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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74화 (7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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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그때 임정의 전화 벨이 울렸다. 선아영이었다. 이 시간에 웬일인가 하고 전화를 받자 잔뜩 흥분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지금 끊어진 거죠? 역시!"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임정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센서를 부착했죠."

"카메라 같은 것도 달아 놓은 거예요? 그랬다면 절대로 조용히 안 넘길 겁니다."

"괜히 겁 주지 말고요. 그런 건 안 달았어요. 안지우씨만 등장하는 동영상이면 좋겠지만 다른 여자랑 하는 걸 봐서 뭘 하겠어요? 그런데 정말로 그걸 끊었네. 안지우씨라면 그럴 줄 알았어요. 그걸 예상 못한 선아영도 아니고. 강한 남자한테는 진짜 강한 게 필요하겠죠. 그래서 진짜는 따로 준비했어요. 그건 상자 밑에 들어있어요. 바닥을 들면 보일 거예요."

이 여자야말로, 배우들의 베드신을 보면서 달아오른 촬영감독처럼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빈 상자도 이렇게 무거웠던 거구나, 하면서 임정은 상자 바닥을 들췄다.

"그건 안지우씨한테 주는 게 아니라 치안부장님한테 주는 선물이예요. 거친 남자랑 사귀다보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이건 안지우씨한테는 비밀이예요. 비밀. 꼭 지켜야돼요.”

임정이 지우에게서 생명의 위협 같은 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과하게 들떠 있었지만 임정은 간단하게 비웃어 주었다. 임정은 상자 바닥을 뒤져서 한없이 길게 나오는 가죽 벨트를 꺼내고 있었다.

“그건 또 뭐래?”

지우가 물었다.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

“선 대표를 보면 내가 직접 경고해야겠다. 남의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끊으라고 할 거고 자기를 이상한 취향에 물들이지 말라고 할 거야.”

“그래요. 나도 별로 관심은 없는데. 이건 내가 챙겨야겠다.”

“그건 뭐라는데?”

“이건 정말 효과가 좋은가봐요. 이건 끊지 마요. 정말 크리미널 헌터를 마주치게 되면 요긴하게 쓸 수 있잖아요. 어! 여기에도 수갑이랑 족쇄도 다 있네. 팔을 뒤로 꺾어서 묶으면 되겠다.”

임정은 바겐 세일에서 쓸만한 것을 찾은 아이처럼 몰두하며 말했다.

“나를 묶고 싶으면 당신은 나한테 그렇게 말만 하면 돼. 움직이지 말라고.”

지우가 말했다.

“네?”

“움직이지 말라고 말만 하면 된다고. 그러면 움직이지 않을 거야.”

“왜요?”

“다른 걸로는 나를 막을 수 없으니까. 규율도 권위자도. 아무 것도 나를 멈추게 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알아. 그래서 당신이 하는 말만큼은 들어주고 싶어. 당신이라면 내가 폭주하지 않게 지켜줄 것 같으니까.”

“……. 그러면 내가 당신을 배신하면 안 되는 거네요? 내가 달라지면 어떡하지?”

“당신은 달라져야지. 지금은 너무 못 됐잖아. 달리질까봐 걱정하는 건, 지금까지 착했던 사람들이 해야 할 걱정이지 당신이 할 걱정은 아닌 것 같은데? 당신을 아는 사람들은 전부 다 당신이 못된 걸 알잖아.”

“그래도 잘 찾아보면 착한 구석도 조금은 있어요.”

“진짜 잘 찾아야 보이려나보다.”

“어? 아직 못 봤나보네. 내 착한 면모를.”

킥킥거리는 임정의 입가에 입술을 맞추면서 지우가 임정을 안아들었다. 임정은 부끄러움도, 저항도 없이 지우에게 안겨왔다.

“내가 폭주하면. 네가 나를 멈춰줘. 너만 그럴 수 있으니까. 서이진.”

“왜 그런 말을 해요? 왜 당신이 폭주할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차크라도 그렇고 맵에서 느껴지는 것들도 그렇고.”

“맵에서 어떤 게 느껴지는데요?”

“모르겠어. 가끔, 내가 왜 여기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고.”

지우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근심스런 표정을 짓고 임정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임정이 지우의 목에 팔을 감고 그의 턱 밑에서 지우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달라질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요. 하지만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당신 옆에 내가 있을 거라는 건 안 달라질 거예요.”

“당신은 왜 나를 선택했어?”

“처음엔 그저 호기심이었던 것 같은데 당신 곁으로 너무 가까이 다가가버렸는지, 어느 새 당신한테 속속들이 붙잡힌 기분이 들어요. 어느 순간부터, 당신이 내 존재의 기반이라고 느껴요. 내가 서 있는 전제.”

“만약에 말이야.”

“……?”

“내가 나를 잃는다면. 그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

“나를 생각해서. 끝까지 당신이 당신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면 안 될까요?”

임정이 말했다.

즉흥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우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제. 당신 없으면 안 돼요.”

“나도야.”

임정의 입술을 찍어 누른 채 지우가 임정을 벗겼다. 슬프도록 처연하고 아름다운 몸이었다. 열띤 기다림이 그를 향해 열려있었다. 두 사람은 침대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서로에게 얽혀들었다. 지우의 허리에 임정의 두 다리가 감겨왔다. 임정의 귓속으로 지우의 질척한 혀가 들어가자 임정의 허리가 위로 튕겨졌다. 격정적인 신음이 지우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사랑해요.”

임정은 그 말에 제 전부를 담았다.

임정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거짓말을 해야 할만큼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임정에게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없었다. 곤란한 상황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임정에게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 하는 고백은 지우의 중심을 땅에 강하게 박아주었다. 제가 점점 이상한 존재가 돼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임정을 생각하면, 몽롱하게 떠 오르는 것 같은 의식이 다시 돌아와 저를 견고하게 지탱했다.

그것은 레이드가 계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지우는 빠르게 강해졌다. 이제는 누구도 지우의 낮은 공격력을 비웃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미 클랜 A의 일원들은 모두가 지우를 마음 깊이에서부터 지지하고 믿어주었지만, 믿어주는 것과 믿는 것은 달랐다. 그동안은 현재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현재의 성실성에 미루어 믿어준 거였다면 이제는 믿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서 의심할 수는 없었다.

지우는 차크라를 실은 일격으로 괴수의 턱뼈를 바스라뜨리거나 엉덩이뼈를 조각내고 다리를 꺾어버렸다. 지우는 누구보다 강해지고 있었다. 시스템이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상관없었다. 여전히 시스템은 지우의 공격을 10점짜리 타격으로 받아들이고 공격 증폭률을 적용해서 36점으로 쳐 주고 있었지만 시스템이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의기소침해질 이유는 없다는 것을 지우도 깨닫고 있었다.

자신의 활약이 없다면 클랜원중 누구도 끝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고 누구도 그렇게 딜을 정확하게 퍼붓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고 클랜 A의 성공이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클랜 A의 클랜원들은 임정이나 서규태보다도 지우가 가장 듬직한 존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지우 자신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가 괴력으로 괴수를 제압할 때 동료들이 저를 보는 시선들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과를 반으로 쪼개려고 힘을 주었는데 사과가 으깨지는 것도 아니고 형체가 완전히 사라진채 손에서 즙만 흘러내리는 것 같은 상황을 계속 겪다보니 모두들 지우의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지우는 그 사실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사과를 반으로 가를 정도로만 힘을 주었다. 그러나 동료들 중 누군가가 위기에 빠진다거나 특히 임정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할 정신이 남아나질 않았다. 배척받더라도 그들을 구해야한다는 것 외에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임정은, 떠돌던 지우의 영혼을 다시 땅에 발을 내리게 해 주고 있었다. 임정은 지우가 고뇌어린 시선으로 무겁게 눈을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지우는 임정이 자신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임정은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은 어떤 순간에라도 나를 위해서 웃어줄 것이다.'

그 웃음을 보고 있으려니 지우의 머릿속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마 웃을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이 사람은 남아있는 모든 힘을 끌어 모아서 나를 향해 웃어주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갑자기 든 생각은 확신으로 점점 견고해졌다. 지우도 임정을 향해 마주 웃어주었다.

"너는 내가 지켜. 꼭."

"알아요."

임정이 지우의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지우의 것을 제 안에 품은 채로 천천히 내려와서 지우의 가슴을 끌어 안은 채 지우에게 안겼다. 천상의 문 앞에서 지우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허리를 짓쳐 올리고 임정의 안을 제 것으로 가득 채웠다.

임정의 목이 뒤로 꺾이면서 절정에 다다른 신음소리가 절절하게 퍼져나왔다. 땀에 젖어 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면서 지우는 몸을 들어 제 여자의 얼굴에 가득 입술을 맞춰 주었다. 지우는 행위가 끝난 후에도 그녀를 내려주지 않고 제 위에 올려둔 채 임정의 엉덩이를 조물락거렸다.

임정이 웃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것이 지우의 가슴에 그대로 새겨졌다.

“항상 웃게 해 줄게.”

임정이 고개를 들고 지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래야 돼요.”

임정이 지우의 손을 그러쥐며 말했다.

그때 임정의 몸에서는 부지런한 한 녀석의 미친듯한 질주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그마치 2억만의 경쟁자를 제치고, 적당히 선두 자리를 양보하면서 제 페이스를 유지하던 녀석은 마침내 제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이 가진 유일한 무기인 편모를 휘둘러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난자에 저를 박아 넣었다.

그리고 안지우의 정자는 인간이 되기 위해, 염색체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지우 2세의 출발이었다.

***

쉬는 날이었지만 강지연의 연구는 장소만 바뀐채 계속 되었다.

자기가 안지우 늪의 비밀을 풀었다고 생각했을 때, 강지연은 그 연구 결과를 누구한테 내미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할지를 여러 모로 따졌다. 하지만 생각을 오래할 필요는 없었다. 치안대 안 팎에는 임재욱이 치안대장이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고 헌터 협회 사람들도 임재욱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강지연은 곧 임재욱에게 줄을 댔다.

젊은 여성의 몸으로, 강지연은 부차적인 즐거움도 임재욱에게 제공해 왔다. 임재욱이 선아영에게 정신이 팔려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딱 그 정도의 해이한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강지연은 자신에게 집착하는 남자에게 학을 떼는 성격이라서 늘 적당한 누군가의 세컨드로서 포지션을 유지해 오고 있었다.

강지연이 원하는 것은 헌터 협회 연구관으로서 계속 일을 하다가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자리를 꿰차고 올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옆에서 자신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도록 손을 잡아줄 사람으로 임재욱이 가장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아침에 임재욱이 끈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될 거라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바였지만 이제 와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임재욱은 잔뜩 갈증이 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안지우 늪에 대해서 뭐라도 알아내라고 매일 전화를 걸어서 미친 사람처럼 독촉을 해 댔다. 확실한 무언가를 쥐어주면 더 이상은 강지연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바람에 강지연은 그 말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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