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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클랜의 멤버
치안대에서 어떤 일에 협조를 구한다고 공문을 보내오더니 하필 오늘 찾아오겠다고 한 탓이었다.
“내가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다른 때는 나도 이러지 않아. 나도 예술을 아는 사람이거든.”
이익헌은 피곤이 절어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지우를 향해 다가갔다. 지우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움찔하는 기색도 없었다. 이익헌은 지우의 손에 샛노랗게 깃드는 차크라를 보았다. 샛노란 차크라의 가장 자리에 연한 푸른 빛이 감돌았다. 차크라가 계속해서 변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헌터라면 물릴 정도로 보아왔지만 그런 차크라를 가진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위험하다!’
이익헌의 얼굴이 굳어진 순간 지우가 팔을 뻗었다. 지우는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이익헌은 방심하고 있다가 오른쪽 어깨에서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무기도 없이 차크라 덩어리를 모아서 그것을 날릴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무기를 사용해 날린다고 해도 이런 위력을 가진 사람은 몇 명 되지도 않을 터였다.
뜨겁게 달군 쇳덩이가 어깨에 박혀있는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이익헌이 지우를 노려보았다. 이제는 전력으로 싸우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익헌이 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천기정이 보기에, 그것은 표범이 도약을 해 뛰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빨랐다. 그러나 이익헌이 잡은 것은 지우가 서 있었던 빈자리일 뿐이었다.
지우는 어느새 이익헌의 뒤로 돌아가 이익헌을 쓰러뜨렸다. 쓰러진 이익헌의 배를 발로 걷어차 몸을 굴려놓고 지우는 이익헌의 목을 발로 밟았다. 위에서부터 망설임없이 내리누르는 힘에 이익헌의 목뼈가 부러졌다. 지우는 남자의 눈이 뒤집히는 것을 보고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지우가 이익헌의 몸에 올라타 두 주먹을 연거푸 날리는 동안 남자의 얼굴은 이리저리 돌아갔다. 나중에는 질척한 반죽을 치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안지우씨, 그만해요!”
천기정이 말리지 않았다면 지우는 영영 멈추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천기정은 지우의 몸을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지우를 이익헌에게서 떼내려고 용을 썼다. 그렇다고 천기정에게 질 지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우는 져주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지우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았다.
‘죽은…건가!’
지우의 눈썹이 기분나쁘다는 듯이 치켜 올라갔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귀찮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났을 뿐이었다. 그런 지우의 눈에, 남자의 웃음이 보인 것은 그때였다.
그거야말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퉁퉁 부은 채 터져있던 입술이 슬며시 올라가는 것 같더니 피를 머금은 하얀 이가 드러났다.
지우는 남자의 오른쪽 소매를 거칠게 올렸다.
‘B급 탱커!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커인 거군!’
지우는 남자가 스스로 살아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차크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계속 공격을 하면 이 남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지우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그런 남자와 함께 자신의 인생을 같이 매장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천기정은 다시 한 번 지우의 팔을 붙잡았다. 지우는 천기정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늦지 않게 정신이 돌아온 게 다행이었다. 그보다는 이 남자가 재생 능력을 가진 탱커라는 게 다행이라고 했어야 할 것이다.
지우는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의 신분을 먼저 밝히고 치안대에 신고를 했다. 전에 지우의 신고를 무시했다가 임정에게 경고를 받은 적이 있었기에 치안대에서는 곧바로 출동을 했다. 지우는 자기가 남자를 붙잡아둘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지만 남자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익헌은 뚫어진 폐와 갈비뼈까지 다 재생시키더니 크게 웃으면서 일어섰다. 그를 죽이지는 않더라도 치안대가 도착할 때까지 잡아두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우는 이익헌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우의 실력을 알고 몸을 사리며 피하는 이익헌을 상대하는 것은 처음만큼 쉽지 않았다.
“상당히 재미있는 녀석이네.”
이익헌이 말했다.
지우는 저도 모르게 차크라를 모았다. 이익헌의 시선이 지우의 주먹으로 향했다. 지우가 이익헌을 향해, 단단하게 뭉쳐진 차크라를 던지려고 했을 때 이익헌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이익헌은 어느새 천기정의 뒤에 붙어 서 있었고, 이익헌이 천기정의 목에 팔을 두른 것과 동시에 천기정의 얼굴이 검붉게 부풀어 올랐다.
“움직이면 이 놈은 죽는다.”
그가 말했다.
이익헌은 허투루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창가로 다가가 주먹으로 유리창을 깼다. 그리고 가장 커다란 조각으로 천기정의 심장 부근을 찌르려고 했다. 지우가 조금만 늦었다면 천기정이 어떻게 됐을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지우가 천기정을 향해 몸을 날리자마자 이익헌은 그대로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만만한 높이는 아니었지만 이익헌에게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천기정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익헌의 차가 떠나고 그 차와 교차해서 치안대가 도착했다. 가장 먼저 뛰어 올라온 사람은 다행히도 임정이었다.
“무슨 일이예요?”
그리고 임정은 지우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천기정에게 다가가 천기정에게 차크라를 쏟아부었다. 천기정의 호흡과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두 사람은 안심을 했다.
천기정은 임정의 차크라 때문에 자기가 나아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지우는 자기가 봤던 차량 번호를 불러주면서 차주를 알아봐 달라고 말했다.
“누군데 천 대리님을 공격한 거예요?”
임정이 물었다.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어떻게 여기로 왔어? 출동해야 했던 것 아니었어? 현장에서 이탈해도 돼?”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묻지마 폭행을 저지르던 헌터. 이번에는 사람을 죽였더군요.”
천기정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 놈. 그 놈이었어요. 나를 전에 공격했던 놈. 그놈이 묻지마 폭행을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놈이라고요.”
천기정이 말했다.
임정은 모든 것이 확실히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차는 셰어차량으로 밝혀졌다. 차를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지우가 이익헌의 얼굴을 자세히 기억해냈다.
“몽타주를 그리면 범인을 잡는데 도움이 되겠네요. 몽타주 작가를 붙여줄 테니까 기억나는대로 말해줘요.”
임정이 지우에게 말했다.
천기정에게도 할 수 있겠냐고 물었지만 천기정은 고개를 저었다.
“막상 마주쳤을 때는 그게 그 놈이라는 걸 알았는데 돌아서서 얼굴을 기억하려고 하면 그게 잘 안 되네요.”
“너무 힘든 기억이라서 뇌가 일부러 지우는 걸 수도 있어요. 천 대리님을 보호하려고요. 지우씨가 기억하고 있으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 큰 일이 생기지 않아서 다행이예요.”
임정이 말했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왜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을까요?”
임정이 묻자 천기정이 말했다.
“떠벌이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그랬을 겁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그 놈은 우리를 둘 다 죽일 생각이었을 겁니다.”
지우가 임정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치안대원 몇 사람을 붙여드릴게요.”
임정이 말하자 천기정은 한숨을 쉬었다. 가까스로 일상의 평온을 되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소리도 없이 부서진 느낌이었다.
“아니면 이사를 하시는 게 어떻겠어요? 제 오피스텔로 오셔도 돼요, 대리님.”
지우가 말했다.
“오늘 이 난리를 치고 갔는데 오늘 밤에 다시 오지는 않겠죠. 오늘 밤에는 짐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어디로든 옮겨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안지우씨가 없었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르겠어요. 아마 자살을 했을 겁니다. 아. 그렇다고 내가 안지우씨 오피스텔로 들어갈 수는 없고. 치안대 헌터한테 미운털 박힐 일 있습니까?”
천기정은 그렇게 말해놓고 생각에 잠겼다.
임정은 천기정에게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주변을 살폈다. 차크라를 사용했다는 것은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지우는 임정에게 그 남자가 B급 탱커에 재생 능력도 가졌다고 말했다.
“B급에 탱커라면 많지 않을 거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재생능력을 가진 탱커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던 거지. 내가 거의 죽였는데 다시 살아난 거거든.”
지우가 말했다.
“그 사람을 거의 죽였다고요?”
임정이 의아한 듯이 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천기정이 증언을 해 주었다.
생생한 목격담이 이루어졌다.
임정은 사건 현장을 다니면서 범인이 얼마나 잔혹하고 대단한 사람인지 파악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남자와 둘이 붙었을 때 지우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안지우씨 손에서 단단한 야구공 같은 게 날아갔다고요. 아니. 골프공 같다고 해야 되나? 단단하기는 거의 쇠공 같았고 크기는 야구공 같았고. 안지우씨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더라고요.”
천기정은 뒤늦게 지우 자랑에 열을 올렸다.
“뭐였는데요?”
임정이 지우에게 묻자 지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차크라가 뭉쳐지더라고. 나도 모르게. 너무 화가 나서 그랬던 것 같아. 올라왔는데 그 놈이 대리님을 몰아붙이고 있었거든.”
“능력을 각성시켜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나도 그러느라고 힘들었어요. 나같은 사람이 언제 그런 표정을 짓겠습니까?”
천기정은 농담을 했지만 그렇게 훌훌 털어버리려고 한다고 그 순간의 두려움이 완전히 가실 것 같지는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치안대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임정이 자신있게 말하면서 천기정을 안심시켰지만 그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동을 건 사람은 임재욱이었다.
임정이 치안대로 돌아갔을 때 임재욱은 임정을 미리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임정에게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임재욱은 사사로운 일에 치안대의 인력을 동원하는 것은 권력 남용이라고 임정을 비난했다.
“임정 탱커는 그냥 B급 탱커라는 것 뿐이지 똑같은 치안대원 아닌가? 치안대장인 것도 아니면서 너무 나댄다는 자각 같은 건 없나?”
임재욱은 돌려 말할 생각도 없이 제 생각을 직구로 꽂아 넣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임정은 이 인간이 왜 또 시비인 건가 하는 표정으로 임재욱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기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에 그냥 대충 고개를 주억거려주고 자리를 떠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임재욱은 고집을 부렸다.
“B급 헌터한테는 치안대원들이 다 대우를 해 주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알아서 대우를 해 주는 거랑 자기한테 그걸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차이가 있는 것 아니겠어?”
임재욱이 말했다.
“재미있는 논리네요. 그런 선배야말로 ‘익스트림 헌터’의 선아영 대표가 사는 집 근처에 생긴 늪의 공략을 일부러 막고 계시는 것 같던데. 나는 선배를 보면 좀 많이 신기하더라고요? 대단한 것도 아닌 걸 권력이라고 가지고 그걸 주무르면서 노는 걸 보면. 왜요? 그렇게 해놓고 나중에 늪이 더 커지면 가서 백마탄 기사 노릇이라도 하려고 그랬나? 그런데 선배가 되겠어요? 3급 늪이던데. 오픈일은 이제 이주밖에 안 남았고. 어쩔 생각이예요? 막상 그때가 되면 모르겠다고 나자빠질 생각인 건가? 그러면 선배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건 알고 있죠? 치안대 전체가 존폐위기에 처할 거라고요.”
임재욱은 임정이 그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임정이 선아영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