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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99화 (9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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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내 생각에는 처음이 10이었으니까 그 다음은 100, 그 다음은 1000, 이런 식으로 될 것 같아. 아니면 100, 10000, 이렇게 될지도 몰라.”

태인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괜히 그렇게 말해서 미리 부담을 주지는 맙시다.”

서규태는 그렇게 태인을 달래놓기는 했지만 자기도 그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익헌은 지우와 임정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이익헌이 지금 자신들을 위로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익헌의 위로를 받을 정도라면 자신들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를 알게 되었다.

“나도 뒤에서 슬슬 협상을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클랜 A가 지금은 아직 약하지만 곧 충분히 강해질 거고 미국 정부에도 그 점을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정보가 캐츠 아이 스톤을 팔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세계의 모든 헌터들을 대상으로 캐츠 아이 스톤을 직접 매입하겠다는 공고도 내 놓을 거고요.”

이익헌이 말했다. 뭔가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클랜 A가 그걸 살 여력자체가 없는 것 아닌가요?”

태인이 물었다.

“충분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돈이라면 이미 꽤 모여진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더 모을 거고 말입니다.”

이익헌이 말했다.

“누나. 너무 걱정하지 마요. 삼촌들이 이렇게 많은데 조카 하나를 못 지켜 주겠어요? 아빠는 짱짱맨, 엄마는 더짱짱걸, 삼촌들은 짱짱짱맨인데. 콩알이 잘못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강현의 말에 임정도 고개를 끄덕였다. 뱃속에서 콩알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임정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내가 약속했지?”

지우가 임정의 귓가에 말을 하면서 임정의 머리에 제 얼굴을 가져다 댔다.

***

“지우씨 봤어?”

아침 레이드를 하고 돌아오는 이익헌과 태인, 강현을 보자마자 임정이 강현에게 물었다.

“아뇨. 지우 형 없어요? 그럼 어딘가에서 레이드하고 있겠죠.”

“그렇겠지?”

한 시간이 좀 지나서 다른 팀이 들어오자 임정은 그때도 지우를 본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그때도 지우를 본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천기정과 강지연도 지우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지우를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임정조차도 지우가 걱정돼서 물은 것은 아니었다. 임신 초기에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지우가 자기를 떠날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지우에게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하는 것도 어려웠고 지우가 그들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강력한 자력으로 제 아빠를 끌어당기는 콩알이 임정의 뱃속에 딱 자리잡고 있는데 지우가 어딜 가겠는가.

사람들이 자신의 행방을 궁금해하고 있을 때 지우는 어느 5급 늪 아래에서 혼자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불쌍하게도 지우의 상대가 되어버린 녀석은 지우의 괴력 앞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지우는 차크라와 무기의 증폭률을 지원받은 채 매번의 타격으로 38의 데미지를 입히는 중이었다. 그걸로 300만에 육박하는 괴수를 공량하려니 막노동이 따로 없었다.

1초에 한 번씩 공격을 해도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나마 지우에게는, 차크라를 모으는데 따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지 만약 남들처럼 7초의 리로딩 시간이 적용되었다면 지우로서는 혼자서 레이드를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지우의 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차크라를 쓰지 않았다면 근육이 찢어졌을 것이다. 지금 그는 98분째, 단 1초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괴수에게 공격을 가하는 중이었다.

치명상을 입히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것은 다른 딜러들에게 공격할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 거였는데 지우는 공격할 기회를 놓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임정과 콩알을 지켜줘야 할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자기가 E급이 되면, 써전과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공격력이 엄청나게 올라갈 것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지우에게 필요한 경험치는 7이었다. 그것을 빨리 채우고, 혼자서 자신의 헌터 타투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꼭두새벽부터 혼자 나와서 레이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꿈에 자신의 헌터 타투를 보았는데 그때 지우의 헌터 타투에는 E급 딜러라는 존귀한 글씨와 공격력 1000, 방어력 1000이라는 수치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계시라고 생각하고 지우는 옆에서 잠들어있던 임정의 목까지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서 바로 나왔던 것이다.

정보창의 수치는 꾸준하게 떨어진 끝에 이제 네 번의 타격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지우는 팔과 다리를 다 써가면서 힘을 냈다. 그리고 마침내 정보창의 체력이 다 고갈되었고 괴수는 완전히 쓰러졌다. 지우는 헌터 타투를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적어도 늪은 빠져나가서, 감흥을 충분히 느끼고 싶었다.

지우는 무기와 러프스톤을 챙겼다. 혹시 캐츠 아이 스톤이 나오지는 않았을까 해서 바닥을 레이저 같은 눈으로 몇 번이나 스캔했지만 캐츠 아이 스톤은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지우는 늪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느, 넉넉한 나무 그늘로 들어가서 심호흡을 하고 팔을 들었다. 이제 눈을 떠서 그걸 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눈을 뜨는 게 겁이 났다.

잔뜩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몇 번의 심호흡을 더 한 끝에 눈을 떴을 때 고색창연한 헌터 타투가 드러났다.

헌터 등급 - E

경험치 : 3/600

공격력 : 20

방어력 : 20

차크라 등급 - 1

차크라 숙련도 : 36%

능력치 증폭률 : 0%

20.

20.

탱커 같지도 않고 딜러 같지도 않고.

…….

지우의 얼굴에 한동안 아무런 표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흐우우우우우우!!!!!”

지우는 갑자기 일어서서 나무를 발로 차고 바닥을 쿵쿵 구르고 고함을 질러댔다.

“장난하냐, 어?!”

누구를 향한 원망인지도 모른 채 지우는 소리를 질러댔다.

‘20? 하, 20? 이게 진짜! 하!’

어찌나 화가 나는지 그 자리에서 한참을 뛰고 발로 허공을 걷어차고 주먹을 내지르고 하다가 한 삼십분은 그렇게 하고 나서야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임정은 어디에 갔다가 이제 오는 거냐고 물으면서 자기는 이제 곧 나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우는 임정이 자신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괜히 임정의 기분까지 우울해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콩알. 아빠 대신 엄마 잘 지켜주고. 엄마 잘 따라갔다와.”

임정은 지우의 얼굴을 보면서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아보려다가 지우에게 떠밀려서 헌터 협회로 향했다.

헌터 협회장은 임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좀 늦었나요? 죄송합니다.”

임정이 들어가면서 말하자 협회장이 고개를 저었다.

“급한 일이 있는 것 같던데. 무슨 일입니까?”

협회장은 마음이 꽤나 급했는지, 용건 먼저 확인하려 들었다. 임정이 치안대장이 된 후로 치안대의 기강이 바로잡힌 면이 컸기 때문에 임정이 이제 와서 임신을 이유로 치안대를 그만둔다고 할까봐 조바심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로서는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나를 보자고 한 건지는 모르지만 일단 다시 생각을 해 줬으면 합니다. 지금은 치안대에도 헌터 협회에도 중요한 시기니까요.”

협회장이 말했다.

“안 그래도 그 일로 뵙자고 한 거예요.”

협회장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심정으로 임정을 바라보았다.

“현재의 치안대 시스템은 상하 관계를 명백히 따지기가 어려운 구조예요. 그렇다고 치안대장이 전면에 나설 수도 없고요. 그래서 치안 1부장을 따로 두려고 해요. 나머지 치안부장들은 지금처럼 그대로 병렬적인 구조로 유지하고요.”

“그러면 치안 1부장이 치안부대장 격이 되겠군요.”

“그런 거죠.”

“치안 1부장은 탱커님이 하시려고요? 그건 괜찮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아뇨. 좀 파격적인 인사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치안대 외부에서 한 분을 영입하려고 합니다.”

“외부 인사를 영입해서 치안 1부장으로 임명하겠다고요?”

“네.”

“치안대장님은요?”

“저는 치안부장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해요. 그래도 당분간 치안대장직은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시적인 조치고, 치안 1부장님이 완전히 치안대 조직을 장악하게 되면 그때는 치안대장 자리도 그 분에게 넘기려고 합니다.”

“그건 치안대장을 그늘 속에 두겠다는 애초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 같은데요?”

“네. 치안 1부장을 두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취지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인 거겠죠. 치안 1부장은 사실상 치안대장에 버금가는 권력을 이양받게 될 거거든요.”

“그러면 더 궁금해지는군요. 치안 1부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누굽니까?”

협회장이 임정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고, 임정은 잠시 뜸을 들였다. 협회장의 머릿속에는 재야에서 활동하는 에이스 헌터들이 휙휙 지나갔지만 그렇다고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서규태 C급 딜러입니다. 오랫동안 바디 펌의 써전으로 활동해 왔죠. 레이드에서 부상을 당하고 더 이상 레이드를 할 수 없게 됐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치안 1부장으로 삼자고요?”

“지금은 나았습니다.”

“어떻게요?”

그러다가 협회장이 임정을 바라보았다.

“혹시. 거기에. 탱커님이 관여한 겁니까?”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가 한 번에 이해가 되는군요. 그런 분이라면 탱커님이 얼마나 신뢰하는지 확실히 알 것 같고, 탱커님이 자신의 중요한 비밀을 드러내면서까지 그 분을 고친 건 그 분이 대단한 자질을 가졌다고 탱커님이 판단했다는 뜻일 거고요. 좋습니다. 그런 거라면. 나도 한 마디도 토를 달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이제 한시름 놨어요. 정말로 괜찮은 분한테 자리를 넘겨드리는 게 아니라면 이 자리를 비우는 게 계속 마음에 걸릴 것 같았거든요.”

“잘 해결된 것 같아서 나도 다행입니다. 이제 나도 편안하게 임신을 축하드릴 수가 있게 됐네요. 아이는 잘 자라고 있습니까?”

“네.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요.”

“좋은 소식이네요. 치유 능력까지 가진 우리나라 최고의 탱커와 우리나라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가장 소박한 공격력을 가진 헌터 사이에서 태어날 아기가 대체 누구일지 나도 정말 궁금해요.”

협회장의 말에 임정이 얼굴을 찌푸리자 협회장은 두 손으로 마구 저으면서 장난이었다고 말했다.

“서규태 딜러와는 언제 볼 수 있을까요?”

협회장이 물었다.

“글쎄요. 슬슬 얘기를 해 보기는 해야 되는데.”

“뭐라고요? 그럼 그 분한테는 아직 얘기도 안하고 지금 그 얘기를 나한테 하고 있다는 겁니까?”

“협회장님을 설득하는 게 훨씬 더 쉬울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협회장님하고 이미 얘기가 다 끝났다고 하면 서규태 써전님도, 아니, 딜러님도, 아니, 치안 1부장님도 제 부탁을 쉽게 들어줄 것 같기도 했고요.”

“치안대장님은 내 권위를 꽤 믿는 것 같은데 그게 정말 잘 통했으면 좋겠군요.”

“그래서 사실은 걱정이 많아요.”

“하긴. 그 분이 치안 1부장이 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풀릴 것 같기는 합니다. 사체 운반 헌터들과 레이더들의 갈등도 일거에 해결이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써전이라면 사체 운반 헌터들하고 가깝잖습니까. 사체 운반 헌터랑 써전들도 써전 출신의 치안 1부장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고무되겠군요.”

협회장이 턱을 쓰다듬으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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