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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66화 (6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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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이익헌은 공대장이 레이드를 하기 전에 레이드에 참가하게 되는 레이더들의 명단을 전부 바디 펌에 보내주고, 늪에 들어가면 정보창의 내용도 보내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했다. 임정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에서는 다른 생각이 흐르고 있었다. 눈 앞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해 내야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였다.

그때 구세주와도 같이 이익헌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죄송하지만 이건 지금 받아야 할 전화네요.”

이익헌이 말했다.

“네. 괜찮아요. 기다릴 수 있습니다. 편하게 받으세요. 아니. 제가 잠깐 나가드릴까요?”

“아니. 그러실 필요는……. 정말로 그래주실 수 있습니까?”

“네. 네. 편하게 받으세요. 통화가 끝나면 저를 부르시고요.”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정은 즉각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이익헌의 비서가 임정에게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임정은 소파에 비스듬히 앉은 채 기억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그때, 천기정을 습격한 남자에 대해서 지우가 했던 말들이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랐다.

***

지우와 함께 천기정의 커피숍에 갔다가 먼저 모임을 떠나야 했던 날, 임정은 지우가 치안대에 신고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현장에 있다가 바로 출동팀에 합류 했다. 누가 얼마나 다쳤는지 모른 채였지만 현장에 도착한 임정은 누구보다 가장 빨리 윗층으로 올라갔다.

쓰러져있는 천기정을 치료하면서도 임정은 이 일을 어떻게 매듭지을지 고심을 했다.

만약 천기정이 얽히지 않았다면 치안대는 이 문제에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치안대의 입장은 언제나 일관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강한 사람이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력자가 되어 주는 것이 치안대의 숨겨진 본분이었다.

레이더와 사체 운반 헌터간에 갈등이 생기면 레이더의 편을 들어주고 사체 운반 헌터에게 일방적인 희생과 이해를 강요하는 것처럼, 일반인과 헌터 사이에 문제가 발생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표면적으로는 치안대의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 치안대가 일반인의 안전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뛰는 것 같지만 실상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 게 치안대였다.

그것은 그동안 임정의 사상과도 크게 배치되지 않았다. 약한 개체에 대한 멸시와 증오.그런 감정이 임정의 기반에 깔려 있었다.

괴수가 출몰하는 세상에서는 좋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상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극단적으로, 괴수가 늪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그때 레이드도 하지 못하는 사체 운반 헌터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일반인은?

임정은 힘의 논리대로 그들을 대우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괴수가 튀어나오면 괴수에게 죽을 사람들인데 지금 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그게 뭐 그리 대수인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마지막 순간에 다수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힘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정의이고 자기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 치안대장의 가치관이며 치안대의 신념이었다. 남에게 일어나는 비극으로는 눈물 한 방울 쏟을 일이 없던 임정이 인간 안지우를 만나고 조금씩 변해가고 있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지금까지의 치안대와 치안대장의 상황이었다.

그랬으니 헌터에게 당한 일반인에게 치안대가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덜컥 천기정이 걸려버린 것이다. 지우와 이런 관계가 되지 않았다면 천기정에게 일어난 사고가 임정을 이렇게 괴롭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지우와 그런 관계가 되어 버렸고, 천기정은 임정의 딜레마가 되어있었다.

일을 벌이고 다니는 헌터가 어떤 놈이든지간에 천기정을 건든 그 순간부터 그 놈은 임정과 치안대의 적이 된 것이다. 별 수 없이 이 놈은 잡아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행히 지우가 범인의 얼굴을 야무지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우는 그 남자가 B급 탱커라고 말했다. 재생 능력을 가진 B급 탱커. 그렇다는 것은 국내에 몇 대 밖에 보급되지 않은 차로 교통사고를 낸 거나 다름이 없었다. 부가티 베이론으로 사고를 내놓고 뺑소니를 친 격이라고 해야 할까.

범인이 B급 탱커라는 지우의 말을 듣고 임정은 범인을 잡는 것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임정은 헌터 명부를 보여주기 위해 태블릿을 꺼냈다. 헌터 명부에 등록된 헌터들의 사진을 지우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B급 탱커들끼리는 서로 잘 알았다. 일부러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일단 그 수가 많지 않고, 알게 모르게 좋은 딜러를 유치하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임정은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헌터 협회의 헌터 명부에 접속했다.

“B급 탱커라는 게 확실하다면 여기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임정이 태블릿째로 지우에게 건네자 지우는 태블릿을 받아들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겼다. 치안대에서 봤던 사람들의 얼굴도 있었고 임정도 있었다. 하지만 자기와 천기정을 공격한 사람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지우의 얼굴이 점점 초조하게 변해갔다.

“차분하게 천천히 보면 돼요.”

임정이 말했다.

지우는 임정을 한 번 바라보고 눈썹을 휜 채로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B급 탱커라는 카테고리에 있는 명부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B급 탱커였어. 분명히. 그걸 잘못 볼 리는 없잖아.”

지우가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임정을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천기정의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남자의 팔에는 분명히 헌터 타투가 있었고 분명히 B급 탱커였다. 어디에서 잘못된 건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려고 했지만 실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 한 사람의 사진까지 전부 다 확인하고 두 번이나 다시 보았지만 그 모습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천기정이 다가왔다.

“내가 한 번 볼게요.”

지우는 그에게 태블릿을 넘겼다. 천기정도 그 남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지우는 낙심한 얼굴로 임정을 바라보았다.

“내가. 잘못 본 걸까?”

지우가 임정에게 말했다.

임정은 지우의 눈을 몇 초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없는 거지, 명부에?”

“글쎄요.”

임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후에는 기댈 곳이 몽타주밖에 없게 되었다.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자기가 본 사람의 얼굴을 짚어내기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가, 이제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얼굴을 말로 표현해야 하니 지우는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몽타주 작가는 실력이 좋은 사람이었다. 지우가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었고 지우의 머릿속을 휘휘 저으면서 지우 스스로는 전혀 떠올릴 수 없었을 부분들도 세세하게 건져 올렸다.

눈썹산, 눈꼬리, 입꼬리의 방향 하나로도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지우는 신기해하면서 깨달아갔다. 몽타주 작가는 수없이 수정을 반복해야 했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고 끈기를 갖고서 작업을 한 끝에 결국 지우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할 만한 그림을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남자, 평면의 종이 위에 누워있던 남자가 지금 임정의 눈 앞에 서서 웃고 있었다. 몽타주에 펜을 가져다 대고 남자의 입술 끝을 올려서 웃음을 만들어낸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될 거라는 상상이 들 정도였다.

“통화가 생각보다 길어졌네요.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들어가시죠. 정말 마실 게 필요 없습니까?”

이익헌이 임정을 데리러 나와 말했다.

“그냥 인터폰으로 부르시면 들어갔을 텐데요.”

“그럴 순 없죠. 치안대에서 나오신 분한테.”

임정은 제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게 들릴 것 같지는 않았다.

이익헌이 조금만 늦게 나왔다면 스마트폰에 있는 몽타주를 보고 확인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쓸데없는 아쉬움을 오래 붙잡고 있는다고 도움이 될 것은 없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공략이 완전히 끝난 늪인지 아닌지 바디 펌에서 확인 절차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말입니다. 사체 운반 헌터와 써전들은 어쨌거나 바디 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있든 없든 말입니다.”

임정은 끊겼던 부분을 다시 이어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익헌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공략이 끝나지 않은 늪에 사체 운반 헌터들이 들어가면 바로 그 순간에 괴수의 체력이 리셋될 거고, 그러면 레이더들은 꼭지가 돌아버리겠죠.”

“화가 난 레이더한테 사체 운반 헌터가 주어지면. 참극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죠.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뿐이지.”

“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알겠습니다. 직원들에게 주의를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바디 펌이 공대장과 계약을 할 때 아예 그 내용을 집어 넣으면 될 것 같습니다. 공략이 끝난 시간을 보고하는 걸로요. 공략의 성패 여부도 당연히 보고해야 할 거고요.”

“알겠습니다. 레이더들이 레이더를 마치고 늪에서 모두 철수했을 때 바디 펌에 보고를 하도록 해야겠군요. 그 연락이 오기 전에는 사체 운반 헌터들을 투입하지 않는 걸로 하고요. 그러면 치안부장님이 우려하시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겠죠.”

“네.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을 공대 쪽에서 받게 하면 스스로 알아서들 보고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신경쓰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좀 희한하긴 하군요. 레이더들은 사체 운반 헌터들의 안전이나 복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걸로 아는데 치안부장님은 좀 특이하십니다. 이렇게 유능한 여자 헌터를 보는 것도 처음이고요.”

“충분히 보셨기를 바랍니다. 이제 일어날 참이거든요.”

임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선은 돌아가서 지우와 얘기를 더 나눠볼 참이었다. 바디 펌의 부사장은 자신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철저한 사람이었고 외부 행사에도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작정을 하고 인터넷을 이 잡듯이 찾아내면 그의 사진 하나쯤은 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우에게 그 사진과 비교해보라고 하면 지우에게서 확답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 일찍 가셔야 한다니 아쉽네요. 오랜만에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것 같아서 반가웠는데 말입니다. 빠른 시일 안에 다시 뵙게 되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이익헌이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지만 임정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거절을 표했다.

“손에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악수는 하지 않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민망하게 됐습니다.”

임정은 부사장실을 둘러보았다.

“이 일은 어떻게 하시게 됐습니까?”

임정이 물었다.

“지인의 소개로요. 지인이 이 회사 중역이었는데 나를 좋게 봐 줬죠.”

“바디 펌은 사람들을 어떻게 뽑습니까? 헌터를 우대한다거나, 그런 조건들이 있습니까?”

“헌터요? 헌터가 왜 바디 펌에서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리고 헌터를 데려다가 어디에 쓰게요? 바디 펌에서는 그런 능력이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익헌이 능숙하게 말을 받아쳤다.

“저를 보신 적은 없나요?”

그냥 갈 수도 있었지만 이익헌이 헌터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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