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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나름대로 탄력있고 괜찮은 몸인 것 같은데 써전의 취향이 특별한가보다는 생각이 임정의 머릿속에 들었을 정도로 서규태의 얼굴은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훨씬 더 중대한 문제가 있었기에 세 사람은 다시금 긴장감을 유지했다.
강지연이 옷을 다 갖추고 제대로 앉자 서규태가 강지연의 맞은 편으로 다가가 말했다.
“임재욱 헌터가 사라졌다. 마지막에 임재욱 헌터랑 같이 있었던 걸로 아는데 여기에서 거짓말을 하면 임재욱 헌터의 살인 용의자로 체포될 수 있다.”
서규태는 되는대로 지껄였다. 임재욱이 사라졌다고 했다가 살인 용의자라고 했다가 앞뒷말이 서로 이상하게 연결됐지만 임정은 서규태가 하는대로 놔둔 채 강지연의 표정을 살폈다. 강지연의 얼굴에서 점점 핏기가 사라졌다.
“이, 임, 재, 임재욱 치안대장님이요? 살인 용의자요? 치안대장님이 죽었나요?”
“치안대장?”
임정이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이 그러던가?”
“네.”
“그 말을 믿었고?”
“아뇨. 그래도 그렇게 불러주는 걸 좋아했어요.”
“좋아했다라. 다른 것도 임재욱이 좋아하면 해 줬을 것 같은데.”
임정의 노골적인 말에 강지연의 얼굴이 새빨갛게 확 달아올랐다.
“시간 낭비를 줄여주면 고맙겠는데. 네이팜탄. 임재욱. 안지우의 늪. 그 세 가지 키워드를 조합해서 설명해. 5분 안에 끝낼 수 있지?”
서규태가 말했다.
강지연은 질린 얼굴로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짐을 하듯이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정말로, 정말로 그럴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잘 몰랐고요. 내가 해 준 말은 별 것 없었어요. 늪이 비어 있으니까 그 괴수를 죽이려면 늪에 네이팜탄을 투하하면 될 거다 라는…….”
“그러면 누가 죽게 될 거라고 생각했나.”
서규태가 말했다.
“괴수가 죽겠죠. 그 늪에 살던 괴수. 제가 뭘 좀 알아냈는데. 사실은 하드를 바이스에 물려서 없애려고 하긴 했어요. 어……. 그런데……. 저기. 어디까지 알고 오신 거예요?”
“궁리할 것 없고. 머릿속에 있는 건 다 쏟아내.”
스스로 쏟아내지 않으면 긁어내주겠다는 듯이 험상궂은 얼굴로 서규태가 말했다. 강지연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른 채 횡설수설했다. 그러다가 자기가 알아낸 것들을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하는 걸까 하면서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저기…. 5분 안에 끝내야 되나요?”
“시간은 넘겨도 되니까 전부 말해.”
“네. 그럼 제 컴퓨터 좀 먼저 켜고요. 거기에 자료가 있거든요.”
강지연은 분주하고 정신 사나운 모습으로 본체를 켜고 모니터 여러 개를 옮겨서 연결시켰다.
“어디에 앉으실 건가요?”
“그건 신경 쓰지 말고 좀!”
서규태가 화를 내자 강지연은 움찔하고서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마음 급한 줄은 어떻게 알고 부팅은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더디게 되는 것 같았다. 강지연은 기다리는 동안 임재욱과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임정은 강지연에게 임재욱과 어떤 관계였는지 물었고 강지연은 보통 생각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고 말했다. 임정은 거기에 대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었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왜 갑자기 안지우 늪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거지?”
서규태가 물었다.
“그건.”
강지연은 임정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뭔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기는 했지만 임정과 서규태는 동시에 고갯짓을 했다. 빨리 털어 놓으라는 재촉이었다.
“치안대장님은 임정 치안부장님이 건방지게 굴었다고 잔뜩 열이 받아 있었어요. 치안대장님은 치안부장님이 협회장님한테 압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베갯머리 송사를 한 거라면서.”
“누가? 내가? 협회장하고 나하고 그런 사이라고 말했다고? 임재욱이?”
“네.”
“임재욱을 치안대장이라고 말하지 마라.”
“네.”
“계속해.”
“네. 그래서 치안부장님을 혼내줘야겠다고 벼르면서 저를 계속 귀찮게 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나름대로 좀 알아봤고요.”
“알아봤다는 게 뭔데?”
“치안부장님을 직접 건드는 짓은 미친 짓이니까 치안부장님이 아끼는 사람을 건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보니까 안지우라는 사람이 걸려들었고요.”
“그런데?”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한 거였는데 나중에는 학자적인 관심으로 기울어서. 그곳 늪에는 왜 괴수가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 늪의 괴수는 처음부터 없었던 건지 아니면 있다가 사라진 건지 의문을 품게 됐고.”
순서없이 그때 그때 떠오르는대로 말을 하다가 마침 부팅이 다 돼서 강지연은 모니터에 보기 쉽게 자료들을 띄웠다. 화면에 뜨는 자료들을 보다가 임정과 서규태는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늪에 있던 괴수가 안지우씨의 침실로 들어간 것 같더라는 거예요. 여기 보이는 점들이 이렇게 이동을 하고 있죠? 이게 괴수의 이동을 나타내는 거고요. 지금 생각이 나네요. 처음에는 30분 단위로 보여 줬는데 임재욱 헌터가 1분 단위로 보고 싶다고 했었어요.”
“괴수의 크기는?”
임정이 물었다.
“그것까지는 몰라요.”
“그것까지는 모르더라도. 일단 아파트 안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라면 그렇게 큰 건 아니라는 거군. 늪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그날 내가 출동했을 때 실내에는 파손된 자국이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건가? 침실로? 안에?”
“그건 모르죠. 제가 아는 건 그냥 이런 차크라를 가진 생명체가 침실에 들어갔다는 거예요.”
임정이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그 늪은 비전형적인 늪이잖아요. 개체의 크기가 유난히 작을 수도 있겠죠.”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간 거라고 생각하세요?”
임정이 서규태에게 물었다.
“그럴지도 모르고 문이 열려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임정은 머리가 아파져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강지연은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다가 얘기를 계속하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서규태는 손짓으로, 어서 계속하라는 표시를 했다.
“저는 그냥 그 점에 주목한 거예요. 괴수가 있었는데 괴수가 늪을 떠났다. 괴수가 사라졌는데 죽은 건지 어쩐건지는 모른다. 치안대장님은, 아니, 임재욱 헌터는 공격력 10짜리인 F급 헌터가 그 괴수를 죽였다는 거냐고 말하면서 비웃었어요.”
임정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래서.”
“저도 모른다고 했죠. 그리고 늪을 떠난 괴수를 죽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줬어요. 네이팜탄은 미리 구해놓은 거고요. 저는 그렇게 하면 제가 임재욱 헌터한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뭐.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긴 하네요. 저는 임재욱 헌터한테서 연락이 없어서 그냥 약속을 지키는 건 줄만 알았어요. 약속을 지킬 사람이라고는 생각을 안 했는데 약속을 지켜서 희한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정말 죽었나요?”
강지연이 서규태를 보면서 물었다. 하지만 서규태는 임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임정은 충격에 빠진 얼굴이었다.
“저 괴수에 대해서 알아낸 걸 전부 설명해 봐. 저 붉은 점들, 점점 짙어지는 붉은 점들은 뭘 나타내는 건지 그런 것들.”
서규태가 말했다.
강지연은 언젠가 임재욱한테 설명한 적이 있었던 얘기를 그대로 반복했다.
“저 붉은 점은 지금 뭐에 반응을 하는 거지? 아니. 질문이 잘못 된 건가? 감응긴가 하는 그 기계는 뭐에 반응을 하는 건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서규태가 물었다.
“차크라죠. 괴수가 가지고 있는 차크라. 아. 그때 그 얘기도 하려고 했는데 임재욱 헌터가 기분 나쁘게 하는 바람에 말을 안 해줬는데. 감응기로 다른 괴수들에 대해서도 실험을 해 봤는데요. 이건 달라요. 확실히 달라요. 임재욱 헌터랑 헤어진 후에도 몇 차례 더 실험을 했는데 실험을 할수록 확실해졌어요. 이 괴수는 차크라 양이 엄청나요. 다른 일반적인 괴수들이 가진 차크라에 비해서도 월등해요. 그걸 확인하려고 2급 괴수랑 1급 괴수의 차크라 양도 알아봤거든요.”
“그런데?”
서규태가 물었다.
“1급 괴수보다 많아요. 그래서 더 겁이 나기도 했고요. 이런 걸 제가 가지고 있다간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모은 자료들을 전부 다 폐기하려고 하는 중이었고요. 전에는 임재욱 헌터가 제 뒤를 봐 줄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건 전부 포기를 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러려면 위험을 쫓기보다는 바짝 엎드리는 게 낫잖아요.”
“괴수의 차크라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늪에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헌터가 아닌 사람이 거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이 감응기를 만들 때 가장 주안점을 둔 게 그거예요. 헌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실험을 할 수 있게 하려고 한 거죠. 이 감응기는 늪에 직접 들어가지 않아도 차크라 양을 측정할 수 있어요.”
“그럼 안지우씨 침실에 들어갔던 괴수는 거대한 차크라의 응집이라는 건가?”
임정이 물었다.
“그렇죠. 그 말이야말로 맞겠네요. 거대한 차크라의 응집. 차크라 결정체. 그건. 괴수가 아닐지도 몰라요. 저도 그 생각은 안 했었는데 사람이 사는 침실에 들어갈 정도라면 굉장히 작았겠네요. 그렇게 작은 괴수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어요.”
“차크라 결정체? 그게 스스로 움직였다고? 늪에 있다가?”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안지우씨한테 묻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죠.”
“자료는 이게 전분가? 다른 건 더 없나?”
서규태가 묻자 강지연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더니 다른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서규태와 임정이 찾는 것은 아니었다.
“안지우씨 늪과 관련된 자료에 한정해서.”
결국 서규태가 다시 조건을 걸어주고 나서야 강지연은 다른 건 없다고 말했다.
"아, 그리고 이건. 그 일이 있은 후에 감응기를 조금 손 봐서 나온 결관데. 이제는 차크라를 가진 생명체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차크라를 가진 생명체를 구분한다고?"
"괴수의 차크라가 가지는 본질적인 차이점을 찾아냈거든요. 헌터의 차크라하고 달리 괴수의 차크라에만 나타나는 특이성이 있어요. 이걸 왜 생각했냐면, 이걸로 헌터와 괴수의 차크라를 각각 구분 해내면 외부에서도 늪 아래에서 헌터 몇 명이 싸우고 있는지, 괴수는 여전히 살아있는지 그런 걸 알 수 있어서 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돼서였어요."
서규태는 좋은 생각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 감응기를 작동시키면 이곳에 두 명의 헌터가 있다는 게 보일 거예요. 보여드릴까요? 보시면 헌터의 차크라가 괴수의 차크라하고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확실히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치안부장님으로서도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죠. 이걸 잘 이용하면 사체 운반 헌터들과 레이더들의 분쟁을 줄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강지연은 임정의 뜻을 구하는 얼굴로 임정을 바라보았고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늪에 네이팜탄을 터뜨려서 괴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믿나?”
강지연이 감응기를 켜면서 예열하는 동안 임정이 물었다. 그러자 강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서규태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믿는 게 아니예요. 아는 거죠. 그건 그렇게 될 일이었어요.”
“…….”
임정은 할 말을 잃은 얼굴로 서규태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