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 / 0331 ----------------------------------------------
3.클랜의 멤버
“모두들 아이언의 뿔에 주의하세요. 첫 레이드니까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우리 호흡이면 충분히 이 늪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투구 아래에서 서규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임정이 앞서 나가서 아이언을 도발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서규태와 태인, 강현이 한꺼번에 공격을 감행했다. 지우도 공격할 기회를 엿보면서 워밍업을 했다. 서규태가 끼자 괴수의 체력이 깎여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C급 딜러의 공격력, 게다가 차크라 등급의 지원을 받은 C급 딜러의 공격력은 그 위력이 대단했다. 그야말로 체력이 후두두둑 까내려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서규태에게도 차크라를 모으는데는 남들처럼 시간이 걸렸다. 다른 딜러들이 차크라를 모으는 동안에도 지우는 아이언을 괴롭히면서 가장 편한 자리를 찾으며 돌아다녔다. 딜러들은 한꺼번에 발이 묶이는 상황을 피하려고 각각 공격을 넣는 타이밍을 나눠서 조절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른 두 사람이 차크라를 모으고 강현이 딜을 부어야 했던 시점에서 아이언이 갑자기 임정을 향해 돌진했다.
강현은 눈 앞에서 괴수를 놓쳤고 임정은 뒷걸음질을 쳤다. 임정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지우의 눈에는 임정의 진행 방향에 솟아오른 작은 돌이 보였다. 임정이 그대로 가다가는 거기에 채여서 넘어질 거라는 것이 지우의 머릿속에 환히 그려졌다. 지우는 자기가 서 있던 곳에서 아이언의 몸통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무기도 내던진 채 맨 손으로 가격을 했다가 손을 빼냈을 때 지우의 손이 붉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지우의 손에서 피가 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차크라라는 생각을 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아이언은 끔찍한 통증에 비명을 지르고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 올랐다. 무서운 회복력을 가졌건 어쨌건 간에 고통은 전부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임정은 아이언이 움찔하는 동안 달아났다. 그 사이에 다른 딜러들도 전열을 가다듬었다.
“미안해요, 형.”
강현이 말했다.
“괜찮아요. 강현씨 잘못 아니니까 이런 건 바로바로 털어버려요. 실수에 사로잡히면 다음 공격에 영향이 갑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지우는 어느새 임정에게 다가가 있었다. 임정의 얼굴에서 식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대형이 익숙하지 않아서 나야말로 자꾸 실수하는 것 같아요. 아홉 명이 아니라는 게 자꾸 나를 주눅들게 만드나봐요. 이렇게 하자고 한 게 나였으면서.”
임정이 말했다.
“당신은 내 뒤에만 있어도 돼. 사실은 나 혼자만 있어도 된다는 거 알잖아.”
지우가 말했다.
아이언이 사람 말을 알아들었다면 강현의 예언대로 오그라들 수도 있었겠지만 아이언은 그들의 대화에는 관심도 없었다.
아이언이 만만한 딜러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고 임정이 어그로 장비를 들고 아이언의 시선을 붙잡으러 달려갔다. 지우는 임정의 백업을 맡으면서 아이언에게 치명상을 입힐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는 동안 서규태와 태인은 콤비를 이루어 아이언을 효과적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강현은 아이언의 엄청난 크기에 압도되어 자꾸만 실수를 연발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의 타이밍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강현은 차크라가 다 채워졌는데도 공격을 가하지 못했고, 자기가 막아줘야 할 시간에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을 느꼈다. 그 자책감의 본질은 점점 두려움으로 바뀌어갔다. 이러다가는 자기 때문에 팀이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에 한 번 잠식되자 강현은 제대로 공격을 하기는커녕, 아이언의 공격을 피하지도 못했다.
강단이라는 것은,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확 생겨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서규태는 깨닫고 있었다. 아무리 의욕이 넘친다고 해도 강현은 어린 애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강현을 무리하게 끌어들인 게 아닌가 하면서 서규태도 후회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멘탈이 무너지자 그것은 연쇄작용을 가져왔다. 그때까지 한 몸처럼 싸우던 사람들의 감정이 나약해지는 것이 느껴지자 태인도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강현이 아이언의 공격을 당했다. 방어증폭률를 극대로 끌어올린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강현은 곧바로 죽었을 것이다.
우물쭈물하던 강현의 몸을 아이언은 포크 위로 들어올리듯이 두 뿔로 올렸다. 그리고 강현의 몸을 위로 던져올렸다. 그대로 떨어진다면 강현의 몸은 아이언의 뿔에 찍혀 관통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태인과 서규태가 고함을 지르며 아이언을 공격했지만 그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 지우의 몸이 아이언을 향해 날아올랐다. 두 세 걸음을 크게 달려 바닥을 밀고, 손에 든 단검으로 아이언의 옆구리를 찍으면서 지우는 그 반동으로 솟구쳐 올라갔다.
강현에게는 제 몸이 떨어져내리는 그 순간이 영원 같았다. 아이언은 단검에 찔려 몸부림을 쳤고, 지우는 그 위에서 균형을 잡을 틈도 없이 아이언의 머리 위로 올라가 한 번 더 도약을 하고 강현의 몸을 받아내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김강현. 정신 차릴 수 있을 때까지 멀리 떨어져있어. 정신 차릴 수 있으면 그때 합류해!”
지우의 말에 강현은 눈물이 쏙 빠질 정도였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간발의 차이로 면했다는 것을 강현도 알 수 있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놀란 정신이 수습되지 않을 것 같아서 제 뺨도 때리고 발을 구르기도 하다가 강현은 정보창을 보았다. 그리고 떨어져가는 괴수의 체력을 사람들에게 읽어주었다.
쟤는 왜 저런 짓을 하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사람들도 자기들이 한 번씩 타격을 할 때마다 괴수의 체력이 툭툭 떨어지는 것을 알고 점점 힘을 냈다. 강현이 내는 소리를 몇 번 연속해서 듣다보니, 이런 흐름으로 유지하면 언제쯤 공략이 성공하겠다라는 것도 감이 왔다.
“할 수 있어!”
서규태가 소리쳤다.
“할 수 있어요. 거의 다 왔어요.”
거의 다 왔다는 것은 오버였고, 그 속도로 두 시간을 열심히 두들겨대면 공략이 성공할 거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지우는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그들의 차크라를 확인했다. 임정과 서규태, 태인 모두 아직은 차크라의 부족을 느끼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 번 몰아볼까요?”
지우가 말하자 모두가 크게 소리를 쳤다. 아이언조차 이제 뭔가 불길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지우는 익스트림 헌터에서 가져온 엑스 블레이드를 손에 들었다. 언젠가 임정이 지우에게 추천한 적이 있었던 블레이드의 증보판에 해당하는 무기였다. 일반 헌터라면 한 손에 들기에도 버거울만한 그것을 지우는 거뜬히 한 손으로 들고 휘둘렀다.
엑스 블레이드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엑스 블레이드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무기였다.
일격필살.
필참.
반드시 목을 베는 것이다.
칼 자체가 휘어져있고 날이 그 안쪽에 있어서 칼을 휘감아 돌려 그 안에 있는 것을 베어내는 용도가 아니면 쓸모가 없었다.
“김강현. 너도 준비해. 형이 이 녀석을 기절시켜 줄 테니까.”
지우가 말하자 강현도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정신은, 실은 한참 전부터 차렸다. 그런데 정보창의 체력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는 것을 보자니 저는 따로 돕지 않고 거기에서 그것만 불러주고 있어도 될 것 같았다. 강현은 네메시스를 휘휘 휘두르면서 태인과 서규태 사이로 다가왔다.
“너는 저쪽으로 가야지. 왜 넓은 맵을 놔두고 이쪽만 인구 밀도를 높여?”
태인이 말하자 강현은 곧바로 제 자리를 잡아 뛰었다.
“갑니다.”
지우의 목소리는 허공에서 들렸다. 목소리를 듣고 지우를 보았을 때는 이미 지우의 몸이 아이언을 타고 한참이나 올라가는 중이었다. 위기를 느낀 아이언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맵을 가득 채웠다. 맵이 그 공명에 둥둥 울리는 것 같았다.
“히야아아아아아아아압!”
꽤나 길게 지우의 기합이 이어지는 동안, 써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아아아아아앙!”
아이언은 믿을 수 없는 일을 당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이언의 앞다리가 꿇리면서 거대한 몸이 앞으로 거꾸러졌다. 아이언의 목이 옆으로 굴러떨어졌을 때 아이언은 제 몸뚱이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딜러들은 공격력을 최대한으로 높인 무기로 아이언을 공격했다. 아이언은 서리맞은 배추처럼 가라앉아 있었고 딜러들은 공격의 기회를 노릴 필요도 없이, 차크라가 모아지는대로 딜을 퍼부었다. 가장 약체였던 강현도 괴수의 체력을 깎아내는데 한 몫을 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체력이 일 단위로 떨어지는 건 형 때문이예요.”
긴장감은 모두 내려 놓고 정보창을 봐 가면서 딜을 넣고 그 와중에 지우의 낮은 공격력을 가지고 지적질까지 해 댈 정도가 되었다.
“아니야, 이 멍청아.”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지우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쓸데없는 것 신경쓰지 말고 딜이나 부어!"
"네. 저도 지금 그러고 있어욥."
목이 떨어진 아이언은 7분동안 묶여 있었다. 그러나 믿기 힘든 회복력으로 아이언의 목에서 아이언의 머리가 새로 생겨났다. 딜러들은 꽤 오랫동안 아이언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격의 성공률이 낮아지고 있었다. 집중력과 순발력 모두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지우는 그들이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언의 체력은 세 시간 동안 70퍼센트 가까이 깎였지만 그 후로는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서규태가 태인과 강현을 북돋웠고 두 사람도 힘을 내려고 했지만 이미 한계에 이른 것 같았다. 임정과 지우가 기회를 만들어줘도 몸이 천근만근으로 느껴져 아이언을 쫓아가기에 급급했다.
“처음부터 3급 괴수를 상대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임정이 말했다.
임정과 서규태는 앞으로도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을 듯했다.
“태인이 형. 한 번 더 잡아줄게요. 거의 다 했잖아요. 여기에서 멈출 수는 없다고요.”
지우가 소리치자 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인의 얼굴은 머릿속에서부터 땀이 비오듯이 흘러내려서 금방 세면을 하고 얼굴을 닦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강현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숨을 헐떡거렸다. 3급 괴수를 너무 쉽게 봤다고 두 사람은 속으로 자책을 하는 중이었다.
지우가 아이언을 공격하려고 하자 아이언은 꼬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도망쳤다. 강현은 일직선으로 도망치는 아이언의 뒤에 대고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태인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화살을 쏘아 날리는 것은 어느 정도로 해 낼 수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아이언의 체력은 성실하게 내려갔고 마침내 체력이 5퍼센트만 남게 되었을 때는 경험치를 누구에게 몰아줄 것인지 의논을 했다.
아이언은 한 쪽 구석에 내몰린 채 거친 숨을 쉬어댔다. 자신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태인씨한테 먼저 몰아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내 생각엔.”
서규태가 말하자 지우와 임정이 동의했다. 강현도 크게 놀라면서 기뻐해주었다. 태인은 그때부터 갑자기 긴장이 되는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그때까지 잘 하던 레이드를 거의 망치기 직전까지 가 버렸기에 나중에는 서규태가 대안을 내 놔야 했다.
“내가 같이 있을게요. 경험치는 우리 둘이 나눠 가지죠. 어차피 우리가 빨리 강해지면 우리는 클랜 A의 무기가 되는 거니까.”
서규태의 말을 듣고야 태인은 긴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