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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오랜만에 느껴보는 흥분감이었다.
‘그 녀석. 희한한 타투를 가지고 있더라니. 그걸로 잡을 수 있을 줄은 몰랐네.’
이익헌은 만족감을 느꼈다.
천기정의 커피 숍에 들이닥쳤을 때 천기정은 놓쳐버렸지만 천기정보다 훨씬 더 흥미를 자극하는 녀석을 보았다. 그때 우연히 보았던 헌터 타투는 사건이 모두 끝난 후에야 이익헌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났다.
아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는 깨닫지 못하다가 교차해서 한참을 지나간 후에야 어떤 사실이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익헌은 천기정과 함께 있던 녀석의 타투에 새겨진 공격력이 10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바디 펌의 부사장인 이익헌에게, 공격력 10의 헌터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보력으로만 따지자면 헌터 협회나 치안대에 버금가는 곳이 바디 펌이었다.
이익헌은 그의 이름이 안지우라는 것도 알아냈다. 지금은 이곳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익헌은 호기심을 느꼈다. 자기가 관심을 가진 사람이 한동안 살았던 곳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익헌이 그곳에 올 이유는 충분했다.
사람들이 지키고 있을 줄 알았지만 아파트 입구에서 어떤 제지도 받지 않은 채 안지우가 살던 집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이익헌은 현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안에 사람이 있어도, 없어도 상관 없었다.
금단 증세 때문에 이익헌은 퓨즈가 나간 상태와 비슷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안지우라는 이름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구를 만나면 어떻게 피하고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거짓말로 빠져나가야 한다는 방법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긴장감은 전혀 없었다.
문이 열렸을 때 이익헌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임재욱이었다. 임재욱의 놀라움은 이익헌보다 훨씬 더 컸다. 임재욱은 이익헌을 알고 있었다. 자기를 치안대장으로 오인하게 해서 이익을 누려오던 것은 익스트림 헌터에서만 하던 짓이 아니었다. 바디 펌에서도 꽤나 열심히 그 짓을 해오다보니 이익헌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익헌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언제나 젠틀하고 약간은 소심해보이는 이익헌은 다루기 쉬운 상대였다. 적어도 그때까지 임재욱이 생각해오기로는 그랬다. 그런데 이 남자가 왜 여기에 온 건가 했다.
갑자기 나타난 변칙. 그 순간에 임재욱은 이익헌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살인의 욕구를 풀어내지 못하고 금단증세에 시달리던 이익헌의 앞에 변칙으로 나타난 것이야말로 임재욱의 불운이었다.
임재욱은 어색한 모습으로 이익헌에게 인사를 건넸지만 이익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그것은 임재욱에게 한없이 낯선 모습이었다. 임재욱이 인사를 하기 전에 멀리에서부터 먼저 임재욱을 알아보고 살갑게 인사를 해오며 저자세를 취하던 평소의 이익헌이 아니었다. 바디 펌의 부사장이면서도 그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항상 주눅들어 있는 것 같은 모습도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도저히 극복되지 않는 이질감이 임재욱을 괴롭혔다.
"이 부사장님이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임재욱은 그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그 다음에는 몇 마디 말로 설득해서 그를 내보낼 생각이었다. 간단한 일이었다. 어려울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러나 이익헌에게는 임재욱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더벅, 더벅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다가올 뿐이었다.
이익헌이 헌터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던 임재욱은 이익헌의 갑작스런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익헌의 표정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쥐를 본 새끼 고양이처럼 천진했다. 그의 열망은 문자화가 불가능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의 불순한 욕망을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땀구멍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냄새가 그는 그저 좋을 뿐이었다. 그것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바둥거리는 격렬한 몸짓.
그리고 영원한 침묵.
그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오르가즘 같았다.
이익헌의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고 있을 때 이익헌의 손에서 임재욱의 얼굴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임재욱은 이익헌에게서 달아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이내 그 움직임은 완전히 멈추었다. 살이 뭉개지고 뼈가 살을 뚫고 나온 것은 그가 질식해 죽은 후였다.
이익헌은 작게 한숨을 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동안은 시체를 은닉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너무 오래 운이 따라주다보니 자기는 잡히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겨버렸다. 그러나 천기정 때문에 일이 한 번 어그러졌고 이제부터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익헌은 임재욱을 늪으로 우겨 넣으려다가 멈칫했다. 보물을 가진 시체를 그대로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익헌의 주머니에서 론 디어가 나왔다. 그는 임재욱을 눕혔다. 그리고 사체 운반 팀의 써전이 괴수의 사체를 해부하듯 임재욱의 위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이 자뭇 경건하게까지 보였다.
그는 임재욱의 오른쪽 팔을 잡고 살을 세세하게 발라낸 후에 힘줄을 한 번에 잘라 팔을 꺾어냈다.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감격스러운 한숨이었다.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여자를 품에 안고 이제야 너를 온전히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처럼, 그는 오랜만에 진정한 만족감을 느꼈다.
B급 딜러라니.
앞으로 쓸 일이 많을 것 같았다.
임재욱의 시신을 늪에 던지려다가, 이익헌은 그 늪에 괴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익헌은 귀찮게 됐다고 생각하면서 임재욱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차크라로 임재욱의 몸을 녹였다. 뼈까지 다 녹이는데는 차크라의 소모가 너무 컸다.
이익헌은 임재욱의 남은 시신을 바라보다가, 어차피 팔도 들고 가야 할테니 뼈 몇 개는 들고 나가 바디 팩에 넣어 옮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익헌이 임재욱의 시신을 훼손하는 동안, 그의 행적을 기록해야 할 장치는 모두 쉬는 중이었다. 임재욱이 녹화의 중지를 요청한 탓이었다.
***
그 시간에 훈련삼아 5급 늪에서 레이드를 하던 지우는 도무지 레이드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내가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중요한 약속을 잊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자기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지우는 자꾸 서성거렸다.
임정이 다가와서 몇 번이나 지우에게 괜찮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태인과 강현은 지우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도 할 수 있으니 나가서 쉬라고 말했다. 정말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지우를 누르던 정체불명의 불안감이 불시에 사라졌다.
지우가 달라졌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늪의 주인인 괴수였다.
지우는 괴수를 향해 달려가 목의 정중앙에 주먹을 꽂아 넣었고 앞으로 쏟아져내리는 괴수의 머리를 잡아 바닥으로 파묻었다. 그 잔혹함에 혀가 내둘러질 정도였지만 딜러들은 어울리지 않는 감성은 뒤로 하고 괴수에게 달려가 공격을 가했다.
이제 5급 괴수는 그들에게 유치원생 정도의 경쟁자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5급 늪을 공략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여러 종류의 괴수에 대한 공략 방법을 계속 익히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훈련을 실전으로 대신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마지막 공격을 앞두고 태인을 제외한 모두가 늪을 떠났다. 강현이 지우를 보고 웃으면서 다가왔다.
“왜 웃어?”
“형이 멍때리는 걸 보고 있으려니까 좋아서요. 다 나를 믿는다는 뜻이잖아요. 내가 든든하게 형을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멍때리고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요? 나는 나를 믿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서규태도 강현의 말을 받아 이으면서 지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의심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의심하고 답을 찾아야 나중에 진짜 중요한 곳에 올랐을 때 안 흔들립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제가 이러는 거.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지우가 물었다.
“전혀요. 많이 의심하세요. 그리고 답을 찾아요. 우리가 언제나 지우씨 편일 거라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지우가 서규태를 바라보자 서규태는 의미있는 웃음을 지었고 임정은 지우의 손을 붙잡았다. 태인은 러프 스톤을 챙겨서 늪에 나와 그들에게 전력으로 달려오더니 경험치가 올라간 헌터 타투를 보여 주었다. 또 한 발자국을 성큼 다가간 것이다.
클랜 A는 그렇게 조금씩, 스스로 균열을 발견하고 균열을 막아가면서 견고해져 가고 있었다.
***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실수와 두 번째로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는 방법.
이익헌은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이 하루만에 그 위업을 달성했다.
겁도 없이 임정을 납치한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면 임정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는 지우를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지우는 매일 매시간, 임정으로부터 일정을 보고 받았다.
아침마다 임정이 그날 어떻게 움직일지 전부 듣고서 지우는 동행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도 전부 자세히 물었다.
“일단 이 사람들은 전부 공개된 장소에서 만날 거고. 오늘은 론 디어를 만날 일이 없을 거예요. 내 예감이 그래요. 오늘은 운이 좋을 것 같거든요. 항상 조심할 거고요. 그리고 선 대표가 특별히 만들어준 구속 장비가 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차크라로 순간적으로 제압을 하고 그 다음엔 꽁꽁 묶어버리면 돼요.”
임정이 말했다.
“너무 그렇게 자신하지 말고. 조심해. 조심. 내가 잔소리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우는 조바심 나는 엄마처럼 임정에게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
“아직은 잔소리한다고 생각 안 하는데 자꾸 그러면 잔소리한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정이 변경되면 나한테 알려주고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항상 알 수 있게 해. 어?”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건성으로 대답한다는 것이 표가 났다.
“이보세요. 제대로 안 할 겁니까?”
지우가 임정의 어깨를 콱 붙잡고 저를 보게 돌려 세워놓고서 말하자 임정이 비실비실 웃었다.
“우와, 보호받는 게 이런 기분인가보다.”
임정은 그 상황이 아주 만족스러운 듯했다. 애가 타는 것은 지우만의 일이었다.
“임정씨. 제발 조심하세요. 네?”
“네넹.”
그렇게 팔랑거리고 가더라니.
그래도 약속은 지켰다. 도중에 일정이 갑자기 바뀌었을 때는 재깍 지우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이라는 것이 하필 바디 펌의 부사장 이익헌과의 약속이었다. 지우는 당연히 그 만남이 내키지 않았고, 치안부장으로서 꼭 봐야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임정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지우씨가 같이 갈거면 다른 사람한테는 같이 가자고 할 필요가 없겠네요.”
“그렇지?”
“그럼 바디 펌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러지말고 주차장에서 보자. 나도 몇 분 안에 도착할 거니까.”
지우는 서규태에게 그 일을 얘기하고 곧바로 바디 펌을 향했다. 주차장에는 임정의 지바겐이 있었지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지우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정이 어딘가에 숨어 있으면서 자기를 놀려주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게 맞다면 임정이 뛰어 나올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우는 로비를 향해 달렸다.
바디 펌의 경비원이 지우를 향해 다가왔다.
지우는 여기에 치안대의 치안부장이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