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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12화 (11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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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어지간히 해라.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꽁무니를 빼버리면 확 그냥!”

확 그냥이라는 말 뒤에 뭐가 나올지는 몰랐지만 어쨌거나 강현은 강지연 앞에서 도망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강지연은 카드 게임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강현은 카드를 이리 저리 돌려보다가 나중에는 그걸 응용해서 무기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연도 그 말을 듣고 당장 그 방향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러고는 아예 메모지를 가져다가 자기가 생각한 무기로 공략할 수 있을 괴수들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강지연이 그려 놓은 것을 보니 강현이 생각한 것과 달랐지만 같이 브레인 스토밍을 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우리는 일 생각을 그만하고 제발 놀라고 해도 못 놀 것 같아요.”

강현이 그렇게 말하자 지연은 맞아, 맞아 라면서 몇 번이나 그 말에 수긍했다.

기내에는 각종 비싼 술들과 비싼 잔들이 진열돼 있었지만 모두들 잔뜩 긴장을 한 탓에 술은 한 모금도 입에 대지 못했다. 대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는 그것들을 전부 비워버리자고 모두들 전의를 불살랐다.

지우가 왔을 때 강현은 자기가 새로 생각해 낸 것을 실제로 무기로 만들 수 있을지 선아영 대표에게 물어봐야겠다고 하고 있었고 강지연은 강현이 철없이 군다고 놀렸다.

“바보냐? 이건 현실 세계야. 아무리 어려도 균형 감각은 좀 가져. 그렇게 해서 무기를 어떻게 쓸 건데? 추진력을 어디에서 얻을 건데?”

강현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포기하는 게 아까웠는지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버텼고 강지연은 애를 데리고 놀아주는 건 오래 할 짓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두 손을 딱 드는 중이었다.

강지연과 지우의 눈이 마주쳤다. 지우가 웃으면서 강지연을 바라보았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요?”

“이건 얘한테 물어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이제 좀 꺼져줄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부탁하려고 하던 참이긴 한데.”

강지연의 말에 지우가 웃으면서 강현에게 부탁했다.

“강현아. 형이 강지연씨랑 얘기를 좀 해야 되는데 잠깐 꺼져줄래?”

“넵.”

강현은 경쾌하게 사라졌다. 지우가 강지연에게 다가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바디 펌을 그만뒀다는 얘기, 방금 집사람한테서 들었어요.”

“아. 네. 그거요. 뭐. 실컷 해 본 것 같아서요.”

“바디 펌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잖아요.”

“다른 사람한테 인정받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 일을 좋아하셨잖아요.”

“어쩔 수 없죠. 천 전무님이랑은 집에서 계속 만날 테니까 일을 도와드릴 수는 있을 거예요.”

“혹시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한 게 우리 때문입니까?”

지우의 말에 강지연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말을 돌려 하려고 해 봤자, 이미 알고 온 것 같았다.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이건 대답을 해 주면 좋겠습니다.”

지우가 그렇게 묻는 것만 가지고도 강지연은 지우가 물으려는 말을 알 것 같았다.

“괴수의 차크라인 건가요? 나와 아이에게 있는 거요.”

지연은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두 가지의 차크라를 구분해내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찾았는데도 두 차크라 간에 본질적인 차이를, 아니, 본질적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내더라도, 차이를 찾을 수가 없다면 그 두 가지는 같은 거라는 천기정의 말이 떠올랐다.

지연은 자신의 대답이 지우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했다. 그러자 지연의 생각을 알겠다는 듯이 지우가 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말을 하더라도 감당할 생각입니다. 진실이 뭔지 아는 게 중요해요. 그래야 나와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 생각하고 대비하죠. 준비없이 그 일을 맞닥뜨리고 무너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정이도 감당하지 못할 거예요. 가감없이 알려주세요. 나는 사실을 알고 준비해야 합니다.”

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차이점은 없었어요.”

지연이 말했다.

“괴수 차크라와 우리 차크라 사이에 그렇다는 거군요.”

“네…….”

“그렇다고. 우리가 괴수인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렇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괴수라고 명명하는 것들에게는 인간이랑 완전히 다른 특징들이 있잖아요. 안지우씨랑 태아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인간이죠. 누구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들이고요. 천 전무님은 그 사실을 지켜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할 거라고 했어요. 나도 마찬가지고요.”

“…….”

지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런 지우를 향해 강지연이 말했다.

“전에 나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 안 좋은 감정들로 똘똘 뭉쳐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운이 없다는 생각, 내 재능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증오. 별 것도 아니면서 기회를 얻고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좌절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집으로 임정 치안부장님이 들어온 그 날부터, 그리고 안지우씨의 차크라에 대해서 연구를 해 온 이후로, 많은 부분들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지연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내가 누군지, 정신없이 알아내고 싶었으면서도 결국 나는 내가 누군지 몰랐거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들여다 볼 생각도 안 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존해서 내가 누군지를 알아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내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하든지 그걸 떠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신있게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강지연의 다음 말을 궁금해하면서 지우가 강지연을 바라보았다.

“두 분의 아기가 가진 차크라로 인해서 아기가 불행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요. 연구 테마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은 머릿속이 어지럽지만 일단 방향을 정하기만 하면 나름대로 길이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의미도 있을 것 같고 재미도 있을 것 같아요.”

강지연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지우는 강지연을 바라보지 못했다.

자기가 나서서 강지연에게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해 오고 있었다. 자기와 콩알의 차크라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강지연일 거라는 생각에, 두 사람을 위해서 방법을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은 강지연 뿐이라는 생각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바디 펌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드디어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얻은 강지연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어려웠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모든 만족감을 포기하고 자신을 위해 일해달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강지연이 스스로 그 말을 해 주고 있었다. 지우는 이럴 때 뭐라고 말을 해야 되는 건지 미리 준비해두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만큼 진실한 말은 없었다. 지우의 표정을 보면서 강지연은 이미 그 마음을 다 받은 기분이었다.

“저도 클랜 A의 클랜원인 거잖아요. 헌터는 아니지만. 바디 펌의 부장보다 그게 더 매력있는 것 같아요.”

강지연은 어색한 분위기는 이쯤해서 접자는 듯이 지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말만 거창하지, 바로 답이 나올 것도 아니고 그래요. 이번에 동행을 하는 건 치안부장님이 임신한 상태로 오래 여행을 하는 게 걱정돼서 그런 거고요. 몸에 문제가 생긴다고 아무 병원이나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치안부장님은.”

“정이는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컵니다. 그건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아. 강지연씨 말이 고맙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우가 당황하면서 웃는 것을 보고 강지연도 웃더니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바디 펌을 아주 정리해버린 것도 아니예요. 천 전무님 재량으로 제가 차크라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1년을 주겠다고 하셨거든요. 아직 제 소속은 바디 펌이예요.”

“다행이네요. 그리고 고맙고요.”

“일을 제대로 해내고,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받아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고맙습니다. 지금도 충분히요.”

지우가 말하자 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

해리와 라미실이 공항에 미리 나와있다가 그들을 곧바로 숙소로 안내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그들은 라미실의 집에 머물기로 했는데 클랜 A의 클랜원들은 라미실의 집에 도착해서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라미실의 대저택은 사람들이 방문해 주지 않으면 진가를 발휘하기가 힘든 그런 곳이었다. 클랜 A의 클랜원들은 두리번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가다가 라미실이 자신들의 리액션을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아, 좋네요 라고 말해주었다.

“이런 집에서 파티하면 쓰레기가 얼마나 나올까요?”

강현은 태인에게 기껏 그런 말이나 하고 있었다.

“쓰레기가 문제가 아니라. 나는, 집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한다는 발상이 이해가 안 돼. 남들이 내 물건 만지는 것도 싫을 것 같고 내 계단 난간 만지는 것도 싫을 것 같고 내 싱크대나 냉장고 만지는 것도 싫을 것 같거든. 그 사람들이 냉장고에 무슨 짓을 하고 갈지도 모르는 거잖아. 화장실도 마찬가지야. 술에 취해서 어디에 오줌을 쌀지도 모르는 거고. 파티를 연다는 건 너무 자기파괴적인 행동 같아.”

태인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은 너무 비정상적인 것 같아요. 파티를 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형은 일반적인 사고 방식으로 생각하는 걸 좀 배워야 될 것 같아요. 형이 자꾸 그러니까 사람들이 우리 클랜에 대해서, 전부 사이코패스에 소시오패스들만 모인 집단 같다고 그러는 거라고요."

"그래? 누가 그러는데? 만약에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론 디어나 탱커님을 두고 말한 것 아니었을까? 우리는 평범한 축에 속하지. 나도 그렇고 강현이도 그렇고. 써전님은 아주아주 더 그렇고."

"맞아요. 우리는 지극히 정상이예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오세요. 우리는 할 말이 아주 많으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에 또 있다고! 학교 다닐 때 내 별명이 '순응 강현'이었다고요. 교칙 하나도 어겨본 적 없는 사람한테 웬 소시오패스? 허! 자기들이 나에 대해서 안대요? 뭘 안대요? 흥! 웃기고 있어!"

강현과 태인이 뭉치고 나면 두 사람을 이길 방법은 많지 않았다.

“우와아아. 천장 높은 것 좀 봐요.”

강현이 고개를 한껏 젖히면서 말하자 태인은 암벽 등반장이라도 만들지 공간을 놀리기만 했다고 말하면서 헌터의 집으로서 특색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마음 놓고 말한 것은 라미실이 한국말을 못할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달랐다. 이익헌과 교류를 하면서 다져놓은 한국말 솜씨가 꽤 수준급이었던 것이다.

이익헌은 미리 그 얘기를 해 줄까 하다가, '꼭 해 줘야 되나?' 라고 방만하게 생각하다 안 해 줬는데 '역시나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구나.'라면서 한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라미실은 이제나 저제나 칭찬이 나올까 해서 잔뜩 귀를 세우고 있다가 잔뜩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여기 늪은 어떤 식으로 관리가 되려나요? 한국처럼 드론으로 순찰하고 늪을 리드로 덮고 리드에서 정보가 송출되는 시스템일까요? 여기 늪에서도 정보창이 뜨려나요? 그건 영어로 뜨려나? 뭐라고 뜬대요?”

강현이 질문 상대를 특정하지도 않고 말하자 라미실이 곧바로 한국말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강현과 태인, 지우의 얼굴이 동시에 똑같이 창백해졌다.

“이 사람. 우리가 하는 말 전부 들었겠다!”

태인이 말하자 지우와 강현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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