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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69화 (6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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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그런 임정을 보고 있자니 임정이 눈 앞에 있는 것을 보면서 머릿속에 있는 가상의 기준과 비교를 하는 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 사람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해 주었다.

“일단 론 디어 칼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부위를 집중적으로 절단해주세요. 바디 팩은 바디 펌에 수량대로 반납을 해야 되는 거죠?”

임정이 서규태에게 물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게 몇 개 있습니다.”

“그럼 거기에 보관을 하죠.”

“무슨 일인데 그래? 론 디어는 그냥 우리 취미 같은 거였는데 자기까지 이렇게 몰입하면 곤란해.”

지우가 웃으면서 말하자 강현도 긴장을 풀라는 식으로 임정의 팔을 한 번 건들었다.

“괴수를 괴롭히면서 죽였다고 해도 이게 죄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누나.”

“그래서 그런 게 아니예요. 여기에 오기 전에, 천 대리님을 공격한 사람이 헌터라는 사실이랑 그 사람이 헌터 명부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서, 머리를 식힐 겸 다른 생각을 하려고 론 디어에 대해서 조사를 했어요. 론 디어 자국이 나타났다는 레이드를 다 조사해보고 그때 레이드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입수했어요.”

“그러면 간단하게 끝날 문제이긴 했어요. 우리는 그 정보에 접근할 수가 없어서 그냥 추리 놀이나 하고 있었던 거고요.”

강현이 아쉽게 됐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야말로 임정의 입에서 론 디어의 정체가 밝혀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임정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다른 괴수의 몸에 난 상처는 보지 못했지만 써전님이 그렇게 확신하실 정도라면 그게 한 사람이 낸 상처가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요?”

서규태가 물었다.

“그 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겹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겹치는 사람이……. 없다니요? 아니요. 그럴 리가 없죠. 대부분의 경우에 같이 나타난 사람은 있지만 그 사람이 몇 군데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그렇게 말을 해도 이상할 텐데 겹치는 사람이 없다니요?”

서규태는 말을 하는 동안 점점 흥분했다.

“써전님 말씀이 맞아요. 저도 제가 잘못된 정보를 받은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예요. 각각의 레이드에 참석한 사람들의 정확한 명단이었어요.”

임정이 말했다.

그야말로 침통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임정에게도 최후의 보루였다. 그것만 확인을 하면 론 디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귀뺨을 세게 맞은 것처럼 어이없는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몇 군데에서는 겹치지만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하나 정도는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임정에게도 믿기 힘든 결과였다.

“한 사람도 겹치지 않았다고?”

지우가 물었다.

임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야말로 이 상황에서 다른 대답을 하고 싶은 눈치인 것 같았다.

“그렇게 되기도 힘들 것 같은데. 그 공대들이 전부 항상 정해진 멤버를 데리고 다니는 곳들이었어요?”

태인이 물었다.

“나도 그 생각을 했어요. 멤버가 정해져 있어서 그런 건가 하고요.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임정이 말했다.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라 대답이 빨리 나왔다.

“멤버를 그때그때 모집해서 충원하는데 열 명의 레이더 중에, 아니, 공대장은 뺀다고 하더라도 아홉 명의 레이더 중에 같은 사람이 한 번도 겹치지 않는다는 확률도 희박한 것 아닌가?”

태인이 말했다.

그때 서규태가 임정을 바라보았다.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똑같이 임정의 사기 레이드를 생각하고 있었다.

서이진에서 임정으로 신분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경험치를 얻기 위해서 공대를 꾸릴 때 임정은 팀원이 겹치지 않는지를 가장 우선해서 살폈다. 자기 자신이 공대장이었기에 팀원이 겹치지 않도록 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론 디어는 공대장도 아닌 것 같았다. 공대장은 일반적으로 탱커가 맡는데 론 디어는 딜러를 위한 무기였고 론 디어를 사용한 공격의 패턴을 봐도 딜러의 움직임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요. 어쩌면 론 디어를 봤을 수도 있겠네요."

강현이 소리쳤다.

무슨 말이냐고 태인이 묻자, 강현은 치안대원 임재욱이 출동했던 날의 일을 기억해 보라고 말했다.

"그날, 레이드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우리는 레이드를 마치고 나온 사람을 전부 봤잖아요. 그 사람들 중에 하나였을 거예요. 론 디어는."

강현이 말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때 본 얼굴이 이제 와서 기억날 리는 없었다.

"현실적으로. 탱커님은 일반 헌터가 그런 짓을 벌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서규태가 임정에게 물었다.

“멤버를 미리 보고 확인을 했다면. 그래서 자기가 아는 사람이 끼지 않은 레이드에만 참가를 했다면 그렇게 만들 수도 있죠.”

“누군가가 그럼 자기 신분을 숨기려고 자기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공격대에 들어가서 레이드를 한 거라고요?”

태인이 물었다.

임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더들의 상세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 돼 있어요. 처음에도 말을 했지만, 그리고 강현씨도 지적을 했지만 이 일에는 어떤 범죄 요소도 없었어요. 그냥 이 팀의 심심풀이 놀이랑 비슷한 거였고 저도 머리가 복잡해져서 잠깐 기분 전환이나 하려고 찾아본 것들이었고요.”

“이제 ‘그런데’가 나올 차례네요.”

강현이 말했다.

임정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모두들 말이 없었다.

괴수의 사체에 남은 서명은 한 사람의 것인데 레이드를 뛴 사람중에 공통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주는 불편감.

그냥 써전과 하급 헌터들이, 자기들이 일을 하면서 알아낸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끼워맞추는 놀이를 하다가 자신들이 상상해낸 캐릭터를 현실에서 한 번 찾아내 보자고 시작한 일일 뿐이었다. 특유의 집중력으로 태인과 강현, 지우 이 세 사람은 의문의 헌터가 사용하는 무기가 론 디어라는 것까지 알아냈다. 그 후에는 써전의 공백 때문에도 그렇고, 임정과의 훈련 때문에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론 디어로부터 관심이 멀어졌다.

그러나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같은 서명을 한 사람 중에 같은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펜으로 하는 일반적인 서명과 달라서 다른 사람이 절대로 흉내낼 수도 없었다.

"한 사람 소행이라는 거예요, 아니라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둘 다 말이 안 되네요. 한 사람 소행일 수도 없는 거고, 여러 사람 소행일 수도 없어요. 그건. 분명히 그건, 그런 상처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일 거란 말입니다. 그건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서규태가 말했다.

태인과 지우도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기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라는 건지, 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지 그것도 알 수 없다니. 진짜 답답하네.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야."

지우가 말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예요.”

임정이 말했다.

“레이더들이 한 사람씩 사라졌어요. 각 공대에서 한 사람씩요.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상태예요.”

임정의 말에 네 사람은 모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놀라움의 표시도, 불신의 표시도 나타낼 수가 없었다. 임정이 짓궂은 장난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뿐이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잖아요.”

한참만에 강현이 말했다.

모두가 느끼는 생각도 그와 비슷했다.

“지금 치안대를 동원해서 그 사람들을 찾고 있어요.”

임정이 말했다.

“찾은 사람은요?”

서규태가 물었다. 임정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뭔가 기분 나쁘네요.”

강현이 말했다. 태인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우는 전혀 다른 의문을 품었다. 지우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임정이 괴수의 사체에서 그 상처, 론 디어의 서명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을 처음 봤을 때 지은 표정이었다.

“물어볼게 있어.”

지우가 말했다.

그동안 태인과 강현만 같이 있는 자리에서 지우는 임정에게 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서규태가 끼는 일이 잦아지자 그럴 때는 임정에게 말을 높였는데 서규태가 상황을 파악하고 편하게 말을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을 한 후로는 임정에게 편하게 말을 하는 중이었다.

“네. 물어보세요.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좋겠네요.”

임정이 말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터져버리기 직전이라는 표정을 짓고 임정이 스스로 머리카락을 헝크는 것을 보고 지우가 임정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웃음을 짓다가 물었다.

“이런 패턴의 상처. 전에도 본 적이 있었어? 혹시 론 디어를 쓰는 사람을 알고 있어?”

“아뇨.”

자기가 괜한 생각을 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우는 한숨을 쉬었다. 실망인지 안도인지 지우 자신도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당신이 지었던 표정이 마음에 걸렸어.”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기억해요? 지우씨 집에서 늪이 나타났을 때. 지우씨 팔에 헌터 타투가 발견되고, 연구소에 가기 전에 나랑 같이 병원에 들렀었잖아요.”

임정이 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천 대리님을 보러 갔었지.”

“우리는 같이 수술실에 갔었죠. 그 분이 수술을 받는 동안에요. 기억나요?"

"응. 수술실까지 들어가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거기까지 들여보내는 주는 걸 보고 역시 치안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 분한테 그 상처가 있었어요. 론 디어로 만들어진 상처. 지금 이 괴수한테 상처를 입힌 사람이 만들어낸 상처.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잘못 봤던 거라고 생각해?”

“아뇨.”

“…….”

사람들에게는, 각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의 유형이 있다. 하지만 헌터가 차크라를 실은 무기로 낸 상처를 구분하는데 있어서 임정은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지우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지겹게 끼어 있던 먹구름 하나가 걷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천 대리님만 달랐던 건지, 묻지마 폭행을 당했던 다른 희생자들은 모두 죽었는데 천 대리님만 살 수 있었던 건 무슨 이유였는지 그동안 전혀 상상하지 못했지만 바로 그 순간에 지우는 천기정을 살린 사람이 임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였어?"

지우가 물으며 임정의 어깨에 손을 얹자 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묻지마 폭행을 저지르고 다니던 그 사람이 론 디어라고 생각하는……?”

태인이 물었다.

강현은 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얼굴에서는 눈만 드러난 채였고 그 눈은 이 상황을 제대로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듯이 커다랗게 된채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론 디어가요. 잠깐만요. 론 디어가 묻지마 폭행을 저지른 헌터라고요?”

서규태도 말을 하기는 했지만 왠지 말을 할수록 이해가 되는 느낌이기도 했다. 론디어에 대해서 자기가 그동안 줄곧 해 왔던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수사를 시작하는 건가?”

지우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왠지 답을 이미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재헌과 시비가 붙었을 때 나온 치안대원들의 태도에서도 그것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써전이 C급 최상위의 헌터가 아니었다면 그날 지우는 오재헌에게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치안대에 끌려갈 수도 있었다. 헌터의 범죄를 처단하기 위해서 치안대가 존재한다고 하지만 치안대의 우선 순위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 자기들은 국가의 안녕을 위해 거시적인 판단을 한 거라고 말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차크라를 사용할 줄 아는 괴수가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단도를 휘두를지라도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아니예요.”

임정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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