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109화 (10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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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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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초일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라고 하기는 하지만 2BE라는 일개 회사의 신제품 발표회를 고궁에서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2BE의 고궁 사용에 대한 반대 시위가 연일 열렸지만 발표회는 예정대로 열렸다. 궁궐에서 각기 성격이 다른 단체가 주최하는 만찬이 열리는 동안 시민들이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도, 자신들에게 그만한 권리가 있다고 믿고 추진하는 사람들은 절차상의 하자를 피해가면서 강행을 해 왔다.

만찬 이후에 문화재 훼손 논란이 일어나도 논란이 채 수그러들기도 전에 또다른 단체, 또다른 협회에서 고궁에서 모임을 갖고 음주가무와 흡연을 즐기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그런 전례들이 있다보니 2BE의 신제품 발표회 이벤트에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가 어려워진 듯했다.

신제품 발표회가 예정되어 있던 날.

창경궁 앞은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당사 최대 규모의 이벤트에 세계 각국의 미디어들이 몰려들었고 현장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발표회가 생중계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진 후 시원해질 거라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발표회를 기대하는 열기는 뜨거웠고 2BE의 신제품에 대한 소식은 지구촌의 공통 화두가 되었다.

착용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번 신제품은 타투의 형식으로 인체에 새겨지게 될 거라는 소문만 무성했지 아직 신제품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타투 형식의 신제품을 인체에 새긴 후에는 따로 충전을 할 필요도 없고 본인임을 인증하기 위한 번거로운 절차도 사라질 거라면서 사람들은 미리부터 엄청난 기대감을 보이고 있었다.

‘상상할 수 없었기에 원할 수도 없었던 세계가 열린다. 갈증하라!’

2BE는 신제품에 대한 힌트는 전혀 주지 않은 채 벌써 몇 달째 그런 식의 광고를 계속 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신제품이 베일을 벗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날이 다가온 것이다.

얼리 아답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날이 빨리 다가오면 좋겠다고 은근히 기대를 하게 되었다. 그 날이 되면 정말로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 같다는 사람들도 생겨날 정도였다. 제품 하나의 등장으로 세상이 바뀌지야 않겠지만 지속적으로 나오는 광고를 들으면서 거의 최면에 걸릴 지경이 되었는지 사람들은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가면서 기다렸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각국의 미디어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른 시간부터 고궁 앞으로 몰려들었다.

각 프로그램의 리포터들은 고궁을 배경으로 중계를 하고 있었다. 현장의 상황이 실시간으로 기사로 작성되었다.

이벤트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입장이 허락된 사람의 수는 천 오백명 안팎으로 추산되었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아졌다. 그들은 바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현장의 가까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자위하며 애써 실망감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표정들이었다.

들어가고 싶지만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발표회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사람들이 행사장으로 입장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인기 밴드의 공연으로 현장의 분위기는 한껏 더 뜨겁게 달구어졌다.

래퍼가 속사포로 쏟아낸 가사는 2BE의 신제품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과, 2BE가 만들어낸 신제품에 대한 찬사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래퍼의 랩이 점점 더 빨라지면서 사람들의 호응이 극에 달할 즈음 래퍼가 박수를 유도하며 누군가를 맞이하려는 듯 무대 뒤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의 환영을 받으며 2BE의 CEO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열렬한 환호성을 보냈다.

중후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2BE의 CEO가 말했다.

“온다. 세상에 없던, ‘바로 그’”

‘바로 그’는 2BE의 신제품 이름이었다.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며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그것이 드디어 사람들의 눈앞에 정체를 드러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갈증하라!!”

그가 소리를 높이며 한 손을 위로 쳐올리자 모두가 뜨거운 함성을 내질렀다.

그는 스크린을 향해 손을 펼쳤다. 무대 뒤에 세워진 대형 스크린에 검은 화면이 채워졌다. 어느새 무대에는  2BE의 CEO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짧게 환영의 말을 하고, 더 이상 당신들을 고문하지 않겠다는 말로 사람들을 웃기더니 화면으로 ‘바로 그’를 만나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뚫어져라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스크린 뒤에 있던 늪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웅장한 음악은 이제 클라이막스로 치달았다. 스크린이 찢어지기 직전, 수면을 뚫고 괴수가 뛰어올랐을 때 엄청난 물보라가 생겨났지만 그것은 스크린에 가려 누구의 시선도 끌지 못했다.

‘바로 그’의 모습이 공개되려는 그 순간 스크린이 찢어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이벤트였기에, 그리고 그동안 2BE가 사람들을 놀래는 재주를 여러 번 증명해 보여왔기에 사람들은 그것도 이미 준비되었던 쇼라고 생각을 했다.

화면이 찢어지면서 튀어나온 것은 간이무대를 혼자서 차지할만한 크기의 괴수였다.

표범과 늑대를 혼합해 놓은 것 같은 괴수는 당당하게 그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짓궂기는 하지만 그것을 2BE의 블랙코메디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아직도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괴수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2BE의 CEO에게 달려들어 옆구리를 물어 뜯었을 때 사람들의 얼굴에는 일말의 당혹감이 비쳤다.

괴수는 카메라를 그 다음 목표물로 삼았다. 덕분에 생중계로 현장의 소식을 접하고 있던 수 천 만명의 사람들이, 괴수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다른 이유로 미칠 듯이 흥분해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공포에 내던져진 채 발악을 하며 도망치려 했다. 낯선 곳에서, 패닉에 빠진 무리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다.

괴수는 날뛰면서 사람들을 함부로 휘갈켜댔다.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고 죽음의 공포가 그들을 덮었다. 늪 아래에 조용히 갇혀 있어야 할 괴수가 어떻게 세상으로 뛰쳐나온 건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헌터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패닉에 빠진 군중들과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며 다가왔다. 치안 1부장 서규태가 이끄는 치안대였다. 그들은 괴수를 향해 달려가 괴수의 퇴로를 차단했다.

그 순간 중계되던 화면의 송출이 중단됐다. 치안대는 서규태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몸이 푸른 잔상으로 덮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순식간이었다. 도저히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느 순간 괴수를 에워싸고 있었다.

서규태가 괴수에게 딜을 넣었다. 괴수는 가장 약한 사람이 누군지를 알아보려는 듯이 여기 저기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틈은 만들어지지 않았고 서규태의 손에 쉽게 제압당해버렸다.

애초에 5급 괴수일 뿐이었다. 서규태가 거느린 최정예 치안대원들로 몇 시간 내에 제압할 수 있었다. 서규태가 손에 들고 있던 날카로운 칼을 괴수의 목에 박아 넣어 가르는 동안 괴수는 더 이상 저항을 하지도 못했다.

괴수에게서 미동도 느껴지지 않을 무렵, 치안대원 한 사람이 무대 뒤로 달려갔다. 원래 늪이 있던 곳이었다. 사라진 리드 때문에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서규태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일반인의 통행이 자유롭지 않은 고궁 뒤편에 생겨난 늪은, 주위의 연못들 사이에서 쉽게 구분이 되지 않았다. 드론이 상시 순찰하던 곳이었지만 관광객들에게 불필요하게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문화재청의 반발로 고궁 안은 문화재청에서 관리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관광객에 의해서 늪이 신고되었고 헌터 협회에서는 즉시 출동을 해서 늪에 리드를 덮고 늪을 관리해 왔었다.

리드가 사라진 것이 언제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2BE의 신제품 발표회와 연관이 있는지는 좀 더 확인을 해 봐야했지만 서규태는 안전 불감증으로 이 사태를 초래한 사람을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치안대가 일을 마쳤을 즈음 클랜 A가 도착했다. 놀란 얼굴의 클랜원들을, 서규태가 안심시켰다.

“전부 끝났습니다. 늦었네요.”

서규태가 웃으면서 말했다.

“2급 괴수를 사냥하던 중이었어요. 늪에서 나오고야 소식을 들었고요.”

지우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치안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늪이 자라고 그곳에서 괴수가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그것은 헌터 협회와 치안대의 관리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방증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 거죠? 헌터 협회와 치안대에서 늪의 존재를 놓쳤다는 말인가요?”

지우가 물었다.

“고궁을 관리하는 측에서 일부러 그런 것 같습니다. 2BE의 신제품 발표회 때문에 고궁 안에 늪이 있다는 사실을 일부러 숨기려고 한 것 같아요.”

“그래도 늪의 오픈일이 다가온 걸 헌터 협회에서 어떻게 모를 수가 있죠?”

“누군가 리드를 없애고 헌터 협회에 접속해서 데이트를 조작한 것 같습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네요. 구조적으로 썩었다는 뜻이니까.”

이익헌의 말에 서규태는 치안 1부장으로서 책임을 느꼈다.

“죽겠다고 설치는 놈들한테 방법이 있겠습니까? 그런 놈들은 죽으라고 놔두는 수밖에 없죠.”

이익헌이 말했다.

“문제는 그런 사정을 모르고 왔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잖아요.”

태인이 말하자 지우와 강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드론의 순찰에는 어떤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못하게 할 겁니다. 이렇게 방치되고 있는 늪이 얼마나 될지 모르니까 당분간은 드론을 평소보다 더 많이 띄워서 헌터 협회의 통제에서 벗어난 늪을 찾아내는데 주력해야 되겠어요.”

서규태의 지시에 의해 평소보다 두 배 가량이나 많은 드론이 띄워졌고 드론은 엄청난 수의 늪을 발견해 헌터 협회에 정보를 보냈다. 덕분에 헌터 협회 직원들은 전에 없이 바쁜 날들을 보냈다. 누구든 헌터 협회의 데이터를 조작하다가 발견되는 사람이 있으면 엄벌에 처해질 거라는 경고도 주어졌다. 일탈을 감행하려는 몇 몇 사람에 의해서 헌터, 특히 치안대원들이 목숨을 위협받기도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치안대는 서규태가 치안 1부장이 된 이후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협회장과 임정이 생각했던 것처럼, 써전 출신의 헌터가 치안 1부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사체 운반 헌터들은 좋은 식으로 자극을 받았다. 레이더들과의 갈등도 눈에 띄게 줄었다.

사체 운반 헌터에 대해서 모욕적인 발언을 하는 레이더가 생겨나면 서규태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다. 그게 개인에 대한 모욕이라면 얼마든지 참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게 얼마나 사체 운반 헌터들에게 상처가 되는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처벌의 수위를 높이고 엄격하게 처벌을 하곤 했다.

치안 1부장은 관용을 베풀어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박혀서 사람들은 서규태에게 걸리면 협상 시도를 처음부터 포기했다.

"떠날 준비는 잘 돼 가고 있는 거죠?"

이익헌이 묻자 서규태는 말할 것도 없다면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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