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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86화 (8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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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더군다나 여섯 명 중 한 사람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것만 담당했고 괴수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으니 실제로는 다섯 명의 헌터가 싸우는 거였다.

“우리 둘이서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우리 노예도 꽤 지친 것 같기는 하지만요.”

서규태가 말했다.

그가 말하는 '우리 둘'에 자기가 끼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지우는 화가 났다. 그럴 때는 정말 맵이고 괴수고 다 들어엎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우가 실망했다고 생각했는지 서규태가 지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태인도 어느새 다가와서 지우를 보고 웃으며 자기들도 아직 끝난 건 아니라고 말했다.

“미안해요, 형. 제 공격력이 조금만 높았으면 이럴 때 도움이 됐을 텐데요.”

“별 웃기는 소리를 다한다. 숨을 내쉴 때마다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람은 정작 미안하다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하는데 지우 네가 뭐가 미안해? 지우 네가 아니면 우리는 제대로 공격을 하지도 못하잖아. 우리가 이렇게 공격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건 순전히 너 때문이야. 내가 멍청하게 보여도 그런 것까지 모를 정도는 아니라고. 괜히 그러지 마. 그리고 우리도 곧 등급이 올라갈 거고. 그럼 공격력도 자연스럽게 올라가겠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태인은 다시 귀신늑대를 향해 다가갔다. 지우가 쓸데없이 자괴감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태인과 강현은 바닥에 깔려 있는 차크라를 쓱쓱 끌어모으며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지우와 서규태는 그때부터 쉬지 않고 공격을 가했다. 이익헌도 마찬가지였다.

태인과 강현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미 한참 전에 나가 떨어져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익헌은 그들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그들이 만약 안지우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금 서 있는 곳의 3분의 1 지점에도 이르지 못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너무 과한 상대를 만난 탓에, 조금이라도 따라잡아 보려고 버티고 버티면서 자신들을 갈고 닦은 탓에 여기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태인과 강현은 차크라를 모아 자신의 혼을 쏟아넣듯 공격을 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이익헌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왜 포기하지 않는 거야. 그게 뭐라고.'

이 사람들이 돈 때문에 레이드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진작에 눈치챈 바였다. 그들이 캐츠 아이 스톤을 찾아서 A급 헌터가 되려고 하는 이유는 이익헌도 알고 있었다.

임정과 안지우의 아이.

아이를 만드는데 공헌한 두 사람은 그 아이가 태어나서 자랄 세상을 괴수로부터 지켜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거야 두 사람 문제가 아닌가. 왜, 같은 클랜의 클랜원이라는 이유로 저들이 저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익헌은 안지우를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치욕스런 얼굴이었다. 8백만의 체력을 깎아내야하는 상황에, 자기가 휘두르는 가격으로는 괴수에게 겨우 삼십 육의 데미지를 입힐 수 있을 뿐인데 그 치욕적인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저라면 벌써 엎어버렸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시스템에게 능욕을 당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벌써 다 치워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부싯돌로 불을 만드는 일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반복하고 그만큼의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이 끈적한 감정, 이런 게 유대감이라는 것인가.

이익헌은 한숨을 내쉬고 힘을 모았다. 만일을 위해 아끼고 아껴둔 차크라도 다 써버릴 작정을 했다. 제가 다치면 제 몸의 재생을 위해서 쓰려고 남겨둔 차크라였다. 이걸 써 버리고 나면 저를 임정이란 여자한테 맡겨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임정이 저를 도와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임정이 저를 치유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훨씬 더 컸다. 뻑하면 '죽음을 유예'시켰네 어쨌네 하고 말하는 여자니까. 그런데도 이익헌은 차크라를 끌어모았다.

'아, 씨발. 그 부싯돌로는 백날 부딪쳐봐야 불 안 지펴진다고! 내 지포라이터로 불 붙여 주겠다고!'

그런 마음이었다.

그것은 전혀 이익헌답지 않은 생각이었다. 제가 왜 그렇게까지 마음을 먹은 건지 이익헌도 알지 못했다. 그냥 이 짜증스런 분위기를 빨리 어떻게든 걷어치우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익헌이 힘을 내는 것을 보고 괜히 지우가 더 열심을 냈다. 이익헌은 지우가 무의미한 시도를 계속 하는 것이 싫어서 힘을 낸 거였는데 일이 이상해졌다. 그 꼴을 보지 않으려고 그런 거였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난 꼴이었다.

태인과 강현은 확연히 떨어진 괴수의 체력을 보고 이제 자기들이 조금만 더 거들면 레이드가 끝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임정은 나서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자기도 콩알이 소중하다는 자각이 있어서 괴수의 곁으로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애가 탔다.

서규태는 정보창을 보면서 남은 괴수의 체력을 읽어주었다. 그러면서 전방위적으로 움직이며 귀신늑대를 정신을 분산시키며 공격을 가했다. 론 디어를 든 이익헌과 네메시스를 든 강현이 서로의 동선을 배려하면서 움직이며 괴수에게 데미지를 입히고 각자의 방향으로 달려갔다. 태인은 귀신늑대의 공격에서 비교적 안전한 뒷다리 쪽으로 가서 그곳을 집중 공략하며 손도끼로 다리를 찍어댔다.

"거의 끝입니다. 정말로 거의 끝이예요. 이제 우리는 각자 공격횟수를 조절해가면서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익헌은 두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지금까지 싸워보면서 이렇게까지 자신을 완전히 불태워본 적은 없었다. 한계를 넘어선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강렬한 쾌감이 그의 전신을 휩쓸며 돌아다녔다. 그의 얼굴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피어 올랐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봤을 리는 없었다.

좋았다. 굉장한 기분이었다. 사람을 두들겨 패놓고 이 사람이 이제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느끼던 희열과는 또다른 맛이었다. 그의 편집증적인 성향이 하나의 새로운 목표를 정한 듯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벽이더라도, 그게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제 몸을 던지다보면 언젠가는 그것을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보들 사이에 있다보니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는 모양이라는, 지극히 이익헌다운 생각이 곧 그 뒤를 잇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는 그런 생각을 품었다.

'또 모르지. 이건 전부 헛된 생각이고, 벽은 견고하고, 그 앞에는 피흘리는 고깃덩어리인 내가 혼자 남겨지게 될지도.'

하지만.

자신을 믿고 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영혼의 끝까지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게 될 것도 같았다. 그거라면 자신의 전인생을 쫓아다니며 끈질기게 괴롭혀왔던 허무감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속도 모르고 임정이 다가왔다.

"많이 힘든가요?"

임정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이익헌은 다른 곳으로 휑하니 가버렸다. 기껏 친절하게 물어봐 줬는데 이익헌이 말도 없이 가버리는 바람에 임정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빠지직, 일그러졌지만 그 얼굴을 직접 보지는 않아서 이익헌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는 정해진대로 갑시다. 우리는 먼저 퇴장합니다. 그리고 지우씨가 귀신늑대를 공격해서 귀신늑대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주고 지우씨도 늪을 떠나고요. 그때 강현씨와 태인씨 두 사람이 귀신늑대에게 딜을 넣고 이 늪의 경험치를 갖는 겁니다."

모두가 작전을 이해했고 명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지우가 서규태를 바라보자 서규태가 이익헌과 임정을 데리고 늪을 빠져나갔다. 자그마치 2급 늪의 괴수였다. 이 한 번의 레이드로 인한 경험치로 태인과 강현의 등급이 동시에 D급이 될 수가 있었다.

지우는 강현과 태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엑스 블레이드가 들려있었다. 지우는 엑스 블레이드를 제 어깨에 걸치고 두 사람에게 신호를 보냈다.

"단 번에 베주지. 준비들은 된 거지? D급 헌터가 될 준비. 어? 태인이 형. 김강현."

강현과 태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멀찍이 물러섰다. 귀신늑대가 요동치고 발악을 하면 그 행동반경이 갑자기 커지기 때문이었다.

지우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귀신 늑대를 향해 달려갔다. 귀신늑대는 지우가 제 눈 앞에서 튀어 오르는 것을 보았지만 어느 순간, 지우를 바라보던 눈에 지우는 사라지고 하늘이 들어왔다.

귀신늑대의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머리를 잃은 목에서는 피의 분수가 솟구쳤다. 엑스 블레이드를 맛본 괴수들이 볼 수 있는 신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부탁해."

지우는 태인과 강현 두 사람을 한 번 바라보고서 늪을 빠져나갔다. 태인과 강현은 늪의 회복력이 늪의 주인을 되살리기 전에 재빨리 무기를 들고 귀신늑대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태인의 손도끼와 강현의 네메시스가 귀신늑대의 체력을 완전히 고갈시켰다.

늪의 주인은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

태인은 늪의 주인이 마지막으로 쉬는 숨이 러프 스톤을 만드는 것 같다는 감상적인 생각을 했다. 태인이 귀신늑대에게서 나온 러프 스톤을 주워 강현에게 주었다.

"우리가 원하던 러프 스톤이다."

강현은 감격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강현은 손을 내밀어 러프 스톤을 받았다. 러프 스톤은 심장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강현은 자기가 괴수의 내장을 쥐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형. 제가 지금 2급 괴수의 러프 스톤을 쥐고 있어요. 제 클랜이 사냥한 괴수의 러프 스톤을요."

"응."

태인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바닥을 훑는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캐츠 아이 스톤은 발견되지 않았다. 태인의 생각을 읽었는지 강현이 웃었다.

“형. 우린 지금 2급 괴수를 사냥해서 죽였는데 캐츠 아이 스톤이 없다고 서운해하고 있네요.”

“그러게.”

태인은 강현의 타투에 새겨진 등급이 올라간 것을 보았다. 하지만 제 것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혼자서 보기보다는 모두와 감격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 강현도 같은 생각을 했고 두 사람은 서둘러 늪에서 퇴장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그 늪도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터였다. 태인과 강현이 밖으로 나가자 이익헌이 가장 먼저 태인에게 다가가 태인을 가로챘다. 태인의 입장에서 이익헌은, 태인이 가장 먼저 보고 감격을 같이 나누고 싶은 상대가 절대로 아니었다.

“얘기 좀 합시다.”

이익헌은 제 몸으로 태인을 밀고 가면서 말했다.

“예? 저하고요? 왜요? 무슨……?”

이익헌은 태인을 다짜고짜 끌고 늪으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의 열등생’에 태인이 당첨된 거라는 걸 알고 웃으면서 다같이 그 뒤를 따라 돌아갔다. 어차피 무기며 장비며, 챙겨가지고 나오지 못한 것들을 회수해야 하기도 했다.

이익헌은 태인의 손도끼를 손에 든 채 속성 과외를 시작했다.

“이태인씨는 이태인씨 팔에 편하다고 한 방향만 고집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태인씨가 그릴 수 있는 궤적으로밖에 도끼가 사용될 수가 없고 그건 불필요한 차크라의 손실을 가져오는 거잖아요. 차크라가 많은 것도 아닌 사람이! 없는 살림에 뭘 그렇게 함부로 낭비합니까? 움직임이 편하지 않더라도 연습을 하란 말입니다. 이쪽에서도 찍고 저쪽에서도 찍을 수 있게 하라고요. 이렇게!”

신인상을 받고 감개무량해서 소감을 말하려고 하고 있는데 너 따위의 소감은 듣지 않겠다며 마이크를 꺼버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태인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젠장. 나도 이제 D급 헌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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