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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16화 (11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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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임정은 바닥에 쓰러져 맵 속에 묻혀가고 있던 헌터들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남들은 열 명이 모여서 공략을 해도 사상자가 나오고 번번이 공략에 실패만 하는데 클랜 A는 들어간지 몇 시간만에 공략을 끝내고 나왔다고 한다면 곧바로 견제의 대상이 될 터였다.

그 부분에서 임정은 누구보다 더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우와 태아에게 괴수의 차크라가 나타난다는 것도 불길했지만, 임정은 치유 능력을 가진 탱커라는 점 때문에 동료들의 시기를 받아 죽을 뻔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임정이 그러는 것을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익헌은, 그들의 능력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걸 언제까지나 우리 비밀로 간직할 수는 없을 거예요. 우리의 비밀이 그들의 무기가 되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면서 대비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한국에서는 치안대와 헌터 협회가 모두 우리한테 우호적이어서 정보가 그나마 통제되고 있었지만. 이제 그런 보호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요. 이만큼 강해졌으면 우리도 당당하게 드러내도 되지 않겠어요?”

이익헌이 말했다.

태인이 지우의 어깨에 팔을 걸치면서 웃었다.

“이번에도 그 방법을 써 볼까? 맥시멈을 먼저 알아보는 거야. 너랑 태아가 괴수 차크라를 가지고 있다는 걸 우리가 먼저 터뜨리고 그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보는 거야.”

“그건 그냥 미친 짓이고요.”

이익헌이 두 번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말을 하자 서규태와 강현도 태인을 노려보았다.

“생각은 하고 말을 하는 거예요? 지우 형이 A급이 됐다는 것 정도는 말을 해도 되겠지만 태아가 괴수 차크라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왜 먼저 하자는 거예요? 지연이 누나 덕에 당분간은 차크라도 숨길 수 있게 됐는데.”

평소에 웬만하면 태인과 뜻을 같이하는 강현조차도 분개해서 침을 튀어가면서 반론을 제기했다. 태인은 슛을 날리려다가 헛발질을 한 꼴이 되어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우는 형이 하려는 말도 이해한다면서 그 방법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지우는 그냥 생불이었다.

던디는 어느새 서규태의 섬세한 손길을 받으면서 가죽이 벗겨지고 있었다. 그 작업은 임정도 도울 수가 있었고, 열등생 취급을 받던 이익헌의 실력도 늘어서 이제 몇 십 분만에 해체 작업을 완전히 끝낼 수가 있었다. 던디를 올려다보기 위해서 고개를 끝까지 젖혀야 할 정도로 던디의 크기가 엄청났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면 대단한 업적이었다.

“장기 해부까지만 합시다. 그것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여기 하이애나들한테 넘기고 가죠.”

서규태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고 그들은 오랜만에 서규태의 신들린듯한 해부를 구경했다.

“캐츠 아이 스톤도 발견됐으면 좋았을 텐데.”

강현이 말했다.

정말로 인간의 욕심이란 끝도 없는 것 같았다.

***

클랜 A가 1급 괴수를 공략하는데 성공하자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왔다.

시장과 주지사, 그 지역 출신의 상원의원, 대통령 할 것 없이 클랜 A에게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하고 싶어한다는 말을 비서실장을 통해 전달받고는 서로들 대통령과의 통화를 미루고 거절하다가 결국 가장 힘없는 김강현이 전화 통화를 하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강현은 네, 네, 네라는 말을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었고 뭐라고 하더냐는 질문에,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안 났다고 하면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임정은 헌터 협회장의 축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정말로 클랜 A가 미국의 1급 괴수까지 사냥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온갖 감탄사와 부사만 내뱉다가 통화를 끝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협회장이 한 말의 내용을 정리했을 때는 아, 정말로, 라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해리와 리마실은 클랜 A의 명성을 같이 누렸다. 대외적으로 그들은, 다음 1급 괴수의 공략을 준비하면서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1급 괴수의 공략을 클랜 A에 맡긴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클랜 A에서는 그 보도자료를 일절 문제 삼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우열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는데 내가 잘났다고 나서는 게 괜히 남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라미실과 해리의 처지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A급 헌터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하늘을 찌를 듯한데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으로 1급 괴수를 공략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점점 확실하게 깨달아갔다. 게다가 실패한 레이드와, 늪 아래에서 죽어갔던 동료들에 대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것은 쉽게 극복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우리가 해리랑 라미실의 입장이었다면. 우리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서규태가 그렇게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1급 늪이 성장한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걸 공략할 수 있는 사람은 동료도 없이 나 하나 뿐이고 사람들은 전부 나만 바라보는데 나는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된다면. 나라면 아마 조용히 사라져버리고 싶을 거예요.”

서규태의 말에 모두들 공감했다. 특히 ‘동료도 없이’라는 부분에서 그랬다. 태인과 강현은 그동안 자기들이 클랜 A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오고 있었는데 이번 레이드를 겪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인과 강현 두 사람이 자신의 등 뒤를 맡아줄 거라는 생각과, 자기가 그 두 사람의 등 뒤를 지켜줘야한다는 생각이 지우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사실에 태인과 강현은 합의를 보았다. 그러고나니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언론은 매시간 새로운 뉴스를 쏟아냈다. 클랜 A라는 키워드는 순식간에 지구촌을 점령했다. 클랜 A라는 이름만 뜨면 사람들은 탐욕스럽게 기사를 클릭했고 클랜 A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정보가 통제되었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지우가 A등급 헌터라는 것과 나머지 클랜원들이 B등급 헌터라는 사실, 지우는 헌터 테스트에서 헌터 타투가 생기지 않았는데 스물 여섯이 된 올해에 헌터 타투가 생겼고 그때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10이었다는 사실, 임정은 치안부장 탱커이고 서규태는 베테랑 써전 출신의 치안 1부장이라는 사실, 이익헌은 바디 펌의 부사장이고 익스트림 헌터의 선아영 대표가 클랜 A를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강현과 태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체 운반 헌터였다는 사실이 전부 밝혀졌다.

임정이 치안대장이라는 사실과 치유 능력을 가진 탱커라는 사실 정도만 마지막까지 비밀에 감춰졌다.

언론에 공개된 내용에 가장 분개한 것은 강현과 태인이었다. 자기들도 내세울 것이 얼마나 많은데 최근까지 사체 운반 헌터였다는 수식어로 다른 미사여구를 대신했다는 것이 그들의 반발 이유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 대한 정보는 옷을 벗기고 살을 발라내듯이 까발려졌다.

강현이 연령 제한에 걸려서 레이드를 할 수 없는 신분이었는데 강현을 위해서 특례가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들이 F등급 헌터였는데 지금 A등급과 B등급으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경험치 몰아주기라는 탈법 행위를 통한 거였다는 기사도 나왔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안티짓을 하려고 든다면서 간단하게 코웃음을 쳐주었다. 몇 몇 언론사에서 임정에게 공식 루트를 통해 질의를 해 왔을 때 임정은 그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대답해 주었다.

“나는 단서 조항으로 허용되는 행위만 해왔고 법을 어긴 적이 없다. 그리고 만약에 내가 법을 어기고 경험치 몰아주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바보가 더 바보인가, 바보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는 사람이 더 바보인가. 자국에서 보유한 상급 헌터로 괴수를 해치우지도 못하고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도 못해놓고 다른 나라 헌터들을 빌려오는 처지에 왜 경험치 몰아주기에 대해서 시비를 가리자고 나오는 것인가?”

시원하기는 했지만 임정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을 클랜 A의 적으로 돌려세웠다. 그래도 이익헌을 위시해 모든 클랜원들이 임정의 발언을 통쾌해하면서 지지했다. 머리가 꽉 막히지 않은 사람들은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누가 클랜 A에 흠집내기를 하려는 건지 알아차리고 임정과 클랜 A를 지지했다.

이런 난국에 탈법이니 뭐니 하는 게 뭐가 중요하다는 거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임정은 자기 편이 돼 주려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사양했다.

“경험치 몰아주기에는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 때에 따라서 그건 굉장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헌터는 헌터 등급으로 실력이 가늠되는데, 경험치 몰아주기로 높은 등급이 된 헌터는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해서 자칫 레이드를 어렵게 만들 수가 있어서다. 경험치 몰아주기는, 정말로 가능성 있는 인재를 빠르게 양성할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위있는 전문가들의 보증과, 차크라 숙련도를 책임지고 같이 올려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식으로 지금 어디선가 경험치 몰아주기가 자행되고 있다면 나는 그 사람들의 행동을 지지할 것이다.”

그런 임정을 보면서 사람들은, 힘이 있다보니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려고 눈치를 보지도 않는다면서 점점 더 클랜 A에게 빠져들었다.

TV에서는 클랜 A의 클랜원들을 등장시킨 만화와 어린이 드라마가 유행했고 그들의 모습을 본따 만든 캐릭터 상품이 불티나게 팔렸다. 천기정은 수입의 다각화도 좋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자산관리사는 언제 쉬겠냐고 볼멘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든 말든 아무도 천기정을 신경써 주지 않았다.

모두의 관심은 이제 사람들이 지우와 태아의 차크라를 알아낼지, 거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강지연은 며칠 동안 잠을 자지도 못한 채로, 갑옷이 아닌 일상복으로도 지우와 태아의 차크라를 바꿀 수 있게 하는 연구에 매진했다. 결국 아주 얇은 소재로 만드는 것에 성공을 하고 강지연은 바디 펌과 익스트림 헌터를 들쑤셔서 지우와 임정, 두 사람이 입을 옷을 만들게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것은 미국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1급 괴수들이 자꾸 등장을 했던 탓이었다. 그것도 매번, 성장하는 1급 늪의 괴수들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그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데 왜 유독 미국에서만 집중되어 나타나는지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다.

브뤼는 프랑스에서의 상황이 안정 국면에 들어섰다고 판단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와 클랜 A와 합류했다. 정확히는 클랜 A의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A급 헌터 무리에 합류했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클랜 A는 그 사이에 네 건의 1급 괴수를 더 처리해주었지만 캐츠 아이 스톤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세금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을 했다.

‘클랜 A는 클랜 A에게 의무가 없는 일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해 주고 있고 이로 인해서 얻어들이는 수익에 대해서 세금은 내지 않겠다. 여기에서부터 모든 논의를 시작하자.’ 라는 이익헌의 공언에 따라서, 세금은 내지 않게 되었다.

애초에 그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못 박아버렸고 그 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화 자체를 거부하겠다고 단언해 버리니 미국 정부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호의로 목숨을 구해주겠다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요구하는 것은 비양심적이라는 것 정도는 미국 정부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의 태반이 다시 괴수와 늪, 맵에 대한 연구비용으로, 그리고 무기와 장비의 공격 증폭률과 방어 증폭률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 투입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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