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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헌터들에게 치명적인 공격은 아니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계속 해서 발 밑을 확인하십시오. 다른 녀석들을 놓치지 않도록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겁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지금까지 싸우던 것처럼 싸우면 됩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처음에 방향을 잡기가 힘들어서 그랬을 뿐 일단 몇 번 데미지를 입히다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게 됐고 모두들 익숙하게 레이드를 이어나갔다. 브로큰 마운틴은 이제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헌터들에 의해서 무너지는 산이 되었다.
“그 여왕 개미는 어디에 있어?”
지우가 임정에게 물었다. 임정은 감응기로 차크라를 확인했다. 강지연은 늪에 들어올 수가 없어서 밖에서 대기를 했고 임정이 감응기를 확인해 주고 있었다. 임정은 감응기를 본 후 브로큰 마운틴을 바라보고 이내 한 마리의 거대개미를 향해 손가락을 폈다.
온통 새까맣기만 한 다른 개미들과 달리, 빛나는 붉은 빛이 감도는 개미가 다른 개미들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여왕개미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었고 다른 개미들은 필사적으로 여왕개미를 보호하려고 했다.
“여왕개미를 공격한다고 데미지가 더 들어가는 건 아니겠지만 여왕개미를 무력화시키면 일시에 발을 묶어 놓을 수 있는 건지도 몰라.”
여왕개미를 공격하는 것이 브로큰 마운틴에 치명상을 입히는 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우가 말했다. 임정도 그 말에 동의했다.
지우는 화염 방사기를 들고 브로큰 마운틴을 향해 다가갔다. 개미들은 더 큰 위험이 다가왔다는 것을 감지한 것 같았다. 브로큰 마운틴이 순식간에 좁고 높아졌다. 거대 개미들은 자신들의 여왕을 위로 올리면 안전할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미안한데 그렇게는 안 되겠어.”
지우는 그렇게 말하고 화염 방사기로 불을 뿜어냈다. 거대 개미들의 거대한 탑이 무너져내렸다. 임정은 그 정도라면 자기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쓰윽 들었을 때 지우가 보고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임정은 하는 수 없이 몇 걸음 더 뒤로 가서 사람들의 레이드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래도 자기가 아주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바닥으로 기어 내려온 개미가 다른 헌터를 향해 다가가는 게 보이면 그때마다 큰 소리로 알려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레이드가 끝나가자 이번에도 태인과 강현을 남기고 모두들 늪을 떠났다. 그러면서 이번에야말로 이상하게 힘이 들었다는 말을 다 같이 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냥 힘으로 하는 거면 모를까, 이건 조그만 것들이 마구 흩어졌다가 다시 뭉치고 그러니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느낌이예요.”
지우가 말했다.
“나도 솔직히 같은 마음이예요. 다음에도 이런 개체를 만난다면 까다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걸 죽이려니까 내가 악당이 된 것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서규태도 말했다.
조용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강지연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저도 밖에서 보고 있기는 했는데요.”
또 다른 감응기로 레이드 상황을 지켜봤던 강지연은 나름대로 분석적으로 설명을 했다. 제2의 이익헌이 나타난 거나 다름이 없었다. 강지연은 레이드를 관전하는 동안 괴수를 피해야 한다거나 자기가 직접 데미지를 입혀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도 없었기 때문에 그때그때 보이는 문제점들을 바로 노트에 적어가면서 기록해 두었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점을 말해 주었다.
다행히 이익헌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을 할 줄 알아서 사람들은 강지연이 하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현장도 모르는 일반인이 하는 얘기라서 꿈같은 얘기도 많았다. 괴수들에게 효과적으로 데미지를 입히는 무기가 뭔지, 공격이 통하지 않는 무기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로, 이때는 이런 무기로 이런 공격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라는 말들을 하고 있는데 그 부분을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강지연도 배우다보면 그 부분도 스스로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얘기를 듣는 사람들이 알아서 가려가면서 듣자는 생각이었다. 감응기에는 브로큰 마운틴의 차크라와 함께 태인과 강현의 차크라도 보였다. 괴수의 차크라와 헌터 차크라가 확연이 구분되었다. 감응기가 생긴 덕에, 경험치를 몰아 받으려고 남은 사람들이 늪 밖으로 나올 때까지 걱정하면서 떨 일은 사라지게 되었다.
"나오네요, 두 사람."
강지연이 먼저 화면을 보고 말했다.
두 사람은 러프 스톤을 가지고 나왔다. 캐츠 아이 스톤은 없었다는 말은 따로 할 필요도 없었다. 모두들, 다른 기대감도 갖지 않았기에 감응기와 장비들을 챙기면서 철수를 준비했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감응기는 우리 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한테도 유용하게 쓰일 거야. 다른 헌터들한테'도' 가 아니라 다른 헌터들한테 훨씬 더 유리하게 쓰이겠지. 미리 늪 아래의 상태를 체크하고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순발력이 떨어지는 헌터들한테는 필수 품목으로 자리잡게 될지도 모르고. 감응기를 대량 생산해서 팔면 엄청나게 팔릴 것 같은데? 강 부장. 그 일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익헌이 지연에게 말하자 지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라 순식간에 모두의 관심이 저에게로 집중돼서 당황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그 일은 바로 추진을 해 봐야 되겠군. 생산 라인을 바로 알아봐야겠어.”
이익헌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강지연도 더 이상 할 말을 미룰 수만은 없게 됐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요.”
부지런히 자기 장비들을 챙기던 사람들은 강지연이 갑자기 단호한 어조로 말하는 것을 듣고 움직임을 멈춘 채 강지연을 바라보았다. 강지연은, 한 번은 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듯이 심호흡을 한 번 한 채 감응기의 화면을 가리켰다.
“늪 아래에서는 이제 차크라가 잡히지 않고 있죠. 다른 차크라들은 모두 늪 밖에서 보이고 있어요. 헌터 차크라죠. 이, 둘을 빼면요.”
강지연은 두 개의 붉은 차크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나는 온전히 붉은 차크라였고 하나는 헌터 차크라 안에서 작은 점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네. 이게 괴수인지 아닌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안지우씨를 보고 있자면 이 차크라를 괴수 차크라라고 말하는 건 무리가 있는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안지우씨를 아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이건 본질적으로 괴수 차크라랑 같은 거라고 생각될 거예요. 서규태 딜러님이나 다른 분들이 몇 번 말씀하신 적이 있었는데, 이건 괴수의 차크라라기 보다 거대 차크라 결정체라고 설명하는 게 보다 더 진실에 부합하긴 할 거예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죠.”
임정이 강지연을 바라보았다. 강현이 어느새 임정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임정이 충격을 받으면 뭐라도 할 작정인 듯했다. 강지연이 말을 하는 동안 대형은 그런 식으로 움직였다. 모두가 임정을 향해서 몇 걸음씩을 움직이며 가까이 다가갔던 것이다. 강지연은 고개를 숙인 채로 웃었다.
“내가 하려는 말은. 감응기를 상업화하려는 계획은 우선 보류해야 할 거라는 거였어요. 사람들은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편을 가르려고 할 테니까요. 그때 생길 문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어요.”
그제야 이익헌과 서규태는 강지연이 하려고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감응기에는 안지우씨와 태아의 차크라가 괴수의 차크라처럼 보일 테고, 사람들은 두 사람을 괴수로 몰아세울 거라는 말인 거군.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고. 그런 쓸데없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감응기는 우리만 쓰자는 거고. 맞지?”
이익헌이 말하자 강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인이 강지연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강지연에 대해서 그동안 잘못 생각해 오고 있었던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응기를 상업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 것이 확실했다. 모든 헌터들이 감응기를 전부 갖출 필요는 없겠지만 공대장들은 감응기를 갖춰야 할 것이다. 그런 수요라고 한다면 강지연은 순식간에 돈방석에 앉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명성까지도 얻을 수가 있는 문제였다.
“지금 뭘 포기하는 건지는 알고 말하는 거예요?”
태인이 물었다.
“네. 알아요.”
“그런데 그걸 다 포기하겠다고요?”
서규태도 질문 공세에 가담했다.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예요. 일시적인 보류라고 해두죠. 두 사람의 차크라는 괴수의 차크라와는 다를 거예요. 다른 걸 다르게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본 다음에,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만들어서 제품을 출시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 제품 출시를 강행한다면 엄청난 파장이 일 거예요. 제 잘못으로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망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러고 싶진 않아요.”
강지연이 말했다.
“아뇨. 두 사람의 인생이 아니예요. 일단 지우 형이랑 누나, 콩알, 세 사람의 인생이고 내 인생도 거기에 같이 걸려 있어요.”
강현이 말했다.
태인은 말을 하지 않은 채 손을 들었다. 자기의 인생도 거기에 같이 걸려 있다고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명시적으로 의사표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확실해 보였다.
강지연은 임정을 바라보았다. 임정을 알게 된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임정이 그렇게 패닉에 빠져있는 모습은 처음 본 듯했다. 임정은 자신의 아이와 지우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들은 후부터 거의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강현과 지우가 옆에서 임정과 같이 있어 주었지만 임정은 끝내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지 못했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익헌이 강지연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두 차크라를 구분해서 표현하는 거요?”
“당연히 그 얘기지.”
“본질적으로 다르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강지연은 듣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과대하게 낙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조건이 먼저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지우와 태아에게서 나타나는 차크라가 괴수의 차크라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면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잠시, 모두가 침묵만을 만들어냈다. 그러다가 이익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
“판단은 사람들이 하겠지만 판단의 기준은 우리가 만들어주면 될 겁니다.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지 우리가 정해주면 돼요. 1급 괴수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A급 헌터라고 한다면 그 헌터의 차크라가 아무리 희한해도 거기에 대해서 아무도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하겠죠. 아기의 차크라도 마찬가지고요.”
서규태도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면 먼저 캐츠 아이 스톤을 찾아야 되는 거네요. 그리고 앞으로는 지우 형의 경험치랑 등급을 올리는데 더 주력해야 할 것 같고요. 저희도 이제 올릴만큼 올렸으니까 지우 형이 등급을 올릴 때가 되기도 했어요. 그리고 지우 형의 등급이 올라가면 공격력이랑 방어력이 어떻게 오를지 그게 궁금하기도 하고요. 처음이 10이었는데 그 다음에도 정직하게 20이 될 것 같지는 않잖아요. 차크라도 이렇게 많고 차크라를 이용한 공격은 우리 나라 탑 클래슨데.”
강현이 말했다.
지우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그 말에 수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