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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100화 (1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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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그렇죠. 레이더들도 불필요하게 사체 운반 헌터들을 자극하는 일이 줄어들 거고요.”

임정이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협회장의 말을 놓치지 않고 살려냈다.

“잘만 된다면 이거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는 건데 말입니다.”

협회장이 말했다.

“그리고 말씀드릴 게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임정이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안지우씨의 늪이 발견됐던 아파트요. 계속 연구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아마 아닐 겁니다. 왜 그러시죠?”

“거길 저희 클랜에서 사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클랜 A에서요? 왜 하필 거기를요?”

“그곳이 헌터 협회에게 계륵 같은 존재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연구 가치는 거의 전무한데 괴수가 없는 늪이고, 늪은 오픈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죠. 언제까지 거기에 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거기를 클랜 A가 매입할 수 있게 해 준다면 그 늪의 관리는 클랜 A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왜요? 안지우씨가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던가요?”

협회장이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표정을 짓기는 해도 속에 능구렁이가 백 마리는 들어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임정은 방심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돌아가지 않는 거랑 돌아갈 수 없는 건 다르잖아요.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되게 해 주고 싶어요. 여러 가지로 저희가 진작부터 생각해 왔던 구조물과도 비슷하고요.”

“좋습니다. 그건 간단하게 해결될 것 같군요. 그렇게 하는 걸로 합시다. 정부와 헌터 협회에서도 점점 그곳을 골칫거리로 여기는 판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치안대장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군요.”

“그래요? 그럼 하세요.”

“그러죠.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싸게 넘겨 주세요.”

“그럽시다. 내가 그런 일로 치안대장님한테서 뭘 챙기겠습니까? 내 힘이 닿는대로 편의를 봐드리죠.”

임정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오랫동안 마음으로 걱정해 오고 있던 일이 해결된 셈이었다.

***

서규태는 임정과 함께 정재군을 만나러 갔다. 정재군은 혼자서 지우의 늪이 있는 아파트를 지키고 있었다. 아파트를 지키던 다른 인원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정재군만 3교대로 그곳을 지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날은, 정재군이 그곳에서 근무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정재군은 임정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드디어 자신에게 내려질 처벌의 수위가 결정된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잔뜩 긴장한 눈치였다. 하지만 임정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이곳은 이제 클랜 A에서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임정의 말에 정재군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더 나올 말이 없는지 긴장을 풀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도 잘 협력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소개해 드릴 분이 계십니다. 이쪽은 치안 1부장님이십니다.”

임정의 소개를 듣고 정재군은 깜짝 놀란 얼굴로 서규태를 바라보더니 허리를 꾸벅 숙였다. 서규태는 임정이 왜 갑자기 자기한테만 여기에 가자고 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치안 1부장 얘기를 임정이 꺼냈을 때 서규태는 확실히 거절의 의사표시를 나타냈다. 임정이 출산을 한 후에는 임정에게 다시 돌아갈 장소가 필요하다면서 몇 번이나 임정의 뜻을 말렸던 것이다.

임정이 순순히 뜻을 굽히는 것 같더라니. 임정은 서규태를 방심하게 해 놓고 갑자기 서규태를 치안 1부장으로 다른 사람에게 소개를 해 버린 것이다.

“만나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힘 닿는대로 잘 모시겠습니다.”

정재군은 정재군대로, 벼랑 끝에서 만난 구세주라는 생각으로 서규태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서규태는 가늘게 실눈을 뜨고 임정을 바라보았지만 그런 협박은 그 눈을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법이었다.

“여기에서 짐을 싸서 떠나시는데 20분이면 충분할까요?”

임정이 정재군에게 물었다.

“20분은요.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사실은 5분이면 전부 다 끝날 겁니다.”

정재군은 신이 나서 말했고 정말로 그가 전부 다 챙겨서 떠나는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임정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마음 고생이 엄청 심했나보군요.”

서규태가 말했다.

“네. 어쩔 수 없잖아요. 이 늪은 다른 사람들한테 공개가 돼 있고, 늪을 공격하는 걸로 지우씨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강지연씨가 방법을 알아냈고 써전님도 그 방법에 대해서 알고 계셨잖아요.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도 그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늘 불안했어요.”

“잘 했어요.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도 방법을 찾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어요.”

“저도 이 방법이 통할 거라고 확신을 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치안대를 나한테 맡기는 것. 정말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치안대는 탱커님한테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잖아요.”

“그렇다고 해도 지우씨랑 아이를 대신할만큼 큰 부분은 아니죠. 써전님이 맡아주기로 하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거절은 거절하겠다는 뜻인 것 같군요. 알았습니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자리를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클랜 A의 딜러인 거죠?”

“당연하죠. 협회장하고도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끝냈어요. 치안대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오픈일이 다가온 늪을 처리하는 거고 현재로서는 클랜 A야말로 그 일에 최적화돼 있다는 얘기를 했죠. 그래서 클랜 A와 치안대의 임무가 겹칠 때는 클랜 A의 일을 우선시하는 걸 허락해달라고 해 놨어요. 사적인 업무가 아닌 한은 그렇게 하는 걸 인정하겠다고 협회장님도 허락을 해 줬고요.”

“사적인 업무. 그것도 좋았는데.”

“치안대는 칼퇴근이예요. 출근 시간은 고무줄이고요. 충분히 클랜 A의 사적인 업무도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클랜 A가 자우의 아파트를 새롭게 접수했다는 얘기가 퍼져나가자 조용하던 아파트는 곧 광분한 클랜 A의 클랜원들로 가득 찼다.

지우는 자기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 신기했다. 다시 온 것이 반갑게 느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곳곳에 놓여있는 자신의 물건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감격에 젖은 눈을 빛냈다.

“아놔. 저건 좀 치우지. 갑자기 또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아.”

지우는 여전히 포장도 안 풀린 채로 있는 림스 제품들을 발견하자 소리를 질렀다.

놀이공원에 놀러온 것처럼 잔뜩 들떠 있는 태인과 강현은 놀게 놔두고 이익헌과 강지연은 머리를 맞댔다.

“우선은 저 늪도 다른 늪처럼 밀폐가 돼 있는지 그걸 먼저 확인해야 돼. 미국에서 성장한 1급 늪은 밀폐공간이 아니었어. 그래서 사람들이 늪을 공격하는 걸로 괴수를 잡을 수가 없었던 거고.”

이익헌의 설명을 들으면서 강지연은 미리 준비했던 연막탄을 꺼냈다.

"이태인씨."

강지연이 부르자, 그때까지도 집 안 구경에 여념이 없던 태인이 냉큼 달려왔다.

"이것 좀 부탁할게요."

강지연은 태인에게 연막탄을 건네주었고 임정은 긴장된 모습으로 지우의 곁에 다가섰다.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는 것 같으면 바로 말해야 돼요. 숨을 쉬는 게 답답해지는 것 같다거나 하면.”

임정이 말하자 강현이 지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면 자기들을 의지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에 지우씨가 숨을 쉬지 못하는 것 같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예요?”

임정이 강지연에게 물었다.

“이건 그냥 연막탄이예요. 늪 아래의 공간이 밀폐됐는지 그걸 알아보려는 거고요. 안지우씨한테 문제가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강지연의 설명을 듣고 드디어 태인이 연막탄을 들고 늪으로 내려갔다. 태인이 늪에서 다시 나오자 이익헌은 리드로 늪을 막았고, 감응기에는 늪 아래의 공간이 점점 연막에 휩싸이는 것이 보였다.

지우는 지루하다는 듯이 그것을 지켜보았다. 강지연은 화면 안에 맵이 전부 다 나오도록 조정을 했고 사람들은 연막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밀폐 공간이 아닌 거군.”

이익헌이 확정적으로 말하자 나머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늪을 공격해서 형을 죽일 방법은 없다는 거네요? 임재욱이 여기에 와서 네이팜탄을 떠트렸다고 해도 형은 괜찮았을 거예요.”

강현이 말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확실히 알 수 있으면 좋겠어. 늪에서 나온 차크라가 내 몸에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늪에서 나온 차크라의 실체가 뭔지도 알고 싶고.”

지우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나도요. 기대돼요. 지우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고 싶고.”

임정이 지우의 팔을 만지면서 말을 하다가 지우의 헌터 타투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우씨. 등급이 오른 거예요?”

그 말이 신호가 돼서 클랜원들이 우르르르 그에게 몰려들었다.

“어디, 어디? 언제? 탱커래, 딜러래? 그보다. 공격력은 얼마가 됐어? 100이지? 응? 100이지?”

태인이 말했다.

임정이 먼저 지우의 헌터 타투를 보았지만 임정은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임정이 지우의 손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강현이 지우의 팔을 훽 낚아챘다.

“왜 말을 안 해 줘요.네? 100이죠? 맞죠? 내 말이 맞은 거죠?”

태인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동안 강현도 지우의 헌터 타투를 보고 가만히 지우의 팔을 내려 놓았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묵언 수행자들처럼 지우의 팔에서 헌터 타투를 보고 말없이 지우를 남겨두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분위기가 하도 이상해서 나중에는 태인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강지연까지 지우의 타투를 확인한 후에야 지우의 타투를 확인했다.

“헙!”

태인은 자신의 설레발이 지우의 가슴에 마구 난도질을 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뭐……. 10보다는……. 낫잖아요. 아하하하.”

지우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어제 밤까지도 F급이었는데. 오늘 혼자 레이드를 해서 올린 거예요?”

강현이 물었다. 우리 형 불쌍해서 어쩌냐는 표정이었다.

“그거 진짜 좀 그렇다. 왜 안 주지? 한 번 그냥 거하게 줘 버리지. 아아. 시스템 입장에서는 안지우씨가 적으로 인식돼서 그러는 건가? 시스템이 안지우씨를 경계하는 건가 봐요.”

서규태가 말했다.

“그래요. 형은 공격력 클 필요 없잖아요. 공격력이 낮아도 형이 클랜 A의 에이스라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강현이 말했다.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임정까지 그렇게 말을 했고 모두들 지우를 위로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나는 그냥 이럴 건가 봐요. 그래도. 일관성은 있네요. 타투를 탓할 것도 아닌 것 같아요. 타투는 처음부터 이랬는데 그냥 제가 혼자 다른 걸 기대하고 있다가 화를 낸 것 같기도 하고.”

지우가 말했다.

자기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는 기분은 늘 씁쓸했다.

“그래도 혼자서 공략이 가능하긴 했던 거네요?”

이익헌이 물었다.

“네. 뭐. 공격력이 낮긴 해도 차크라를 모으는데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니까. 계속해서 정신없이 때리다보면 끝나 있긴 해요.”

지우는 사람들의 관심이 이제 다른 곳으로 향하기만을 바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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