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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65화 (65/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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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거기에 힘을 실을 수 있도록 연습해 봐요.”

각자 검에 체중을 싣고 전력으로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도 임정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탁월한 차크라 운용능력으로 압도적인 속도와 힘을 내서 매번 강현을 눌러버렸다.

“검을 가지고 싸운다고 손을 잊어버리진 말아요. 검을 들고 있다고 다른 손이 어디로 도망가는 건 아니니까.”

그러면서 임정은 강현의 비어있는 곳을 주먹으로 가격했다가 물러서기도 했다.

“제가 할 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요. 비겁해보여서 그렇지.”

“아, 그래요? 괴수랑 우승컵 두고 싸울 건가보죠? 아니면 챔피언 벨트? 이긴 사람이 허리에 그걸 차기로 하고 싸우는 거예요? 한 번의 공격, 그게 언제나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게 좋을 걸요? 이 한 번의 공격이 내가 가할 수 있는 마지막 공격이라는 생각. 그런 생각으로 딜을 넣고 넣고 넣다보면 언젠가는 레이드가 끝날 거예요.”

임정이 강현을 거세게 몰아세우자 강현은 허겁지겁 임정의 공격을 막기에 바빴고 그때마다 검끼리 쨍강쨍강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강현이 한 번 움직이는 동안 임정은 기본적으로 네 번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결국 강현은 임정의 무지막지한 공격에 검을 놓쳤다.

“그래도 오늘은 꽤 버텼네요. 좋은 시도도 여러 번 나왔고.”

임정이 강현을 격려하자 강현의 표정이 금세 다시 좋아졌다. 그 다음에는 서규태가 지우를 불러냈다.

“저요? 저는. 검은 아직…….”

“그래요? 그럼 도끼를 가지고 덤벼도 괜찮습니다. 아니면 전에 말한대로 차크라를 뭉쳐서 날려도 되고요.”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써전님을 죽게 하고 싶지는 않거든요.”

지우는 그 말이 건방지게 들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비난하는 표정이 역력해진 강현과 태인의 표정을 보고 움찔했다.

"건방지게 말하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그게 사실인 것 같거든요."

지우는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우와. 갈수록 더 재수없어!"

강현이 맹비난을 계속했다. 하지만 서규태와 임정은 지우가 하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닐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별명이 차크라 마스터였다는 걸 알고 있나요? 누가 차크라 마스터에 대해서 얘길한다. 그러면 그게 내 얘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놓고 서규태는 지우를 공격했다. 헌터끼리의 싸움에서는 공격력과 방어력의 차이가 무의미하다. 그러나 차크라는 얘기가 다르다. 서규태는 지우를 공격하려다가, 자기가 전력으로 주먹을 날렸음에도 그것이 지우의 신체에 바로 닿지 않고 튕기듯 나온 것을 깨달았다. 지우의 몸 전체가 푸르스름한 차크라로 감싸져 있었다.

“차크라 마스터라는 별명은 과분하고. 저는 그럼 미스터 차크라라고 불러주세요.”

서규태가 멍하니 자신을 보는 것을 보고 뻘쭘해진 지우가 분위기를 쇄신해보겠답시고 말했다. 서규태가 임정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싸워도 되는 거냐고 물으려는 표정이었다.

“원래 이 정도 일에 저렇게 죽자사자 차크라를 두르는 사람은 없죠. 싸움의 초반이고 이건 그냥 간단한 겨루기 같은 거니까 이런 일에 차크라를 소모할 생각들을 안 하는 걸 거예요. 차크라 숙련도를 높인다는 건 결국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차크라를 개발한다는 거잖아요. 써전님은 차크라 숙련도가 높지만 어쨌거나 유한하다는 제한을 넘어서지는 못하시고요. 하지만 그건 지우씨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어요. 쓰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버릴 차크라라고 생각하고 저렇게 항상 흘리고 다니는 것 같아요.”

임정이 말했다.

"내가 전에 봤을 때보다 더 괴물같아진 것 같군요."

서규태가 말했다. 조금의 과장도 없이 자기가 느끼는 것을 솔직히 표현한 얘기였다. 서규태는 싸울 생각을 잊어버리고 턱을 문질렀다.

“지우 형이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지우 형만큼 차크라가 많았던 사람은 없었던 거예요?”

서규태의 얼굴이 심각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강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제 한 번 시험을 해 보고 싶기는 하네요. 정말로 지우씨의 차크라는 무한인 건지, 아니면 끝을 알 수 없을만큼 많다는 건지.”

임정이 말했다.

"어떻게요? 1급 괴수가 사는 늪에 지우를 혼자 집어 넣을 건 아니죠?"

태인이 말했다. 태인은 차크라를 소모하게 되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을 상정해서 말을 한 거였지만 그 말을 해 놓은 순간 갑자기 자기가 늪에 떠밀렸던 일이 생각나서 고개를 털듯이 휘휘 저어버렸다.

지우는 점점 걱정이 되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1급 괴수가 사는 늪에 혼자 집어 넣는다는 말이 나왔는데도 놀라는 사람조차 없는 것 같았다.

“나한테 좋은 생각이 난 것 같습니다.”

서규태가 임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그 생각이 뭔지 바로 말해줄 마음은 없었는지, 서규태는 푸르게 드러난 맨 턱을 계속 문질러대기만 했다.

지우는 저도 모르게 홈런을 쳐놓고 난처해했다. 자기가 당연하게 하는 일들이 사실은 차크라 마스터에게도 간단하지 않은 일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면 저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지곤 했다. 그런데 정말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뭔가하면, 홈런은 꼭 연습때만 나오는 것 같다는 거였다.

***

이익헌은 커피 머신 앞에 서 있었다. 볶은 커피콩을 갈고 향을 들이마시자 머릿속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바닥에 미리 커피 시럽을 부어 놓은 샷잔에 커피를 내렸다. 크레마가 예쁘게 내려 앉다가 쫄쫄쫄쫄 마지막 드랍까지 깔끔하게 떨어졌다. 이익헌은 스팀봉을 마른 수건으로 닦고 밀크 폼을 만들었다. 부드럽고 곱게, 과하지 않은 폼이 만들어졌다.

그는 에스프레소 위에 밀크 폼을 얹었다. 조금 전까지 당당했던 크레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익헌은 스팀봉에서 스팀을 몇 번 빼내고 간단한 세척까지 마친 후에 에스프레소 마끼아또를 즐겼다. 작은 스푼으로 저어주자 풍미가 그의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이익헌의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살아났다. 하루 중 그가 기쁨을 느끼는 여러 순간 중 한 조각의 시간이다. 요의를 참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지퍼를 내리고 스스로에게 분출을 허락하는 순간도, 졸음을 견디다가 막 잠드는 순간도, 축 처진 어깨로 한숨을 감추며 절망하는 부하 직원을 보는 순간도. 모두 그에게 기쁨을 주었다.

단지 너무 짧다는 것, 너무 빨리 소멸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벽에는 압화가 들어있는 작은 액자가 여러 개 걸려 있었다. 괴수의 서식지에서 자라던 귀한 것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 말을 쉽게 믿으며 감탄했다. 사실 그의 압화에는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자신이 정한 희생자들이 쓰러지면 그는 희생자가 쓰러진 곳 주위에 있는 것 중 어떤 것이든 꺾어왔다. 주변에 풀뿌리조차 나지 않는 환경이라면 얼마 정도 나오다가 비슷한 것을 찾아 꺾었다. 그것은 이익헌이 그 순간을 기념하며 반복적으로 떠올려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그는 오른쪽의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가 언제 채워질지는 알 수 없었다.

천기정의 몸에서 불길한 메시지를 발견한 후에 이익헌은 말할 수 없이 의기소침해졌다. 무기를 바꿔야 하려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갑자기 무기를 바꿨다가는 제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고민이 깊었다.

이익헌이 잠겨있던 서랍을 열어 칼을 한 번 만져보려고 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둥둥둥.

경박한 똑똑 소리가 아니라 낮고 깊은 울림이 나는 소리였다. 저 소리를 듣자고 문에 6천만원을 처발라놨다.

“들어와요.”

“부사장님. 치안대에서 치안부장이 나왔습니다.”

비서가 들어와 이익헌에게 말했다.

“네. 안내해 주세요.”

이익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여자 헌터가 들어왔다. 임정이었다. 임정은 보폭이 큰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면 상대방한테 전화 한 통 정도는 해 줘도 됐을 텐데요. 오신다고 했던 날, 다른 일이 있었는데 약속을 지키려고 급히 돌아왔거든요.”

이익헌은 제 살처럼 익숙해진 웃음을 입가에 얹은 채로 말했다.

조용한 어조였지만 훈계하려는 것 같은 내용이라 임정은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람들은 치안대를 공무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치안대는 국민을 위한 봉사 기관이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기관도 아니죠. 그냥 힘의 균형을 맞추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집단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을 텐데 말이죠. 남을 도와주는데는 관심이 없고 남한테서 도움을 받는데는 아주 관심이 많은 기관이고 저도 지금 시간이 남아돌아서 여기까지 나온 게 아니거든요. 피차에게 시간이 중요한 것 같으니까 짧게 끝내죠.”

임정이 말을 하고 소파로 와서 앉았다.

“네. 그래주시면 저도 감사하겠습니다. 마실 걸 내오게 하죠. 어떤 걸로?”

이익헌은 은근히 임정을 바라보았다. 여자들은 그를 대할 때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다가 일을 망치곤 했다. 과한 웃음, 틱이 있는 것처럼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이나 다리, 이익헌이 다른 곳을 본다고 생각될 때마다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

그런데 이 여자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데에만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았다.

“아뇨. 마실 건 필요없습니다.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간단합니다. 최근에 경험치 몰아주기를 한다고 레이더들이 공략이 다 끝나기 전에 늪에서 나오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험치를 몰아 받을 사람과 탱커, 에이스 딜러만 남겨놓고 말이죠. 그 일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걸 문제삼으려는 건 아닙니다.”

임정이 말했다.

“문제를 삼더라도 그건 치안대나 헌터 협회의 문제겠지 바디 펌으로 끌고 올 문제는 아니겠죠.”

“네. 맞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바디 펌의 부사장님을 찾아오지는 않았겠죠.”

이 불편감은 무엇 때문일까. 임정은 자기가 지금 중요한 무언가를 놓친 채 떠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게 뭔지 실체를 알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미치기 직전이었다.

“지금까지는 크게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레이더들이 미리 나와 있으면 그 늪에 다른 헌터가 들어갈 수도 있고,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략이 거의 끝나가는 늪에 다른 헌터가 입장을 해서 괴수의 체력이 리셋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으로 미리 차단을 하자는 얘기를 드리러 온 겁니다."

임정이 말했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군요. 먼저 나간 레이더들이 끝까지 충성스럽게 늪 옆을 지키고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바디 펌이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지 간단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바디 펌이 공대장에게서 괴수의 사체 운반을 의뢰받는 과정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공대장은 바디 펌에 어떤 것들을 보고하게 돼 있는지, 바디 펌은 공대장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식으로 관리하는지. 그런 것들요.”

“충분히 협조해드리겠습니다.”

사실, 그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대략의 것들은 임정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단지 임정은 생각할 시간을 벌고 싶은 것 뿐이었다. 자기가 놓친 게 뭔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 같은 이 느낌이 뭔지 그것을 확실히 할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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