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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78화 (78/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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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그 후에는 다른 말들이 필요가 없었다. 이익헌은 자신에게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을 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랬기에 전력을 다해서 임정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의 속도는 지우를 따를 수가 없었다. 지우는 정을 향해 달려가는 대신, 이익헌의 방향을 읽고 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지우의 몸과 부딪친 측면의 뼈가 그대로 바스러졌다. 이익헌은 고스란히 그 충격을 느끼면서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지우는 이익헌의 발을 붙잡아 올리고 그것을 팽팽하게 당기다가 그대로 손날로 내리찍었다. 이익헌의 고통스런 비명이 공간을 갈랐다. 지우는 언제까지 이익헌에게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건지 알지 못했다. 다시 이익헌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정을 영영 잃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우가 임정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임정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당신, 괜찮은 거야?”

지우가 소리를 지르자 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을 바라본 채 한 번 심호흡을 하더니 임정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무리하지 마. 내가 혼자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

지우가 말하자 임정은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천천히 일어서서, 선아영으로부터 받은 구속장비를 꺼내들고 지우에게 다가왔다.

지우는 아직 분풀이가 제대로 끝나지 않아서 이익헌의 허리를 발로 밟은 채 이익헌의 두 팔을 잡아 꺾어 버렸다. 허리가 끊어지는 고통에 이익헌은 까무룩 기절을 할 뻔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차크라를 몸으로 돌리면서 제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이익헌의 팔에는 헌터 타투가 없었다. 지우는 그래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미친 인간이 무슨 짓을 벌이는 놈인지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우에게는 이익헌이 임정을 납치했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것은 지우에게 모든 것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설령 지우 자신이 이익헌을 죽이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납득할 이유가 되어줄 거였다.

이익헌이 히죽 웃었다.

“네 여자. 내가 먹었다. 다리를 찢을 듯이 벌려놓고 내껄로 꼭꽉 채워줬지.”

클클클클 거리는 웃음소리가 이익헌의 잇새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지우는 제동장치가 고장난 사람처럼 이익헌의 얼굴을 때렸다. 앞으로 그 얼굴을 한 채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이익헌의 얼굴이 짓이겨졌다.

그때 뒤에서 임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도 말해보지 그래? 이 씨이발늠아! 내가 드로즈를 입고 있었어, 삼각을 입고 있었어? 브래지어 후크는 앞에 달려 있었어, 뒤에 달려 있었어? 음?”

지우가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임정의 발이 날아와 이익헌의 옆구리에 박혔다.

“내가 뭘 입었냐고 물었다.”

저렇게 계속 하다가는 목뼈가 끊어져버리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얼굴에 연타를 날리기도 했다.

이익헌이라는 인간도 불쌍했다. 왜 그런 말을 해야 했던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자기가 우세하다고 생각했던 건가.'

하지만 지우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이익헌 자신도 자기의 입을 통제할 수 없었을 거라고 지우는 생각했다.

죽도록 처맞으면서도 패드립을 치는 사람처럼, 이익헌도 자기 파괴의 정신이 투철한 것 뿐이리라. 이익헌은 살아오면서 조금씩 모아 온 용기를, 겨우 그 따위 말을 하는데 전부 다 쏟아버렸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임정이 늘 가지고 다니는 검은, 이익헌의 도발 덕분에 그의 피 맛에 흠뻑 취하게 되었다.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 말하라고 했는데."

임정도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검은…….”

이익헌은 뭐라도 둘러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지우는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수요일은 무조건 빨간 속옷이다. 그건 임정의 철칙이다.

지우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정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임정을 향한 마음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임정은 지우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싸움도 다 집어치우고 임정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살아있다는 것이 고마워서, 임정이 혼자 여기에 들어와 버린 것까지도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왜 사람 말을 안 듣고 여기에 둘이서만 온 거냐고 따지기는 해야 되겠지만 지금은 먼저 끝내놔야 할 일이 있었다.

“죽이는 거죠? 여기는 어차피 괴수 사체를 저장하는 곳이예요. 어울리는 장소죠. 바디 펌은 중역들이 이상한 이유로 죽어나가는 걸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임정이 말했다.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지우를 바라보는 이익헌의 눈에 두려움이 서렸다. 이익헌은 제 눈 앞에 서 있는 남자가 규율 따위에 묶여 행동에 제약을 받는 유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익헌은 허둥댔다.

“살려줘. 살려줘요. 나를 죽여서 얻을 게 없잖아요!”

“너를 살려둬서 얻을 건 뭔데? 그게 뭐라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질 않아.”

임정이 말했다.

이익헌은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뭐라도 할 수 있어요. 뭐라도. 나는 최고라고! 나한테 뭐든 기회를 줘. 그냥 죽이는 건 아깝지 않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리고. 물어봐서 알려주는 건데. 아깝지 않아."

"나를 몰라서 그래. 나는, 나를, 이렇게 죽여서는 안 되는 거라고!"

"왜? 아직 못 죽인 사람이 많이 남았나? 그래도 관심 없어."

"그건 내 본의가 아니었어. 나도 바뀔 수 있어. 변할 수 있다고."

"관심없다고 말했는데. 그리고 계속 반말하는 거 마음에 안 들어."

임정이 말했다.

“이 자식이 하는 말에 집중하지마. 이 자식 벌써 재생했어. 그래도 차크라는 상당히 소모됐어. 이것까지 낫게 할 수 있는지 보자고.”

지우가 발에 힘을 실어 갈비뼈를 밟아 부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임정이 지우를 붙잡았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임정은 이익헌의 몸을 결박하기 시작했다. 포대를 싸매고 줄로 꽁꽁 묶는 것처럼, 그것이 사람 몸이라는 인식도 없이 꽉꽉 야무지게도 묶어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지우가 정에게 물었다.

“어차피 죽일 거잖아요. 이 사람을 죽이는데 우리 힘을 빼지 말고 그냥 1급 늪에 던져넣죠. 공략되지 않은 1급 괴수가 사는 곳에요.”

“뭐? 1급 늪은, 아직까지 한 번도 공략에 성공을 못 했잖아. 베테랑 열 명이 공대를 꾸려서 들어가도 성공을 못했잖아. 그런데 이 사람을 혼자 들여보낸다고?”

“나오지 않으면 충분히 고통스럽게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고, 혹시 나오면 괴수를 죽인 걸 테니까 러프 스톤을 뺏으면 되죠.”

“괴수를 죽이지는 못하고 늪에서 그냥 퇴장만 하는 거라면?”

“그러면 계속 다시 밀어넣는 거죠.”

“당신이야말로……. 진짜 잔인한 거 알아?”

지우가 말했다.

“그냥 죽여도 되는 사람한테 기회를 주는 건데 내가 잔인하다고요?”

농담도 잘한다는 듯이 웃어보이면서 임정은 이익헌에 대한 감시를 단단히 했다. 이익헌의 차크라는 꽤 많이 소진된 상태였지만 그래도 지우와 임정은 이익헌이 다른 궁리를 하지 못하도록 그에게 매번 새로운 상처를 안겼다.

이익헌은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서 후회했다. 자기가 죽인 사람들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자기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이 두 정신나간 인간들한테 붙잡혀 있을 필요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까 해서 이익헌은 어느 순간부터 제 몸을 회복시키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나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면 그때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차크라가 기어이 이익헌을 살려내고야 말았다.

“어쭙잖은 불사의 존재인 거네.”

그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다가 지우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익헌은 그 남자가 점점 두려워졌다. 그냥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잔줄 알았는데 이 남자에게는 터부라는 것이 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도, 끔찍한 고통을 안기며 고문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 남자는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해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때는 거리낌없이 복수를 할 사람이었다.

이익헌은 자기가 그런 사람을 자극했다는 사실이 후회가 돼서 미칠 지경이었다. 만약에 자신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천기정은 절대로 건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임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임정은 바라보지도 않을 거였다.

이익헌은 지우와 임정에게 번갈아 공격을 당하고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임정과 지우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임정과 안지우, 두 사람이 다 미친 것 같았지만 그나마 안지우가 조금 더 경증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지우가 임정을 말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우는 점점 임정의 생각에 동조되고 있었다.

가만히 놔 뒀다가는 두 사람이 정말로 자기를 1급 늪에 밀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이익헌은 미칠 것 같았다.

“잠깐. 이 미친 색! 아, 아니. 여러분! 잠깐만요.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조금만 더 잘 생각을 해 보시라고요. 러프 스톤이 필요한 거라면, 돈이 필요해서 그러시는 거라면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이익헌의 말에 지우가 고개를 저었다.

“안돼. 이렇게까지 해 놨다가 너를 법의 심판에 넘길 수는 없잖아. 그러기에는 우리도 너무 많이 나갔다고.”

“제가 문제삼지 않을게요. 그러면 되잖습니까!”

“너를 믿으라고? 너는 나를 믿을 수 있나?”

“네!”

“그래. 믿어라. 나는 너를 죽일 거다.”

“그런 말씀하지 마시고요. 저, 저한테 그럼, 저…! 저…!”

머리를 굴려야 하는데 좋은 생각이 떠오르질 않았다. 지우는 그 와중에도 이익헌의 몸이 다 나은 것을 발견하고 쇄골 옆에 한 번 더 깊이 칼을 찔러 넣어 버렸다.

‘아, 씨입, 이 개새끼!’

이익헌은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어느새 순응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희생자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처음에는 그렇게 미칠 것 같더니 나중에는, 숙제 안 했다고 매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으로 조금은 제 잘못을 탕감받을 수 있을 거라고 멋대로 기대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나한테 준 고통으로 나한테 벌을 다 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아요?”

이익헌이 맹랑한 말을 했다. 웃으라고 한 말인 것 같아서 지우와 임정은 시원하게 웃어주었다.

“끊임없이 살아나라고 한 적 없다. 나도 괴로워. 귀찮거든.”

임정은 바닥에 주저 앉아 태블릿을 꺼내더니 1급 늪의 위치를 조회할 수 없다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지우는 임정의 말을 듣고 그 안에서 커다란 바디팩을 찾아내 그 속을 비우고 이익헌을 구겨 넣었다. 어느덧 이익헌의 입에서는 우는 소리가 새 나오고 있었다. 참담하고 굴욕적이고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이대로 나가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익헌이 고개를 저어대며 소리를 질렀다.

“뭐야!”

“정말로 늪에 던질 건 아니죠?”

“안 될 게 뭔데?”

“그러면요. 그러면. 제 무기를 가져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지우는 임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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