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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부터 레벨업-61화 (6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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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원래 임정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50퍼센트가 추진력이었다. 생각난 것은 바로 추진을 하는 스타일이라서 임정은 지우와 선아영에 대해 얘기를 한 후에 시간이 났을 때 선아영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의사를 타진했다.

선아영은 임정의 팀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이었고 임정이 익스트림 헌터의 광고 모델이 돼 주겠다고 제안했을 때는 열렬히 환영했다. 할 말은 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선아영이 임정에게 말했다.

-그런데 왜 늪을 공략하러 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죠? 3급 늪이라서 그런가요?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서 임정은 리드(lid)의 정보를 불러내 읽으면서 통화를 했다. 그리고 번거로운 심문 끝에, 선아영의 집 앞에 있는 늪이 임재욱 때문에 수명을 늘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임재욱은 힘을 잃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 늪을 공략하겠다고 나서는 레이더들이 없었던 것 뿐이야.”

“그래요? 정보가 블라인드 처리돼 있던데요? 정보가 블라인드 처리되면 어떤 레이더도 늪을 공략하겠다고 나서지 못하죠.”

“그 일로 물의를 일으키지는 않을 거니까 건방지게 굴지마.”

임재욱이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가 한 말은 확실히 알아들었어요. 우리는 B급 헌터일 뿐이고 치안대에서 특별한 존재는 아니라는 거잖아요? 그 말을 명심하도록 하죠.”

임재욱은 임정이 갑자기 호락호락하게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기는 했지만 선아영의 집 앞에 생겨난 늪에 대해서 더 이상 문제삼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결국 임재욱의 그 사사로운 태클 때문에 치안대는 천기정을 보호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임정의 탓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날 이익헌이 현장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면 자기 자신이라도 가서 잠복을 했을 것이다.

***

천기정은 자기가 잠든 동안 누군가 자신의 침실에 들어온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단 한 사람의 생존자를 처리하기 위해서 천기정을 찾아온 이익헌은 수면제에 의지해 잠이 든 천기정의 곁에 서서 천기정의 목에 예의 그 칼을 겨누었다. 왜 이 남자만 살아난 건지 그는 알지 못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가 수술을 했더라도 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커도 아닌 일반인의 몸이, 으깨진 삶은 감자처럼 된 장기가, 스스로 기능을 회복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으로 만들고 수술을 버티지 못할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저절로 죽게 된다. 모두가 그 이유로 죽었다.

그런데 왜 이 남자만 패턴을 벗어난 건지 이익헌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수술한 흔적을 보려고 천기정의 옷 사이를 갈랐다. 언젠가 제 몸에 닿은 적이 있던 차가운 금속이 다시 제 몸에 닿아 있는데도 천기정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금속의 차가운 비린 냄새가 이익헌의 코 끝에 감돌았다. 이익헌은 서두르지 않았다. 수술자국을 보려고 했던 것은 그냥 즉흥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다. 봐도 안 봐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보았을 때,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번뜩였다.

천기정의 몸에서 불편한 흔적을 발견한 탓이었다. 천기정의 몸에는 봉합된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이익헌이 치명상을 입혔던 장기 위의 피부는 저절로 아물어 있었다.

아니, 아물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 아물었다는 것은 손상을 전제로 한 개념이다. 그러나 천기정의 몸의 일부분은 애초에 다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고 완벽하게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어 있었다. 다른 힘이 개입했다는 뜻이었다.

차크라를 이용해서 남의 상처에 치유 능력을 행사하는 사람.

그 여자가 살아있는 것이다.

이익헌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제길. 그런 여자가 정말로 있었다는 말도 안 믿었는데. 그리고 그 여자는 죽었다고 했는데. 헌터 협회 이 사기꾼 새끼들! 사람들을 전부 속였군. 나까지 포함해서!’

그 여자가 천기정을 살렸다면 자신의 꼬리를 봐 버린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 안 건가. 뭣까지 알아낸 거야! 아니지. 나에 대해서 알아낼 방법은 없어. 헌터 짓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겠지.'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아무도 저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있게 걸음을 놀리던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지금은 천기정에게 한 눈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했다. 도대체 그 여자가 이 남자와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 남자의 몸을 고쳐 놓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익헌은 서둘렀다. 알아봐야 할 것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칼을 칼집에 집어넣고 그는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임정은 헌터 협회 건물에 들어섰다. 주위를 살피던 임정은 곧바로 협회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협회장은 골프 연습을 하다가 임정을 힐끗 바라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자기가 하는 말에 제대로 집중하는 것 같지 않으면 임정이 괜히 화를 낼 거라는 것을 알아서였다.

“무슨 일입니까?”

협회장이 물었다.

“치안대를 개편해야겠어요.”

임정이 말했다.

“그건 치안대장님 마음대로 하시면 되지 않나요? 이렇게 따로 저를 찾아올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공표는 협회장님이 해 주셔야 하니까요.”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B급 헌터들을 치안부장으로 올리려고요.”

“괜찮은 생각이네요. 그럼 임정 탱커님도 치안부장으로 승진하시는 겁니까? 아니. 치안대장님이 치안부장이 되는 거니까 강등이겠네요?”

협회장이 농담을 걸었지만 임정은 그게 웃자는 얘기인지도 모르고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협회장은 그냥 하던 얘기나 마저 하라는 식으로 손을 내둘렀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임재욱 헌터를 치안대에서 방출할 겁니다.”

임정이 말했다.

“이유는요?”

“사심을 갖고 늪을 관리했어요. 공략이 필요한 늪의 정보를 비공개 처리하고 인근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그곳은 ‘익스트림 헌터’의 선아영 대표가 사는 곳 근처였고 임재욱 헌터는 선아영 대표한테 눈독을 들이고 있죠. 아, 객관적인 표현을 해야 하는데. 눈독을 들인다는 말 대신 적합한 게 뭐가 있을까요?”

"상관 없습니다. 정확히 알아들었습니다."

"그 늪은 오픈일이 2주밖에 안 남았어요. 3급 늪이고요. 임재욱 헌터가 에이스 대원들을 꾸리고 나간다고 해도 불필요한 위험을 초래했다는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리고 공략이 성공할 거라고 보장할 수도 없어요."

임정은 자기가 알아낸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거면 충분한 이유가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은 제가 들을 말이 아니죠. 그 늪의 공략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정보를 공개로 전환했어요. 실력있는 공대들이 레이드를 지원하길 기다려봐야겠죠. 그렇게 하고도 늪이 공략되지 않으면 그때는 제가 나설 거고요."

"그렇군요. 치안대장님이 직접 나서주신다면 걱정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하실 말씀은요?”

임정은 협회장을 바라보았다.

임정이 동료 헌터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병원에 있을 때 협회장이 찾아와 한국에 남아달라고 부탁한 것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임정이 요구하는 것을 뭐든지 들어준다고 했을 때 임정은 치안대장 자리를 요구했다.

돈에는 욕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건 자기가 벌면 그만이었다.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는데 그때 갑자기 치안대장이 떠올랐다. 숨어서 관망하다가 가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라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자기가 치안대장 자리를 요구했을 때 그 말이 받아들여질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기에 협회장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았을 때는 현실감각이 들지 않았다.

임정은 상념에 잠겨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클랜을 만들고 싶습니다.”

“클랜요. 흐음. 그리고요?”

“앞으로 석 달 동안, 저희 클랜이 늪을 최우선적으로 고를 겁니다.”

“다른 공대장들의 반발이 크겠는데요?”

“대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클랜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떤 식으로요?”

“오픈일이 다가오는 늪 중에 자발적으로 레이드가 이루어지지 않는 늪은 치안대의 몫이 되죠. 하지만 빠른 시간 안에 저는, 치안대가 해결할 수 없는 괴수들이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괴수들은 진화하고 있고 공략이 까다로워지고 있어요.”

“그건 그렇죠.”

“소질 있는 사람을 훈련시키는 걸로는 안 됩니다. 특출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는 게 필요해요. 더 많은 괴수들을 경험하게 하고 더 좋은 무기로 지원하고 더 많은 노하우를 빠른 시간 안에 습득할 수 있게 멘토링을 해 주면 좋겠죠.”

“생각하시는 게 뭔가요?”

“이길 수밖에 없는 팀을 만들고 싶어요. 실패를 모르는 팀을요.”

“그런 헌터들을 찾아낸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치안대장님을 알아온지가 꽤 되는데 치안대장님 눈이 이렇게 활기에 차 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군요.”

“부탁드릴 게 또 있어요.”

“더 부탁하시라고 말한 적 없는데요.”

“협회장님의 정보력이 필요해요. A급 헌터들에 대해서 알아봐 주세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A급 헌터가 됐는지.”

“흐음…….”

“제가 먼저 부탁드리지 않아도 그걸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내가 지금까지 직무 유기를 하고 있었고 치안대장님이 나한테 그 사실을 깨우쳐 줬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네요."

"경험치를 쌓는 것 외에 뭐가 필요한지 알아야 돼요. 세상에서 저만큼 경험치가 높은 B급 헌터도 별로 없을 걸요?"

"A급 헌터들이 그 정보를 순순히 공개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의사 소통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죠. 그러라고 조물주가 사람 몸에 여러 가지를 달아 놓은 거예요. 말로 해서 전부 다 될 것 같으면 입만 만들어 놨겠죠."

"팔이나 다리를 만들어 놓은 게 그런 이유라고요?"

"그런 수단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그때는 우리가 나설 거예요. 협회장님은 우리가 그 단계까지 나가야 하는지 그것만 알아내주시면 돼요."

"치안대장님이랑 얘기를 하다보면 왜 이렇게 말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해야 되는 건데."

"필요하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 A급 헌터를 보유하면 우리나라의 위상도 달라지겠죠. 그런데 왜 하필 지금 그런 걸 알고 싶어진 건지 물어도 될까요?”

협회장이 물었다.

임정은 제 손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할 말을 골랐다.

“A급 헌터로 키우고 싶은 사람이 생긴 거군요. 맞죠?”

협회장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

그 말도 틀린 것 같지는 않아서 임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모두 몇 명입니까?”

“저까지 다섯명요.”

“인원을 더 늘릴 생각은요? 열 명이 적당하지 않은가요? 열 명이 좋을 겁니다.”

“인원을 늘릴 생각은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실은 근위 클랜의 창설에 대해서 대통령님과 얼마 전에 얘기를 나누기는 했습니다. 알다시피 늪은 어느 곳에나 생기고 대통령 관저라고 안전지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얘기는 안 들은 걸로 하죠. 그런 자리는 원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겠죠.”

“대통령님이 대장님을 지명했습니다.”

“그러면 대장 자리에 다른 사람을 앉히세요. 교체를 원하시면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이제 슬슬 치안대장 일도 재미가 없어졌거든요.”

그 말에 협회장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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