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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77화 (7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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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경비원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치안부장을 모른다면 혹시 여자 헌터는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경비원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지우를 귀찮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우의 질문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지우는 그 사람에게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지우의 손이 경비원의 목을 감아쥐었다. 경비원은 자신의 목에서 감촉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제 몸이 허공으로 들리는 것을 깨달았다. 발버둥을 칠수록 숨을 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부사장이랑 같이 간 거야?”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죽어도 말을 안 할 생각인가보지?”

지우의 손이 더욱 조여졌고, 남자는 지우가 말만 번드르르한 유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비원이 손을 허우적거리면서 안내 데스크를 가리키자 지우가 경비원을 내려주었다.

“중역들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셨는데 몇 층에서 내리셨는지는 기록을 보면 나올 겁니다.”

경비원이 말했다.

“좋아요. 나한테 그 기록을 보내요.”

“그럴 것도 없습니다. 지하 6층입니다.”

“지하 6층? 거기에 뭐가 있죠?”

씨발,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것을 참으며 지우가 물었다. 지금은 협조를 얻어내는 게 가장 시급했다.

“바디 팩을 저장해 놓은 대형 냉동고들뿐이예요.”

지우는 이익헌이 거기에 왜 치안부장과 같이 간 거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이유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지우는 비상계단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고 경비원은 손을 들어 비상 계단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지우는 바람을 일으키면서 달려갔고 경비원은 붉게 부풀어 오르는 목을 더듬으면서 멍하니 지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우는 계단 난간을 잡고 몸을 날려 뛰어내리면서 십 여 개의 계단을 한 번에 건너 뛰어갔다. 그렇게 지하 6층까지 갔을 때 지우의 앞에는 경비원이 말했던 곳이 나타났다.

좁고 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여러 개의 방이 있었다. 하나하나가 거대한 시신 보관함처럼 보였다.

“정아! 임정!”

지우는 문을 두드리면서 정을 불렀다. 하지만 임정의 목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

지우에게 전화를 하고 임정은 지바겐을 타고 먼저 바디 펌으로 향했다. 뭔가 상황은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긴장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고 몸이 은근히 붕 뜨는 것 같았다.

강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꽤나 재미없는 일이었다. 임정의 주위에 있는 남자들은, 아니,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임정의 성격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임정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늘 신경을 썼다. 임정에게 책을 잡히지 않으려고 늘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전혀 남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협회장과의 사이가 가장 가까운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임정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다가오는 사람을 계속해서 밀어내기만 했더니, 어느 날, 혼자 남겨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슬펐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 나는 혼자네?'

그렇게 깨닫게 됐더라는 것 뿐이었다.

그러다가 지우를 만났고 지우를 사랑하게 됐고 이 남자가 자기 때문에 정신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으로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게, 그냥, 아주, 막, 좋아지는 것이다.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키를 내미는 것보다 이게 더 감동적이었다. 길에 멈춰 서서 끼야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에게서 이렇게 집중적으로 케어를 받는 기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는다는 기분이라니!

그런 생각으로 들뜬 채 지우의 말대로 지바겐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데 로비에서 이익헌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익헌이 그날 갑자기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했을 때, 임정은 그 자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레이더들이 공략을 마치고 나올 때 바디 펌으로 보내는 정보를 치안대와 공유하는 방안에 대해서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제안은 쉽게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익헌은, 바디 펌이 가진 정보를 치안대와 공유하면 치안대가 크리미널 헌터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차적으로, 사체 운반 헌터들이 레이더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이익헌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익헌이 제안한 것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그 자리에까지 나온 것이다. 이익헌에게는 그렇게 임정을 불러내야 할만큼 나름대로 급한 사정이 있었다. 임정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파고들때마다 밝혀지는 진실은 이익헌에게 끊임없이 경고를 했다. 임정은 위험하다고.

급기야 이익헌은 임정이 레이더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아무리 바디 펌의 부사장이라고 해도 치안대의 수사에까지 관여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이익헌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이익헌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임정은 이익헌이 참여했던 레이드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다녔다.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어떻게 알고 자기가 한 레이드만 쫓아다닌다는 말인가.

그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레이드에 참가하지도 않았고 제 얼굴을 남에게 보이지도 않았다. 투구를 쓰는 것은 레이드를 하는 헌터들에게 일상적이었고, 투구를 쓰기 전에 잠깐씩 얼굴을 보일 때도 그에게는 큰 걱정이 없었다. 재생 능력을 가진 헌터가 그 수준을 끌어 올리면 자신의 차크라를 사용해 일시적으로 얼굴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다. 차크라를 소모하는 일이라서 오랜 시간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런 식으로 이익헌은 제 모습을 숨겨 왔다.

다른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얼굴을 붓게 만들거나 턱을 두껍게 하고 살을 늘어지게 만들어서 전체적인 인상을 다르게 보이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데는 효과적이었다. 사람들에게 꼭 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는 변형시킨 얼굴을 보이고, 그 자리에서 투구를 쓰는 형식을 취했다.

그런데도 임정은 자기가 참가했던 레이드를 모두 아는 것 같았다. 이익헌은 임정을 일단 불러들여 임정이 뭘 알고 무엇을 뒤쫓는 건지 알아보려고 했다. 임정을 끌어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바디 펌이 가진 막강한 정보력을 미끼로 던지면 치안부장인 임정이 그것을 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게다가 이 치안부장은 특이하게도 사체 운반 헌터들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저 혼자 오해를 하고서 말이다.

임정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해 놓고 이익헌은 임정을 기다리며 제 집무실에서 내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지바겐이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제 곧 임정이 차에서 내려서 들어오겠다고 생각을 하고 보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임정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여자라고, 거울이라도 보는 건가 하면서 기다렸지만 화장을 고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로 하기에도 충분할만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임정은 내리지 않았다. 이익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임정이 자신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익헌은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여유있는 표정을 만들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가 주차장으로 가서 천천히 지바겐으로 다가가자 안에 있던 임정이 시큰둥하게 이익헌을 바라보았다.

“왜 여기에 계십니까? 들어오시지 않고?”

이익헌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누굴 좀 기다리는 중이예요. 위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같이 올라가죠.”

“아.”

이익헌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혼자가 아니라는 거군. 내 소굴에 혼자서는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이익헌은 만면에 웃음을 짓고 차창에 얼굴을 가져가며 말했다.

“일행분은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벌써 와 있다고요?”

임정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이익헌은 그 표정을 보고도 임정이 기다리는 사람이 임정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어서 가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임정을 기다려줄 필요도 없었다. 그는, 자기가 먼저 가면 임정이 스스로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임정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이럴 때는 급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희생자가 여유를 느끼게 해서는 것은 안되는 것이다.

이익헌이 그 말을 남기고 가 버리자 오히려 임정이 급해졌다. 주차장에서 보기로 하고 지우가 왜 혼자 로비로 가 버린 건가 하면서 임정은 차에서 내렸다. 임정의 유일한 실수였다면, 그 자리에 멈춰서서 지우에게 전화를 걸어보기 전에 움직였다는 거였을 것이다.

임정은 로비로 달려갔고, 임정이 로비에 도착했을 때 이익헌의 앞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같이 타시죠.”

문이 닫히지 않도록 버튼을 누르고 이익헌이 고갯짓을 했다. 임정의 움직임은 그의 선행된 행동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었지만 임정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서 임정은 이익헌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바닥이 없는 심연으로 꺼지는 것처럼 엘리베이터가 아래가 쑤욱 빠져들어갔다.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는데요?”

비로소 임정이 물었다. 이익헌은 임정을 보고 한 번 웃기만 했을 뿐이었다. 임정이 다시 물었지만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이익헌은 성큼성큼 앞서서 내렸다.

“이봐요! 이 부사장님!”

그는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임정은 비상구를 찾다가 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곳이 전파가 완전히 차단된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임정은 눈 앞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차크라를 모아, 제가 순간적으로 들이마신 것을 해독하려고 했지만 팔과 다리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이 힘이 풀렸다. 임정은 자기가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채로 벽에 등을 붙인 채 흘러내리듯 주저 앉다가 이내 바닥에 완전히 쓰러져 버렸다. 차크라의 흐름이 막혀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저벅저벅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익헌이 돌아왔다. 그가 몸을 숙이고 간단히 임정을 안아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임정에게는 전혀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

지우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작은 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정신을 집중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어떤 소리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정아!”

그는 한 번 더 정을 불렀다. 정이 아니더라도, 놀란 이익헌이라도 반응을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우의 귀에 작은 움직임의 소리가 들렸다.

지우는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렸다. 굳게 닫힌 철문은 그 두께만해도 몇 십 센티에 달하는 듯했고 철저히 보안이 되는 곳이었지만 화가 난 지우의 앞에서는 어떤 성벽도 무용지물이었다. 지우는 심호흡을 하고 발로 문을 찼고, 문은 엄청난 충격을 견디지 못한채 찢어졌다.

지우는 균열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의 모습이 보였다. 정은 한쪽 바닥에 내던져진 것처럼 누워 있었다. 이익헌은 반대편 구석에서 지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 왜 또 너지?”

이익헌이 말했다.

“역시 너였어.”

지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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