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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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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디라고 이름붙은 거대한 크로커다일 괴수는 한 눈에 보기에 그냥 티라노사우르스 같았다. 던디는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헌터들이 늪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입을 얌전히 다물고 있는데 이빨은 하나도 감추어지지 않았다.
톱니같은 이빨이 윗니와 아랫니가 어긋난 채로 수도 없이 나 있었다. 강현은 그 이빨을 보고 기가 질려서 석궁을 든 팔을 스르르 내렸다. 그때 임정의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김강현. 자신 없으면 내 자리로 가. 석궁 내놓고.”
“……!”
강현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임정을 바라보았다.
“콩알도 데리고 피해있어라.”
그걸 어떻게 하냐고 항변할 생각도 없었다. 제가 스스로 정신을 차려야 하는 거였다.
“겁먹을 것 없어. 내가 있잖아.”
이익헌이 김강현의 어깨에 팔을 얹고 격려를 해 주었지만 그거야말로 역효과였다. 상황이 얼마나 안 좋으면 이익헌이 그런 짓을 다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겁이 났던 것이다.
강현은 태인을 바라보았다. 태인은 제법 의젓하게 버티고 있었다.
“형은 무섭지 않아요?”
강현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무서워. 그러지 않은 척 하고 있는 것 뿐이야. 그러지 않은 척 하다보면 정말로 괜찮아 지려나 해서.”
태인이 말했다. 강현은 그 순간에, 언젠가 태인이 쥐어짜서 보여주었던 용기를 떠올렸다. 사체 운반팀에서 혼자 겉돌기만 하던 태인이 진정한 팀원이 되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강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래. 무섭지 않은 척 하다보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믿어보자.’
그리고 석궁을 든 손을 다시 올렸다.
던디가 천천히 움직였다. 몸에 비해서 짧은 다리는 단지 몸에 비해서 짧다뿐이었다. 절대적인 길이는 결코 짧은 게 아니었다. 이익헌은 어그로 장비를 들고서 던디의 시선을 끌었다. 긴장감이 이익헌의 혈관을 타고 돌며 온몸을 차게 식혔다가 뜨겁게 달구었다가 했다. 이익헌은 질질질 웃음을 흘렸다. 폭발할 것 같은 희열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거지!’
한 손에는 세띠 아르마딜로의 등껍질로 만들어진 방패가 들려 있었다. 선아영을 쪼아서 만들게 한, 방어증폭률 600퍼센트에 육박하는 무시무시한 방어 장비였다. 죽지만 않으면 임정이 살려줄 테고, 어그로를 끌어주면 클랜 A의 괴물들이 공격을 해서 괴수를 죽일 거라고 생각하니 피가 끓어올랐다.
“간다. 이 멍청아!”
이익헌은 비명을 지르듯 던디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던디는 이익헌의 움직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탓에 주춤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지위를 깨달았다. 늪의 군주가 저따위 침입자의 도발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던디가 곧 커다란 몸을 움직이며 이익헌을 향해 돌진해 왔다. 이익헌은 던디의 앞에서 방향을 틀었다. 던디는 육중한 꼬리를 휘두르면서 몸을 돌렸다.
“가죠!”
서규태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지우는 이미 그 앞에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커다란 엑스 블레이드가 던디의 몸통을 벴다. 던디는 그 일격에 끔찍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강한 개체의 숙명이다. 제대로 공격당해볼 기회가 없었다는 것, 거기에 익숙해질 기회가 없다는 것,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은.
태인과 강현은 서규태의 뒤를 따르다가 던디가 미친 듯이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 뒤로 도망쳤다.
“저게 맥시멈이라고 생각하세요. 완전히 열받았을 때 던디가 몸부림칠 수 있는 최고치가 저거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질 거예요. 평상시에는 저것보다는 얌전하게 움직일 테니까.”
지우가 큰 소리로 말했다. 마치 그 미친 짓이 전부 다 계획된 동작이었다는 듯이 자신감 넘치는 말투였다.
태인과 강현은 간이 콩알만해져서 지우를 노려보았지만 확실히 처음에 극한의 공포를 경험한 것은 그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지우의 말대로였다. 지우에게서 공격을 받은 던디의 상처는 순식간에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태인과 강현의 공포가 처음 같지 않았다.
두려움이란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 크다. 상상의 힘은 엄청나서, 가장 끔찍한 것을 상상해내고 난 다음에 곧바로 그것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상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일단 알고 나면 거기에 대비하면서 두려움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강현과 태인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이미 우리한테 읽혔어. 그리고 그 순간에 이 싸움은 끝난 거야.”
태인이 먼저 그렇게 말을 하고 손도끼를 들고 던디를 향해 달려갔다.
던디의 모든 부위는 엄청나게 컸고 그게 어디에서 날아오든 전부 눈에 보였다. 던디도 자연계에 서식하는 크로커타일의 거대한 형태에 불과했다. 다리는 네 개고 꼬리는 하나고, 주둥이도, 그것이 아무리 무섭게 생기고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하나라는 것이다. 뭐가 어디에서 날아올지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 쓸데없이 겁에 질리는 거야말로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로 강현과 태인의 몸 놀림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어느 순간 이익헌이 공격에 적극 가담하는 것을 보고 강현은 이상하다는 생각에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인간이, 깜빡이도 켜지 않고 딜러의 팔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탱커의 팔 따위는 끼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도 전부 다 페이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깊이 든 것이다.
임정은 레이더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이번 레이드에서도 부상당하는 사람이 나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정보창의 수치는 무시무시하게 변했다. 정보창이 강제로 무장 해제를 당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우의 공격력에 가려져서 빛을 못 봐서 그렇지 다른 헌터들의 공격력도 대단한 수준이었다. 이제 태인과 강현도 차크라를 모으는 시간을 꽤나 단축해서 5초를 조금 넘기면 다시 공격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돼 있었다. 서규태와 이익헌은 3초 후반에서 4초 정도가 걸리는 듯했다.
던디의 가죽은 생각했던 것만큼 견고하지 않았다. 만약 세띠 아르마딜로를 상대해 본 적 없이 던디와 마주쳤다면 그런 생각을 하기는 힘들었겠지만 세띠 아르마딜로의 콘크리트 같은 등껍질을 상대해본 후라서 던디의 가죽이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태인만 해도 그랬다. 세띠 아르마딜로의 몸에 손도끼를 쳤을 때 팔꿈치와 어깨가 나가 버릴 것처럼 고통이 느껴졌던 것이 지금도 생생했다. 하지만 던디에게는 꾸준하게 공격이 들어갔다.
“에이. 별 것 아니네.”
태인의 입에서 저절로 그런 말이 나왔는데 모두들 그 생각에 공감했다. 지우는 클랜원들이 평정을 되찾고 각자 공격 기회를 찾아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제 공격에만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익헌과 서규태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공격을 하기 쉬운 자리는 강현과 태인에게 양보를 하고 자기들은 꼬리 부분이나 머리 부분처럼 갑자기 움직임이 크게 변할 수 있는 부분을 맡는 식으로 했다.
“최상이네. 최상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되겠어요.”
강현이 말했다.
강현과 태인은 던디의 몸통에 타고 올라가서 그 부위에 공격을 해댔다. 그곳은 던디가 꼬리를 갑자기 휘둘러도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고 머리를 돌려도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그 부분의 면적이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태인과 강현이 어찌어찌 터를 잡고 동거를 해 볼 수준은 되어서 두 사람은 거기에서 딱 자리를 잡고 부지런히 딜을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던디가 움직임을 완전히 멈춰버렸을 때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잠시 어리둥절해 했다. 한 번 공격을 하고 차크라를 모으고 또 다시 공격을 하는데만 집중을 했고, 그때그때 던디의 머리와 꼬리를 주의하면서 온 신경을 거기에 쓰느라고 정보창을 확인하는 것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임정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누군가 던디에게 공격을 당하고 떨어지거나 다쳐서 부상을 당하면 바로 달려가서 치료를 해 줄 생각으로 정보창을 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괴수의 체력이야, 떨어질 때가 되면 오죽 잘 떨어지겠는가 하면서 각자 맡은 일에만 집중을 한 결과 누구도 알지 못한 사이에 사냥이 끝난 것이다. 던디의 육중한 몸이 갑자기 바닥으로 턱, 거꾸러지는 바람에 등에 타고 있던 강현과 태인은 굴러떨어질 뻔하다가 발바닥에 차크라를 모아 몸을 지탱했다.
헌터들은 동시에 정보창을 보았다.
“아…….”
작은 감탄의 소리, 숨을 내뱉는 소리 같은 것이 목구멍 깊이에서 흘러 나왔다.
자기들이 1급 괴수를 해치웠다는 감격은 생각보다 컸다. 한국에서도 세 번이나 1급 괴수를 공략하는데 성공했지만 이건 느낌이 달랐다. 이 괴수는 현실적인 위험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냥 ‘도전’이나 ‘테스트’라는 느낌이었다면, 이곳에서의 레이드는 위기로 여겨졌다. 성장하는 늪의 괴수냐, 성장하지 않는 늪의 괴수냐 하는 차이는 그렇게 컸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끝낸 것이다. 이 늪은 사라질 것이고 사람들은 정들었던 고향을 등지고 떠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클랜 A의 활약으로 그들의 생존의 기반이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선 1급 괴수의 러프 스톤이 얼마 정도의 가격으로 거래돼요?”
강현이 이익헌에게 물었다.
“그것보다 나는, 우리가 이걸 한국에 가져가서 팔 수 있는 건지, 아니면 미국에서 세금을 떼겠다고 할 건지 그게 더 궁금해.”
태인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러프 스톤을 찾으려고 던디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러프 스톤을 찾은 사람은 지우였다. 지우는 던디의 턱 아래에 깔려 있는 러프 스톤을 용케 발견하고 던디의 몸을 들어서 러프 스톤을 꺼냈다.
“괴수 사체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건 방어 증폭률을 높일 수 있는 재료로 쓰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1급 괴수의 사체라서 방어력을 높이는데 효과가 좋을 거예요.”
태인이 말하자 이익헌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디 펌의 부사장 아니랄까봐 그의 관심은 계속해서 거기에 집중돼 있었다.
“써전님. 이걸 먼저 절단을 할까요? 가죽이라도 가지고 나갑시다. 나머지 사체는 라미실이랑 해리한테 양보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익헌이 말하자 서규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어요. 일찍 나갈 것 없이 여기에서 가죽을 벗겨가지고 나가죠. 참. 바디 팩을 가지고 와야 하나?”
“바디 팩은 제가 다 챙겨가지고 왔습니다.”
무기와 장비를 두었던 곳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것의 정체가 뭔가 했더니 안에서 바디 팩들이 한가득 나왔다.
지우는 레이드가 끝나자마자 임정에게 달려갔다.
“당신은 괜찮지?”
“괜찮지 않을 게 뭐가 있겠어요? 나는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예요.”
임정이 말했다.
지우가 임정의 팔을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강현씨랑 태인씨도 잘 해 줬고요."
임정의 말에 지우도 흡족한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던디의 러프 아이 스톤이야. 던디의 눈이랑 많이 닮았어."
"눈은 제대로 못 봤는데."
"파충류의 눈도 가까이에서 보니까 꽤 예쁘더라. 이렇게 생겼었어. 못 봤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이걸 봐."
지우가 러프 스톤을 건네며 말했다.
레이드를 시작한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는데 그들은 그 순간, 죽은 괴수의 눈을 생각하면서 러프 스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