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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11화 (11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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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무슨 얘길 하는 건데요?”

임정이 물었다.

“새 갑옷요. 다른 분들 건 없어요. 아기를 가진 두 분한테만 드리는 특별 선물이예요. 저번에 클랜 A에서 사냥한 세띠 아르마딜로의 등딱지를 재료로 사용해서 방어 증폭률을 대폭 높였어요.”

선아영은 그렇게 말을 해 놓고 이익헌을 보면서 윙크를 했다. 바디 펌에 들어온 세띠 아르마딜로의 등딱지를 꼬불쳐놨다가 익스트림 헌터에 제공하고, 두 사람의 갑옷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바로 이익헌이었다.

“이익헌 부사장님은 확실한 철학을 갖고 계셔서 상대하기가 편해요. 정해진 것도 없이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 잘난 척만 하는 사람들이랑은 확실히 다르거든요. 부사장님은 강한 사람한테 투자가 집중되는 게 낫다고 하셨어요. 매장에 있는 어중이 떠중이한테 이런 물건이 돌아가게 하는 건 죄악이라고 했죠.”

선아영이 어찌나 떠들어댔는지 선아영이 재잘거리는 동안 대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오히려 기쁨을 느꼈다. 지우와 임정, 이익헌만 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먼저 매장으로 돌아가서 필요한 장비와 무기들을 보고 있기로 했다.

선아영은 임정을 내실로 끌고 가서 그곳에서 갑옷을 직접 입혀주었다.

“치안부장님은 이제 움직이는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뒤에서 대비하고 있다가 부상당한 딜러분들을 치료해 주신다고 들었어요.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붓고 피로가 느껴질 때긴 하죠. 그래서 갑옷의 부피와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였고 체온이 갑작스럽게 떨어지지 않도록 그 부분도 신경을 썼어요. 배가 훨씬 편할 거예요.”

선아영은 임정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써서 임정을 보살펴 주었다.

"여기에는 일부러 이렇게 큰 주름을 넣었어요. 움직이는 게 편할 거예요. 긴장 풀고 앉아도 안 보일 거고요. 임산부한테는 편한 게 최고죠. 다른 사람한테 예뻐보일 필요는 없잖아요. 안지우씨 눈에는 세상에서 치안부장님만 보이는 것 같으니까. 부러워요. 저렇게 한 사람밖에 모르는 남자는 처음 봤어요. 어때요? 움직여보세요. 팔도 이렇게 돌려보고. 불편하면 바로 수선을 맡기죠. 미국으로 갈 때까지는 고칠 수 있을 거예요. 어떤 것 같아요?"

임정은 팔을 휘휘 젓고 허리를 돌려보고 다리도 크게 올리면서 걸음을 옮겨 보고는 편하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그것은 임부용 갑옷이었다. 임정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흠잡을 곳 없이 마음에 들었다.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꽤 마음에 들었다. 배에 공간을 두면서도 단단하게 고정시켜서 뱃속에 있는 아기가 적절하게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마음에 드네요. 고마워요."

임정은 진심으로 말했다.

선아영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네요. 잘 어울려요. 레이드에 행운을 빌어요."

선아영이 말했다.

"고마워요. 고마운 마음 안 잊을게요."

밖으로 나갔을 때는 갑옷으로 전신을 감싼 지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임정의 갑옷에서도 느껴졌던 부분이었는데, 갑옷이라고는 하지만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전혀 보이지 않고 세련미가 느껴지는 디자인이었다.

“당신 진짜 예쁜데?”

지우가 임정을 보고 만족해하면서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선물해준 사람을 생각해서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할 줄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세띠 아르마딜로 등딱지를 넘겨주느라고 천 전무님이 한바탕 한 것 같더라고요. 바디 펌의 쓸모없는 능구렁이들하고요.”

선아영이 말했다.

"그 사람들 진짜 웃긴다. 우리가 사냥해서 우리가 판 건데 왜 자기들이 그러는 거지? 아. 팔았으니까 할 말은 없는 건가? 아니. 그래도 그렇지. 다음부터는 바디 펌에 팔지 말고 판로를 달리 모색해 봐야 할까봐요."

임정이 발끈해서 말하자 이익헌이 큰소리로 웃었다.

"제가 가운데에서 잘 할 테니까 다른 데에 팔 생각은 하지 마세요. 클랜 A가 물건을안 주면 바디 펌은 뭘 먹고 삽니까?"

이익헌의 말을 듣고 임정은 바디 펌의 첩자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걸 모르고 한 말이니까 잊어달라고 말했다.

“천 전무님 보면 감사하다는 말은 잊지 않고 해야겠네요. 선대표님도. 감사합니다.”

지우가 말하자 선아영이 손을 저으면서 도망쳤다.

“제가 클랜 A 덕을 얼마나 많이 보는데 그러세요.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예요.”

선아영이 말했다.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클랜 A의 홍보 효과는 정말로 컸다. 게다가 이익헌이 컨설팅 해 준 대로 따라하면서 매출 증대 효과도 크게 보았다. 이제는 외국의 헌터들이 한국에 와서 익스트림 헌터 매장에서 장비와 무기를 싹쓸이해가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되었다.

일단 공격 증폭률과 방어 증폭률을 높여 놓으니 경쟁할 수 있는 제품이 없어져서 어디서든 익스트림 헌터의 제품을 원하게 됐던 것이다. 특히 공격 증폭률을 높인 화살은 전 생산 라인을 풀 가동시키는데도 불구하고 매장에 진열을 하는 것과 동시에 품절이 되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 갑옷들은, 입고서 이동을 하는데도 크게 불편함이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웬만하면 이동을 할 때도 이걸 벗지 않는 방향으로 하세요.”

선아영이 말했다.

임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히 편하기는 했지만 이동을 할 때도 입고 있는 것은 무리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의문을 해소시켜 준 사람은 이익헌이었다.

이익헌은 두 사람이 벗은 갑옷을 정리해서 들고 매장으로 이동하면서 임정과 지우의 가운데에 자리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작은 소리로 속삭이기 시작했다.

“감응기 때문에 강지연 부장의 시름이 대단하다는 것은 아마 알고들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밤에도 잠을 못자고 연구하는 걸 봤어요.”

임정이 말했다.

강지연은 지우의 차크라가 괴수의 차크라와 다르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 두 차크라가 감응기에서 각각 다르게 표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해 왔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일에는 진전이 없었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는데도 두 차크라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결국 한 가지 사실로 귀결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 부장이 걱정하는 게 뭔지 아실 겁니다. 강 부장의 감응기 같은 장비가 미국에 없으라는 법이 없죠. 강 부장은 미국에 원정을 나갔다가 안지우씨와 태아가 그 사람들의 레이더에 걸리게 될까봐 걱정하는 겁니다. 이 갑옷은 턱이 빠질만큼 엄청난 방어증폭률을 자랑하는 장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목적이 더 큽니다."

이익헌이 말을 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그 목적이라는 게 뭐냐고 물으려다가 지우는 입을 다물었다.

"이 갑옷의 목적은 차크라를 숨기는 데에 있습니다. 안지우씨와 태아의 차크라를 말이죠. 이 갑옷을 입고 있으면 두 사람에게서 모두 헌터 차크라가 감지될 겁니다. 치안부장님한테서는 처음부터 헌터 차크라가 감지되겠지요. 하지만.”

임정은 이익헌의 말을 들으면서 배를 손으로 감쌌다. 아이의 차크라가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손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이 되었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두 분이 갑옷을 입는 동안 감응기로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갑옷은 완벽하게 만들어졌어요."

그 말에 임정과 지우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임정의 손을 쥔 지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

강지연의 입에서는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부장실에 갑자기 출몰한 천기정은 자기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책상에 얼굴을 붙인 채 한숨을 쉬고 있는 강지연을 보고 웃으면서 다시 문에 노크를 했다. 강지연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것도 없었고 미안하다는 기색도 없었다.

천기정은 피식 웃으면서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제멋대로 소파에 앉았다.

“걱정이 깊은 얼굴이네요.”

천기정이 말했다.

“미치기 직전이예요.”

“잘 전달했다고 선 대표한테서 연락 왔어요.”

“정말요? 설명도 잘 했대요?”

“네. 그건 이 부사장님이 더 자세하게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흐우우.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강지연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다시 얼굴을 책상에 파묻었다.

“강 부장님은 할 만큼 한 겁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두 차크라 간에 차이점이 없었다면. 그 두 차크라는 같은 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그동안 너무 고집을 부렸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안지우씨한테서 나타나는 차크라는 괴수 차크라가 맞는 건지도 몰라요. 아마 맞을 겁니다.”

“…….”

“그래도 우리는 안지우씨의 증인이잖습니까. 안지우씨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극단적으로 인간다운 사람인지 알잖습니까. 그런데 안지우씨의 차크라가 괴수의 차크라와 같다고 해서 갑자기 안지우씨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가요?”

“……. 제가 걱정하는 게 그거예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요.”

“그때는 우리가 우리 목소리를 높이자고요. 안지우씨는 당신들같은 괴물을 살려내려고 자기 살을 깎으면서 최고가 된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해주자고요.”

“전무님은 무섭지 않으세요?”

“뭐가요?”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 편에 서는 거요.”

“괴물들이 싫어하는 사람 편에 서는 게 아니고요?”

“그런가요? 그 사람들이야말로 괴물인 거군요.”

“나는 그런 사람들 옆에 남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괴물들이 나를 동료로 여기기를 바라지도 않고요. 안지우씨 때문에 나는 꽤 재미있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요. 이 나이에 전무도 해 보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살아왔는지 모르실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요. 이렇게 한숨짓고 기운없어 하는 모습은 강 부장님한테 안 어울립니다. 이번 일은 정말 잘 하셨어요. 그 얘기 하려고 왔어요. 선 대표님 말로는 두 사람이 갑옷을 입고 나가면서 감응기에 반응했는데 두 사람 모두에게서 완전한 헌터 차크라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다행이네요. 갑옷에 입힌 의사차크라 방류물질이 제 역할을 해 준 거군요.”

“성공적이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이예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천기정은 다시 한 번 강지연을 격려하고 강지연의 집무실을 떠났다.

***

비행기가 활주로를 가로질러가다가 드디어 날아올랐다. 강현은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붙이고 점점 더 멀어지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와, 진짜 대단하다.”

강현이 말했다.

천기정이 준비해준 것이기는 하지만 천기정의 손에서 최종 결재가 났다는 것 뿐이지 그 돈은 자기들이 벌어서 산 거라는 생각에 새삼스럽게 감격이 밀려 들었다.

“벌기만 하고 쓸 일이 없으니까 우리 강현이가 이래요.”

태연이 말했다.

“형. 진짜예요. 여기에 지금 우리만 타고 있잖아요. 나는 우리 개인 비행기라고 해서 조그만 건 줄 알았다고요.”

“이만하면 조그맣지.”

“조그맣긴 뭐가요! 여기서부터 끝까지 구르면 백 바퀴는 구르겠구만.”

“그래. 실컷 굴러다녀라.”

강현은 태인이 상대해주지 않자 이번에는 지우와 임정 사이에 끼어 들어서 또 부지런히 떠들어댔다.

“우리는 잘 거니까 다른 데 가서 놀아.”

강현은 거기에서도 찬밥 신세였다.

하는 수 없이 이리저리 떠돌다가, 좌석을 뜯어내고 널찍한 공간을 마음껏 활용해서 쾌적한 응접실 분위기를 만들어 놓은 곳으로 가서 강현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진 소파에 몸을 던졌다.

하필 거기에 먼저 와 있던 강지연과 눈이 마주쳐버리기는 했지만 강현이 도망치려고 하자 강지연이 경고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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