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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A급 헌터
이게 가장 약한 1급 괴수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거대한 세띠 아르마딜로는 1급 괴수면서도 체력은 7천만밖에 되지 않았다. 체력이 낮은 괴수 순으로 정렬을 했을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띠 아르마딜로의 낮은 체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녀석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공대가 없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리고 지금 클랜 A는 그 문제가 뭔지를 정확하게 알아가고 있었다.
세띠 아르마딜로는 축구장 세 개를 이어붙인 것 만한 크기였지만 지금은 그 크기가 3분의 일 정도로 줄어 있었다. 몸을 공처럼 바짝 말고 있어서다.
레이드를 시작한지 40분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정보창의 숫자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타이머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괴수의 체력은 1의 손실도 없었던 것이다.
거대한 세띠 아르마딜로는 자연에 존재하는 세띠 아르마딜로의 변종이었으면서도 여러 면에서 세띠 아르마딜로의 특질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특히 총알도 튕겨나가게 하는 단단한 등딱지가 문제였다.
거대한 세띠 아르마딜로는 단단한 골질의 등딱지로 감싸진 괴수였다. 몸의 중간 부위에 띠가 세 개라서 붙여진 이름이 세띠 아르마딜로였다.
늪 아래의 괴수가 아닌 자연계의 세띠 아르마딜로도 사람들에게 까다로운 존재였다. 세띠 아르마딜로의 강한 등딱지 때문에 세띠 아르마딜로에게 총을 쏜 사람이 등딱지를 맞고 튕겨나온 총알에 맞아서 총상을 입는 사고가 가끔 일어났다. 병을 전염시키고 농작물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세띠 아르마딜로는 애초에 인간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할 팔자였다.
운전자가 세띠 아르마딜로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차로 세띠 아르마딜로를 깔고 지나갔다가 타이어가 터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자연계의 세띠 아르마딜로도 그 정돈데 그 변종인 거대한 세띠 아르마딜로 괴수가 어떨 거라는 것은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늪 아래에서 마주친 세띠 아르마딜로는 그야말로 철벽 수비 그 자체였다. 화살은 말할 것도 없고, 검도 도끼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세띠 아르마딜로는 단단한 등껍질을 밖으로 하고 몸을 공 모양으로 완전히 동글게 말 수가 있었다. 그 점에서는 쥐며느리랑 비슷했는데 등껍질의 단단한 정도는 쥐며느리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활도 검도 도끼도, 어떤 것도 아르마딜로에게 먹히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버티다가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차크라만 소모하고 후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태인이 다시 달려들어서 손도끼로 내리찍었지만 불꽃이 튀어 오를 뿐, 공격은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팔꿈치부터 어깨까지 찌르르한 통증이 밀려들 뿐이었다.
“팔 나가겠다. 이러다가. 안 되겠어.”
태인이 팔을 흔들면서 말했다.
“이러다가는 끝이 없겠어요. 데미지를 조금도 안 입어요.”
강현이 정보창을 보면서 말했다.
“A급 헌터님. 이제 뭐든지 좀 해 봐요.”
이익헌이 지우를 보며 말했다. 지우는 적극적으로 공격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아까부터 이리 저리 이동하면서 세띠 아르마딜로의 외관을 살피는 중이었다.
“뭘 보고 있는 거예요?”
임정이 물었다.
“어디가 머리고 어디가 엉덩인지.”
“그건 왜요?”
“거길 벌리면 펴질 테니까. 저 단단한 공을 일단 펴야 공격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세띠 아르마딜로는 누가 제 몸을 펴려는 시도만 하면 둥글게 말린 몸을 굴려 쏜살같이 달아나버리곤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얼굴을 내밀고 무시무시한 혀와 이빨로 기습 공격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렇게 하죠. 세띠 아르마딜로의 몸을 강제로 펴게 할 테니까 그때 일제히 공격을 하는 거예요. 아예 반대로 계속 꺾어버리면 몇 분 정도는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지우가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절대로 쉬워보이는 일은 아니었다.
세띠 아르마딜로가 만들고 있는 공은 반지름만 해도 지우의 몸의 열 배가 넘었다. 그것을 강제로 벌린다는 것은 아무리 지우라고 해도 결코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심해요. 아르마딜로의 이빨은 강해요. 갑자기 아르마딜로가 얼굴을 내보이면서 물어뜯으려고 할 수도 있다고요.”
임정이 말했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심호흡을 했다.
세띠 아르마딜로는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 헌터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녀석은 헌터들도 이제 슬슬 포기를 하고 자신을 무시하고 떠나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지우는 세띠 아르마딜로의 주위를 이리 저리 돌아다니면서 어떤 게 띠고 어떤 게 머리와 엉덩이가 이어진 부분인지 살핀 끝에 엉덩이라고 생각되는 쪽을 발견했다.
“써전님이 도와주세요.”
지우가 서규태를 바라보며 말하자 서규태가 지우에게 다가갔다.
“이쪽이 엉덩이일 거예요. 써전님이 그쪽을 잡아주세요. 제가 이쪽을 잡아당길게요. 일단 펴지기만 하면 이 녀석도 공모양을 유지하는 걸 포기할 거예요. 그 다음에는 갑자기 공세로 전환할 수 있을 테니까 써전님은 바로 피하세요. 그 다음부터는 제가 할게요.”
써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을 지우에게만 맡기는 것이 미안하기는 했지만 지우 혼자 수행하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괜히 돕겠다고 나섰다가 거치적거리기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규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 하고, 자기가 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쿨하게 손을 떼는 것이 지우를 돕는 방법이라는 것을 완전히 깨닫고 있었다.
“틈이 보여도 바로 공격을 하지는 마세요. 아르마딜로가 요동치면 힘들어지니까 간단하게 치명상을 입히고 그때부터 집중적으로 공격을 하는 걸로 하죠. 일단 몸을 펴게 할 수만 있으면 치명상을 입히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이제 시작할 테니까 모두들 차크라를 모아주세요. 아르마딜로가 치명상을 입으면 그때부터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계속해서 공격을 하는 거예요.”
지우의 말에 모두가 무기를 고쳐잡으며 때만 기다렸다. 지우가 서규태에게 눈으로 신호를 주자 서규태가 고개를 끄덕이고 세띠 아르마딜로에게 다가섰다. 서규태가 세띠 아르마딜로의 머리와 엉덩이 사이의 틈에 손을 집어 넣고 엉덩이쪽의 등껍질을 힘주어 잡자 지우가 반대쪽을 잡아 끌면서 힘을 주었다.
지우의 손에서 붉은 차크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흐으으아아아아압!!”
강제로 몸이 펴지면서 놀란 세띠 아르마딜로가 지우를 노렸다. 세띠 아르마딜로 괴수가 자연의 일반 아르마딜로와 다른 점은 바로 그 얼굴이었다. 세띠 아르마딜로의 얼굴은 흉측했고 정면을 노려보는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두 갈래로 갈라진 혀가 칼날처럼 지우의 몸을 겨냥하고 날아들었을 때 임정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손으로 세띠 아르마딜로의 얼굴을 공격할 수는 있었지만 그러다가는 기껏 벌려놓은 몸이 다시 둥글게 말릴 것 같아서 지우는 기회를 노리면서 세띠 아르마딜로의 공격을 피하기만 하고 있었다.
세띠 아르마딜로가 혀를 내민 순간은 찰나였지만 입이 벌어지는 그 순간을 이익헌은 놓치지 않았다.
“받아!”
이익헌이 소리쳤다.
론 디어가 부웅 부웅 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지우가 론 디어를 받았지만 날아온 속도가 느려서 지우는 세띠 아르마딜로의 혀 공격을 적시에 피할 수가 없었다.
론 디어를 받으려고 팔을 들어올린 그 순간에 세띠 아르마딜로의 혀가 지우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이제는 세띠 아르마딜로의 몸을 잡는 거고 뭐고 일단은 살고 보자는 생각에 지우가 재빨리 몸을 날리려는 순간, 세띠 아르마딜로의 혀가 그대로 멈추었다.
순식간에 다시 상처가 회복되기는 했지만 세띠 아르마딜로의 혀에 론 디어가 꽂혀 있었다. 시간 차를 두고 두 개의 론 디어가 동시에 날아왔던 듯했다.
이익헌을 바라보자 이익헌이 씨익 웃는 게 보였다. 이익헌은 동료에게조차 페이크를 쓰면서, 동료가 론 디어를 받으면서 몸을 피하도록 해 놓고 자기가 직접 세띠 아르마딜로를 공격했던 것이다.
“이번엔 진짜야. 잘 받아.”
이익헌은 엑스 블레이드를 던져주었다. 이번엔 진짜라는 말은 이번에도 페이크였던 듯했다.
‘받으라더니!’
지우는 손을 활짝 펼치고 엑스 블레이드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엑스 블레이드는 공중에서 몇 바퀴를 돌더니 강제로 펼쳐진 세띠 아르마딜로의 부드러운 배에 강하게 꽂혔다.
세띠 아르마딜로는 몸부림을 쳤고 서규태는 어쩔 수 없이 세띠 아르마딜로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럴 때는 괴수가 적인지 이익헌이 적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지만 지우는 엑스 블레이드가 꽂혀 있는 배로 뛰어내려가서 칼을 빼냈다.
세띠 아르마딜로는 누운 채로 지우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잠들어줘.”
지우가 치켜든 엑스 블레이드가 세띠 아르마딜로의 얼굴에 정통으로 꽂혔다. 그것을 신호로 한꺼번에 모든 헌터들이 세띠 아르마딜로의 위로 뛰어 올랐다. 세띠 아르마딜로의 성벽은 견고했지만 일단 그것이 무너진 후에는 식은 죽 먹기였다.
지우는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 기회를 내 주려다가 태인과 눈이 마주쳤다.
“뭐해, A급? 힘 내라고. 한 방이면 만 이천이잖아!”
그 말에 정신이 들었다. 서규태가 세띠 아르마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다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텐텐이 세상에. 이제 한 방으로 만 이천이라니.”
강현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말에 지우도 정신이 퍼뜩 들어서 딜을 부었다.
정보창은 마치 고장이라도 일으킨 것 같았다. 숫자가 멈춰있을 틈이 없이 계속해서 바뀌었다.
지우는 생각 같아서는 거추장스러운 무기는 내던져버리고 주먹으로 연타를 날리고 싶었는데 무기의 공격 증폭률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지우는, 엑스 블레이드는 놔두고 이익헌과 같이 론 디어로 공격을 해대고 있었다.
“회복하고 있어요.”
강현이 세띠 아르마딜로의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채고 경계했고 지우의 손짓에 맞춰서 모두가 세띠 아르마딜로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세띠 아르마딜로는 어떻게 해서든 다시 몸을 말고 숨으려고 했지만 지우가 세띠 아르마딜로의 배 위에 버티고 서서 세띠 아르마딜로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덕분에 다른 헌터들은 그 사이에 차크라를 회복할 수가 있었다. 한 번의 고된 레이드 이후에 곧바로 1급 괴수를 공략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약물에 중독된 것처럼 흥분된 상태였다. 1급 괴수의 공략, 드디어 그 일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몇 번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었고, 강현이 소리를 높여 말했다.
“아르마딜로 체력이 이제 6만 남았어요. 6만요. 한 번에 끝내겠어요.”
헌터들은 그 말을 듣고도 제대로 믿지 못했다. 믿지 못하면서도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사냥이 끝이 났다. 세띠 아르마딜로는 거대한 몸을 편 채로 장렬하게 숨을 거두었다.
1급 괴수를 상대로, 한 사람은 임산부에 치유 전담으로 빠져 있고 다섯 명의 딜러가 싸웠는데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이건 진짜. 회수해야 돼.”
이익헌은 세띠 아르마딜로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천기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띠 아르마딜로를 죽였습니다. 써전들이랑 사체 운반 헌터들을 보내요. 이건 하나도 남겨선 안 됩니다. 전부 다 가지고 나가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