한 번 불러줄게. 기대해.”

태인이 푸드 테이블에 기대서 음식을 축내면서 말했다. 옆에서 당연히 강현이 듣고 있는 줄 알고 한 말이었지만 강현은 파티에 초대된 모델을 보고 현혹돼서 그 모델을 따라가 버린 후였다. 그 자리는, 역시나 음식 냄새를 맡고 다가온 강지연이 대신 채우고 있었다.

“핑크 좋아해요?”

강현의 목소리 대신 강지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태인은 깜짝 놀라면서 자세를 바로 했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어요?”

“방금요. 흠. 맛있네. 요새 먹은 것 중에는 제일 입에 맞는 것 같네요. 치안부장님한테도 몇 개 갖다드려봐야겠다. 입덧할 때가 지났는데도 입덧을 하는 것 같던데.”

“탱커님이요?”

“그런 경우도 있다고는 하니까 걱정할 건 아니고요. 그리고 재생 능력이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스스로 고칠 수 있을 거예요. 아. 아기 초음파 사진 못 봤죠?”

지연이 태인에게 사진을 꺼내보여주었다.

“콩알 사진이예요?”

“네. 꽤 많이 컸죠?”

“남의 아기 사진을 왜 가지고 다녀요?”

“클랜 A의 마지막 클랜원이 될 수도 있는 녀석이잖아요. 미리부터 친해지려고요.”

지연은 임정과 지우가 행복한 표정으로 태아를 보던 때를 떠올렸다. 이제는 아기의 손가락, 발가락과 머리 모양도 제대로 보였다. 아기 손가락이 개구리 발가락 같이 생겼다고 했다가 지우는 두고두고 임정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왜 저렇게 힘들게 하고 있을까? 허리 좀 펴고 있으면 좋을 텐데.”

지우는 아기의 자세가 불편해 보여서 안타까워했고, 하루 종일이라도 아기의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귀엽지? 내가 괴수가 아니라고 했지?”

지우는 자랑스럽게 임정에게 말했고 임정도 실로 오랜만에 모든 불안을 털고 활짝 웃었었다.

태인은 지연이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이 사진을 보면 웃게 된다니까요? 뭘 하고 있던지 상관 없이요. 가져요. 힘들어지면 보고요.”

“왜 남의 태아 사진으로 선심을 씁니까?”

“이럴 때는 그냥 고맙다고 말하면 되는 거예요.”

지연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그 모습을 멀리에서 보고 있던 지우가 임정의 귓가에 소곤거렸다.

“나는 강지연씨가 강현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어머. 그랬어요? 지우씨도 눈치 꽝이다.”

“어, 왜? 강현이랑 친하게 지냈잖아요. 강지연씨가.”

“여자들은 정작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잘 들이밀지를 못해요. 강현씨처럼 사사로운 감정이 생기지 않는 사람한테 더 편하게 다가가고 아무 얘기나 하고 그러는 거죠. 나도 자기한테 말하는 것보다 강현씨한테 말하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는데?”

“아. 그런 거야? 강현이는 그럼 뭐야?”

“강현씨도 우리가 자기를 이성으로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건 알 걸요?”

“그래? 나만 몰랐나?”

“클랜 A에서 홀아비 냄새만 퐁퐁 풍겨서 슬슬 그 문제도 생각을 해 보긴 해야 할 텐데. 우리만 행복한 것 같아서 가끔은 너무 미안하거든요. 그런데 레이드가 끝이 보이질 않네요.”

“그래서 자기는. 강지연씨가 태인이 형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

“물어보면 알죠. 태인씨는 어떤데요?”

“물어봐도 대답 안 해 줄 것 같은데.”

강현은 어느새,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발랄한 여가수로 타겟을 바꿔서 열심히 집적대고 있었다.

“기회가 좋은 날인데. 당신도 말 걸어보고 싶으면 걸어봐도 돼요. 유명한 사람들이 잔뜩 와 있잖아요. 해리랑 라미실이 센스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싫어할만한 사람들은 한 사람도 안 부르고 써전님 취향의 아티스트 중심으로만 불렀잖아요.”

“여기에서 말 걸어보고 싶은 사람은 당신밖에 안 보이는데?”

“아. 귀찮아라.”

무알콜 음료만 잔뜩 마셔대면서도 임정은 기분좋은 표정을 지었다. 서규태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한국에서 선아영과 천기정도 특별히 날아와 주었다.

이익헌은 선아영을 파티장에서야 볼 수가 있었다. 돈지랄의 끝판왕으로 차려입은 선아영을, 이익헌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아는 사람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파티의 진행을 도와주는 사람이라기에는 너무 잘 차려 입고 있어서 바라본 것 뿐이었는데 선아영이었다.

선아영은 강지연과 함께 얘기를 하다가 해리에게 붙잡혀서 재미없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익헌을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오는 중이었다.

“언제 온 겁니까? 선 대표님?”

이익헌도 그때만큼은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랜만에, 그것도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거라 반가움이 배가 되었다.

“지금 막요.”

“분명히 지금 막은 아닐 것 같고. 머리를 하는데만 해도 두 시간은 걸렸을 것 같은데요?”

“네. '지금 막'이라는 건 거짓말이예요.”

선아영은 환하게 웃으면서 순순히 실토했다. 선아영은 클랜 A가 보내준 던디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어 가져왔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못 본 사이에 살이 찌지 않았기를 바란다고 하며 이익헌의 몸을 스캔했다.

“그렇다고 너무 노골적으로 남의 몸을 감상하지는 말고요.”

이익헌의 말에 선아영은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지만 항상 보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잘 알던 사람을 만나게 되니 기분이 이상해지기는 했다.

“파티는 거창한데 초대받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썰렁하네요.”

선아영이 말했다.

“그래도 꼭 있어야 할 사람들은 다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이게 더 좋은데요?”

이익헌의 말에 선아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익헌은 선아영이 웃을 때 선아영의 볼에 보조개가 생긴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볼 말고 입술 아래에도 조그맣게 보조개가 폭 파인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의 이름도 보조개인지는 확실히 알지 못했고,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느라고 선아영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기는 했다.

선아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여자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선홍색으로 붉어지는 것을 바라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이익헌은 갑자기 큼큼 거리고 헛기침을 하고는, 뭔가 마시지 않겠냐고 물었다.

“좋아요. 목 마르던 참이었어요.”

이익헌이 팔을 들어서 선아영에게 팔짱을 끼게 해 주었다. 살인적인 높이의 킬힐을 신고 걷느라고 선아영이 위험천만하게 걷는 것을 본 탓이었다.

'여자들은 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위험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일까. 그렇게 커다란 굽 위에 올라가서 얻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뭐라는 거야.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만 하는 신발을 신으면서 여자들은 자기들이 섹시하게 보인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익헌은 그런 생각을 끝도 없이 계속 했다.

선아영은 이익헌이 자신의 킬힐을 계속해서 바라보는 것을 보고 드레스를 끌어당겨 킬힐을 감추려고 했다.

“그런 바보같은 걸로 치장하지 않아도 선 대표 본연의 모습이 더 예쁩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네?”

“구두를 바로 벗기도 힘들잖아요. 갑자기 어디선가 괴수가 나타난다고 생각해 봐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스스로를 위험에 방치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익헌은 자기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는 채로 화를 냈다. 선아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고는 이익헌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손을 확 놔 버렸다. 선아영은 자기가 처음에 16센티 미터 높이의 킬힐을 선택한 순간부터 계속해서 곡예를 하고 있었던 거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앞굽 높이 6센티, 뒷굽 높이 16센티의 킬힐 위에 올라서 있던 선아영이 화가 나서 두 발짝을 옮기는 순간 선아영의 몸이 비틀거렸다. 이익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선아영의 허리를 팔로 감쌌고 선아영은 놓으라면서 투덜거렸다.

“선아영 대표님. 내가 봤을 때 선 대표님은 넘어지지 않고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만 집중을 하느라고 이 곳에서 즐겨야 할 것들을 전부 다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선 대표님답지 않은 일이죠. 나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는 기분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익헌이 선아영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 클랜 A의 클랜원들은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익헌이 선아영의 신발을 벗겼던 것이다. 선아영은 벗겨진 신발을 보면서도 킬힐 위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듯 처음에는 버텼지만 나중에는 자기도 그게 멍청한 짓이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혼자만 맨발인 게 창피할 것 같으면 나도 같이 벗어주죠.”

이익헌이 말하면서 구두를 벗었다.

의도는 숭고했지만 발에서 나는 냄새는 어떡할 건가 하는 깊은 걱정이 클랜원들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임정은 어느새 지우의 팔을 잡고 지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서 속삭였다.

"아. 로맨틱해. 저 사람이 연쇄살인범이었다는 걸 누가 알겠어요?"

“홀아비 냄새를 퐁퐁 풍길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줄고 있는 것 같긴 하네.”

지우가 말했다.

선아영이 벗은 킬힐을 들어주려다가 이익헌은 그 무게에 깜짝 놀라서 선아영을 바라보았다.

“여자들은 진짜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가는 발목에 이렇게 무지막지한 걸 걸치고 다녔다는 겁니까? 발목에 미안하지도 않아요?”

선아영은 이익헌이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의문은 이익헌에게도 들었다.

‘뭐야.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애플 마티니를 혼자서 부지런히 비워대던 서규태는 지우에게 다가와서 지우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큰 소리로 웃어댔다.

“써전님 취하셨나 봐. 어떡해?”

난감한 듯이 지우가 말하자 그 모습을 보면서 모두들 재미있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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