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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네.”
지우가 깊이 생각을 하면서 대답했다. 이익헌은 라미실에게서 들은 얘기를 들려주었다.
1급 늪의 괴수는 다른 괴수들과 달리 스스로 공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라미실과 해리가, 1급 괴수가 뿜어낸 끈적한 액체에 당했다는 얘기도 해 주었다.
“특수한 능력이 사용된다는 얘기인가요?”
지우가 물었다.
“우리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이 전부가 아닐 거라고 생각을 열어놓는 게 중요할 거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얼마든지 다른 공격 방법과 마주치게 될 수도 있어요. 거기에 대비도 해야 되고요. 맵이 용암지대일 수도 있고 지진이 날 수도 있겠죠. 그런 적이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런 부분으로는 공격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안 될 거라는 겁니다.”
“그럴 때는 늪에서 나와서 싸우는 게 더 유리할 수도 있겠군요.”
“그 결과가 미국에서 일어났던 참변이죠. 일단 늪 밖으로 나오면 괴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겁니다.”
“아…….”
“지금까지 열심히 알파벳을 외웠다면 이제는 단어도 외우고 문법도 공부하고 스펙트럼을 넓히라는 겁니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익헌이 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건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이익헌이 임정과 자신의 아기 때문에 마음을 연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았다.
이제는 자기들이 원하는 급수의 늪이라는 것만 알면 가서 공략을 시작했지, 미리 리드를 열고 들어가서 사전 조사를 하고 다시 나와서 공략할 준비를 해서 다시 간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서야 그곳의 주인이 브로큰 마운틴이라고 불리는 괴수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새끼가 지었는지 이름도 거지같이 지어놨네!”
이익헌은 자기가 누구에게 욕을 하는 건지도 모르고 욕을 했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무기를 들고 브로큰 마운틴을 향해 거리를 좁혀갔다.
맵은 사막지대였고 이름과 똑같은 브로큰 마운틴이 있었다. 브로큰 마운틴은 커다란 개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이었다. 브로큰 마운틴이 까다로운 이유는 그것들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순식간에 흩어지며 무너지는 산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것은 산사태가 일어나는 산 같았다. 그러다가도 헌터의 공격을 피해낸 후에는 다시 또 견고하게 쌓아 올라갔다.
커다란 개미들이 겹겹이 쌓여서 산을 이룬 형상. 브로큰 마운틴에 공격을 하면 개미들은 흩어지며 피했고 공격을 허공으로 향하면서 괴수에게는 정작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목표를 정하고 정조준을 해도 그 부분이 찢어지면서 공격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공략이 시작되고 몇 번이나 성공적으로 공격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괴수의 체력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웬만한 일로는 충격을 받지 않는 이익헌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나타났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일단은 나가죠. 전략을 다시 세워야 될 것 같습니다. 전략 없이는 12시간 내내 헛고생만 하다가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는 걸 보고 다시 나가게 될 것 같아요.”
지우도 이미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이익헌을 따라 나갔다. 이익헌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강지연을 불러냈고 강지연은 곧바로 감응기를 가지고 나왔다.
강지연의 감응기는 늪 안의 괴수들이 가진 차크라를 보여주었다. 각각의 거대 개미가 차크라 점으로 표시 되었지만 그 중 한 부분이 유난히 강하게 빛나는 것이 감응기를 통해 나타났다.
“이럴 거라고 생각했어. 이걸 알아야 되는 거였어. 강지연씨. 제대로 한 건(件) 한 거라고. 나중에 익스트림 헌터의 선아영 대표랑 만나서 감응기를 상품화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지. 강지연씨는 내가 바로 바디 펌에 부장급으로 스카웃 제의를 하겠어. 다른 스카웃 제의랑 다른 점이 있다면 이건 거절할 기회가 없다는 점이야. 우리는 같은 환우회 소속이잖아. 같은 환우회면서 거절하고 그러는 거 아니거든.”
이익헌은 생각나는대로 말을 했고 강지연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게 정말이냐는 표정으로 지우를 바라보았다.
“바디 펌 부사장이 그러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요. 그리고 바디 펌 부사장은 다른 악평은 두루두루 나 있지만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은 지려는 성격인 것 같더라고요.”
지우가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이익헌은 감응기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지우를 바라보았다.
“강력한 화염 방사기가 필요하겠어요. 익스트림 헌터에 그게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없으면 주문이라도 해야 할 것 같고. 내 생각에 브로큰 마운틴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공략이 잘 안 되는 종으로 괴수들은 계속 발전을 하거든요. 브로큰 마운틴은 지금까지 공략에 성공한 일이 많지 않아요. 바디 펌에서 브로큰 마운틴을 회수해 온 일이 거의 없으니까 확실한 거죠.”
"그러다가 오픈이 되면요?"
"그게 문제인 거죠. 오픈일이 다가오는 브로큰 마운틴 늪이 있다면 큰 일이 생길 거예요. 이건 2급 늪이고 계속 성장하는 늪이라서 오픈일에는 무조건 브로큰 마운틴이 밖으로 튀어나올 테니까. 지금 우리가 확실히 공략 방법을 알아놓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고보니까 바디 펌에 회수된 브로큰 마운틴들도 거의 오픈일을 코 앞에 두고 들어온 것들이고. 이건 확실히 그때 회수돼 온 것들에 비해서 엄청 크네요. 그때 공략에 성공했던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녀석을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는 장담을 못하겠는데요?"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한 겁니까?"
"B급, C급 헌터들이 공격력과 막노동으로 해낸 거죠. 차크라 증폭률과 무기 힘으로."
그가 그렇다는데, 그런 줄 아는 것 뿐이었다.
“안지우씨는 여기에서 공략 방법을 생각해 봐요. 돌아가도 되긴 해요. 내 생각에는 화염방사기 없이는 무리일 것 같으니까. 일단 나는 익스트림 헌터에 가보겠습니다.”
이익헌은 마음이 급했는지 이미 차를 향해 달리며 말했다.
강지연은 감응기의 화면을 계속 바라보았다. 화면에서는 하나의 헌터 차크라가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이익헌의 차크라였다. 그리고 이제는 늪 밖의 차크라와 늪 안의 괴수 차크라가 나타나고 있었다.
늪밖의 차크라는 방금 화면에서 사라진 헌터 차크라보다는 늪 안에 있는 괴수 차크라와 훨씬 더 유사성이 컸다. 강지연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지우는 브로큰 마운틴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골몰했다.
“여기, 이, 유난히 붉은 차크라. 아마 이게 중심세력인 거겠죠? 여왕개미 정도 되려나요?”
지우가 묻자 강지연은 그제야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화염 방사기가 통할까요?”
“그건 해 봐야 알겠죠.”
“그렇겠네요.”
“잠깐만요. 브로큰 마운틴의 대형이 무너지고 있는데요?”
강지연이 말했다.
그 말이 옳았다. 감응기를 통해 늪 밖에서 보지 않았다면 알아차릴 수 없을 일이었다.
거대 개미들이 바닥으로 새까맣게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화염 방사기보다 진공 청소기로 빨아들려버리면 좋을 것 같기는 하네요.”
강지연은 농담이랍시고 말을 했지만 어차피 지우는 그 말을 듣고 있지도 않았다.
***
선아영은 지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바디 펌의 부사장이 화염 방사기 종류를 찾으러 익스트림 헌터에 갔으니 가능하면 그가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부탁이었다. 선아영은 바디 펌의 최고 실력자인 이익헌 부사장이 직접 왔다는 말에 긴장을 한 채 매장으로 내려갔다. 이익헌 부사장이 헌터라는 사실은 아직도 거의 알려진 사실이 아니었기에 그 사람이 왜 헌터 무기를 찾으러 온 건지 의아해했다.
요즘에는 일반인들 중에도 헌터 무기를 사들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익헌 부사장 정도라면 군중심리에 떠밀려, 자기가 다룰 수도 없는 헌터 무기를 사재기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선아영은 몇 개 층에서 헛수고를 한 후에야 이익헌을 찾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익헌은 화염 방사기 종류가 있는 곳과는 완전히 상관없는 곳에서 전혀 다른 무기들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아영은 이익헌을 발견하고 다가가려 했다. 과연 그에 대해서 숱하게 소문을 들었던 것처럼 이익헌은 엄청난 미중년이었다. 선아영은 저도 모르게, 갑옷을 입어보는 피팅룸으로 들어가 제 겉모습을 한 번 쭉 확인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선아영이 이익헌의 앞에 섰을 때 이익헌은 다른 매장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익스트림 헌터의 선아영 대표라고 합니다. 안지우씨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찾고 계신 무기가 있다고요.”
이익헌은 선아영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형편없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내가 이런 매장을 관리하는 총 책임자라면 이런 걸 내 놓고 그렇게 당당하게 접객을 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익헌이 거침없이 말했다.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작정하고 고른 말은 아니었고 정말로 제품의 품질에 불만이 생겨서 하는 말이라 더 거칠게 나왔다.
“네?”
선아영은 어이가 없고 놀라서 이익헌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익헌은 자기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가까이에 있던 화살을 집어 들어 선아영의 눈 앞으로 내밀었다.
“지금까지 공격 증폭률을 최대치에서 그 이상으로 올리지 못한 이유가 뭐였을지 살펴보는 중이었는데 이건 좀 심하군요. 선 대표님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헌터들이 레이드를 하는 도중에 공격력이 모자라서 공략을 포기하는 일은 훨씬 줄어들었을 겁니다. 이 촉은 거대 물개의 이빨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이것 대신에 코뿔소의 뿔을 사용했으면 간단하게 증폭률을 높일 수 있었을 겁니다. 재료를 매입하는 비용은 얼마 차이가 나지도 않았을 텐데 재료의 성질을 이렇게까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는 게 어이가 없네요. 이런 문제로 어필을 했으면 바디 펌에서 단가는 얼마든지 조정을 해 줬을 겁니다. 나는 이게 여기에 사용되는 걸 몰랐어요. 어이가 없네요. 거대 물개의 이빨로 지금까지 화살촉을 만들어서 그걸 팔고 있었다니. 이건 증폭률이 35프로 정도 나옵니까? 뭐야, 이거. 23프로? 기가 막히는군. 이건 그냥 돈 없는 헌터들한테 겁먹지 말라고 손에 들려주려고 만든 거군요.”
이익헌의 말을 듣는 동안 선아영을 대중 앞에서 고스란히 벌거벗겨지는 기분을 받았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건 뭐란 말인가. 어차피 자기도 사업을 하는 사람이고 이 바닥에서 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피차 알고 있을 거면서.
이익헌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재료를 조금만 바꾸면 공격 증폭률을 훨씬 올릴 수 있지만 마진을 맞추는데 문제가 생겼다. 간단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무기를 만들고 안정적으로 마진을 챙기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코뿔소의 뿔과 단가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을 거라는 말은 그가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거대 물개의 이빨로 만든 화살은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 중에 하나였다. 부담 없는 가격이라서 많이들 찾았고, 그것은 한 번 사용하면 재활용이 어려워서 익스트림 헌터의 효자 상품이었다. 원거리 딜러와 익스트림 헌터가 상생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그 거대 물개 이빨 화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이익헌에게 직접 할 수는 없었다. 이익헌의 눈길은 여전히 선아영을 비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