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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그럼 서둘러볼까?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일정이 나름대로 빡빡하니까.”
이익헌이 재촉을 하자 클랜 A의 클랜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규태도 일을 처리하고 클랜 A와 합류했다.
“익스트림 헌터에 가서 무기를 둘러보고 각자 훈련을 마무리짓는 의미로 레이드를 한 번 가볍게 뛰는 걸로 오늘의 일정은 끝날 거예요. 그리고 이틀 후의 출국과 1급 괴수의 레이드에 대비를 하면 되는 거고요.”
이동하는 도중에 이익헌이 말했다.
1급 괴수의 공략은 A급 헌터들인 라미실, 해리와 함께 이익헌이 성사시킨 일이었다. 라미실과 해리는 사실, 다른 일로 이익헌에게 접촉을 해왔었다. 그들은 A급 헌터로서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1급 괴수를 공략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익헌에게 스트레스 해소나 하자고 제안을 해 왔던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스트레스 해소라는 게 뭔지는 분명했다. 하지만 이익헌은 이제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잘라 말했다.
라미실과 해리는 이익헌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익헌이 그들로부터 받는 보수나 정보가 적다고 생각해서 협상을 시도하는 거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평소에는 잘 뭉치지 못하는 세 인간, 라미실과 해리, 그리고 브뤼가 이익헌을 설득하기 위해서 오랜만에 거국적으로 뭉쳐서 이익헌에게 압박을 가해 왔다. 자신들은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헌터들이고 자기들이 자연스럽게 욕망을 분출하는 것은 전 인류를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하기까지 했다.
평소의 이익헌이라면 그렇게 구구절절한 말이 나오기 전에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해 주었을 것이다. 사람을 공격하고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미디어를 통해 알 수 있게 해 주는 일은 익헌에게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선아영이 겪은 고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선아영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사람이 자기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천기정도 있었다. 하마터면 자신에 의해서 죽을 뻔 했지만 천기정이 살아나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십 번씩 하곤 했다.
그는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에 대해서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었다. 그런 것에 관심이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관심이 갔고, 그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과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소망을 품고 있었다. 자기가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게 있다는 것이 좋았고 그들을 위해서 힘을 써 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어렵게 얻은,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얻은 동료들이었고 믿음이었다. 다시 그것을 망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익헌이 의외로 강경하게 나오자 A급 헌터들은 당황했다. 특히 브뤼의 반발이 거셌다. 브뤼는 이제 와서 이익헌 혼자만 이 일에서 빠질 수는 없을 거라면서 이익헌을 거친 말로 협박하기까지 했다. 이익헌이 지금까지 저질러왔던 일들을 한국 언론에 공개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하면서 광분해서 소리를 쳤다.
"브뤼.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도 않고 개소리만 하는 쓰레기 새끼야. 지금 네가 나를 협박할 처지가 아니야. 사실은 너희도 감시당하고 있다고. 이 멍청한 새끼들아."
이익헌은 자신의 상황을 조금 과장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많은 부분이 거짓으로 가려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미 한참 전에 붙잡혔어. 대한민국 치안대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알아? 거기에서는 벌써 내 짓이라는 걸 다 알고 나를 감시하다가 나를 잡아들였다고. 그런데 왜 나를 살려준 줄 알아? 그건 단지, 내가 아직 쓸모있다는 이유 때문이야. 내가 팔을 갈아 끼워가면서 괴수를 사냥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나를 이용하는 거지. 그 사람들은 내 국물을 쪽쪽 다 빨아먹고, 내가 쓸모없어질 때까지 이용하다가 결국에는 나를 사형대로 보내버릴 거야. 지금도 내 몸 안에는 폭탄이 들어 있어. 그리고 여러 사람이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스위치를 나눠가지고 있고 수시로 그걸로 협박을 한다고. 그런데 지금 그런 나한테 브뤼 네가 협박을 한다는 거야, 이 미친 놈아? 나는 그동안 너희들에 대한 의리로 입을 다물고 있었어. 애초에 이런 쓰레기같은 바닥에서 만난 인간들끼리 의리를 논할 것도 아니지만 나는 의리를 지켰다고!"
그 말에 브뤼는 물론이고 같이 이익헌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해리와 라미실도 기겁을 했다.
"한국 치안대가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알게 된 건데?"
주저주저하면서 해리가 물었다.
"이 사람들은 머리를 쓰니까 그렇지. 머리를 똥 대신 뇌로 채우고 있고! 머리에 똥만 차 있는 너희들이랑은 다르다고, 이 개새끼들아."
이익헌의 말에 그들은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먼저 백기를 든 것은 해리였다. 그러면서 해리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굉장히 안좋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 미친 놈의 1급 괴수들이 왜 미국에서만 튀어나오는지 모르겠어. 왜 이 늪들만 성장을 하느냐고. 관심이 집중되잖아. 브뤼같은 멍청이가 부러울 정도야. 저 자식은 우리보다 더 무능력한 새낀데도 그게 잘 드러나지 않잖아. 우리는 지금 상어 아가리로 떨어지라고 강요받고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야. 미칠 것 같다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1급 괴수가 출몰하기 전에 미쳐서 자살해 버릴지도 몰라. 리이큰. 뭔가가 필요하다고. 도와줘, 이큰. 한국에는 1급 괴수를 공략한 공대가 있잖아. 그 사람들을 소개해 줘."
리이큰.
몇년이나 연습을 시켰어도 이익헌이라는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말에 이익헌은 머리를 굴렸다.
예쁘게 꽃단장된 클랜 A를 이제 국제 무대에 등장시킬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위험부담이 컸다면 익헌도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우가 A급 헌터가 되고 클랜 A는 연달아 세 차례나 1급 괴수의 공략에 성공했다.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에 세 번밖에 못 한 것이지 이제 클랜 A가 1급 괴수를 처리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한국의 1급 늪은 아직 성장을 시작하지 않았다. 오픈일이 다가오는 늪이 없다는 의미였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성장을 새롭게 시작한 1급 늪이 두 개 더 발견되었다. 미국을 떠나려는 미국인들도 늘어나고 있었고 미국을 떠날 수 없는 미국인들은 성장하는 1급 늪이 나타난 곳에서 가능한한 먼 곳으로 대피했다. 사람들은 평온을 잃은지 오래였고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지쳐가고 있었다.
이익헌의 머리가 어떻게 돌아갔을지는 뻔한 거였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많은 것을 얻어올 수 있는 기회인데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클랜 A는 자신감으로 고취되어 있었다. 1급 괴수란 더이상 그들에게 두렵거나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떠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지는 것은 싫었다. 쓸데없이 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라미실과 해리, 브뤼같은 패배자들은 남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건 기사나 들추면서 자위를 하겠지만 자신은 세상을 바꿀 수가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팀과 함께 괴수들에게, 정복과 파괴를 꿈꾸는 괴수들에게 파이널급의 빅엿을 먹여주리라는 생각에 이익헌은 마구 흥분이 된 것이다.
미국 정부와의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해리와 라미실은 클랜 A에게 레이드를 맡기면서 그 사이에서 커미션을 챙길 계획을 가졌던 듯했지만 그 계획은 이익헌에 의해서 사전에 차단되었다. 커미션은 커녕, 두 사람의 A급 헌터들은 클랜 A에 각각 천 만 달러씩을 내야했다.
너희들이 나서면 분명히 죽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는 대가로 너희들도 감사의 마음을 표해보라는 이익헌의 말에 넘어간 것이다. 이익헌이 어떤 인간인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기에 해리와 라미실은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돈을 건넸다.
클랜 A가 1급 괴수의 공략을 시도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받게 되는 돈이 2천억이었고 괴수의 체력을 십 퍼센트 깎아낼 때마다 50억의 보너스를 받게 되었다. 어차피 그들이 공략에 실패하고 나오면 괴수의 체력은 리셋되는 거였지만 그렇게 해서 성공의 의지를 높이고 싶은 것이 미국 정부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와 끝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할 뻔 했던 것은 헌터의 인원 문제였다. 그들은 클랜 A의 모든 클랜원들을 받아들이는데는 이견이 없었지만, 열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늪에 여섯 명만 들여보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클랜 A의 입장은 명확했다. 클랜 A의 클랜원 이외의 헌터를 더 들여서 싸우면 클랜 A의 딜러중 한 사람이 탱커로 전향을 해야 하고, 그때의 전력 손실이 더 크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의 클랜원들끼리라면 옆에서 나는 발소리나 바람소리만 듣고도 서로의 습관으로 동선을 예측할 수 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호흡을 맞추다보면 그런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피력했다. 어차피 클랜 A가 급할 것은 전혀 없었기에 미국 측에서는 그 입장을 받아들였다. 그들로서는, 딜러가 탱커로 전향을 한다는 말 자체도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런 설명을 요구할만큼 한가하지가 않았다. 혹시라도 클랜 A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 해서 노심초사할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프랑스에서도 성장하는 1급 늪이 나타난 탓에 이제는 브뤼도 강 건너 불구경 할 입장이 못 되었다.
바로 그 일로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익스트림 헌터로 가려고 준비중이었다. 1급 괴수의 공략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익스트림 헌터에서 자기들에게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최종적으로 확보할 생각들이었다.
일단 이익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전신을 가리는 투구와 갑옷이었다. 그래서 이익헌은 익스트림 헌터에 가면 꼭, 촘촘한 쇠그물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투구를 살 생각이었다. 어차피 늪 안에서는 쓰고 있을 필요가 없을 테니 눈 앞이 잘 안 보인다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A급 헌터 모두는 클랜 A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클랜 A가 공략에 실패한다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그들이 투입되어야 하는 거였는데 그들은 이미 그보다 체력이 낮은 괴수를 공략하는데 실패한 전력이 있었다. 클랜 A에 A급 헌터가 있다는 것은 아직 알리지 않았지만 그 사실이 외부로 번져나갈 가능성은 높았다.
바디 펌과 헌터 협회, 치안대가 각각 클랜 A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지금까지는 정보가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었지만 끝까지 그 사실을 비밀로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거라는 점에 모두들 인식을 같이 하고 있었다.
지우는 캐츠 아이 스톤을 더 찾게 되기를 바랐지만 지우가 우연히 캐츠 아이 스톤을 얻게 된 이후로 다시 행운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클랜 A가 익스트림 헌터에 도착했을 때 매장안에 있던 사람들이 임정을 알아보고 다가오려고 했지만 강현이 집중 마크를 했다. 그들은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곧장 선아영 대표가 기다리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선아영은 지우의 헌터 타투를 구경하더니 정말 축하한다고 몇 번이나 거듭해서 말했다.
선아영은 목표를 바꿔서 임정에게 다가가더니 거리낌없이 임정의 배를 만졌다.
“딱 적당하네요. 사람을 보내서 칫수를 재게 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았고. 잘 맞을 것 같아요.”
선아영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