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급부터 레벨업-73화 (7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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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그때 눈을 같이 벨 수도 있었다. 지금이라고 늦은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계속 그런 식으로 존재감을 발휘하고 싶어한다면 우선 한쪽 눈을 시험삼아 벨 수도 있다.”

계속해서 건방지게 저를 보는 눈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임정이 말했다.

“저한테 이럴 권리가 없는 것 아닙니까?”

“크리미널 헌터로 살아가는 건 지독스러운 일이지. 그래서 내가 기회를 한 번 줄까 하는데.”

임정의 말에 남자의 눈빛이 살아났다. 이 말을 믿어도 될지 의심스러운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가 물었다.

“별 건 아니다.”

“확실히 말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간단한 실험을 할 텐데 거기에 협조를 해 주면 된다.”

“그러면 저는 크리미널 헌터가 아니게 되는 겁니까?”

“치안부장이 면죄부를 주면 크리미널 헌터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

“저한테 면죄부를 주겠다는 말씀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임정의 설명을 들었다.

다른 헌터의 팔을 이식하는 수술을 받고 한 번의 레이드를 뛰는 것. 공략에 성공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것이 조건의 전부였다. 남자로서는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자유의 대가로 오히려 너무 하찮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팔의 이식 수술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마취를 당했지만 실제로 그 사이에 이루어진 것은 이식 수술이 아니라 차크라를 이용한 봉합술이었다.

깨어난 남자는 클랜 A의 클랜원들과 함께 5급 늪으로 향했다. 태인과 마주쳤을 때는 태인에게 몇 번이나 허리를 숙여서 꾸벅 꾸벅 인사를 했다. 악감정은 모두 털어달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로 몇 백 마디의 사과를 했다.

늪에 도착한 남자는 클랜 A의 클랜원들과 함께 괴수에게 몇 번 딜을 가하고 임정의 명령에 따라 늪에서 퇴장했다. 그는 크리미널 헌터라는 오명도 벗고 느닷없이 D급 헌터가 된 바람에 앞으로 임정이 발바닥을 핥으라고 해도 핥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남자가 나간 후 두어 시간만에 클랜원들이 늪에서 나왔다. 사실 공략은 의미가 없었다. 늪이 무엇으로 헌터를 인식하는지 알아보려던 것 뿐이었다.

임정은 뒤통수가 점점 따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강현의 눈빛 때문이었다. 강현은, 누나가 한 말만 믿고 팔을 잃은 헌터들이 늪에 들어갔으면 어쩔 뻔 했냐고 임정을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해댔다. 잘못 알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는 건 알았지만 자기도 선배 헌터들한테 듣고 배운 거고, 확인할 생각을 안 해 왔다는 건데 김강현은 너무 시끄러웠다.

드디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임정이 강현을 향해 돌아섰을 때, 고개가 반쯤 돈 그 시점에서 강현은 사태를 파악하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서규태와 지우가 임정의 곁으로 다가왔다.

“시스템이 헌터 타투로 헌터를 인식한다는 게 밝혀진 거네요. 그동안 그걸 알아볼 기회가 없었으니 잘못된 지식이 계속 전해질 수 있었던 거겠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까 다행이네요. 그러면 의문점도 상당히 풀리고요.”

서규태가 말했다.

임정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제 잘못이었고, 잘못을 시인하는 일은 늘 힘들고 괴로웠다.

***

지방에 생긴 늪 중에 공략이 어려운 것들을 공략하기 위해 지방에 준비된 숙소로 내려간 클랜원들은 다음 날 있을 레이드를 준비하며 쉬고 있었다.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스파를 즐겼다. 그러는 동안 지우는 혼자서 임정이 쉬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최고급으로 꾸며져 있었다. 클랜원들이 일과를 마치고 들어오면 아늑한 분위기와 함께, 쉬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써 달라고 말한 결과 나온 작품이었다.

커튼은 두 겹으로 쳐 져 있었는데 안에 있는 사람이 창가 쪽으로 다가가면 커튼이 저절로 열렸다. 입주자가 창문으로 다가가는 이유는 커튼을 열려는 걸 거라고 인식하는 듯했다. 가끔은 뻘짓도 했다. 창가에 있던 책을 가지러 간다거나 할 때도 커튼이 열렸던 것이다. 그럴 때는 괜히 커튼에게 미안해졌다.

안 열려도 돼, 라고 혼자서 커튼에게 미리 얘기를 해 줘 봤자 커튼은 남의 곳간문을 열어주는 것처럼 주저하지도 않고 매번 관대하게 열리는 것이다.

지우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임정은 창가에 서서 밤공기에 뒤덮인 바깥을 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호수도 보이고 제법 괜찮은 전망이었다. 지우가 조용히 다가갔음에도 임정은 이미 지우의 기척을 느끼고 웃음을 지은 채 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사람들이랑 같이 안 있고요?”

임정이 물었다.

“당신이 혼자 있잖아.”

“혼자서도 잘 놀고 있었는데.”

“뭘 보고 있었어?”

“그냥 생각 좀 하느라고요.”

“또 론 디어?”

“사라진 헌터가 시체로 발견되고 오른 팔이 잘려나간 걸 보니까 기분이 계속 안 좋아요.”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될 일은 아니잖아. 다 같이 알아보려고 애쓰는 중이니까 당신도 마음 편히 가지면 좋겠어.”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당신 스폰서가 꼭 전해주라고 한 게 있는데.”

"스폰서?"

"선 대표요."

임정이 침실 옆에 딸린 드레스룸으로 건너가 갑옷을 가지고 나왔다.

"이건 언제 가져왔어?"

"내려올 때요."

갑옷이란 걸 안 순간부터 지우는 본능적으로 거부를 했지만 임정도 이번에는 고집을 쉽게 꺾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건 일단 입어봐요. 지우씨가 갑옷을 입을 때 어떤 점들을 불편해하는지 선 대표한테 모두 얘기했어요. 선 대표는 이걸 만드는 사람한테 그 얘기를 전부 했고요. 그건 무슨 뜻이냐면, 이 갑옷은 그런 문제점들을 전부 털어냈다는 거예요. 무릎과 팔의 보호장구들은 특수 재질로 만들어서 착용감이 좋고 활동에 지장이 거의 안 느껴져요.”

“입어봤어?”

“입어봤죠. 나한테 크긴 했지만 진짜 욕심나던데. 나한테 맞춰서 한 벌을 더 주문하고 싶다고 했더니 재료를 전부 다 써 버려서 못 만든대요.”

“정말 그렇게 말해?”

“네. 그냥 나한테 주기 싫은 거겠죠.”

지우는 임정이 선아영을 향해 열을 올릴 때마다 재미있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임정은 지우가 갑옷을 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자기, 이러고 있으니까 꼭 기사 시종 같다.”

지우가 말하자 임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우씨야말로 진짜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요. 치안대 핵심 권력자를 시종으로 두고, 익스트림 헌터의 대표한테서는 조공을 받고.”

“그러게. 운이 좋은 거지.”

“어때요? 편해요? 나는 지우씨가 갑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방어력도 낮은데 괴수한테 공격을 당하기라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건 방어증폭률이 높으니까 조금은 기대해 볼 수 있을 거예요.”

“높아봐야 내 기본이 낮은데.”

“그건 올리면 되잖아요. 착용감은 어때요?”

지우는 몸을 휘휘 돌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입은 채로 암벽 등반실에 가 봐야겠다. 이걸 입고서 암벽 등반이 불편하지 않으면 입을게.”

“그 정도로 편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 안 입는 거고.”

“안 입으면 안 돼요. 가격도 엄청난 것 같던데. 이건 지우씨를 위해서 특별 주문 제작한 거래요. 기분 나쁘게 그 여자가 지우씨 신체 사이즈를 다 알더라고요?”

“그래도 중요한 신체의 사이즈는 모르잖아. 그걸 모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거야.”

지우가 임정에게 바짝 다가가면서 임정의 허리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그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임정이 슬그머니 몸을 돌려 지우에게서 빠져나가며 말했다. 임정이 향한 곳은 침대였다. 매트리스를 올려둔 곳은 커다란 수납장 위였다. 임정은 그중에 서랍 하나를 열어서, 지우로서는 처음 보는 것들인 구속구들을 왕창 꺼냈다.

“이 아가씨. 이런 변태적인 기질이 있는지 몰랐는데? 이걸로 자기를 묶어달라고?”

지우가 얼떨떨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아뇨. 아뇨. 이것도 당신 스폰서가 준 거예요.”

“선 대표가? 미쳤대? 이걸 왜 줘? 왜 남의 내밀 영역에 관심을 보이는 건데?”

지우가 화를 내자 임정은 괜히 흐뭇해졌다. 딱 이런 반응이 나와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일단 선 대표 말로는. 자기는 헌터들의 욕구 충족에 관심이 많대요. 헌터들 중에도 하드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헌터들은 차크라를 기본적으로 사용할 줄 알잖아요. 그래서 차크라로 끊을 수 없는 구속구를 개발해보고 싶었대요.”

“인류 구원자 나셨네.”

“꼭 나쁘게 볼 건 없죠. 크리미널 헌터를 구속할 때도 필요할 수 있으니까. 치안대에서 구입하겠다고 했더니 이건 정말로 강한 남자를 위해서 만든 하나뿐인 제품이라서 치안대에 팔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 강한 남자가 누군데?”

임정은 지우를 바라보았다.

“뭐? 나? 우와. 선 대표 진짜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이걸 공짜로 받는 대신에 이게 얼마나 강했는지만 알려주면 된대요.”

“그러겠다고 한 건 아니지?”

“크리미널 헌터한테도 쓸 수 있을 거라니까요?”

“자기 은근히 선 대표 앞에서 과시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선 대표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걸 자기는 아무 때나 원하기만 하면 가질 수 있다는 걸 말야.”

“그런가? 듣고보니 나란 인간, 굉장히 나쁜 애네?”

그러면서도 착실하게 구속구를 착용시켰다. 굵은 체인으로 연결된 두 개의 질긴 가죽 벨트를 양쪽 팔목에 채우는 것으로 시작해서, 비슷한 구조로 된 것을 발목에 채우더니 나중에는 동그란 공처럼 생긴 플라스틱이 가운데에 달린 것을 들고 와서 지우의 입을 벌리게 했다.

“이걸 입에 물어요.”

“미쳤다고 그걸 물어? 이 다 나가겠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 거라고 도대체 누가 그러는데?”

“아아아이이잉!”

생전 처음 보는 임정의 애교에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흔들렸다. 지우는 공을 물었다. 물고 보니 플라스틱이 아니었다. 임정은 지우의 등 뒤로 돌아가서 지우의 머리 뒤에서 벨트를 꽉 조였다.

“일단은 됐어요.”

“일단은 된 거라고?”

말은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발음은 지저분하게 새면서 나와버렸다. 게다가 의도치 않게 침까지 줄줄 흐르는 바람에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이 다음에는 기다란 줄 네 개로 침대 각 모서리에 묶으면 되거든요.”

"뭘?"

"팔 두 개랑 다리 두 개요."

임정은 굉장히 신이 난 것 같았지만 남의 고통을 바탕으로 즐거워하게 할 수는 없었다.

“이건 확실히 강하다고 한 거지? 내가 끊어버려도 상관은 없는 거지?”

발음이 엉망으로 나왔지만 임정이 알아들었건 말았건 상관 없었다.

“그래도 이건 안 끊어질 거예요. 괴수 힘줄로 만들고 몇 번이나 특수 가공 과정을 거쳐……!”

임정은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선아영의 말만 믿은 것은 아니었다. 임정도 차크라를 실어서 그것을 잘라보려고 시도를 했었다. 치안대장으로서, 그런 물건은 치안대에서 굉장히 요긴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정말로 성심 성의껏 실험을 했던 건데, 이렇게 힘없이 끊어져버릴 줄은 알지 못했다.

임정이 놀라서 지우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우는 자유로워진 팔로 입에 들어있던 공까지 빼내버렸다.

“자기가 잘 몰라서 그런가본데. 나는 이런 쪽에 취향 없어. 그냥 서로 아껴주면서 사랑하는 게 좋아. 알았지?”

지우가 임정의 볼을 쥐고 흔드는 동안 임정은 아직 제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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