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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1급 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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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 들어가기 전에 이익헌은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지우가 다가와 이익헌이 어깨 뒤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익헌은 지우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태블릿을 훔쳐보는 게 싫었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당당하게 말할 입장은 아니어서 입을 다물었다.
화면에서는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라미실과 해리가 사냥에 실패한 1급 괴수는 드디어 늪을 빠져나왔다. 동영상은 1급 괴수에 의해서 도시가 파괴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공군 전투기 23대와 두 개의 특수전여단이 투입된 끝에 작은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내 주고서야 사람들은 괴수를 잡을 수가 있었다. 그야말로 상처만 남은 승리였다.
도시는 불길에 휩싸였고 도시를 휘감은 불길은 사흘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았다. 신 금융 허브로 명성을 날리던 아름다운 도시가 이제는 검은 시멘트 덩어리의 무덤으로 변해있었다.
“그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겁니까?”
지우가 이익헌에게 물었다.
“그 사람들요? A급 헌터요? 해리와 라미실 말입니까?”
“네. 헌터들이 해결하지 못해서 괴수가 늪 밖으로 나온 거잖아요.”
“괴수들요. 괴수가 아니라.”
이익헌의 말이 옳았다.
늪에는 두 마리의 두꺼비 괴수가 살고 있었고 녀석들은 군인과 헌터들의 집중 공격을 당해 죽을 때까지 탐욕스런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안일하게 유지되고 있던 평화가 조각조각 부서지는데는 불과 몇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현대 무기는 괴수한테 거의 통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거의 통하지 않지만 저렇게 물량 공세를 하면 뭐라도 죽지 않겠습니까?”
지우의 말에 이익헌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전투기로 한 발의 포탄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딜러 한 사람이 십 분 동안 공격을 하는 것이 괴수에게는 훨씬 더 큰 데미지를 입히는 방법이다. 그 괴수들을 잡은 것도, 수많은 헌터들이 여러 시간 동안 원거리에서 끊임없이 딜을 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화면에는 그런 것들이 잡히지 않았다.
“튄 거죠? 겁나서. 결국 A급 헌터들도 1급 괴수들을 처리할 능력이 안 됐다는 거죠?”
지우가 말했다.
“전략상의 후퇴인 걸 수도 있고.”
이익헌은 동영상을 꺼버렸다. 얘기가 길어지는 것이 싫었고 안지우가 다른 쪽으로 가 주었으면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지우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보고 태인과 서규태가 다가왔다. 두 사람은 지우가 익헌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A급 헌터도 1급 괴수를 처리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건 안 되는 거지. 지우 너는 F급일 때도 여러 가지 일들을 해냈잖아. 나랑 강현이도 마찬가지고. 누가 몇 등급 헌터인가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우리가 A등급 헌터가 된다면 우리는 1급 괴수를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A등급이 아니라고 해도. 나는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태인이 말했다.
서규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1급 늪을 공략해보자는 얘기를 한 번 해 보려고 하긴 했습니다. 지금 바로는 어렵겠지만 보름 정도 집중적으로 훈련을 한 후에 가 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가서 싸워보다가 안 될 것 같으면 나오면 되는 거고. 아직 우리 나라에 있는 1급 늪들은 성장하지 않으니까 괴수가 나올 거라는 압박감은 떨쳐낸 채로 시도해 볼 수 있잖아요.”
서규태의 말을 듣고 지우는 놀란 얼굴로 서규태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정말 클랜 A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안 될 것도 없지 않나요? 클랜 A는 지금까지 내가 가져봤던 동료들 중에 가장 강합니다. 희생 정신도 있고 책임감과 사명감도 투철하죠.”
서규태가 힘주어 말했다.
확실히 임정이 아이를 가진 후로는 레이드를 할 때의 자세가 달라졌다. 이제는 캐츠 아이 스톤을 구해서 A등급으로 올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공략에 공략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게 그저 돈 때문이었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까지 열심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임정과 지우가 자신들의 아이를 지키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클랜 A의 클랜원들은 두 사람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었다.
이익헌이 지우를 힐끔 돌아보다가 금세 고개를 돌렸다. 안지우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알고 싶은 것은 그의 차크라의 실체였는데 지금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안지우의 차크라가 얼마나 되는지, 그가 얼마나 정교하게 그것을 사용하는지 하는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안지우가 일정 범위 안으로 다가오면 이익헌은 안지우가 왔다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일정 범위라는 것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 이익헌이 멍청한 삼촌에게 자주 당했던 장난을 떠오르게 했다. 삼촌은 체구가 엄청나게 큰 사람이었는데 겨우 네 살이었던 이익헌의 두 팔을 꽉 잡아 쥐고 이익헌이 경기를 일으킬 때까지 이익헌을 들어올리곤 했다. 주변에 이익헌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와줄 사람이 없으면 이익헌은 기절할 때까지 그 장난의 희생양이 되곤 했다.
그래놓고도 삼촌은 킥킥킥 웃기만 했다. 그가 중증의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이익헌은 삼촌을 죽일 생각을 제법 치밀하게 키워갔다.
일단 삼촌의 커다란 손에 붙잡히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공중 감옥.
삼촌은 그것을 그렇게 불렀다. 움직일 수도 없고 꼼짝도 할 수 없고, 두려움 때문에 숨도 쉴 수 없게 될 때까지 삼촌은 이익헌을 괴롭혔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괴로워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린애같은 호기심으로 한 짓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웬만해선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불쾌한 기억이었는데 잘 묻고 해결해두었다고 생각한 그 기억이 안지우에 의해서 불쑥 떠올라버렸다. 안지우의 차크라는 꼭 삼촌의 무지막지한 악력을 연상시켰다.
안지우가 다가오면 이익헌은 자신의 몸이 사정없이 조이며 억눌림을 당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수박이었던 자기가 감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도는 매번 달랐다.
이익헌은 처음에 자기가 느끼는 그 기묘한 압박감이 무엇에 의한 것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것이 안지우의 차크라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익헌이 봤을 때 안지우는, 자신의 차크라가 이익헌을 구속하고 압박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 인간은 뻔뻔하게도 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이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보니 이제는 안지우의 목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오기만 해도 목줄기에 땀이 흘렀다. 차크라로 멀리에서 다른 사람의 몸에 직접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는 알지 못했다. 만약 그런 일을 당하는 사람이 제가 아니었다면 듣고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바디 펌에서 임정을 납치하려다가 미수로 끝나고 두 사람에게 붙잡혀 왔을 때 처음에는 치안대를 전전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은 곧 청산할 수가 있었다. 치안대에서 그를 본 사람들 중에 그가 바디 펌의 부사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그가 이익헌 부사장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사람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임정은 그가 단순법규 위반으로 수감된 거라고 설명을 했다.
이익헌은 계속 바디 펌의 부사장이어야 하고, 그 자리에서 긁어 올 수 있는 정보들을 클랜 A로 흘러가도록 해 주어야 했다. 이익헌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방법을 찾은 후에는 이익헌을 더 이상 그곳에 둘 이유가 없었다. 지금 이익헌의 몸 곳곳에는 플라스틱 폭탄 파이널이 뼈의 옆에 나란히, 나란히 붙어 있었다. 이익헌의 재생 능력으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상된 자신의 몸을 고치는 것이지 자신의 몸 안에 들어있는 파이널을 전부 다 찾아 긁어낼 수는 없었다.
“당신의 죽음은 유예된 것 뿐입니다. 언제라도, 우리의 변덕에 의해서라도, 당신은 죽을 수 있다는 걸 알고서 매순간 최선을 다해주길 바랍니다.”
파이널을 그의 몸 곳곳에 채워준 후에 임정이 한 말이었다.
파이널을 터뜨릴 수 있는 스위치는 클랜 A의 모든 클랜원에게 돌아갔다. 스위치 한 방으로 이익헌은 언제든 목숨을 마감할 수가 있었다. 그로 인해 이익헌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가 클랜 A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했고 조금은 인정을 베풀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클랜 A의 사람들이 사람말을 잘 듣지 않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점점 몸으로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그 후로 이익헌에게는 다른 삶이 주어졌다. 그것은 클랜 A의 노예로서의 삶이었다.
캐츠 아이 스톤을 찾기 위한 무자비한 사냥이 시작되었다. 불쌍한 것은 괴수들이 아니라 이익헌이었다. 그야말로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다른 생각을 할 정신도 없고 한 눈을 팔 사이도 없었다.
이익헌은 지우에게 보호관찰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덕분에 바디 펌에는 제대로 출근을 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익헌은 허수아비를 내세워놓고 뒤에서 일을 처리하면서 바디 펌의 일도 흐트러짐없이 수행을 해 나갔다.
이익헌이 들어가는 늪은, 언제나 인기가 좋았다. 이익헌에 대해서 감정이 좋은 사람은 없었지만 태인과 강현, 지우 할 것 없이, 심지어 서규태 조차도 사체 운반을 할 때부터 론 디어를 흠모해 왔기 때문에 이익헌의 옆에서 이익헌의 레이드를 구경하는 것을 대단한 기회로 생각했다.
이제 이익헌의 존재를 위협적으로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천기정이 이익헌을 두고 한 말이 있었다.
충동적으로 일회성의 살인을 한 사람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살인을 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얘기였다. 살인은 논리가 파괴된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일지 모르지만 살인의 뒷정리를 하고 패턴을 이어가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이라는 설명을 하면서 천기정은 파이널의 스위치 없이도 클랜원들이 충분히 이익헌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익헌은,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미래에 꿈꾸는 것도 있었고, 자신의 삶이 갑자기 끝나도 좋다는 생각 같은 것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절벽 위에 세워 놨는데 날아보겠다고 팔을 벌리고 뛰어내리지는 않을 거라는 게 천기정의 생각이었다.
태인은 처음에 그 생각에 회의적이었다.
“전갈의 본능은 남을 공격하는 거죠. 그런 본능을 가진 사람은 상대가 자기를 도우려고 한다는 걸 알아도 공격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실제로 본 적도 있고요.”
그러나 서규태는 확신을 가지고 반론했다.
“나도 이익헌 부사장이 그런 류의 사람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끊임없이 외부를 향해 공격 성향을 드러내고 싶어할 겁니다. 하지만 그게 꼭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을 거예요. 이익헌 부사장이 계속해서 레이드를 할 수 있게 해 주면, 나는 그 성향을 제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갈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미처 피하지 못했을 경우에만 상대를 공격합니다. 피할 기회를 주면 먼저 달아나죠.”
클랜 A의 클랜원들은 명시적으로 이익헌을 받아들였다. 이익헌의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진심을 내놓고 진심을 받으면서 교류하는 법을 모르는 이익헌으로서는 죽을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