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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강지연과 임정은 얌전히 가방 옆에 서 있었다.
“괜찮으면 방을 먼저 배정해 주면 좋겠네요.”
임정은 라미실이 스스로 알아서 해 줄까 하고 기다리다가 결국 자기 입으로 말을 해버렸다.
“아, 마담. 임신 중인데 불편하신 거군요. 알았습니다. 방으로 안내해드리죠.”
라미실이 스스럼없이 임정의 팔을 잡으려는 순간 지우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 들면서 라미실에게 손을 들었다.
“말로 해도 알아들으니까 불필요한 접촉은 피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여러 모로 제가 실수를 하네요.”
라미실에게는 신세계가 열렸다.
A급이 되기 전부터, 헌터 타투가 나타나고 헌터 천재로 불리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헌터 타투가 나타나기 전에도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던 터라 그런 경험은 태어나서 전무했다.
이익헌은 그런 라미실의 어깨에 팔을 걸치면서 충고를 했다.
“잘 좀 해 봐. 잘 좀. 소개해 준 사람 창피해지게 하지 말고. 자꾸 그러니까 내가 창피해지려고 하잖아.”
라미실은 부지런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는 그 사람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클랜원들은 2층과 3층에 방을 배정받았고 1층의 응접실과 서재를 마음껏 쓸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지우는 임정을 강지연에게 맡길 수 있어서 안심했다.
“많이 힘들어?”
임정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걱정하면서 지우가 물었다.
“아뇨. 전혀요. 그냥 아기를 위해서 쉬어줘야 할 것 같아서 이러는 거예요.”
임정이 말했다.
“미팅 끝나고 나면 내가 차크라로 마사지 해 줄게.”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콩알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레이드에만 신경 써요. 나는 당신이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 코를 납작하게 해 주자고요.”
“그래. 그렇게 하자고.”
오랜 비행에 지친 임정과 강지연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응접실에 모여서 라미실과 해리로부터 괴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회의 장소에는 열기가 가득했다. 라미실과 해리는 손님들을 위한 환영 파티를 준비했다고 했지만 이익헌은 단 한 마디로 거절을 했다. 레이드 때문에 긴장이 돼서 그러는 거라면 레이드가 끝난 후에 레이드 성공 기념 파티를 하는 걸로 하자고 라미실이 말했지만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여기에 놀러온 게 아니야. 한국을 오래 비워두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이익헌은 거절을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능숙한 사람인 것 같았다. 반복적인 거절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애초에 걱정하지도 않았다. 라미실과 해리는 이익헌을 한 두 번 상대해 본 것이 아니었기에 마음을 비워야 할 때는 후다닥 비우고 다른 쪽으로 관심을 바꾸었다.
그들은 클랜 A가 한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궁금해했다. 1급 괴수를 아무렇지 않게 공략한 헌터들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한 것 같았다.
이익헌은, 클랜 A의 클랜원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달가워하지 않아서 언론을 가능한 선에서 통제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말을 했다. 그러면서 이익헌은 라미실과 해리가 쓸데없이 그들과 지우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 그래.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그리고 이큰은 우리를 가까이에서 알아 왔으니까 A급 헌터로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사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알았을 거야. 그런 이큰이 끼어있는 클랜 A니까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려고 한 것도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해놓고 해리는 레이드에 대한 얘기 먼저 끝내고 다시 더 얘기를 하자고 했다. 라미실과 해리는 원거리 딜러를 채워넣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익헌은 귀찮은 소리 하지 말라는 듯 파리 날리는 시늉을 하면서 그들의 입을 닫게 하려고 했다.
“원거리딜러라고 해도 B급이면 그 사람들이 입힐 수 있는 데미지의 총량도 무시할 게 아니야.”
해리가 나서서 말했다.
그들은 클랜 A의 진면목을 알지도 못했고 본 적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해 왔던 레이드에 대한 지식만 있었다. 그러니 12시간이 지나기 전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괴수에게 데미지를 더 입혀야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어차피 늪이 오픈 되기까지는 시간이 있는 거잖아요. 한 번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죠.”
지우가 말하자 두 사람은 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A급 헌터들인 자기들도 곧바로 차크라를 회복해서 다음 날에 레이드를 다시 뛰는 것에는 실제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들보다 급도 낮은 것 같은 사람들이, 열 명도 안 되는 구성으로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이익헌이 장담하고 데려온 사람들이니 보통 사람들이 아닐 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도대체 이들의 정체가 뭔지, 점점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공략했다는 1급 괴수의 체력에 대해서는 이큰한테서 들었어요. 여기 괴수들은, 특히 클랜 A가 공략해야 할 괴수들의 체력은 그 괴수들의 1.8배에서 2배까지 돼요. 너무 겁을 먹는 것도 안 되겠지만 너무 자신만만하게 굴다가 실패를 할 수도 있어요.”
라미실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 사람들이 실패를 하면 그 뒷감당은 자기들이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편치가 않았던 것이다.
이익헌은 클랜원들의 표정을 살피고, 그들이 슬슬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좋아. 긴 여행에 모두들 지쳤으니까 얘기를 빨리 끝내자고. 우리가 가장 먼저 처리하기로 한 늪에 가는 도로를 통제해줘. 괜히 도로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우리가 언론을 통제해 달라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건 거의 확실하지. 우리가 늪에 도착할 때까지, 그리고 늪에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도로를 통제해줘. 그리고 늪 주변에, 우리가 쉬면서 작전을 세울 수 있는 트레일러를 준비해 줘. 우리 중에는 헌터가 아닌 팀원도 있어. 우리가 늪 아래에서 레이드를 하는 동안 그 사람이 쉴 곳이 필요해. 우리 팀의 중요한 전력이니까 부족함 없게 대우해 주도록 해.”
“오케이. 전혀 걱정할 것 없어. 최고급 트레일러를 그쪽으로 당장 이동시켜 놓을 수 있어.”
라미실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리고 부산물 문젠데. 계약서에 그 내용이 빠져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러프 스톤과 괴수 사체, 그리고 혹시 나올지 모르는 캐츠 아이 스톤을 포함해서 레이드 결과 얻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클랜 A가 갖는다는 내용이 담긴 계약서야. 나중에 분쟁이 생기면 귀찮잖아.”
이익헌은 자기가 미리 작성해 온 계약서를 라미실에게 건네며 말했다.
“모든 걸?”
“당연히 모든 것들이지. 괴수 사체 같은 경우에는 특별한 게 없으면 우리가 소유권을 포기할 수도 있어. 우리가 소유권을 포기한 괴수 사체를 회수해서 사용하는 건 상관 없어. 하지만 공격 증폭률이나 방어 증폭률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는 재료가 있으면 그건 우리가 회수할 거야.”
“뭐. 그래. 당연한 얘기인 건지도 모르지.”
라미실은 이익헌이, 생각보다 체계적인 수비를 한다고 생각하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맞아. 당연한 얘기인 거지.”
이익헌이 말했다.
“그거면 전부 된 건가?”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우리가 레이드를 하는 동안 주변을 통제해 줬으면 해. 사람들이 궁금해 할 거라는 건 알지만 협조해 줘. 이건 계약 내용이야. 이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계약을 파기할 수가 있어.”
"이런 부수적인 내용을 이제와서 자꾸 넣는다는 건."
"그래. 안되는 거지. 하지만 레이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주위 환경을 통제해 주겠다는 약속을 구체화한 것 뿐이야. 아주 없던 얘기를 하는 건 아니지."
“그래. 좋아. 그건. 어렵지 않을 거야. 그래도 미리 얘기를 해 두기는 해야 되겠군.”
“그래. 이제 그 괴수에 대해서 설명해 봐.”
이익헌이 말했다. 이익헌이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는 덕에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쓸데없이 진을 빼거나 아웅다웅할 필요가 없이 편안하게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만 했다.
해리는 몇 번의 공략 시도로 알게 된 던디라는 괴수와 늪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던디는 거대한 악어처럼 생긴 괴수라고 해리가 설명했다. 라미실은 해리가 빠뜨리고 가는 부분을 짚어가면서 설명을 보충했다.
“좋아. 나머지는 가서 직접 보면 되겠군. 이제부터는 우리끼리 얘기할 수 있게 해 줘.”
이익헌의 부탁으로 해리와 라미실이 떠나자 이익헌은 서규태와 지우를 바라보았다.
“어려울 건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세띠 아르마딜로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던디라는 놈은 두꺼운 철갑을 뒤집어쓴 악어 같은 느낌이잖아요?”
이익헌의 말에 서규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녀석을 공략해 본 적이 있습니다. 다리를 다치기 전에요. 1급 괴수는 아니었죠. 개체의 크기가 작았고 3급 괴수였던가 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꼬리를 휘둘러서 헌터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앞발로 후려치기도 했는데 거대한 크로커다일 같았죠. 크로커다일 다리라고 하면 연상되는 게 있잖아요. 뭉뚝하고 짧고 납작하고. 그런데 늪 아래에 사는 괴수의 덩치를 생각해 보세요. 다리 길이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예요. 그리고 물 속에서 수영하는 악어만 상상이 될 텐데 그게 육지에서 덮칠 때는 정말 무섭습니다. 공룡이 뛰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거의 비슷할 거예요. 그걸 상상하면. 늪 아래에 사는 괴수 던디는 우리가 아는 크로커다일보다는 공룡에 더 가깝겠죠.”
서규태의 설명을 듣고 나니 뭔가 실감이 나는 분위기였다.
“물기도 할까요?”
강현이 물었다.
“그걸 특히 조심해야죠. 그 턱 힘에는 당해낼 사람이 없을 걸요? 거기에 물리면 임정 탱커님도 고치기 어려울 거예요. 그 큰 아래턱을 닫아버리면 순식간에 뼈가 부러지고 몸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질 겁니다. 그리고 아무리 방어력 증폭률이 높은 갑옷을 입고 있어도. 죽을 겁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이익헌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는 딜보다는 탱킹을 하는 게 나을까요?”
그러다가 그는 질문의 상대를 잘못 잡았다고 생각한 것처럼 태인과 강현을 바라보았다.
“어떨 것 같습니까? 괜히 호기 부리지 말고 확실하게 말을 해 줘야 합니다.”
태인과 강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성장하는 1급 늪의 1급 괴수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괴수의 체력에 대해서도 이익헌을 통해서 계속 들어서 짐작을 해왔다. 하지만 서규태의 설명을 듣고 보니, 너무 간단하게만 생각했던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면서 슬쩍 겁이 나기도 했다. 그들을 가장 동요하게 했던 것은, 임정의 치유 능력으로도 고치기 어려울 거라는 말이었다.
이익헌에게 탱킹을 부탁한다는 건 한 사람의 B급 딜러가 빠지는 것과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 그리고 하필 그 B급 딜러가 지우를 제외한 모든 헌터들 중에 가장 월등한 기량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태인과 강현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는 게 클랜을 위한 일인지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지우가 익헌을 보고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탱킹을 해 주시죠. 그러다가 태인이 형이랑 강현이가 감을 잡고 던디를 피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딜러의 헌터 타투가 새겨진 팔로 갈아 끼우고 같이 공격에 가담해 주세요. 지금 태인이 형이나 강현이가 빠지면 공략에 성공할 거라고 장담하기가 어려워져요.”
지우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