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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75화 (7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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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그래서 지금 이 시간, 남들은 아직 이불 속에서 조금 더 자자는 내면의 목소리와 타협을 하고 있을 때 임재욱과 마주 앉아 있는 것이다. 강지연은 제가 알아낸 것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니까. 우리 팀이 만들어낸 이 장비로 우리는 차크라를 가진 생명체의 위치와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가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흔적이 희미해지지만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그걸 복원하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기술로는 두 달 전의 이동 경로까지 복원할 수가 있어요.”

“성공을 했다는 건가?”

“네.”

“그래서? 그걸로 뭘 알 수 있지?”

“안지우 늪이라고 부르는 그 늪에 괴수가 살고 있었는지. 살고 있었다면 어디로 갔는지. 그런 것들을 알 수 있겠죠.”

“그래서?”

임재욱은 점점 조급해졌다. 선아영과 임정, 안지우에게 고통을 주려면 안지우를 무너뜨리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로 임재욱은 줄곧 이 일에만 매달리고 있었다.

실질적으로 자기가 하는 일은 강지연을 괴롭히는 일일 뿐이기는 했지만 임재욱은 맡은 일을 꽤나 열정적으로 수행했다.

“이게 그동안 모은 데이터예요. 상용화되지는 않았지만 상용화될 수 있으면 이건 엄청난 영향을 미칠 거예요.”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겠군. 투자자가 필요한가?”

“돈은 언제나 필요하고 많을수록 더 좋은 거죠.”

“내가 치안대로 돌아가면 확실하게 지원해주지.”

“정말 그럴 가능성이 있기는 한 거예요?”

“가능성이야 언제든 있지.”

강지연의 얼굴에서 긴장감이 사라졌다.

“하던 설명을 마저 해 봐.”

“저는 처음에 그 늪에 괴수가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차크라 센서를 생각해냈어요. 괴수한테도 차크라가 있고 차크라는 차크라 센서에 감지가 되잖아요. 차크라가 사용된 곳에서는 감응장치가 반응을 해요. 차크라가 사용되지 않고 그냥 차크라를 가진 괴수나 헌터가 존재했던 곳에서도 약하기는 하지만 반응이 나타나고요. 저는 민감도를 계속 조정했어요.”

“그래서? 괴수의 차크라가 반응을 보이던가?”

강지연은 2미터 짜리 모니터에 맵을 띄웠다. 그리고 하나의 패턴을 보여주었다.

“색이 연한 건 감도가 낮아서 그런 거예요. 색이 연할수록 옛날 위치라는 거죠. 이걸 보면 패턴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괴수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강지연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자 화면에 마법이 일어났다.

“신기한 건 이건데요. 늪이 나타났다고 신고가 되기 전에도 괴수가 있었다는 거예요. 이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늪이 나타났다고 신고 되기 전에만 괴수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화면에 나타난 점들은 다 그때 생겼어요. 늪이 나타났다고 신고되기 전에요.”

“그럼 안지우가 늪이 나타난 다음에 뒤늦게 신고했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거예요. 늪이라는 건 맵과 괴수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만들어지는 것 같거든요.”

“계속해봐. 이게 지금 지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맞는 거야?”

“네. 그건 30분 단위로 나타냈어요. 원하시면 더 자세한 경로를 보실 수도 있어요.”

“분 단위로 보지.”

임재욱의 말에 강지연이 특정 버튼을 누르자 화면에는 붉은 점이 더 조밀하게 나타났다. 임재욱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침실쪽인가?”

“네. 안지우의 침실이 있는 곳이예요.”

“그때 안지우는 그곳에 있었나?”

“그건 본인한테서 직접 얘길 들어봐야겠죠.”

“그 말이 맞다면 이 괴수는 늪이 생기기 전에 벌써 밖으로 나왔다는 말인 건가? 오픈 일이 되지 않은 건 물론이고 늪이 생기기도 전에?”

임재욱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채 물었다.

“늪은 생겨났을 거예요. 안지우가 늪을 발견한 시간이 조금 뒤인 거고요.”

“그 후로는 어디로 간 거지?”

“그것까지 알 방법은 없어요. 갑자기 사라졌죠. 얼핏 보기에는 공략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안지우가 그랬다고? 공격력 10인 F급 딜러가?”

임재욱은 코웃음을 쳤다. 임재욱의 말투에 기분이 나빠져서 강지연은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을 그냥 삭혀버렸다. 강지연이 하려다가 만 그 말은, 다른 괴수들과 비교했을 때 문제의 괴수가 현저히 많은 양의 차크라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임재욱은 얘기를 듣고 흥분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채 서성거렸다.

늪 밖으로 나온 괴수.

그리고 그 괴수가 사라져버렸다. 지금까지 오픈일이 되지도 않은 늪에서 괴수가 나온 경우는 없었다. 그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강지연은 임재욱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지만 임재욱에게 힌트를 주지 않는 한은 임재욱이 떠나지 않을 것 같아 임재욱을 향해 입을 열었다.

“늪을 떠난 괴수를 죽인 사례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으세요?”

임재욱은 강지연을 노려 보았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했다.

“떠나다니? 이건 사라진 거잖아. 이미 사라져버린 괴수를 왜 죽여야 한다는 거야? 저절로 사라진 거잖아.”

강지연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잠깐.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 괴수가 어디로 갔다고 생각하는 건데?”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그 얘기는 뭐야?”

“늪에서 나온 괴수가 갑자기 사라졌잖아요. 사라졌다는 게 죽었다는 의미인 건 아니죠. 감응기가 잡아내지 못할 정도로 차크라를 숨길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고.”

“하려던 얘기나 계속 해 봐. 늪을 떠난 괴수를 죽인 사례가 있었다고?”

“네. 아직 레이드 방법이나 헌터 시스템이 자리잡기 전에 있었던 일이예요.”

강지연은 자기가 알아낸 사실을 알려주었다.

“오픈일이 다가온 늪을 헌터들이 공략하지 못했고 늪에서 괴수가 튀어나왔어요. 괴수가 사람들을 해치는 동안 헌터들이 괴수를 죽이려고 했지만 헌터와 일반인들의 희생만 계속 늘어났고요. 그때 몇 사람이 괴수와 늪의 연관성에 주목을 했어요. 늪 아래에 있는 세상이 밀폐된 공간이라는 걸 알아요?”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거기에도 해가 뜨고 바람이 불기도 하고 폭설이 내리기도 해. 안지우 늪이야말로 진짜 지랄맞지.”

“그건 그저 정보창이 만들어낸 환경인지도 몰라요. 맵은 밀폐공간이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은 늪 아래의 공간에 있는 산소를 전부 소진시킨다면 괴수가 질식해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늪을 뛰쳐나간 괴수는 양수 밖으로 나간 태아와 같다고 생각한 거죠.”

“결론은?”

“괴수를 직접 공격하는 대신 그 사람들은 네이팜 화염 방사기로 늪 아래의 세계를 불태워버렸어요. 네이팜은 알다시피 산소가 전소되기까지는 꺼지지 않아서 밀폐된 공간에서 계속해서 산소를 태우죠.”

“그래서? 정말로 그 괴수가 죽었다는 건가?”

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이팜이란 말이지.”

“운반을 할 땐 관리에 정말 주의를 해야 돼요. 공기 중에서 압착이나 마찰이 조금만 생겨도 불이 붙으니까요.”

임재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네이팜이란 게 어디에 있다는 거지?”

“이걸로 끝내는 걸로 하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래도 되나? 내가 곧 치안대로 복귀할 수 있다고 하는데도?”

강지연은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일단은 좀 더 생각을 해 볼 건가? 기회를 주지. 이 정도로까지 해 줄 줄은 몰랐는데. 나 지금 엄청 감격했어.”

강지연은 임재욱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기회를 주겠다는데 거절을 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

임재욱이 지우가 살던 아파트에 갔을 때 그곳은 긴장이 많이 느슨해진 상태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임재욱은 조용히 지우가 살던 곳으로 올라갔다. 안에는 상주하고 있는 헌터 협회 직원 한 사람만이 있었고 곧 치안대에서 늪을 정찰하러 올 거라고 말했다.

직원도 임재욱이 치안대에서 퇴출된 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임재욱이 그곳까지 온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재욱은 지우의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자기가 그곳을 잠시 봐 줄 테니 나가서 바람을 쐬고 오지 그러냐는 말로 유혹을 했다. 직원은 꽤나 깐깐한 사람이었다. 강직한 것과는 거리가 좀 멀었지만 사사로운 실수로 괜한 일에 휘말리는 것을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바람이야 쐬고 싶으면 언제든지 쐴 수 있는데 괜히 치안대에서 잘린 사람의 호의를 받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지 말고요. 알고 있겠지만 내가 치안대에서 잘렸잖아요. 나름대로 내가 살아왔던 시간을 정리할 기회를 갖고 싶어서 그래요. 내가 여기에 있는다고 뭘 어쩌겠어요? 여기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하나 전부 기록되고 보관되는 중일텐데 내가 뭘 가져가기라도 하겠습니까?”

“그래도 저한테는 제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하아, 이것 참. 그 정도 편의도 못 봐준다는 겁니까? 헌터 협회에서 치안대하고 척 져서 좋을 건 없지 않나요? 지금도 내 말이라면 치안부장들이 전부 다 움직인다는 거 모릅니까? 직접 전화 통화라도 하게 해 줘요? 유지나? 강동호? 누구요. 에?”

임재욱의 목소리가 점점 위협적으로 커지자 직원은 임재욱에게 제대로 거절을 하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좋아요. 그렇다면. 유지나 딜러한테 전화를 걸어줄 테니까 유지나 딜러랑 얘기를 해 보세요. 만약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유지나 딜러랑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임재욱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직원은 못 이기는 척, 그렇게 하기로 했고 임재욱은 유지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지나는 임재욱이 치안대에서의 추억을 정리하려고 안지우의 아파트에 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울컥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 와서 같이 늪도 정찰하고 그랬잖아. 그때 같이 괴수를 공략하려고 했었는데 잘 안 됐지.”

임재욱이 감상적으로 말하자 유지나는 울적해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결국 임재욱은 안지우의 아파트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임재욱은 직원에게, 치안대에서 퇴출당한 사람이 와 있는 것을 상부에서 안다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는 녹화를 하지 말자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거절을 했으면 모를까 하나씩 하나씩 임재욱의 말을 들어주다보니 직원은 갑자기 선을 정해 딱 끊는 것이 어려워져버렸다.

“오래는 안 됩니다. 이십 분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다 끝내 놓으시면 좋겠습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신경써 줘서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임재욱은 직원에게, 나가는 길에 경계를 서고 있던 사람들도 전부 다 데리고 나가달라고 말했다.

그것까지는 분명히 무리한 요구라는 걸 알았지만 유지나가 보증을 했기에 협회 직원은 임재욱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괴수도 없는 늪이라는 인식 때문에 긴장감이 없기도 했다.

임재욱은 직원이 나가자마자 문을 닫았다. 깐깐한 직원 때문에 시간을 많이 뺏기기는 했지만 남은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니 상관이 없었다.

‘불 타는 맵이라. 밀폐공간 안의 산소가 모두 사라지면 괴수가 죽는다고? 누가 죽는지 보면 알겠지. 괴수가 어디로 가 있는지.’

임재욱의 얼굴에 비열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나 있었다.

***

같은 시간에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이 있었다.

구찌 스니커즈가 바닥에 닿으며 다박다박 소리를 냈다.

루돌프 발렌티노 모자 아래에서는 입이 길게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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